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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사진처럼 포착된 사물의 배치와 일상적 질서에 깃든 서정성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특징이다. 때론 그 먹먹하게 아름답고 감상적인 세계가 개인의 내면에 폐칩된 듯도 했다. 전작의 주인공들과 달리, <언어의 정원>의 다카오와 유키노는 얻어맞고 쓰러졌다가도 다시 일어나 세상과 맞설 힘과 용기를 품었다. 송알송알 내리는 빗방울과 풀빛으로 물든 장마철의 공기가 작품에 가득하다. 아마도 가장 행복했을 한순간, 함께 있는 창으로 스며드는 햇살은 포근하다. 소슬하게 깔리는 소년의 내레이션도, 먼 하늘을 배경으로 엔딩을 휘감는 백그라운드 뮤직도 여전하다. 네 번째 장편애니메이션인 <언어의 정원>을 들고, 8월14일 국내 개봉에 앞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먼저 찾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만났다.
-한국에 당신의 팬이 많다. 이번이 몇 번째 한국 방문인가.
=한국에는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초속 5센티미터> <별을 쫓는 아이>의 개봉
[신카이 마코토] 세상의 비밀, 사랑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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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사진인가요? 이런, 역기능 가족 같으니!” 사진기자의 셔터가 콩 볶는 소리를 내는 표지 촬영 현장에 봉준호 감독, 송강호, 크리스 에반스와 나란히 선 틸다 스윈튼이 유쾌하게 속삭였다. 그가 쓰는 가족이라는 말의 뉘앙스는 ‘내 편, 우리 식구’ 같은 배타적인 의리의 느낌과는 다르다. 틸다 스윈튼에게 시네마를 포함한 모든 예술은 사랑에서 비롯된 노동이고, 영화는 집단 창작 과정을 통해 혈연과 국적, 활동 부문을 뛰어넘어 비전의 공동체를 짓는 작업이다. 방한 이틀째 레드 카펫 시사회를 마친 틸다 스윈튼은 새벽 1시를 넘긴 시각임에도 강남에서 따로 모인 <설국열차> 스탭들의 뒤풀이 자리를 찾아가기도 했다. 기자가 스윈튼을 스크린 밖에서 처음 본 것은 뒷날 <아이 엠 러브>를 연출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단편 다큐멘터리가 상영된 2002년 베니스영화제에서였다. 출품작의 제목은 <틸다 스윈튼: 러브 팩토리>. 이 배우를 알아갈수록 절묘하다고 탄복하게
[틸다 스윈튼] 연대의 체험 예술가의 창작 과정에서 뺄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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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떻게 태어나고, 사랑하고, 죽는가. 우리 모두 어린 시절 한번쯤 품어봤을 궁금증인 동시에 어쩌면 아직도 해결 못한 질문들. <나에게서 온 편지>의 카린느 타르디유 감독은 어린 소녀들의 눈을 통해 우리가 묵혀놓고 잊어버린 질문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저 즐겁다는 그녀가 아이들의 미소를 통해 발견한 삶과 성장의 비밀에 귀기울여보자.
-원작 소설 <무릎을 스치는 바람>의 작가 라파엘 무사피르와 함께 각본을 썼다.
=라파엘 무사피르의 소설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감동적일 뿐 아니라 내 모습과 많이 닮아서 마치 나의 자전적 이야기를 쓴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몇주 뒤 어린이 도서전에 초대를 받았는데, 마침 옆자리에 라파엘이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도서전이 열리는 이틀 동안 그녀 곁에 붙어다녔고 결국 함께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는.
=과거 수용소에 갇혔던 경험이 있는 아빠 미셸 캐릭터
[flash on] 아이들의 대화엔 상상 이상의 마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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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의 ‘성수’는 낯설다. 세면대 거울 위로 비치는 얼굴은 분명 1년 전 ‘백홍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울렸던 그 사내가 맞는데, 그의 무표정은 친숙하기는커녕 섬뜩하기까지 하다. 쌍꺼풀 없이 길게 찢어진 눈이나 가는 입꼬리, 창백한 피부에는 귀기마저 흐르고, 그 표정의 빈자리는 보는 사람을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든다. 병적인 결벽증을 지닌 중산층 가장 성수. 피부가 마찰을 못 견디고 찢어질 때까지 닦고 또 닦고, 씻고 또 씻는 저 남자는 무엇을 자신의 손에서, 자신의 얼굴에서,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서 저리 열심히 지워내려 하는 것일까. 이 스릴러를 꽉 채워주는 그 불길한 공백으로서의 성수를 기다리는데, 누구에게든 선뜻 두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동네 아저씨 같은 배우 손현주가 다가왔다.
