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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관리가 안돼요.”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하 <하이킥3>) 이후 8개월 만에 <음치클리닉>에서 고음불가 캐릭터로 돌아온 배우 박하선은 반복해서 말한다. 그런데 사실 ‘그냥 관리가 안되는’ 그녀의 표정이야말로 그녀의 가장 사랑스러운 순간들을 결정짓는 제1원소다. 10년 동안 짝사랑한 남자의 마음에 들고자 안되는 <꽃밭에서>를 부르고 또 불러보는 동주는 음이탈만큼이나 표정이탈에도 일인자다. 사랑 앞에서 쩔쩔매던 그녀가 돌아서 헤비급 박치기, 산낙지 주사(酒邪)에 온 얼굴을 내던질 때, 상대배우 윤상현의 말마따나 그 나이에 그녀처럼 “잘 내려놓는” 여배우가 어디 흔할까 싶다. 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녀는 한결 차분한 모습이었지만, 보는 사람마저 긴장을 풀고 그녀의 표정을 좇아가게 만드는 소탈한 흡입력은 여전했다. 그 내려놓음이 가능하기까지 짧지 않은 우회로를 지나온 그녀가 자신 앞에 놓인 연기의 미로 속으로 다시 들어서려는 모습 또한
[박하선] 열심히 하니 내 캐릭터에게도 해뜰 날이 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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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2012 영화 <남영동1985>
2009 영화 <바람>
-영화 <남영동1985>의 이 계장이 워낙 경상도 사투리를 잘 써서 혹시 김중기도 사투리를 쓰지 않을까 생각했다. (웃음)
=원래 대구 사람이라 사투리를 썼었다. 배우가 되기로 마음먹고는 고향에 3년 정도 안 내려갈 정도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사투리를 고쳤다. 표준어가 편해지면서 이제는 사투리와 표준어를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는 게 나만의 특기가 되어버렸다.
-이 계장은 김종태 역할을 맡은 배우 박원상을 가장 많이 때리는 인물이다. 박원상이 선배 연기자니 구타장면이 본인에게는 부담이 됐겠다.
=이 계장이 김종태의 뺨을 때리는 장면을 찍을 때 그전 촬영 때문에 박원상 선배가 많이 지쳐 있었다. 그래서 한번에 끝내려고 했는데 쉽지 않더라. 결국 5번을 다시 찍었는데 마지막에 정지영 감독님이 오셔서 “중기야, 그냥 세게 때려” 하시더라. 그래서 진짜 있는 힘껏 때렸더니 오케이 사
[who are you] 김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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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히 기대해왔다. 그가 성우로서 활약해주기를. 오늘에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이종혁의 목소리엔 언제나 묘하게 로맨틱한 기운이 있었다고.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해서인지 이종혁의 발성은 무척 안정적이고 그 울림엔 독특하고 무거운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최근 이종혁은 말 그대로 ‘포텐’이 터졌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맞춘 듯 어울렸던 쾌남 이정록을 연기한 덕분이다. 그전엔 아무리 이종혁이 코믹하거나 부드러운 역할을 맡았어도 어쩐지 그의 얼굴에서 늘 약간의 차가움을 느꼈었다고 기억한다. <말죽거리 잔혹사>나 <추노>에서 익히 보았던 그 어두운 얼굴을 말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신사의 품격>에 와서 이종혁은 비로소 또 하나의 새로운 얼굴을 찾은 듯했다. 한동안은 드라마에서 그를 볼 수 있겠거니 했는데 이종혁의 다음 작품들은 장르가 모두 제각각이다. 목소리 출연을 한 드림웍스의 3D애니메이션 <가디언즈>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
[이종혁] Mr.유쾌/상쾌/통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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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진이 애니메이션 목소리 연기가 처음이라고? 의아해할지 모르겠지만 정말이다. 유해진은 <가디언즈>로 애니메이션 더빙 작업을 처음 경험했다. 느닷없이 착각이 작동했다면 십중팔구 <전우치>(2009)의 초랭이 때문일 것이다. “내레이션을 해본 적은 있다. 몇년 전에 다큐멘터리 <MBC 스페셜 공룡의 땅>에서 ‘나는 티라노 사우루스다∼’(웃음), 그 정도가 전부다.” 목소리 연기는 그야말로 ‘생초짜’라고 뒤로 물러서지만, 알고 보니 배우 유해진이 아니라 성우 유해진이 될 뻔한 전력도 있다. 캐묻다 보니 서울예술대학 재학 시절 한 방송사의 성우 시험에 응시한 기억도 털어놓는다. “친구들이 본다고 해서 따라갔다. 성우 하면 목소리가 낭랑하고 청아해야 한다고 생각하잖나. 내 목소리는 탁하니까 아예 기대도 안 했는데 합격은 못했어도 운 좋게 최종 면접까지 올랐다.”
