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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우성, 김태희 인터뷰
“<중천>은 그 세계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된다”
-110회차 촬영을 맞는 소감은.
=정우성/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힘든 줄 모르겠다. 그건 아마 영화가 주는 힘, 캐릭터가 주는 힘 같다. 중국이 됐건, 네덜란드가 됐건, 멀리 있는 곳이지만 배우에게는 그저 캐릭터가 존재하는 공간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김태희/ 몇십 회차는 내가 참여하지 않았고, 촬영 초·중반에는 한국에 드나들기도 해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좋은 사람들과 일해서 그런지 힘든 게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이번이 첫 영화라 어려웠을 것 같다.
=김태희/ 많이 헤맸다. 감독님이 잘 이끌어줬고 정우성 선배님도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처음에는 백지상태였던 것 같다.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조금씩 깨닫는 게 생긴 것 같다. 고민할 여유조차 없이, 모니터도 제대로 안 한 채 드라마를 찍던 때와는 다르게 각오를 다지고 열심히 작품에 임했다.
-판타지영화인데 상상
<중천> 중국 저장성 촬영현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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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과 김태희가 출연하는 판타지영화 <중천>이 최초로 촬영현장을 공개했다. 현재 80% 정도 촬영을 마친 이 영화는 아시아의 수준급 스탭이 대거 참여하며 100억원 넘는 예산이 들어가는 대형 프로젝트다. 베이징 인근, 린안의 천목산, 헝디엔의 월드 스튜디오 등 중국의 곳곳을 거쳐 저장성의 작은 마을 방암에서 막바지 촬영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중천>의 현장을 들여다본다.
“우와아~.” 일제히 시선을 위쪽으로 돌리던 일행 30여명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온다. 3월19일, <중천> 촬영이 한창 진행 중이라는 중국 저장성 방암의 세트장은 그야말로 기암으로 둘러싸여 있다. 우뚝 솟아 있는 둥글둥글 곡면의 절벽이 꼭 엄청난 거인이 끌 따위로 산을 깎아놓은 듯하다. 그 절벽 가운데 쏙 틀어박힌 사찰의 모습은 더 비현실적이다. “근데… 저 산도 세트야?” “글쎄… 그런가?” 이곳에 사는 누군가 들었다면 피식 웃어버렸을 법한 이방인들의 대화가 이어질 무렵, &
<중천> 중국 저장성 촬영현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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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당시>에 이어 <송사> <원곡>이라는 3부작을 만들겠다고 들었다. 어느 정도 구체화된 계획인가. 3부작을 하나로 묶는 테마는 무엇이며, 3부작이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장률: 생각은 거의 끝났다. <당시>처럼 시나리오 없이 찍을 생각이다. 그러자면 투자는 어렵겠지만. 당시, 송사, 원곡은 중국 시의 정신세계에서 큰 변화를 나타낸다. 송사는 당시의 형식에서 약간 벗어난 형태고, 원곡은 몽골 유목민의 힘으로 그게 다시 변한다. 송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문란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송사를 염사라고도 한다. 제일 문란한 시가 바로 송사다. 남녀상열지사를 표현하는 그림도 그 시대에 가장 유행했고. 요즘의 중국도 굉장히 문란하다. 제일 먼저 흐트러지는 게 바로 성(性)이다. 그것은 꼭 영상으로 표현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원곡은 뮤지컬. 재밌는 영화 한번 찍고 싶다. 아무 데서도 본 적이 없는 뮤지컬이 될 것 같다.