데뷔 때부터 그는 ‘옆집 남자’였다. 마당극을 주로 했던 극단 ‘미추’를 떠나 1991년 KBS 14기 탤런트 공채에 합격한 뒤 처음 맡은 일이 농촌 드라마 <대추나무 사
[손현주] 보통 사람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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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회 연재. 그럼에도 마감이 늦거나 펑크를 내지 않았다. 네이버에 직장 개그만화 <가우스전자>를 연재하는 만화가 곽백수는 ‘마감의 신’이다. 그 칼 같은 마감에도 불구하고 <가우스전자>는 야구의 타율로 치면 3할 이상의 빅재미를 보장한다. 이 꾸준함의 비법이 궁금했다. 그런데 그가 내놓은 대답은 너무 쿨하다. “직업이니까… 미리미리 하면 된다”가 전부다. 결국 비법은 없었다. 말하자면 곽백수는 천재가 아닌 그저 평범한 동네 아저씨 같은 사람이다. “이름(본명)처럼 백수로 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는 그는 지금도 마감을 준비하고 있을 거다.
-곽백수 하면 마감으로 유명하다. 비축되어 있는 연재분도 꽤 많을 것 같다.
=지금은 3주치 정도 있다. 처음에 <가우스전자> 연재 시작할 때 1개월치 가지고 시작했다.
-비축된 연재분이 조금씩 줄어들면 초조해지지 않나.
=그렇지 않다. 뭐 그냥 하던 거 하는 거니까. <가우스전자> 연재한
[trans x cross] 그저 평범한 현실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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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더 테러 라이브>(2013), <범죄소년>(2012), <런닝맨>(2012) B팀, <태어나서 미안해>(2011) B팀, <시선 너머>(2010), <파수꾼>(2010), <고백한잔>(2009), <바람만 안 불면 괜찮은 공기>(2009), <웅이 이야기>(2007)
<더 테러 라이브>는 일곱대의 카메라를 동시에 돌리는 방식으로 촬영이 진행됐다. 라디오 스튜디오로 꾸민 좁은 세트장에는 배우와 카메라뿐이었다. 인물을 찍는 A, B, C 세대의 카메라, 앵커 윤영화(하정우)를 정면에서 찍는 방송 카메라, 주진철 경찰청장(김홍파)을 찍는 또 한대의 방송 카메라까지 카메라 다섯대가 항상 현장에 있었고, CCTV 장면까지 포함하면 총 일곱대의 카메라가 있었다. 그리고 이 카메라들을 진두지휘한 사람, 변봉선 촬영감독이 있었다.
23개의 챕터로 나뉜 촬영 스
[STAFF 37.5] 우리 모두 다 같이 앵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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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2013 리얼리티쇼 <방송의 적>
2012 드라마 <응답하라 1997>
리얼리티쇼 <방송의 적>을 보고 있노라면 끊임없이 대사를 쏟아내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말을 아끼는 응구라는 캐릭터가 눈에 띈다. 응구는 <은교>를 패러디한 이적-존박-응구의 삼각관계 속에서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며 신비스러운 소녀의 이미지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실제의 선아는 응구와 달리 매우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리고 당당하게 말한다. “리얼리티쇼라고 하지만 사실 다 짜고 치는 거 아시죠? 열의 아홉은 연기입니다. (웃음)”
선아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7>로 데뷔했다. 일명 ‘가위춤’을 추며 매력을 발산했던 은각하가 바로 그녀다. “중2 때 참가한 댄스 대회에서 JYP의 캐스팅 매니저에게 명함을 받은” 것을 계기로 연예계에 발을 들였고, 지금은 걸그룹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그래도 연기를 제일 하고 싶어요
[who are you] 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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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감독으로서 자기 영화의 배우들을 향해 ‘환상의 조합’이라 부르는 건 너무 당연한 인사치레 같지만, 지금도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의 배우들을 ‘꿈의 캐스팅’이라 느낀다. 한정된 세트에서 거의 100% 촬영하다보니 그의 이전 영화들에 비해 로케이션의 다채로운 재미가 대폭 줄었지만, 매 순간 자신의 개인기를 유감없이 펼치고 사라지는 크고 작은 배우들의 매력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만큼 그에게 <설국열차>는 ‘배우의 맛’으로 버틸 수 있었던 영화다.
