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던 타임즈 Modern Times 1936년 86분 출연 폴레트 고다드, 헨리 버그만개봉 당시 <뉴욕타임스>는 <모던 타임즈>가 1936년에 대한 경멸을 1913년의 채플린이 가졌던 매너로 표현했다고 평했다. 이 영화에서 룸펜이 아닌 노동자로 변모한 찰리는 기계의 리듬에 신진대사를 맞추는 무리한 작업의 부작용으로 자신의 몸과 공장 시스템에 신경쇠약에 의한 고장을 일으킨다. 산업사회의 메트로놈에 강제로 비끄러매진 인간의 패닉상태는 버스터 키튼이 이미 오래 전부터 스크린에 옮겨온 주제다. 그러나 세계 여행길에 마주친 방향을 상실한 동시대인의 얼굴에서 이 영화의 영감을 얻었다고 말한 채플린은 <모던 타임즈>를 이끄는 동력으로 떠돌이 찰리의 정감어린 얼굴을 사용했다. 산업화된 1930년대의 세계에는 떠돌이의 자리가 없다. 그는 감옥이나 병원 밖에서는 도망자 신세를 면치 못한다. 마침내 20여년간 실존하는 어떤 인간보다 사랑받았던 채플린의 떠돌이 찰리는 선창
채플린 DVD·비디오 올 가이드(2)
-
요즘 서울의 코아아트홀 1관에선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와 박기용 감독의 <낙타(들)>이 번갈아 상영되고 있다. 그닥 큰 소문없이 상영되고 있는 <낙타(들)>을 생각하면, 오아시스 사이의 사막을 횡단하는 낙타떼의 쓸쓸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스위스 프리부르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로테르담, 토론토, 밴쿠버영화제 등 영화제에 초청됐던 <낙타(들)>은 국제적인 성가와 무관하게 지난 9월27일 이곳 한관에서만 개봉, 2주 동안의 짧은 상영일정을 ‘일단’ 마칠 채비를 하고 있다. 불과 9800만원이라는 제작비를 들인 이 초예산 디지털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실행에 옮긴 박기용 감독로부터 <낙타(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편집자만약 당신이 여태껏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나날이 많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사랑에는 특별하고 달콤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믿는 경우라면, 또는 매일같이 새로운 의욕이 샘솟는 이라면, <낙타(
디지털 저예산영화 <낙타(들)>이 만들어지기까지(1)
-
과격한 디지털노선으로 급선회당시만 해도 박기용이 두 번째 장편영화로 삼고 몰두하던 작품은 <사막> 프로젝트였다. 아이를 갖는 데 번번이 실패하는 30대 부부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 놓인 머나먼 거리와 세기말의 혼란스런 모습을 보여주려던 이 영화는 99년 시나리오 작업을 마쳤으나 캐스팅이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2000년 <모텔 선인장>을 제작한 우노필름(현 싸이더스)을 나와 후배가 대표로 있는 화인커뮤니케이션으로 터전을 옮겼지만, 진행은 여전히 질척거렸다. 2001년 초 박기용이 3년 동안 붙들고 있었던 이 시나리오를 책꽂이에 도로 꽂아놓기로 한 것은 캐스팅에 더이상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일종의 전환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가 <낙타(들)>에서 추구한 전환은 급선회에 가깝다. “시나리오도 없고, 연기도 없어야 한다”는 다소 과격한 이 영화의 노선은 디지털영화의 본질적 특성에 대한 그 나름의 잠정적 결론이었다. 그가 보기에 디
디지털 저예산영화 <낙타(들)>이 만들어지기까지(2)
-