장률 vs 정성일 대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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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한국 감독 중에서도 조선족 동포로는 첫 번째 감독이고 중국 감독 중에서도 첫 번째 조선족 감독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자료를 찾아봤는데,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자신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장률: 생년월일부터 시작하면 되는 건가? (웃음) 1962년 5월30일 옌지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돈화라고, 옌볜인데 한족들이 사는 마을에서 살았다. 조선 사람은 우리 가족뿐이었다. 어머니가 세 누이와 나를 데리고 문화혁명 시절에 그곳에 살았다. 다시 옌지로 이사한 다음에도 조선말을 모르니 계속 한족학교를 다녔다. 대학까지 옌지에서 다녔는데 그때부터 자유주의분자였다. 공부를 거의 안 했고, 졸업 뒤 학교에 남았지만 그때도 일은 별로 안 했다. 1989년부터 베이징에서 글을 썼다. 십몇년을 집에 있으려니 마누라에게도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어서, 글을 쓰는 척했다. (웃음) 십몇년간 마누라 월급으로 애 키우고 장 보면서 열심히 살았다. 그 시기에 대해서는 지금도
장률 vs 정성일 대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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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 감독은 한국과 중국, 두개의 국가에 속한 동포감독이고, 소설에서 영화로 활동무대를 옮긴 과거를 지니고 있다. 경계에 선 존재는 아무래도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씨네21>은 그의 첫 번째 장편영화 <당시>가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된 2년 전, 아시아 동포감독 중 한명으로 그를 소개한 바 있다. 그로부터 1년 뒤 한국에서 개봉한 <당시>는 실로 참담한 관객 수를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뒤늦게 시작한 그의 영화인생은 그때부터 본격화된다. 비슷한 시기 장률 감독은 <망종>을 들고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을 찾았고, 그해 <망종>을 상영한 부산영화제는 뉴커런츠상을 안김과 동시에 그의 세 번째 장편 <두만강>을 부산프로모션플랜(PPP) 지원작으로 선정했다. 오는 3월24일 개봉을 앞둔 <망종>은 장률 감독이 첫 번째 단편부터 일관된 철학과 스타일을 우직하게 밀어붙인 흔적이 역력한 영화다. 그의 두 번째 영화가 좀더 많은
장률 vs 정성일 대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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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는 툭하면 장난치고 노래를 부르며 아이들처럼 즐거워하는 황정민과 류승범. 6년 만에 만난 그들이 배우로서 서로를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했다. 따로 진행한 인터뷰는 공교롭게도 모두 두 사람의 밴 안에서 이뤄졌다. 황정민은 김해공항에서 촬영지를 향하는 차 안에서, 류승범은 감천항 촬영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러한 의문에 답해줬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라는 첫 인연에서부터 현재의 변화까지 두 배우는 마주 앉아 이야기하듯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황정민: 예전에 <씨네21>이 주최한 ‘사상최대의 오디션’이라는 게 있었다. 8개 영화사가 참가했고 <와이키키 브라더스> <와니와 준하> <수취인불명> <선택> 등의 영화에 출연할 배우를 뽑는 과정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합류했다. 같이 지낼수록 승범이는 어린 나이에도 ‘생각이 깊다’는 느낌을
<사생결단> 촬영현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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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06. 1. 15일_ 부산대교 난간, 협박하기 vs 버티기
이상도: (황당하다) 에이 갱장님도∼ 지는 그 할배 얼굴 구경도 몬 해봤심니다∼ 알면서….
도 경장: 이번에는 진짜로 싹쓸이다. 이 말이야. 니 줄줄이 같이 딸리 들으갈래 아이믄 살아나을래? 묵직함 놈 해서…. 내 훈장 타고 계급장 쫌 갈자! 그라모 니 구역은 내 챙기주께! 물준다꼬 연락왔을 때 전화 한통, 고것만 해도! 엉?