먼저 봉준호 감독의 헤어스타일을 두고 장난스럽게 “그레이트 헤어!”라 명명한 크리스 에반스는, <살인의 추억>(2003)과 <마더>(2009)를 챙겨보고 분석하며 <설국열차> 오디션에 적극적으로 응한 배우다. 사실 봉준호 감독에게 그의 첫인상은 ‘몸 좋은 미국 고등학생’이었지만 만남을 거듭할수록 반전의 매력을 느꼈다. 특히 인상적인 작품은
[봉준호] 엔진을 움켜쥔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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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봉준호는 영화적 동지이자 존경하는 감독이고, 사적으로는 친한 후배다.” 봉준호 감독에 대한 송강호의 가슴 뭉클한 정의다.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에 이어 <설국열차>에 탑승한 그는 빙하기만큼이나 길었던 4년의 프리 프로덕션 기간을 쭉 지켜본 파트너다. “<살인의 추억> 때부터 그랬는데, 봉준호 감독과 나는 말을 그렇게 많이 안 한다. 왜 내가 여기 나와야 하고, 왜 나는 다른 배우들처럼 영어가 아닌 한국어를 써야 하고, 이런 데 대해서 서로 말이 없다. 물어보기도 귀찮고, 봉준호도 ‘뭐 그런 걸 물어봐, 알아서 하지’ 이런 시스템으로 서로 일해왔다. 봉준호는 내가 어떻게 하나 볼 뿐이고, 나는 또 그렇게 내 마음대로 해도 되니까. (웃음)” <설국열차>에 따라붙는 거창한 수식보다 그는 봉준호 감독과의 세 번째 작업에 의미를 더 부여한다.
<설국열차>에서 송강호는 키플레이어다. 바로 영
[송강호] 긴장과 이완으로 무장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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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에서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바글대는 빈민굴 같은 맨 뒤쪽 꼬리칸, 그곳의 젊은 지도자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긴 세월 준비해온 폭동을 일으킨다. 기차의 심장인 엔진을 장악하고 절대권력자 윌포드를 굴복시켜 마침내 기차 전체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열차칸의 문을 하나하나 열 때마다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그를 기다린다. 플래시백도 없이 오직 직진만 거듭하는 이 게임과도 같은 영화에서 크리스 에반스는 뒤돌아보지 않는 불굴의 주인공이다. 이에 대해 그는 ‘모두가 자기 하나만을 쳐다보고 있다는 숙명’이 중요하다고 했다. “권력에 대한 욕구와 모두를 돌보고자 하는 자애로운 마음, 그리고 과거로부터 비롯된 죄책감과 수치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복합적인 인물이지만 약한 모습을 절대 내비칠 수 없는 고단한 리더의 운명”이 바로 그가 얘기하는 커티스의 핵심이다.
이쯤에서 그가 연기한 수많은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이 스쳐 지나간다. 먼저 <설국열차>에서 ‘불’이
[크리스 에반스] 나는 직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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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제작진을 취재하러 모인 수많은 매체를 수용하기 위해 제작사가 한층을 통째로 인터뷰 룸으로 세내다시피한 호텔 복도를 성큼성큼 가로지르다가 틸다 스윈튼이 킥 웃었다. “꼭 공항 보딩 게이트 같지 않아요? 저 문으로 들어가면 부산, 이 문으로 가면 서울로 날아가는 거예요.” 인터뷰 전날 입국한 틸다 스윈튼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설국열차>의 최종 편집본부터 시사했다. “크리스의 손에서도 커티스는 이미 흥미로운 인물이었지만 완성본을 보고나서야 <설국열차>가 리더십이라는 주제에 대해 얼마나 깊고 현대적이며 정치적인 탐구인지 알았어요.”