12일간의 촬영이 끝난 뒤 박기용에게 남은 것은 100개에 달하는 테이프였다. 이를 편집하는 일 또한 만만치 않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가장 힘들었다. 주어진 재료만을 갖고 편집을 하겠다는 의도를 가졌던 그였지만, 어떤 식으로 마무리지을지 고민이 됐다. 두 사람이 자동차 안에 나란히 앉은 채 묵묵히 앞만 바라보며 길을 달리는 장면으로 영화를 마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촬영된 재료들을 보면서 그냥 그렇게 해야 끝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박기용은 이 영화를 구상하고 시작해서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이 영화를, <낙타(들)>이라는 결과물을 발견한 셈이다.이처럼 방법론에서부터 최종 산물까지 완전히 딴판인데도, 어쩐 일인지 박기용은 <낙타(들)>을 <모텔 선인장>에서 떼어놓지 않으려 한다. 물론 전작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텔 선인장> 때는 캐릭터보다 이미지에 과도하게 집중한 것 같다. 사실
디지털 저예산영화 <낙타(들)>이 만들어지기까지(3)
-
-
만섭 역을 맡은 이대연은 극단 차이무 소속으로, <비언소> <날 보러 와요> <물고기자리> 등의 연극을 통해 관록을 쌓았고, 박재호 감독의 <내일로 흐르는 강>을 비롯해 <내 마음의 풍금> <달마야 놀자> <흑수선> <버스, 정류장> 등의 작품을 통해 스크린에 얼굴을 내보였던 배우. <날 보러 와요>로 96년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는 연극 <거기>에 출연 중이다.한편 명희 역의 박명신은 극단 한강에서 활동했고, 연극원 학부와 전문사 과정을 졸업했다. <산타 히로시마> <꼭두각시 놀음> <바보각시> 등의 작품에 출연했으며, <오월의 신부>에선 이대연과 함께 연기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영화는 <낙타(들)>이 첫 작품이었고,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에서는 한공주가 사는 아파트의 옆집에
<낙타(들)>의 두 배우
-
박기용 감독은 영화감독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그는 본격적으로 영화감독이 되기 전 프로듀서로 활동을 했고, 해외 세일즈 관련 업무를 맡기도 했다. 또 현재 그는 영화아카데미의 주임교수로서 후배들을 양성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이처럼 다양한 활동의 배경에는 꽤나 파란만장했던 그의 영화이력이 자리한다. 애초 서울예대 영화과에 입학했지만, 영화에 그리 큰 뜻이 없었던 그는 막연히 군대에 들어간다. 제대 말년 불현듯 영화를 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신문광고를 보고 무작정 영화아카데미에 3기로 입학한 그는 이민용, 정병각, 이영재, 안재석 감독 등과 함께 열정을 불태운다. 1년 동안 광고업체에서 조감독 생활을 한 뒤, 박종원 감독의 <구로 아리랑>에서 연출부 생활을 했던 그는 김태균 감독 등이 주도한 ‘영화공장’에 참여한다. 빡빡한 도제시스템에 몸을 내맡길 것을 거부하는 영화아카데미 출신 젊은 영화인들은 이곳에 모여 대안영화를 만들려 했지만, 혈기만으로 충무로에 입성
박기용 감독에 관해 알고 싶은 두세 가지 것들
-
김상진 감독과 박정우 작가는 ‘공생’관계다.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하지만, 정작 촬영에 돌입하면 ‘동거’에 들어갈 정도다.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에 이어 <광복절 특사> 역시 마찬가지. 한때 각자 갈 길 가자며, 이번엔 다른 사람, 다른 프로젝트를 물색하는 척하더니, 또 뭉쳤다. 교도소로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두 탈옥수의 고군분투를 그릴 <광복절 특사>의 촬영은 온갖 악재가 겹치면서 개봉이 늦춰졌고, 남은 일정 또한 소화하기 만만치 않지만, 오랫동안 손발을 맞춘 배터리의 못 말리는 아웅다웅은 극중 무석(차승원)과 재필(설경구)의 설전 못지않았다.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세치 혀를 라켓 삼아 인정사정 없이 주고받는 핑퐁게임만으로도 <광복절 특사>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을 터. 두달 넘게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전주를 급습, 그 숨막히는 게임의 하이라이트 장면만을 모았다. 편집자김상진 vs 박정우1967년
