△ 네멋대로 해라.
예술영화 전용관 하이퍼텍 나다(02-766-3390)와 시네마테크 부산(051-742-5377)이 함께 마련한 ‘장-뤽 고다르 회고전’이 13∼26일 14일 동안 서울과 부산에서 동시에 열린다. <네 멋대로 해라> <작은 병정> <여자는 여자다> <기관총 부대> <경멸> <미치광이 피에로> <알파빌> <남성/여성>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두세 가지 것들> <중국여인> <주말> <만사형통> <카르멘이란 이름> <마리아에게 경배를> <독일 90> <영화의 역사> 등 그의 대표작 16편이 상영된다. 그의 주요 작품을 체계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1930년 의사인 아버지와 스위스 은행가 집안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고다르는 1949년 소르본 대학에서 민족학을 공부하다 곁길로 새 파리 시네마테크의 ‘시네클럽’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이 시기에 사귄 앙드레 바쟁, 프랑수아 트뤼포, 에릭 로메르 등과 비평작업을 하며 영화와 인연을 맺은 그는 <콘크리트 작업>(1954) 등 몇 편의 단편을 만든 뒤, 험프리 보가트가 주연한 할리우드 갱 영화를 프랑스식으로 개조한 장편 <네 멋대로 해라>(1960)로 데뷔한다.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이 작품은 관습을 벗어던진 이야기 전개와 논리적 설명의 생략, 거친 비약 등 풍부한 형식 실험으로 인해 프랑스 누벨 바그의 기념비적인 필름으로 남았다. 이 시기 찍은 <작은 병정>은 알제리 독립전쟁을 다룬 내용이 검열에 걸려 1963년까지 개봉할 수 없었다.
△ 작은병사(좌), 중국여인
1968년 5월 혁명을 기점으로 고다르는 좀더 왼쪽으로 기운다. 마오쩌둥 주의를 자신의 정치 신념으로 삼은 고다르는 노동자·학생들과 생활하며 그들과 토론을 바탕으로 ‘정치적 주제를 담은 영화’가 아닌 ‘정치적으로 만들어지는 영화’를 추구했다. 그러나 이 시기 많은 필름들이 미완성으로 남거나(<미국 영화> <영국의 소리>) 개봉하지 못했다(<이탈리아의 투쟁> <승리할 때까지>). 이 시기의 대표작은 이브 몽탕과 제인 폰다의 러브스토리에 계급투쟁의 내용을 담은 <만사형통>(1972)이다. 이후 스위스에서 칩거하던 고다르는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인생>(1979)으로 ‘상업영화’로 복귀했다. 지난 98년엔 10년에 걸쳐 완성한 4부작 <영화의 역사>를 내놓았고, 지난해엔 형식 실험에 대한 여전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장편 <사랑의 찬가>로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기도 했다.
초기의 고다르는 의도적인 거친 생략, 화면을 보고 말하는 배우, 감독의 목소리가 들리는 화면 따위를 통해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영화”임을 일깨운다. 이런 기법은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거리 두기 효과’와 같은 의도를 담고 있다. 이런 형식 실험이 절정에 이른 작품으로 <만사형통>이 꼽힌다. “모든 편집은 거짓말”이라거나,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반영의 현실”이란 발언은 영화의 미학적 정치적 지평을 크게 넓힌 그의 신념을 대변하는 경구이다.
이상수 기자 lee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