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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에서는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영화화한 대작 <오! 인천>이 5개부문 후보에 올라 최악의 작품, 최악의 각본, 최악의 남우주연, 최악의 감독상 등 4개부문을 수상했다.보 데릭이 시종일관 관능미를 뽐낸 영화 <볼레로>도 5회 시상식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다. 이 영화는 9개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과여우주연상을 비롯해 6개부문의 상을 휩쓸었다. 보 데릭과 감독 존 데릭 부부는 91년 11회 때 <유령은 할 수 없어>로 또다시 나란히상을 받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15회 시상식에서는 <컬러 오브 나이트>가 10개부문의 후보로 오르고도 작품상 하나만 수상하는 아쉬운(?) 기록도 세워졌다.이해부터 신설된 최악의 리메이크 또는 속편상은 로렌스 캐스단 감독, 케빈 코스트너의 <와이어트 어프>가, 최악의 커플상은 <뱀파이어와의인터뷰>의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 <스페셜리스트>의 샤론 스톤과 실베스터 스탤론이
골든 래즈베리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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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래즈베리상과 골든 래즈베리 재단을 어떻게 만들게 됐나.우선 난 영화를 많이 보는데, 좋은 영화를 아주 좋아하고 엉망인 영화를 싫어한다. 사실 좋은 영화를 만나기란 힘든 일이다. 또 하나는내가 아주 이상한 유머감각을 가진 사람이란 것이다. 이런 시상식, 즉 ‘최악’에 대해 상을 준다는 생각은 다른 사람들에겐 농담으로 여겨질만하니까.왜 이름을 ‘골든 래즈베리’(Golden Raspberry)라고 지었나. 사전적 의미로 ‘나무딸기’란 뜻 외에 속어로 경멸과 조소를담은 야유라는 뜻이 있던데.영어로 ‘래즈베리’란 단어는 뭔가 맘에 들지 않을 때 입술을 떨면서 ‘푸르르’ 하고 내는 소리를 말한다. 그리고 골든 래즈베리상의별칭인 ‘래지’는 누군가를 비웃다, 놀리다, 무안을 준다는 뜻의 동사 ‘래즈’(razz)에서 왔다. 또 미국의 대부분 상의 이름을 안다면눈치챘겠지만, 에미상, 토니상, 그래미상 등 대부분 ‘이’음으로 끝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Razz+ie로 만들었다. 아마 미국사람들은
“코폴라 딸? 우리 때문에 연기 관뒀다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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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영화 선정하는 골든 래즈베리 영화제, 어느덧 21회 맞아LA의 도로시 챈들러 파비온에서 제53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던 1981년 3월31일, 샌타모니카틴셀타운이라는 곳의 한 가정집에서는 30여명의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조촐한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 집 주인인 존 윌슨과 그의 동료들은어설프기 그지없는 시상대와 가짜 마이크가 설치된 거실에서 오스카 시상식 중계방송을 보며 자기들만의 영화제를 열고 있었다. 바로 이것이 지금은연례행사로 널리 알려진 ‘최악의 영화상’ 골든 래즈베리상의 시작이었다. 줄여서 래지상(Razzie Awards)으로도 불리는 이 상은 그시작이야 어쨌든 2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선 최고의 영화나 배우, 스탭한테 상을 수여하는 여타 상과는 달리 최악의 작품 및 영화인을 대상으로함으로써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고수해왔다. 물론 이 영화상 시상식을 TV로 중계하는 일은 아직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지만,매년 오스카상 시상식 전날 발표하는 래
