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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븐>과 <파이트 클럽>, 어둡고 심오한 묵시록<쎄븐>에 이은, 데이비드 핀처의 진정한 걸작은 <파이트 클럽>이다. 여전히 어둡고, 여전히 심오한 묵시록의 세계. <파이트 클럽>은 <존 말코비치 되기>와 함께 지난 10년간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가장 논쟁적이고, 위대한 작품의 하나다. <파이트 클럽>은 한 남자의 자기분열적인 욕망과 초월에 관한 이야기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남자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의 모임에서 ‘고통’을 느끼려 한다. 하지만 그건 고통이 아니다. 그는 타일러를 만나고, 무정부주의자이며 도시의 게릴라인 그 남자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다. 진짜 ‘고통’을 느끼는 파이트 클럽을 알게 된다. 일 대 일로 싸우며, 한쪽이 패배를 시인할 때까지 주먹으로 치고받는 파이트 클럽. 파이트 클럽에서 비로소 자신을, 세상을 만난 남자들은 세상의 질서를 비웃으며, 조직적인 테러에 들어간다. <파이트 클럽&
<패닉 룸>으로 돌아온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세계, 그 고통의 희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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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핀처는 암흑의 아름다움을 다루는 감독이다. <에이리언3>부터 <패닉 룸>에 이르는 핀처의 영화에서 밝고 환한 세상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프랑스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를 불러들여 고감도 촬영의 극단적 가능성을 보여준 <쎄븐>이 대변하듯, 핀처는 어둠이 지배하는 이미지로 작가의 서명이 확연한 세계를 구축한다. <패닉 룸>의 무대는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4층 저택이며, 사건은 하룻밤 동안 벌어진다. 핀처가 매력을 느낀 게 당연하다. 그는 데이비드 코엡의 각본이 “일종의 연습처럼 보였다”고 말한다. 제한된 시간과 공간 안에 사람들을 밀어넣고 서스펜스와 스릴을 극대화하는 방법, 핀처 역시 <패닉 룸>을 일종의 연습으로 생각했다고 고백한다. 애초 촬영을 맡은 다리우스 콘지와 이견이 생긴 것도 이런 점이었을 것이다. 인터뷰에서 핀처가 밝힌 말로 짐작해보면 콘지는 <패닉 룸>을 좀더 심오한 영화로 받아들인 것 같다.
<패닉 룸>의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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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닉 룸>에서 카메라는 벽을 통과하며 어떤 등장인물보다 자유롭게 움직인다. 이 영화의 카메라 움직임은 어떤 컨셉으로 이뤄졌나.이런 유의 영화에서 카메라는 대개 두 가지 방식으로 움직인다. 하나는 내가 현장에 있는 것처럼 찍는 것이다. 종군기자가 전쟁상황을 전하는 것처럼 감독의 주관적 시점으로 사건을 보여준다. 다른 하나의 방식은 <블레어 윗치>처럼 사건에 직접 얽혀 있는 공모자의 시점으로 찍는 것이다. 나는 극단적으로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것은 카메라가 어디로도 움직일 수 있고 어떤 시점도 대변할 수 있는 방식이다. 카메라의 이런 움직임과 상반되게 사람들은 벽과 문에 갇혀 있다. 사람은 문을 관통해서 빠져나갈 수 없기에 번번이 벽과 문에 가로막힌다. 나는 진정 카메라가 전지전능할 수 있다는 생각에 혹했다. 그것은 유령의 관점으로 영화를 찍는 것이며 관객에게 어떤 긴장감을 준다. 당신이 보고 싶지 않은 것, 무시무시한 어떤 것을 당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보게 된
데이비드 핀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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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의 보고서에 준거하여 사흘 뒤 일어날 존속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너를 체포한다.” 한가로운 일요일 아침, 누군가 이불을 들추고 당신의 손목에 수갑을 채운다면? 물론 분노할 일이다. 그런데 그들 덕분에 바로 몇달 전 당신의 아이가 생명을 건진 적이 있다면? 당신은 이 시스템에 동의할 것인가 항변할 것인가? 필립 K. 딕의 동명 단편을 각색한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그런 골치 아픈 질문을 내장한 차별화 전략의 여름 블록버스터이며, <A.I.> 이후 계속 ‘전자양의 꿈’에 잠겨 있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톰 크루즈와 손잡고 내놓는 첫 번째 합작품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부추긴다. 흥행과 예술의 별을 함께 좇아온 할리우드의 두 스타는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바닐라 스카이>와 <A.I.>로 한풀 꺾였던 그들의 박스오피스 파워는 어떤 포물선을 그릴까? 7월 말 국내 개봉을 앞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대한 마이너 리포트를 싣는다.