그렇다고 해도 <가디언즈>의 부활절 토끼 버니를 흔쾌히 받아들인 건 목소리 연기 자
[유해진] Mr. 판타스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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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하하하!” 피팅을 마치고 카메라 앞에 자리를 잡는 품새가 벌써 예사롭지 않다. 검은 오라를 풍기는 악령 피치의 이종혁과 촐랑 끼가 있는 부활절 토끼 버니 역의 유해진은 사진촬영 때만은 자못 점잖은 모습인 반면, 류승룡은 자신이 맡은 산타클로스 놀스를 스튜디오까지 끌고 온 듯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가디언즈>의 놀스는 우리가 흔히 봐왔던 산타클로스가 아니다.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켜준다는 수호신치고는 비주얼부터 좀 희한하다. 시꺼먼 눈썹과 부리부리한 눈에, 잔뜩 촉각을 곤두세운 똥배도 막강하고, 양팔에는 착한 아이들과 못된 아이들을 무려 문신으로 새겨놨다. 하지만 그 투박한 외피 안에 아주 말랑말랑한 무언가가 들어있다. 그 정체를 놀스는 영화 속 한 장면에서 마트로시카 인형을 가지고 친절하게 설명해 보인다. “내 겉모습은 이래, 그치? 몸집은 크고 우악스럽잖아. 하지만 자, 열어봐. 속마음은 아주 유쾌하다? 근데 그게 전부가 아냐. 신비로운 구석도 있고 또
[류승룡] Mr.페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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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뭉쳤다. 전설에 대한 전설이라 할 만한 <가디언즈>는 산타클로스 놀스, 부활절 토끼 버니, 이빨 요정 투스, 꿈의 요정 샌드맨, 서리 요정 잭 프로스트, 다섯 수호신이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내기 위해 악몽의 화신 피치와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그중 놀스, 버니, 피치에 목소리를 빌려준 류승룡, 유해진, 이종혁을 만났다.
표지 촬영 당일 카메라 앞에 선 그들을 보는데, 목소리 캐스팅 전에 이미지 캐스팅이라도 거쳤나 싶었다. 사전정보 없이 누가 어느 캐릭터를 맡았는지 점칠 수 있을 만큼 높은 싱크로율이었다. 거기에 인터뷰를 더하니 그들의 필모그래피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더 많이 발견된다. 자기 목소리에 꼭 맞는 그림을 입은 그들 덕분에 <가디언즈> 한국어 더빙판은 보는 즐거움만큼 듣는 즐거움도 크다. 그 여운을 담아 여기 그들의 3인3색 더빙 체험기를 전한다.
[가디언즈] 세 남자의 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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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다 바꾸겠다던 테크노 여전사, 영원히 소녀일 줄 알았던 이정현이 엄마가 되어 돌아왔다. <범죄소년>에서 그가 맡은 장효승은 33살의 미혼모다. 17살 때 원치 않은 임신과 출산을 한 뒤 아들이 3살 때 가출한 그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뒤, 그는 아들(서영주)이 소년원에 있다는 사실을 듣고 찾아간다. 처음으로 가족에 대한 사랑을 느낀 그는 아들과의 동거를 시작한다. 그러나 아들의 여자친구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미혼모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혼란스러워한다. 데뷔작 <꽃잎>(1996), 공포영화 <하피>(2000)에서 보여준 강렬한 모습이나 <파란만장>(2011)의 무당은 잠깐 잊어도 좋다. 강이관 감독의 영화 속 인물이 그렇듯이 <범죄소년>의 이정현 역시 사실적이고 섬세한 연기를 펼쳐낸다.
