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스코시즈 어떤 감독들이나 배우들은 평생을 후보조차 되보지 못하고 커리어를 마감한다. 또 어떤 감독들이나 배우들은 평생을 후보로만 만족하고 살아간다. 검고 두꺼운 눈썹이 트레이드 마크인 이 이탈리아 출신 감독을 굳이 분류하자면 후자에 속한다. 1981년 <분노의 주먹>을 시작으로 <예수의 마지막 유혹> <좋은 친구들> <갱스 오브 뉴욕> <에비에이터> 그리고 2007년 <디파티드>에 이르기까지 모두 여섯번 아카데미 최우수 감독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이전까지 6번 모두 후보로만 만족해야했던 스코시즈의 경력을 <디파티드>가 바꿀 수 있을지 전 세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톰 크루즈 할리우드는 그에게 등을 돌렸다. 윈프리 쇼에서 소파에 뛰어 올라 케이티 홈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외침으로써 확실히 낙인 찍힌 톰 크루즈는, 그 동안 수완좋은 매니지먼트 사에서 꽁꽁 숨겨왔던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천하에 드러내므로써 안티 백화점이 되었다. <7월 4일생> <제리 맥과이어>로 할리우드에 돈을 보여줬던(Show me the money!!) 톰 크루즈는 <매그놀리아>까지 모두 3번 남우주연상 후보로만 만족했다. 하지만 영화 속의 그는 여전히 나라를 위험에서 구하고 아내를 사랑하는, 아메리칸 히어로다.
조앤 알렌 1996년 <닉슨>으로 그녀의 첫 오스카 후보를 경험한 후 1997년 <크루서블>로 연이어 후보에 오르는 영광을 경험했다. 조앤 알렌이 2001년 <컨텐더>로 다시 한번 오스카의 초대를 받을 때까지 그녀는 사람들에게 그저 영민한 배우였을 뿐이었기 때문에, 3번째 오스카 노미네이션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후보자 명단에서 수상자 명단으로 이어지지 못한 이름들은 주연에서 조연으로 밀려나고 결국 TV시리즈 시트콤 특별 출연 게스트로 크레딧에 오르지만 말입니다.
시고니 위버 시고니 위버는 1989년 <정글 속의 고릴라>와 <워킹 걸>로 각각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후보로 동시에 오르고 미끄러진 경험이 있지만, 183cm의 장신인 여배우가 처음으로 좌절을 경험한 영화는 1987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를 허락한 <에일리언>이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여전사와의 인연은 계속 이어져, 관심 절정 카메론 감독의 신작 <아바타>에서도 또 한번 여전사로 변신을 꾀할 수 있게 되었지만, 실제로 청각 장애를 가진 말리 매틀린이 <작은 신의 아이들>로 수상한 여우주연상 트로피, 가끔 꿈에서 나타나지 않을까?
아네트 베닝 영화 속에선 대통령의 연인이었고, 영화 밖에서는 희대의 바람둥이 워런 비티의 연인인 아네트 베닝은 모두 3번 오스카 후보로 호명됐다. 아카데미의 연인은 돼지 못한 그녀의 불운은 <아메리칸 뷰티>로 증명됐는데, 2000년 오스카 5개 부문을 수상한 영화에 주연이었던 아네트 베닝이 기대했던 바로 그 상은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힐러리 스웽크가 앗아갔다. 힐러리 스웽크는 200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여우주연상을 한번 더 수상했으니 확실히 상복이 따로 있나보다.
케이트 윈슬렛 1995년 <센스 앤 센서빌리티>의 엠마 톰슨의 철없는 여동생으로 여우조연상 후보로 오른 것이 시작이었다. 그 후 망망대해 얼음바다에 빠져서도 살아남은 로즈가 되어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으나 관객의 사랑과 아카데미의 사랑은 평행선과 같아서 만날 수 없었다는. 2001년 <아이리스>에서 쥬디 덴치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윈슬렛은 또 한번 조연상으로 후보에 오르지만 결과는 같았다. 1997년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헬렌 헌트에게 수상을 양보한 데 이어 2005년 <이터널 선샤인>에서의 귤머리 클레멘타인으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케이트 윈슬렛은 상복많은 여인 힐러리 스웽크(진정 그녀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다)에게 여우주연상을 내줄 수 밖에 없었다.
제프 브리지스 여기 오스카가 4번 외면한 배우가 또 있다. 1971년 작 <마지막 영화관>과 1974년 작 <대도적>으로 각각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로 올랐고, 1984년 <스타맨>으로는 남우주연상 후보도 넘봤으나 어찌보면 후덕하고 어찌보면 비열해 보이는 제프 브리지스는 연기 잘하는 배우로 만족해야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오스카 후보에 오른 작품은 <컨텐더>다. 여우주연상 후보로 오른 조앤 알렌과 나란히 손이라도 잡은 듯 내려와야했지만.
에드 해리스 "할리우드의 가장 섹시한 대머리" 에드 해리스는 <폴락>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로, 에드 해리스 필모그래피 최초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영광을 얻었다. 이전까지 그는 냉철한 비행관제 센터의 본부장(<아폴로 13>)과 철두철미하지만 인간미 없는 TV쇼의 프로듀서(<트루먼 쇼>)로 조연상의 초대를 받은 경력이 있다. 2000년 줄리앤 무어, 니콜 키드먼, 메릴 스트립과 함께 출연한 <디 아워스>로 다시 한번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쟁쟁한 3명의 여배우 사이에서도 인상적이었던,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눈빛의 그를 아카데미는 어찌됐든 외면했다.
