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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다른 듯 비슷한, 1995-2024 영화 베스트 1위에 오른 <시><하나 그리고 둘>
정재현 2025-11-11

최고의 한국영화는 이창동 감독의 <>다. 2위에 오른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박빙의 승부 끝에 나온 결과다. <>는 ‘2010년 <씨네21>올해의 영화’에서도, 2020년 시행한 ‘2010년대 최고의 한국영화’와 2021년 시행한 ‘201020년 베스트영화’에도 “이창동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최고”라며 순위에 오른 바 있다. <초록물고기>부터 <버닝>까지 이창동 감독의 모든 장편영화가 리스트에서 두루 거론됐지만, <>는 그의 또 다른 최고작으로 꼽히는 <밀양>의 2배가 넘는 지지를 얻으며 1위를 수성했다. 2, 3위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과 <마더>가, 4위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자리했다. 이외에도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을 6위에,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를 7위에 안착시키며 전체 순위에 여러 작품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봉박’이 절반을 차지했지만

<시>

리스트 전체에 포진한 세 감독의 영화는 지난 30년간 국제영화제에서 성과를 거두며 해외 관객들에게 한국영화의 도상을 정립한 작품들이다. 또한 각 감독 대표작으로 거명되는 작품들이다. 터놓고 말해 “넥스트 박찬욱, 봉준호가 없다”라는 성토가 매년 울려 퍼지는 현재, ‘봉박’의 영화가 순위의 절반을 차지하는 리스트는 지극히 예측 가능한 안전지향의 총합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설문 당시 웬만해선 한 감독의 영화는 한편만 꼽아달라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각 감독의 다양한 영화가 유의미한 누계를 보였다는 건 곧 평자 각각이 지지하는 특정 감독의 세계가 다양하면서도 한길로 수렴하고, 그 길이 한국영화의 지난 30년을 대표하는 흐름임을 입증하는 결과일 터다. 박찬욱과 봉준호만큼 리스트에서 자주 언급된 감독은 홍상수다. 언급 횟수에 관계 없이 최종 순위에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만 등판한 이유는 다작하는 감독답게 수많은 영화에 표가 분산됐기 때문이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부터 <소설가의 영화>까지. 199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등장한 홍상수 영화의 대부분을 다음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봉준호, 박찬욱 감독의 영화로 채워진 리스트를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두 감독의 영화는 표본집단의 직군별로 선호 양상이 뚜렷하게 나뉘었다. 감독, 촬영감독, 음악감독, 홍보마케터 등으로 이루어진 영화인 집단과 기자, 평론가 집단은 <>와 <살인의 추억>을 유사한 정도로 지지했다. 그런데 영화인 집단은 박찬욱의 영화 중 <올드보이>와 <복수는 나의 것>을, 봉준호의 영화 중 <기생충>을 다수 거론한 데에 비해 기자, 평론가들은 <마더>와 <헤어 질 결심>에 유독 손을 많이 들어주었다. 기자, 평론가 집단에서는 <올드보이>와 <복수는 나의 것>이, 영화인 집단에서는 <마더>와 <헤어질 결심>이 10위권 바깥의 지지도를 얻었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양 집단은 박찬욱과 봉준호의 최고작을 달리 꼽는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어 특수한 공간을 보편화하고, 보편적 관계를 특수화한 성장영화의 효시인 정재은의 <고양이를 부탁해>, 한국 멜로영화의 역사에 일상성의 마법을 더한 허진호의 <8월의 크리스마스>,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문제적 데뷔작’의 대명사인 장준환의 <지구를 지켜라!>는 영화인과 기자, 평론가 모두가 인용한 작품들이다.

영화인들이 사랑한 코언 형제

<하나 그리고 둘>

해외영화 1위는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이다. 아슬아슬한 표차로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그 뒤를 이었다. 타이베이 중산층 가족의 일상과 세대론을 다룬 <하나 그리고 둘>과 할리우드의 욕망과 환상을 다룬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일견 다른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간과 기억을 재구성하는 각기 다른 인식론을 통해 영화의 존재 의의를 되묻게 만든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하나 그리고 둘>과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기자, 평론가 집단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1, 2위를 차지했다. 이는 영화를 보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고유의 연출로 풀어낸 두 감독이 더는 우리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반해 영화인들이 입을 모아 호명한 해외 감독은 코언 형제다. 전체 리스트에서 13위를 기록한 <파고>는 영화인 리스트 3위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높은 득표율을 통해 전체 리스트 3위와 영화인 리스트 1위에 올랐다. 통합 1~3위에 오른 해외영화는 특정 집단의 굳건한 지지세가 이룩한 결과다. 통합 4, 5, 6, 7, 9위를 기록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화양연화><큐어><로마><이터널 선샤인>이 양 집단에서 비슷한 표결로 모인 것과 확연한 차이를 이룬다.

기자, 평론가 집단에서 유독 사랑받은 감독은 셀린 시아마와 아피찻퐁 위라세타꾼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오직 기자, 평론가의 지지로 전체 10위에 등극했다. 10위권 바깥에 <엉클 분미>와 <열대병>을 올린 대부분의 설문자 역시 기자, 평론가다. 영화인들이 사랑한 해외영화는 <킬 빌>이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홍콩, 일본, 이탈리아 액션영화에 바치는 장대한 오마주가 유독 영화인들의 리스트에서 빈발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정점인 동시에 21세기 스튜디오 지브리의 전성기를 열어젖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전체 순위에 오른 유일한 애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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