-강이관 감독은 “실제 미혼모들의 연령대가 10대가 많아서 아들 역을 맡은 서영주 씨와 나이 차가 크게 나지 않았으면 좋
[이정현] 무당? 미혼모? 배우인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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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휴 잭맨을 만났다. <가디언즈>의 부활절 토끼 버니의 목소리를 연기한 휴 잭맨을 인터뷰하기 위해 각국의 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국적 불문, 성별 불문, 나이 불문, 모두가 휴 잭맨에게 반했다. 30분 남짓 진행된 인터뷰가 끝나고 휴 잭맨이 자리를 뜨자 기자들은 ‘휴 잭맨은 진정한 나이스 가이’라며 입을 모아 칭찬했다. 까칠하고 인색하기 그지없는 기자들이 휴 잭맨에게 이렇게 호의적인 이유는 뭘까. 간단하다. 그는 모든 일에 성심성의를 다한다. 단적으로, 그에게 애니메이션 더빙은 단순히 캐릭터에 자신의 목소리를 덧입히는 작업이 아니다. 실사영화를 찍듯 온전히 캐릭터 하나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휴 잭맨은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한 모범 배우다. <가디언즈>는 두 아이를 둔 ‘아빠’ 휴 잭맨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작품이기도 하다. 아내 데보라 리 퍼니스와 아들 오스카 맥시밀리안, 딸 에바를 향한 마음
[휴 잭맨] 토끼가 된 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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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2012 드라마 <메이퀸>
2012 영화 <도둑들> <범죄소년>
2011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
-축하한다. <범죄소년>으로 도쿄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제 수상이라는 수식어가 주는 책임감이 크다. 이제 오디션 보면 걱정부터 든다. “상 받은 배우니 이만큼은 해야지”라고 미리 생각하실까봐.
-첫 주연으로 쉽지 않은 연기였다. 소년원 수감, 미혼모 엄마의 갑작스런 등장, 여자친구와의 문제 등 파란만장한 ‘지구’의 상황을 표현해야 했다.
=편하게 해야지 생각했는데 막상 들어가니 주인공의 무게라는 게 상상 그 이상이더라. 강이관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하면서 조율해 나갔다. 지구는 다들 문제가 많은 학생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반대로 최대한 평범한 학생의 모습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극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실제 소년원에서 촬영했다.
=한달 촬영 중 7회차 정도를 소년원에서 찍었
[who are you] 서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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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남영동1985>(이하 <남영동>)가 상영된 직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는 고 김근태 의원의 부인인 인재근 의원이 참석해 무대에 올랐고, 그 옆에 함께했던 이경영은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은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자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었던 고 김근태 의원의 자전적 수기 <남영동>을 바탕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벌어진 22일간의 잔인한 고문의 기록을 날짜별로 담아낸 작품이다. 박원상이 고문 피해자인 김종태, 이경영이 ‘장의사’로 불리는 고문기술자 이두한을 연기했다. 김근태와 이근안이라는 실명을 쓰지 않은 것에 대해 정지영 감독은 “고문 피해에 대한 이야기는 김근태 의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 시절 수많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했고,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그들 모두가 영화에 담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김종태는 박종철과 김근태이고
[남영동 1985] 거의 반 미친 채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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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뼛속까지 시인이겠지만, 김선우는 산문의 혁명적 힘을 믿는다. 글로 만났을 때만큼이나 발화되는 그녀의 언어는 명료하지만, 마치 책을 암송하듯 비문이 없는 문장 사이로 한숨이 섞일 때 웃음이 새어들 때 말은 말 이상의 울림을 갖는다. 읽는 이를 주먹 꼭 쥐고 울게 만드는 사랑이야기 <물의 연인들>은 그녀를 닮았다. 인터뷰를 위해 날 맑은 주말의 시내로 나가는 길, 전경들은 사신처럼 줄지어 무표정한 얼굴로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았고, 인터뷰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닭장차 때문에 공연인지 집회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는 서울광장의 대낮 같은 조명으로부터는 앰프 소리만이 크게 울리고 있었다. 이러고도 우리가 아름다움을 믿을 수 있을까. 그 질문을 위해 김선우를 만나봐야 했다. 정말, 언어로 혁명이 가능합니까, 묻기 위해서.