“이
<마이너리티 리포트> 미리보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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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시제의 리얼리즘
지난해 <A.I.> 완성에 즈음해 인공지능 연구자들을 MIT에서 열린 프레스 정킷에 초대했던 스필버그는 이번에도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제출하기 위해 ‘싱크 탱크’라고 명명된 세미나부터 소집하는 우등생다운 태도를 보였다. 샌타모니카의 한 호텔에서 열린 사흘간의 이 세미나에 초청된 것은 의 작가 더글러스 코플랜드를 비롯해 테크놀로지, 사법, 도시계획, 건축의학, 환경, 건강, 사회복지, 교통, 컴퓨터계의 권위자 스물여덟명. 5년, 10년, 50년 뒤 미래사회의 디테일에 대한 이들의 토의가 벌어진 컨퍼런스의 열성적인 청중이 <마이너리티 리포트> 제작진이었던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싱크 탱크의 운영은, 필름누아르의 렌즈를 빌려오는 것과 아울러 스필버그가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초안을 잡으며 세운 또 하나의 대원칙 실현을 위해 필수적인 작업이었다. 그것은 바로 ‘공상과학’의 딱지를 거부하거나 다른 각도로 규정해보겠다는
<마이너리티 리포트> 미리보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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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3월22일 로스앤젤레스에서 프로덕션을 개시한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남캘리포니아와 워싱턴 D. C의 실제 로케이션과 유니버설, 폭스, 워너 세곳의 메이저 스튜디오 세트에서 3개월에 걸쳐 촬영됐다. 여기에 휴지기를 빼고 도합 1년에 달하는 프리 프로덕션과 7개 특수효과사가 달라붙은 포스트 프로덕션이 스케치와 마무리 손질을 더했다. 스필버그가 다소 어둡고 추레한 누아르의 톤을 설정함에 따라 조명이 설계됐고 야누츠 카민스키 촬영감독은 하이라이트에 강세를 넣고 그늘 부분을 더욱 컴컴하게 떨어뜨리는 포지스킵(블리치-바이-패스: 감광유제 표백과정을 생략하는 현상기법) 현상방식을 채택해 위기감과 불안감을 고조시키는 효과를 노렸다.
현재로부터 생성된 미래상을 구현하기 위해 주무대인 워싱턴 D.C는, 도시를 표상하는 기념비적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도심과 수직적으로 개발된 포토맥 강 건너의 베드 타운, 그리고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미처 따라잡지 못한 가난한 시민들의 후락한
<마이너리티 리포트> 미리보기 [3] - 프로덕션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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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챔피언>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다. 다만 ‘감독 곽경택, 주연 유오성, 링 위에서 사망한 고 김득구 선수의 일대기’라는 너무나 명확한 가이드라인 때문인지 이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들은 그간 건네지지 못했다. 감독과 배우의 이름값만으로도 제작진의 의도와 관계없이 <챔피언>은 올해 한국영화 중에서 가장 강력한 대중성을 지닐 작품 가운데 하나로 점쳐져왔다. 6월28일 개봉을 앞두고, 제작진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챔피언>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봤다.-편집자“<챔피언>만의 액션장면을 만든다”는 곽경택 감독의 약속은 지켜졌나.영화에서 유오성이 등장하는 장면이 80% 정도 되는데 그중 성한 얼굴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아무래도 권투선수의 삶을 다룬 영화다보니 많은 양의 경기장면이 펼쳐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곽경택 감독은 고민에 빠졌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빈번한 액션신을 어떻게 다르게 찍을 수 있을까? 결국 그는 세계 챔피언 타이틀전을