골든 래즈베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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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경찰 송기열은 악명 높은 빨치산 짝코를 철천지 원수로 여기고 있다.한국전쟁 직후 요행히 그를 체포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압송 도중 놓쳐버리는 바람에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져내린 까닭이다. 분명 실수로놓쳐버린 것이지만 경찰당국과 마을사람들은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는 그 사건으로 인해 경찰에서 쫓겨나고 분한 마음에 술을 퍼마시다보니재산도 탕진하고 가정마저 파괴되어버렸다. 이제 비참하게 몰락해버린 자신의 인생을 보상하는 길은 오직 하나, 짝코를 다시 체포하는 것뿐이다.임권택의 걸작소품 <짝코>는 그렇게 쫓고 쫓기며 보낸 송기열과 짝코의 30년 세월을 다루고 있다.<짝코>는 반공영화 같으면서도 반공영화를 넘어선다. 영화는 송기열과 짝코를번갈아가면서 보여주는데, 추적자건 도망자건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뜨내기로 비참한 삶을 살아가기는 마찬가지여서, 관객으로 하여금 그 신앙처럼굳어버린 광기어린 집념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자문하도록 만든다. <짝
20년전 <`공동경비구역 J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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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여성일기> 상영 때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지금은 스카라극장으로이름을 바꾼 수도극장에서 초여름 휴일을 기해 상영된 이 작품은 특히 여성관객의 마음을 대거 사로잡았다고 한다. 연일 입추의 여지없이 채워진극장 안에는 특이하게도 두대의 영사기가 동시에 돌아가고 있었는데, 한쪽에서는 그림이, 다른 한쪽에서는 소리가 흘러 나오는 중이었다. 원래편집을 하면서 필름에 사운드를 입혀야 했지만, 당시로서는 그러한 광학적 기술이 불가능했기에 후시녹음한 내용을 그림에 맞춰 동시에 틀었던것이다. 현상작업 역시 국내에서는 마땅한 장비가 없었으므로 미국의 코닥사에서 해 가지고 온 차였다.요즘은 영화가 진행되다 5분만 끊겨도 환불소동이 벌어지지만, 극장마다 영사기가 귀하던 그땐, 롤을 교체하기 위해 10분 상영하고 20분쉬는 것이 다반사였고, 관객은 당연하다는 듯 담소를 즐기며 기다려 주었다고 한다. 전쟁의 발발에 따른 기존 필름의 유실은 가뜩이나 귀한필름의 희소가치를 더더욱 치켜올렸고, 남
날자, 날자, 다시 한번 날아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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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준석, 동수, 상택, 중호 네 친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들. 고등학교에 갔을 때 모범생이 된 상택과 달리 준석과 동수는 학교에서가장 잘 싸우는 녀석들이 됐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상택과 중호는 대학생이 되고 준석과 동수는 각기 다른 폭력조직에 들어간다.곽경택 감독,유오성.장동건 출연,시네라인2 제작,코리아픽처스 배급,상영시간 116분박평식 고교 때까지만 기억하겠다. 힘은 넘치나 새롭진 않다 ★★★심영섭 유오성. 쥑. 인. 다. ★★★유지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부산. 장하지만 이음새는 거칠다 ★★★☆홍성남 너무 익숙한 깡패영화, 지난 시대에 대한 ‘기억력’만이 감탄스러울 뿐 ★★☆■캐논 인버스 사생아로 태어난 예노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은 ‘캐논 인버스’라는 곡조뿐. 그는 음악기숙학교에 들어가 동기 데이빗과 진한 우정을 나눈다.그러나 둘은 배다른 형제임이 밝혀지고, 예노는 연모하던 소피와 함께 무대에 선다.릭키 토나치 감독, 한스 마테손, 가브리엘
친구 / 캐논 인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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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사람을 생각하면 슬픈 귀가 열린다, 라고 내가 좋아하는 시인 김정환은 자신의 책 첫머리에 썼다. <닥터 지바고>, 라는 영화제목을 떠올리면 나는 내 흑백 사진이 든 앨범의 첫장을 여는 듯하다, 라고 내가 쓴다면 아마도 과장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만큼 내게 다층적인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영화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닥터 지바고>라는 영화의 제목을 처음 들은 것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이었다.