“서울 가서 찍어라, 이 미친놈들아.” 반대편 차선에서 차를 몰고 가는 운전자가 소리친다. 황정민과 류승범이 얇은 양복 차림으로 부산대교 난간에 몸을 기댄다. 살을 에이는 듯한 바람 속에 두 사람은 어깨동무한 채 “근심을 털어놓고 다함께 렛잇비”라며 노래를 불러댄다. 오늘 촬영은 도 경장이 중간책을 잡으려고 이상도를 협박하는 장면. 황정민은 “생각만큼 둘이 같이 나오는 장면이 많지 않다”고 전했다. 오늘처럼 도 경장이 상도를 설득, 협박, 재촉하는 시퀀스가 대부분이다. 너비 2m
<사생결단> 촬영현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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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은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뒤늦게 합류했다. 강수 역을 맡은 배우가 개인적 사정 때문에 중도하차했고 임순례 감독은 수소문 끝에 황정민을 오디션으로 발탁한다. 그리하여 1999년 10월 그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신사동 연습실을 찾아간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떤 양아치 같은 놈”이 부스에서 드럼을 치고 있었다. 황정민은 “물론 승범이가 보기에는 내가 더 양아치 같았겠지. 웬 시꺼먼 놈이 들어오니까”라고 말했다. 류승범은 크랭크인 직전 연포해수욕장에 워크숍을 갔을 때 “유독 정민이 형과는 터놓고 지내기 시작했다”고 기억한다. 이후 수서에 살던 류승범과 문정동에 살던 황정민은 류승범의 아토스를 타고 함께 출퇴근하는 일이 잦아졌다. 류승범의 말처럼 “정민이 형 어머니가 하시는 횟집에도 놀러가고 형 집에도 자주 들락거리던” 시절이었다. 영화 속 기태와 강수처럼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장군의 아들>과 <쉬리>의 단역이 영화 출연의
<사생결단> 촬영현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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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지우고 님이 되어 만난 사람도/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 가수 김명애의 <도로남>은 극과 극을 치닫는 연애의 속성을 촌철살인의 가사로 묘사했다. 연애는 그렇게 쉽게 젖어들고, 또 쉽게 메말라버린다. 그 마음을 진심으로 믿어 낙원과도 같은 판타지를 꿈꾸다가도, 그 마음이 거짓인 걸 알아차린 순간에는 애정의 리비도가 분노로 치환한다. 덕분에 연애에는 언제나 팽팽한 긴장이 필요하다. 그 마음의 진위를 파악하려는 긴장, 또 거짓을 들키지 않으려는 긴장. 겉으론 ‘달콤’한 표정을 지어도, 속으론 ‘살벌’한 눈을 치켜떠야 하는 것이 바로 연애에 빠진 사람들의 딜레마다.
<달콤, 살벌한 연인>은 예측 불가능한 연애만큼이나 결론을 가늠하기가 불가능해 보이는 영화다. 서른이 넘도록 연애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대우(박용우)는 ‘연애무용론’을 설파하며 자신의 처지를 정당화하려는 남자. 하지만 나이가
박용우·최강희 주연의 <달콤, 살벌한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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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촬영 계획은 어떻게 되나.
=애초에는 3월에 매화장면을 찍고 쉬었다가 8월 말부터 다시 촬영을 시작하려 했다. 그런데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미리 해서 점검해야 하는 탓에 4∼5월에도 촬영을 해야 한다.
-지난해에는 모든 촬영을 3개월 안에 마쳐야 했는데, 이제 촬영기간이 늘어나 사계절을 담을 수 있겠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기왕이면 그렇게 하자는 거다. 처음에는 계절을 완전히 배제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앵글도 달라지고 다른 데 눈길이 가지 못하게끔 드라마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야 한다.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계절은 주인공의 내면을 담기도 하지만, 영화에 리듬도 줄 수 있다. 영화란 게 드라마를 타고 흘러가지만 강약에서 늦췄다 몰아쳤다 해야 하는데 영화에 계절이 들어가면 그런 것을 해내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천천히 만든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여유가 생기나.