곽경택-유오성의 <챔피언>에 묻고 싶은 여섯 가지 것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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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꼬마 유오성,찾았습니다<챔피언>의 배우는 과연 누구인가. 유오성을 제외하면 대부분 무명이다. 그들은 과연 <친구>의 조연들을 능가할 것인가.체육관 동료부터 아역까지 거의 대부분이 오디션을 통해 출연하게 되었다. 곽경택 감독은 오디션을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인데, 전쟁 나가기 전에 병사들의 능력을 꼼꼼히 체크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상업적으로 실패한 감독의 오디션엔 비중있는 조연들이 아예 참여를 안 하는 경우가 많고 오더라도 요구사항을 안 하려는 경우도 많다. <친구> 오디션할 때만 해도 <억수탕> <닥터K> 이후 작품이니까 오기로 했던 배우들이 많이 불참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이번에도 재미있는 조연들이 많다. 김득구가 체육관 들어가기 전에는 버스 돌면서 관상책과 가정의례준칙보감을 붙여서 100원에 파는 보따리장수를 했다. 그때 터미널에서 김득구를 괴롭히던 단발머리 양아치 삼총사가 있다. 나중엔 똥바가지를 뒤집어쓰기도
곽경택-유오성의 <챔피언>에 묻고 싶은 여섯 가지 것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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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애니메이션 축제인 2002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 6월3일부터 8일까지 6일간의 일정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6회를 맞이한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은 매년 초여름, 스위스와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프랑스 호반의 도시 안시에서 열리는 애니메이션영화제. 오타와, 자그레브, 히로시마 등 4대 애니메이션페스티벌 중에서도 으뜸가는 전통을 지닌 축제로, 세계 애니메이션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이다. 특히 올해의 안시는, 이성강 감독의 <마리이야기>가 장편 그랑프리를 수상함으로써 한국 애니메이션사에 한획을 그은 순간으로도 기억될 만하다. 67년 첫 장편애니메이션 <홍길동>이 나온 이래 35년 만에 이뤄낸 성과다.학생·졸업작품 부문 매진행렬이번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스크린을 수놓은 작품은 33개국에서 출품된 500여편. 그중 <마리이야기>를 포함한 장편 경쟁부문 출품작이 5편, 단편 경쟁부문에 오른 작품이 모두 52편이다. 지난
2002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참관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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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출신 거장 ‘폴 드리센의 세계’
지난해 알렉산더 페트로프에 이어 올해 안시가 오마주를 바친 거장은 네덜란드의 폴 드리센. ‘폴 드리센의 세계’란 제목으로 마련된 회고전과 함께, 폴 드리센의 다큐멘터리 <폴 드리센의 인사이드 아웃> 상영회 및 <폴 드리센> 출판기념 사인회가 열렸다. 홀란드애니메이션페스티벌과 안시페스티벌이 공동주최한 이 이벤트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3년 전부터 준비해왔다는 그의 첫 저서 <폴 드리센>의 출판이다. 1999년 그의 60번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일환으로 추진했던 이 프로젝트는 3년 만에 그 결실을 보게 됐다. 이 책은 폴 드리센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를 그림과 더불어 네덜란드어, 독일어, 영어 등 3개 국어로 구성해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의 공동제작에 참여했던 홀란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디렉터 게벤 쉐머는 “애니메이션에 관심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라는 말과 함께 “이른 시일 내에 한국에도 이
2002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참관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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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이야기> 공식상영 때 관객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한국 관객과 또 달랐을 것 같은데.한국에서는 좀 진지하게, 지루하게 보는 것 같았는데, 안시의 관객은 생각보다 많이 웃어서 뜻밖이었다. 영화를 같이 볼 때보다 끝나고 난 뒤가 인상적이었다. 상영관을 나오는데 머리가 허연 6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감동적이었다고, 사인해달라고 그랬다. (웃음) 악수하면서 손을 꼭 잡기도 하고. <마리이야기>가 유럽의 60대가 좋아할 만한 작품인가? (웃음)<메트로폴리스> 같은 작품과 경쟁했는데, <마리이야기>의 어떤 점이 안시 혹은 유럽 관객에게 호소력이 있다고 보나.음…. 풍경이 좋았다는 말도 듣고, 특히 서정적인 내용과 정서가 좋았다는 얘기를 꽤 들었다. 추억, 향수 같은 느낌에서 공감을 사지 않았나 싶다. <메트로폴리스> 같은 경우 아마 예산이나 제작규모를 고려하지 않았을까. 단편이나 독립애니메이션에 비중을 둬온 안시에