흥행 드림팀,김상진 감독과 박정우 작가의 <광복절 특사>(1)
-
전주 남부시장 입구그냥 숙소에서 시나리오나 좀더 만지는 건데 괜히 나왔나 싶다. 아니, 김 감독을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해서 낭패를 보고 있는 중이다. 별 대응없이 미적거렸더니, 역시 마수를 뻗쳤다. 지금 시내 한복판에서 퇴근 차량 대열에 치여 고통을 겪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김 감독, 아무거나 잘 먹게 생겼는데, 자칭타칭 미식가다. 배 채우면 그만, 이라는 내 소신하곤 반대다. 밥 한번 먹으려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전주 시내에 널린 게 소바집인데, 기어코 남부시장에 위치한 그 집에 가서 먹어야 한단다. 말이 되는가. 3천원짜리 소바를 먹겠다고, 비싼 기름과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하다니. 빡빡한 촬영 스케줄 때문에 몸보신해야 한다면서 전주를 빠져나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래도 도착하는 데까지 무려 1시간이나 걸린 것은 맘에 안 든다. 들어서자마자 미리 와서 ‘후루룩’, 벌써 반 이상 먹은 김 감독이 “너 오면서 계속 툴툴거렸지”라고 묻는다. 답하기도 전에 “왜 안 그랬
흥행 드림팀,김상진 감독과 박정우 작가의 <광복절 특사>(2)
-
김상진 __그래도 난 곁에 있어주잖아. <디아블로>나 <스타크래프트>도 같이 해주고. 술먹고 들어와서도 말이야.박정우 __하여튼 하루에 영화 이야기는 5분도 안 하면서. 그것도 야, 빨리 써. 그게 다지. 뭐.김상진 __하긴, 남들이 우린 이야기 많이 하는 줄 알더라. 뻐꾸기 날리다 배고프면 밥 먹고 뒷다마로 입운동하고. 그게 전부인데. <신라의 달밤> 때도 경주 갔다오겠습니다, 해놓고 온천에서 놀다가 귀경길에 10분 이야기한 게 다였으니까.박정우 __수학여행 온 애들 어떻게 노나 한번 보러가긴 했잖아.김상진 __그랬지. 그게 있었구나.박정우 __이번에도 끝을 어떻게 내겠다고 한 적이 없었잖아. ‘이거 어때’ 그러면 ‘좋아, 좋아’ 그러면서 한 장면씩 써나갔지. 하루하루 빌어먹고 사는 대책없는 인생이라니까. 맨 처음에 3개월 손보면 끝난다고 꼬드길 때 못 들은 척했어야 하는건데.김상진 __감독의 능력은 어떻게 다른 사람 능력을 잘 뽑아먹느냐가 중요하지
흥행 드림팀,김상진 감독과 박정우 작가의 <광복절 특사>(3)
-
전주 OO모텔 OOO호오늘 밤은 혼자 자야 할 것 같다. 정우 놈은 이번에 내려와선 같이 안 잔다고 선언한 뒤 잽싸게 방을 옮겼고, 조감독은 치과 예약해놨다며 오밤중에 서울에 다녀온다고 하고선 나가버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소인원 3명을 확보했는데, 이젠 큰 방이 썰렁하다 못해 무지 크다. 감독방은 열린 사랑방이어야 한다는 내 지론이 오늘은 허물어지는구나 싶다. 아까 모텔 앞에서 (강)성진이를 만나 조금 있다 심심하면 놀러오라고 했는데, 올지는 모르겠다. 스탭들이랑 어울려 있는 걸 보니. 경구랑 승원이랑 윤아씨랑도 다 포스터 촬영한다고 촬영장 불 밝혀놓고 사진 찍고 있을 텐데 거기나 가볼까. 에이, 일단 콘티나 준비하고 생각해봐야겠다. 그나저나 정우, 이놈은 다 씻었으면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잠시 내방해야 하는 것 아닌가.박정우 __촬영장에 간 줄 알았는데. 아직 안 갔네. 배우들 모여서 고생하는데 한번 들러야지.김상진 __작업한다면서 왜 내려오냐.박정우 __버전업이 말처럼 쉬운
흥행 드림팀,김상진 감독과 박정우 작가의 <광복절 특사>(4)
-
같은 모텔 OOO호촬영하고 들어오면 누워서 커피 타주라, TV 리모컨 가져와라, 김 감독은 손끝 하나 까딱 안 한다. 나도 ‘가오’잡는 데는 선수라 흘려들었는데, 막상 김 감독 피해서 도망쳐나오니 여전히 수발들어야 하는 조영민이 안돼 보인다. 서울로 일일 ‘외박’을 신청한 조영민이 ‘탈영’하면 어쩌나. 어쨌든 혼자 있는 건 죽어라고 싫어하는 김 감독은 내일 새벽에 일어나야 할 텐데도 배우들 있는 포스터 촬영장으로 갔을 것이다. 미리 떠준 O.S.T 신나게 들으면서 말이다. 조금 있다간 떼거지로 몰고 들어올지 모른다. 아니, 안 봐도 뻔하다. <주유소 습격사건> 때 숙소였던 삼화호텔 주인한테서 조폭합숙소라고 오해를 샀던 전력의 소유자니까. 분위기 메이커 자청하며 부지런 떠는 신기한 체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갔다와서 또 전화할 텐데 받아야 하나, 심히 고민된다.김상진 __뭐해?박정우 __일하지. 아, 그놈의 노래. 종일 O.S.T를 입에 달고 사네. 떼창하는 거 들