영화광이었던 어머니가 아버지와 함께 극장엘 다녀와서 했던 말이 기억나니까. 그때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 영화 정말 굉장해, 참 잘됐어.” 재미있는 것말고 잘됐다는 게 뭔지는 몰랐지만, 닥터라는 말이 의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던 나는 어린 마음에도 그 영화가 “에로틱”할 거라는 근거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의사놀이라고 불렀던 성적인 장난하고 닥터하고가 연관되어서 그랬을 것이며 어머니가 우리는 데리고 가지 않고
지금은, 슬픈 귀를 닫을 때, <닥터 지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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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말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전 텔레비전 시리즈 <버피>의 열성팬입니다. 최근 방영되는 시리즈 중 이처럼 다양한 재미를 주는 작품도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이미 전설이 된 <`X파일`>보다 훨씬 흥미로운 감상이 가능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싸구려 B급 호러영화,수퍼 히어로만화, 십대 소프 오페라가 뒤섞여 기가 막힌 장르 칵테일을 만들어 놓은 그릇 안에서 동성애나 학교 총격사건 같은 첨예한 이슈부터진지하기 그지없는 고딕 로맨스를 거쳐 베리만식 존재론까지 당연하다는 듯 넘나드는 이 어처구니없는 시리즈를 단순한 십대 취향 액션물이라고무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그러나 이 시리즈에 몰두하다 보면 정작 이 작품에 원작영화가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됩니다. 특히 우리나라 시청자들은 더욱 그렇지요. 왜인지는저도 모르지만 영화의 출시제와 텔레비전 시리즈의 방영제가 달랐으니까요. 비디오 출시제는 <루크 페리의 뱀파이어 해결사>였고 MBC에서 방영될때 텔레비전 시
원작영화, 초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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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친구의 콘서트를 갔다왔다. 마지막날 마지막 공연이어서 그런지 콘서트장은 수많은 인파로 발디딜 틈조차 없었다(나중에 듣기론 첫날부터매진 행렬이었다고 한다). 공연내용도 대단히 성공적이어서 무대 뒤로 찾아온 사람들이 꽤 많아 보였다. 거기엔 내가 아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고텔레비전이나 신문 잡지에서나 볼 수 있었던 분들도 있었다. 그들은 공연자에게 다가가 자신들이 받은 감동의 표현을 어떻게 해야 온전하게 전할수 있을까 고민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한마디 한마디가 평생을 살아도 나는 들어보지 못할 것 같은 찬사의 파노라마였고 일종의 헌정시였으며 감동의 물결이었다. 나는 그 틈에 끼어꼼짝 못하는 상황이었고 내가 조금만 여린 놈이었으면 그 한마디 한마디를 들을 때마다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엉엉 소리내며 울었을지도모르겠다.“지금 그 표현, 너무 아름다워요…. 엉엉.” 그들은 진심이었다. 나는 그때 엉거주춤 그 틈에 끼어 이런 생각을 했다. 왜 나는 그런 말을못할까? 왜 나는
열정이냐, 권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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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22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창립대회. 이에 정부,무노동 무임금 등을 골자로 한 단체교섭 공동지침 마련.“저는 지금 16mm 극영화 <파업전야>를 상영하였다는 영화법위반 죄명으로 검찰에 기소되어 재판을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적용된 법 조항이 그 입법취지와는 상관없이 일반적이고 사회통념적인 법상식에 어긋난 것이고 현행 영화법을 구시대적으로해석하여 영화창작 혹은 그 예술행위를 국가기관에서 독점적, 일방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발상에 따른 결과라면 문제는 심각합니다.”-93.4.24 당시 <파업전야>를 상영해 공연법 위반으로 기소, 피고였던 이용배감독이 대법원에 제출한 항소이유서 중에서.“제작하면서 상영계획을 짰고, 그대로 일반에 공개한 최초의 영화였다. 현장 관객을 설정하고 만든 작품이니만큼, 압수수색이 들어온 뒤에도 전국단위의 공동투쟁이 가능했던 것이다. 좋은 기억이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장윤현 감독이 떠나고나서 예전의 영광에 붕 떠 있었던 것