이성강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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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최근 <씨네21>은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서류 봉투 하나를 건네받았다. 그 봉투 안에는 놀라운 서류가 담겨 있었다. ‘충무로 귀신박멸 프로젝트를 위한 기초 수사 회의록’이란 제목이 붙어 있는 이 서류에는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았던 한국영화계의 귀신에 관련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글에 따르면, 이 기록은 ‘세계 귀신박멸단(International Ghost Busters) 한국 지부’라는 정체불명의 조직 내 회의를 정리한 것이었다. 이 회의록의 앞부분에는 이 회의가 한국영화계 주변에 자주 출몰한 귀신을 퇴치하기 위해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열린 것이라는 정황도 적혀 있다.이 충격적인 기록을 접수한 뒤, <씨네21> 내부의 비밀조직인 ‘믿거나 말거나 연구위원회’는 기사화할 것인가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상당한 논의가 진행된 뒤 우리는 이 기록에 인용된 관련 인물들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한 뒤 결론을 내리자고 합의하게 됐다. 확인 작업이 진행됐고, 놀랍
한국영화 제작현장 미스터리 X파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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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 NO .4 ┃정체불명 청년의 출현┃“거참 이상하네.” 의 편집이 이뤄지던 1997년 말. 편집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허진호 감독과 조민환 프로듀서는 모니터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장면을 찾기 위해 편집기를 돌리던 중 베타테이프가 떡 하니 서더니 이상한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리더필름(카메라 매거진에 새로운 필름 릴을 끼우고 난 뒤 버리게 되는 필름의 시작부분)에서 이상한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이 부분이 촬영분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버린 필름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사람의 손가락을 찍는데, 여기에는 모르는 청년 한명이 환하게 웃으며 슬레이트를 들고 있었던 것.그 괴청년 뒤에는 익히 잘 알고 있는 스탭 두명이 서 있었지만, 그 청년만큼은 누군지 알 길이 없었다. 는 모든 장면이 군산에서 찍힌 탓에 보조출연자로 동원했던 인근 주민들의 얼굴은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민환 프로듀서는 처음엔 유영길 촬영감독의 영상원 제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유
한국영화 제작현장 미스터리 X파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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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 NO .8 ┃소름끼친 <소름> 현장, “돈도 필요없으니 당장 떠라라”┃저주받은 아파트를 배경으로 삼은 공포영화 <소름>의 촬영현장은 유독 어수선했다. 촬영지가 곧 재개발을 앞두고 있던 시영아파트였던 탓에 으스스함은 더했다. 복도에 늘 흥건하게 고여 있었던 물과 곳곳에 깊게 드리운 어둠은 스탭과 배우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당시 제작실장이었던 김경미씨는 촬영하는 동안 이상하게도 스탭들의 교통사고도 잦았다고 기억한다. 이 영화는 3월 말까지 촬영됐는데, 날씨는 유난히 추웠고 눈이 오기도 했다. 모두를 오싹하게 하는 일도 있었다. 아파트가 불타오르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찍기 얼마 전, 같은 아파트의 다른 편 동에서 불이 났다.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스탭들의 정신은 혼미해졌다. 이주하지 않고 남아 있던 일부 아파트 주민들도 영화 촬영 때문에 이런 괴기스런 일들이 일어난다며 소란을 피웠다. 일부 주민은 “돈도 필요없으니 빨리 나가라”고 고래고래
한국영화 제작현장 미스터리 X파일(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