흥행 드림팀,김상진 감독과 박정우 작가의 <광복절 특사>(5)
-
<오아시스> 개봉 직후에 발행된 지난 366호(8.20∼27)에 평론가들의 리뷰를 모아 실었다. 결과는 <오아시스> 예찬론 모음이 됐다. 그때 이 영화에 비판적인 견해를 보이면서도 몇몇 이유로 당장 쓰기 힘들다고 말했던 이중의 하나가 정성일씨다. 그동안 <오아시스>에는 찬사가 쏟아지면서 관객이 100만명을 넘었고, 그뒤에 받은 정씨의 글은 원고지 100매가 넘었다.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영화에 대한 뒤늦은 이의제기를 전하는 건, 성이나 장애자 문제 등 생각해볼 대목을 꼼꼼이 해부하는 이 글의 태도가 우리의 영화문화를 더 풍요롭게 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편집자정성일의 <오아시스> 비판론맨 처음, 그러니까 벌써 일년 전에 나는 올해 두편의 영화만큼은 절대 보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그 한편은 김기덕의 <나쁜 남자>였고, 다른 한편은 이창동의 <오아시스>였다. 간단하게 소개된 줄거리가 너무 끔직해서 도무지 영화를
정성일의 <오아시스> 비판론(1)
-
다시 처음부터, 그것도 맨 처음부터. 이 단순한 이야기가 이상해지는 것은 서로 사랑한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홍종두와 한공주가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이 말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누구라도 홍종두라는 인물을 거리에서 만나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공주를 거리에서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두 사람을 만나게 해야 한다. 어떻게? 그러기 위해서 홍종두는 이 집을 찾아가야 할 이유가 필요해진다. 그는 2년6개월 전에 택시운전을 하다가 밤길에 환경미화원을 치어 죽였고, 그래서 감옥에 갔다(그런데 정말 친 사람은 홍종두의 형 홍종일이다. 영화의 절반쯤 지난 93신 홍종두 모친 생일잔치를 하는 호텔 복도에서 동생 종세의 말에 의하면 홍종두는 집안의 가장인 형 대신 이미 별 둘을 달았기 때문에 스스로 대신 간 것이다). 아마도 홍종두는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그 환경미화원의 집에 갈 작정을 한 것 같다(18신 공주의 아파트에서 그 오빠에게 종두는 말한다
정성일의 <오아시스> 비판론(2)
-
동원된 환상, 동원된 순서 편집여기서부터 그 순서를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신19에서 이사가는 공주의 오빠 내외를 본 다음 신20은 공주 혼자서 놀다가 갑자기 거울을 던져 깨트린다. 그런데 깨져서 산산조각난 거울에서 반사되는 빛이 나비떼가 된다. 신20에서 아파트 문 앞까지 홍종두가 과일 바구니를 들고 다시 찾아온다. 그러나 그는 벨을 누른 다음 멀찌감치 서서 문이 열리는지를 보고 그냥 간다. 그 다음 신은 부동산중개소에 그릇을 찾으러 왔다가 손님이 부르는 노래 “모두 사랑하네” 구절을 따라 부르는 대목이다(신24). 그리고는 중국집에 돌아오니 이미 모두 퇴근하고 난 다음이라 문이 닫혀 있다. 홍종두는 그 길로 공주의 시민 아파트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간다(신27). 그때 공주는 라디오를 듣고 있다(신28). 다음 장면은(신29) 홍종두가 도로에서 영화 촬영하는 차를 따라 달리다가 엎어진다. 이 장면들이 이상한 것은 왜 신19에서 다음 날 공주의 아파트를 찾아가는 신32로 바
정성일의 <오아시스> 비판론(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