한국 독립영화 회고전 - <파업전야>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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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10일 경찰, 민주당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주최의 ‘박종철군고문치사 조작·은폐 규난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 봉쇄, 전국 18개 도시 가두시위.“대학영화에 첫 시련이 닥쳤다. 86년 광주항쟁을 다룬 영화 <부활하는 산하>의 상영으로 연세대 총학생회에일제 검거령이 내려졌다.… 수사기관은 이 영화 제작의 배후로 서울영상집단(서영집)을 지목,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서영집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사실이 드러나자 서영집이 제작한 <파랑새>에 대해 영화법 심의 조항을 문제삼아 홍기선, 이효인을 구속했다. 그러나 <파랑새> 사건은 ‘뜻밖에도’대학영화패의 연합체 결성의 계기로 작용했다.… 87년 5월 경희대 그림자놀이, 고려대 돌빛, 상명여대 얼레 등 13개 대학영화패가 모여 대학영화연합(대영연)을결성한다.… 대영연 결성 취지로 “이 땅에 존재하는 검은 먹구름의 실체인 미국문화를 과감히 걷어찰 민족영화의 창달”을 선언하고 있다.… 대영연은87년 1
한국 독립영화 회고전 - <인재를위하여>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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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서울시, 국내건설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도시재개발 계획 추진.“1988년 가을. <상계동 올림픽>을 보았다. 신도시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삶의 공간을 박탈당한상계동 주민들의 모습이 화면을 장악하고 있다. 카메라는 가진 자들만의 것이 아니구나. 조그마한 희망을 움켜쥐기 위해 셔터를 누르고, 프레임가득 세상을 안을 수 있는 거구나. 영화를 생산하는 사람들 그 한켠에 세상과 정면승부를 펼치며 현재를 통해 미래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구나.아! 깨달음을 얻었다.”<씨네21> 152호 내 인생의 영화(변영주) 중에서“다큐멘터리 같은 경우 80년대는 찍기만 했지. 운동의 보조수단으로서 역할을 했고. (그때) 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 아무도 없었어.하지만 (90년대가 오고) 사회가 변했다고 해도, 늦게 철든 사람들은 이런 목소리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80년대 중심에 있지않았던 사람들이 오히려 버틸 힘이 남았던 거지. 좌절의 정도도 약했을 테니까. 단편영화들
한국 독립영화 회고전 - <상계동올림픽>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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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5.17 정부 비상계엄 전국 확대, 계엄포고 10호 발표“서로가 타인이었던 자들이 영화라는 낯선 형식의 틀 안에서 문화원을 찾아다니며 원했던 영화를 봤고,중국집과 다방을 옮겨다니며 영화이론 서적도 뒤적거려봤으며 또한 지금은 사라진 아르바이트 덕분으로 세명 정도가 8mm 카메라를 구입하여 몇편의습작을 통해 작품제작에의 의도를 가지고 있었으며…자신들의 영화에 대한 애착을 설익은 막걸리 몇잔으로 토해내기도 했다.”-80.11.7∼8일 서울대학교 26동 대형강의실에서 열린 얄라셩의 첫 번째 영화마당자료집중에서“영화는 일종의 도피 비슷한 것이었어. 그래서 영화과로 가게 됐고. 개인 작업을 하다 제1회 작은영화제에서 얄라셩 같은 곳도 있구나, 처음알았지. 배타적인 감정들도 있었어. 운동 차원에서 접근하는, 순수하지 못한(웃음) 이들이었으니까. 그래도 함께 모일 수 있었던 건 새로운 영화를만들어보자는 생각들이었던 것 같애. 누구에게나 그런 강박증 같은 게 있었어. 그때는. 물론 다들 테
한국 독립영화 회고전 - <판놀이 아리랑>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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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영화 회고전, 3월30일부터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려그들이 온다. “모순이 곧 희망”이던 시절, 역사적 환부를 들추라는 시대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는 도덕률로 받아들인 독립영화들이온다.3월30일부터 3일 동안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한국 독립영화 회고전’은 값진 행사다. 몇몇 작품이 간헐적으로 상영된적은 있었지만, 이번 회고전처럼 80년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독립영화의 대명사격인 영화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은 적은 없었다. ‘매혹의 기억’이라는부제를 단 이번 상영회에서 보여질 영화는 총 16편. 80년 장길수 감독의 <강의 남쪽>을 시작으로 서울영화집단의 <판놀이 아리랑> <그여름>, 푸른영상의 <상계동 올림픽>, 장산곶매의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등이다. 여기에 90년대 이후 나온 실험영화들이 추가된다.아트선재센터와 함께 행사를 준비중인 한국독립영화협회의 조영각 사무국장은 “모든 것이
한국 독립영화 회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