질서가 곧 생존이라고 또박또박 역설하는 <설국열차>의 메이슨 총리를 객석에서 바라보며, 나는 진보적 예술가로서 견해를 숨긴 적 없는 현실의 틸다 스윈튼이 메이슨의 논지를 말끝마다 반박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실없이 웃었다. 당신과 정반대인 여자를 연기하는 재미가 무엇이었냐고 묻자 그녀는 “누가 여자래요?
[틸다 스윈튼] 누가 여자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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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의 탑승자들이 다시 모였다. 영화 속 절대권력자 윌포드(에드 해리스) 위의 진짜 권력자 봉준호 감독까지, 17년째 끝없이 같은 궤도를 달리던 설국열차에서 내려온 그들이 편한 표정으로 만났다. 꼬리칸의 리더이자 봉기의 주인공이었던 크리스 에반스는 수염을 깎고 모자를 벗어 마치 청춘영화의 주인공처럼 카메라 앞에 섰고, 굵은 뿔테 안경과 무채색의 코트를 벗어던진 틸다 스윈튼은 우리에게 익숙한 그 창백한 매력을 뽐냈으며, 송강호 역시 오랜 파트너 봉준호 감독과 함께 그들을 안내했다. 봉 감독을 향한 그들의 애정은 변함없었다. “배우를 다루는 데는 타고난 감독”이라는 게 그들의 공통된 얘기였다. 봉 감독 또한 그들의 장점을 하나둘 열거하며 맞받아쳤다. 특별한 사전 협의 없이 공교롭게도 서로 비슷한 의상 컨셉으로 모이게 되자, “우리는 <맨 인 블랙>!”이라는 틸다 스윈튼의 얘기처럼 내내 화기애애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설국열차] TEAM 봉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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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직으로 물러난 방송계의 유명 앵커 윤영화(하정우)가 테러범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생방송의 이슈로 삼아 자신의 위상을 복구하려다가 도리어 그 테러사건의 중심으로 휩쓸리고 만다. 주인공은 정해진 장소를 벗어날 수 없으며 영화 속 시간은 거의 실시간에 맞춰 앞으로 달려간다. <더 테러 라이브>의 내용과 형식이다. 생전 처음 보는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에 장점이 있다면, 그건 적당한 기획 아이디어만으로는 돌파되지 않았을 지점들을 돌파해내는 창작자의 특별한 뚝심과 고집에 있다. 게다가 그걸 해낸 이가 이제 막 상업영화에 발을 뗀 경우라면, 그 사람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더 테러 라이브>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김병우 감독을 만난 이유다.
-뉴스 속보들을 보면서 <더 테러 라이브>를 떠올렸다고 밝힌 바 있다. 아이디어 구축 과정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준다면.
=그 일화는 사실 일부분이라고 말해야 할 거다. 크게 본다면, 이 영화를 어떻게 만
[김병우] 끝까지 속도감 넘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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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후앙 카를로스 메디나 감독은 통각상실증 환자들을 영화의 도구로 사용해 인간 내면의 잔혹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영화는 과감한 교차편집으로 과거와 현재의 서사를 잇는다. 스페인 내전 발발 직전의 한 마을, 베르카노(토마스 레마르퀴스)를 비롯해 통각상실증 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은 외딴 병원에 실험체로 수감된다. 병원에 갇힌 채로 자란 베르카노는 정상적인 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못해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으로 성장한다. 한편, 현재 시점에서 외과의사 다비드(알렉스 브렌데뮬)는 희귀병에 걸려 부모의 골수를 기증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자신이 입양아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진짜 부모를 찾아나서고, 자신의 출생과 관련한 끔찍한 과거와 만나게 된다.
-내전에 관한 일종의 죄의식이 영화 곳곳에서 엿보인다.
=스페인의 철학자 미겔 데 우나무노는 스페인 사회의 한 단면을 카인과 아벨에 빗댄 적이 있다. 영화에 “카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가 사실은 피를 정화하기 위해서였다”는 대사를 넣은 것
[flash on] “편집의 아이디어는 <대부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