글렌 클로즈 <위험한 관계> <위험한 정사> <내츄럴> 등 유독 치명적인 요부 역할로 할리우드 감독들의 러브콜을 받아 온 글렌 클로즈의 전성기는 1980년대 였다. <가프>로 1983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로 오른 글렌 클로즈는 그 후 <새로운 출발> <내츄럴>로 연이어 아카데미의 러브콜에 화답했고 <위험한 관계> <위험한 정사>로 1988년, 1989년 연달아 여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됐다. "위대한 연기"를 했다고 호평 받은 <위험한 관계> 때는 <피고인>의 조디 포스터, 질투로 이성을 잃는 여자를 연기한 <위험한 정사> 때는 <문스트럭>의 쉐어라는 호적을 만나 트로피의 여주인 자리를 내주었지만 은발이 눈부신 여배우가 시상식 이후 토끼를 몇 마리나 삶았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알버트 피니 베테랑 영국 배우 알버트 피니의 필모그래피의 20%는 오스카의 관심을 받았고 1963년부터 1983년까지 그는 주연급 배우로 대우받았다. <톰 로스> <오르엔트 특급 살인사건> <멋진 드레서> <활화산>으로 이어지는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노미네이션이라는 수식이 붙었으나, 2000년 줄리아 로버츠와 호연한 <에린 브로코비치>로 처음으로(!) 남우조연상 후보로 올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알버트 피니 자신이 오스카 시상식에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는 거!
로버트 알트만 <프레리홈 컴패니언>을 유작으로 2006년 11월20일 세상을 떠난 거장을 이 자리에서 아쉬워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야전병원 매쉬> <내쉬빌> <플레이어> <숏 컷> <고스포드 파크> 등 그의 이름과 어울리는 영화들로 오스카의 이름을 명예롭게 해주었던 로버트 알트만 감독은 후보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므로써 아카데미 자체를 진정성 있게 했던 영화인이다. 늦게나마 오스카에서 그에게 공로상을 수상하기는 했지만 그의 이름이 불렸어야 마땅했던 시상식은 1971년(<야전병원 매쉬>)이었다.
알프레드 히치콕 대표작이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숨이 찬 이 서스펜스-스릴러 장르의 거장이 할리우드의 가장 큰 축제에 6번이나 초대받고도 시상대에 올라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믿어지는가? 사실 1968년 상을 한번 받기는 했다. 어빙 탤버그 상이라고 공로상이다. <레베카> <의혹> <라이프보트> <망각의 여로> <이창> <싸이코>로 최우수감독상 후보에만 머물렀던 히치콕의 얄궂은 운명을 너무 많은 명성을 누린 자에게 주어지는 운명의 장난 같은 것이라고 하면 어떨까. 아니면 아카데미를 "싸이코"라고 생각하던가.
피터 위어 <위트니스>(1986년 아카데미) <죽은 시인의 사회>(1990년 아카데미) <그린 카드> <트루먼 쇼> <마스터 앤드 커맨더>. 피터 위어 감독은 모두 5번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로만 머물렀다. 1986년에는 시드니 폴락 감독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게 영광을 돌렸다. 광활한 아프리카에서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릴 스트립이 보여준 사랑이 아카데미의 기호에 더 맞았다. 1990년에는 올리버 스톤이 미국의, 미국을 위한, 미국에 의한 <7월 4일생>으로 가장 미국적인 영화제 아카데미 감독상을 앗아갔다. <트루먼 쇼> 때는 아마도 스필버그가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피터 위어 감독에게도 6번째 기회는 분명 있을 것이다.
리차드 버튼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두 번이나 결혼한 리차드 버튼은 그의 일생을 통틀어 5번의 결혼생활을 누렸으며 아카데미는 그보다 두 번 더 버튼을 후보명단에 올렸다. <나의 사촌 레이첼>로 1953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로 오른 이래 <성의> <베킷> <추운 곳에서 온 스파이>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천일의 앤> <에쿠스>로 6번 남우주연상 후보가 됐다. 엘리자베스 테일러하고 두번째 이혼하던 날과 <추운 곳에서 온 스파이>로도 남우주연상을 놓친 날, 어느 날이 더 싫었을까?
피터 오툴 남자다운 육체와 섬세한 용모가 기이하게 어우러졌던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영국 배우 피터 오툴에게 아카데미라는 성찬의 첫 술이었다. 물론, 첫 술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후보로만 머물러야 했지만 그 이후에도 <베킷> <겨울의 라이온> <굿바이 미스터 칩스> <지배 계급> <스턴트 맨> <아름다운 날들>로 남우주연상 후보로 모두 7번에 걸쳐 초대를 받았다. 그 후 공로상으로 마무리 될 뻔 했던 피터 오툴의 아카데미 후보사에 한번 더 기회가 왔으니 2006년 제작된 영화 <비너스>로 그는 8번째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가 되었다. 아카데미, 이제 그에게 진짜 상을 줄 수 있는 기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