=3개월 동안 몰아쳐서 영화를 끝낼 뻔했는데…. 사실 이 영화를 냉정하
<천년학>, 본격 제작 시작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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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발걸음 앞에 놓인 산, CG
고사가 끝난 뒤 장흥 읍내에서 제작발표회, 축하공연 등이 숨가쁘게 이어졌음에도 임권택 감독은 이날 오후 다시 주막 세트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 영화의 첫머리에 해당하는, 동호가 수십년 만에 주막을 찾아오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임 감독은 취재진에 둘러싸인 가운데서도 눈빛을 번득이며 주변을 둘러봤고, 조재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자, 한번 테스트해보겠어요.” 임 감독의 말이 떨어지자 정일성 촬영감독이 카메라 뷰파인더에 눈을 밀어넣는다. 가뜩이나 황량한 분위기인데 황사까지 하늘을 뒤덮어 더욱 스산한 풍경. “조재현씨, 이쪽에서 저쪽으로 걸어들어오는 거예요!” 임 감독 목소리에 힘이 붙는다. 제작진은 지난해 봄 인서트 장면 몇개를 찍었으나 사실상 테스트 촬영에 가까웠고, 전날도 몇 장면을 찍었지만 그 또한 비슷한 차원이었다. 그러니 이날 촬영이야말로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감독이 “레디, 고”
<천년학>, 본격 제작 시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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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이 마침내 날갯짓을 시작했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촬영을 마쳤어야 할 이 영화가 캐스팅 문제로 투자에 난항을 겪으면서 지난해 12월 제작이 중단됐다가 지금에야 다시 제 궤도로 돌아온 것이다. 지난 3월11일 전라남도 장흥에서 열린 제작발표회는 <천년학>의 성공적인 재기를 알리는 팡파르였다. <씨네21>은 올해 말 또는 내년 초까지 계속될 이 천리 길의 첫 한 걸음을 따라잡았다. 다음날 이뤄진 제작진의 광양 매화마을 세트장 방문 모습과 임권택 감독과의 인터뷰도 함께 전한다.
“쩌기가 임권택이란 양반 아녀.” “오정해네, 창 하는 오정해. 고 옆엔 조재… 뭐여?” 어둠을 헤치고 출발한 버스가 6시간 넘게 걸려 닿은 작은 마을은 장터처럼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100여명의 취재진과 영화 관계자를 제하더라도 100명은 족히 될 인근 주민들이 바닷가 제방가를 빽빽하게 메우고 있었다. 이날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
<천년학>, 본격 제작 시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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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면 질문지에 대한 미카엘 하네케의 답변은 절반만 도착했다. 그는 얼마 전에 있었던 수술로 인해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고, 남은 절반의 질문지를 채워낼 여력이 없다는 전언이었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보내준 답변에 외신과의 인터뷰를 일부 발췌해서 첨부했다.
-당신은 현대 유럽 영화계의 가장 논쟁적인 작가로 불린다. 그같은 명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난 내 자신에게 끊임없이 ‘지루하냐?’고 물어본다. 감독으로서 영향력을 갖는다는 것은 관객의 마음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암시한다. 가능한 한 관객의 마음을 최대한 많이 동요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히든>은 어떻게 시작된 프로젝트인가.
=여러 해 동안 함께 일하자고 제의해온 다니엘 오테유를 위해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를 보면 내면에 어떤 비밀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하네케는 2000년작 <미지의 코드> 역시 작업을 제의한 줄리엣 비노쉬를 위해 만들었다- 편집자).
-<히든&
<히든>의 미카엘 하네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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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3 - 미디어/ 하네케는 미디어를 믿지 않는다
하네케 영화의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TV를 본다. <일곱 번째 대륙>의 가족은 죽어가는 순간에 TV 수상기에서 흘러나오는 팝송(<Power of Love>)를 듣는다. <베니의 비디오>의 베니는 도살당하는 돼지를 담은 테이프를 반복적으로 본다. 스쳐지나가는 장면에서도 TV는 끊임없이 네오나치의 살인과 장난감 광고와 전쟁영화를 방영 중이다. <히든>에서도 거실에 켜져 있는 수상기에서는 끊임없이 이스라엘과 이라크 전쟁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그들은 미디어가 보여주는 세계적 폭력의 이미지들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무엇도 배우지 못한다. 보스니아 학살현장을 담아온 <미지의 코드>의 포토 저널리스트도 아내와의 소통에서는 실패할 뿐이다. “미디어는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며 의식을 교란시킨다. 그러나 문제는, 사실 우리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히든>의 미카엘 하네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