Profile
1996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있길 거부한다면> <도화 아래 잠들다>
[김선우] 다시, 사랑의 말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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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의 어느 초여름날 밤, 이송희일 감독의 ‘팬덤’을 직접 목격할 기회가 있었다. 그의 퀴어영화 <지난여름, 갑자기> <백야>의 상영에 참석하기 위해 수많은 ‘후회 폐인’들이 인디포럼을 찾은 것이다. 새벽까지 이어진 그날의 뒤풀이에 함께하며 <후회하지 않아> 이후 6년 동안 지속된 팬들의 오랜 목마름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헛되지 않은 듯 보인다.
11월15일, 앞서 언급한 두편의 영화와 올여름에 촬영한 신작 단편 <남쪽으로 간다>가 ‘이송희일 퀴어 연작 시리즈’란 이름 아래 극장 개봉한다. 타이트한 촬영 스케줄과 캐스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신인배우 연출 문제로 이송희일 감독의 시름은 깊어져갔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면 알게 될 거다. 이제는 새로운 폐인이 탄생할 때라는 걸(영화의 자세한 내용은 36쪽 프리뷰를 참조하면 좋겠다).
-첫 관객 시사회를 서울이 아니라 부산에서 연다.
=<후회하지 않아> 때
[이송희일] 동성애/이성애를 가르는 빗금 자체에 의문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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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백을 하면…>의 감독 겸 제작자 조인성은, ‘그’ 조인성을 떠올린다면 처음엔 다소 실망스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보라. ‘이’ 조인성이 훨씬 귀엽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건 배우 김태우 덕분이다. 내놓는 작품마다 신통찮아 툭하면 짜증인 데다 강릉으로 상습 도피를 일삼는 그를, 김태우는 미워할 수 없는 옆집 남자처럼 그려낸다. 그가 처음엔 서울과 강릉을 잇는 길 위에서 이런저런 사람들과 마주치며 이따금 억울한 상황에 처해 식식거릴 때면, 사랑스러워서 그저 흐흐흐, 하고 웃게 된다. 밥 먹는 연기는 또 어찌나 수더분한지. 이만하면 그를 생활연기의 달인이라고까지 부르고 싶어진다. 여기, 그가 <내가 고백을 하면…>의 장면들 속에서 끄집어낸 생활연기의 참맛을 옮겨 적었다. 읽다 보면 그와 함께 강릉에서 못밥 한끼 하고 싶어질 거다.
-인터뷰 준비하다가 유부남, 그것도 11년차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모르는 분들이 더 많아요. 애도 있고, 아저
[김태우] 생활연기의 디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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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2012 영화 <남쪽으로 간다>
-<남쪽으로 간다>가 첫 작품이다. 생짜 신인인데도 이송희일 감독이 먼저 제안해서 캐스팅됐다고 들었다.
=나보다 잘생기고 재능있는 배우는 많으니까 ‘25살이 되기 전에 연기파 배우로 승부를 보자’라고 목표를 잡고 연기 수업을 받고 있었다. 우연한 계기로 내 프로필을 보고 이송희일 감독님이 먼저 연락을 주셨다.
-노출이나 베드신이 힘들진 않았나.
=베드신이 어려웠을 거라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상대배우인 전신환 선배랑 편하고 재밌게 찍었다. 그런데 맨몸으로 뛰어다니고 진흙탕에서 몸싸움을 벌이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이번에 개봉하는 이송희일 감독의 영화 3편 중 <남쪽으로 간다>의 기태가 제일 강렬했다.
=사실 나는 군대를 면제받았기 때문에 기태 역을 맡으면서 군복도 처음 입어봤다. (웃음) 기태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남자다. 기태의 감정선도 감정
[who are you] 김재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