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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설정은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하여 조금 억지로 세팅된 면이 없지 않다. 왜 춤 선생님은 모두 지방에 있으며 다 소주를 달고 사는 폐인일까를 갸우뚱하는 사이, 어느새 주인공은 춤을 마스터한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예상외로 속도감 있게, 흥미롭게 진행된다. 점차 영화는, 기본이 제비인 ‘무도 예술가’의 알리바이가 예술가의 진정성과 헷갈리면서/겹치면서 과연 제비인 그의 진정성이 이야기상에서 어떻게 드러날 것인가 쪽으로 전개된다.
이 영화에서 춤꾼, 제비, 예술가라는 세 개념은 서로 상극인 다른 카드이면서 하나의 조커다. 이 영화의 대중적 기반의 하나는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 ‘동호회’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댄스 스포츠 바람이다. 댄스 스포츠에 등장하는 장르들, 룸바, 살사 등등의 리듬들은 그대로 음악 장르의 이름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는 우리에게 친근한 여러 음악들이 주인공들의 발에 날개를 달도록 해준다.
영화를 주름잡는 리듬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가 자이브고 다른 하나는 왈츠다.
경쾌한 4박자, 우아한 3박자, <바람의 전설>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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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포드는 기나긴 여정의 끝무렵에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와 <도노반의 산호초>를 발표했다. 웨스턴에 쏟았던 열정을 감안할 때, 고별사에 해당하는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가 이루어낸 경지는 두말할 것도 없다. 흥미로운 건 <도노반의 산호초>다. 진득한 코미디가 주는 흥취가 대단해서 존 포드의 영화를 몇몇 장르로 한정하는 게 이상할 정도다. 존 포드는 오랜 동료 존 웨인과 마지막으로 작업하면서 상대역으로 리 마빈을 내리 등장시켰다. 두 작품에서 둘의 관계는 사뭇 달랐지만, 거친 두 남자가 만들어가는 조화와 반목이 인상 깊다. 서부의 세계에서 긴장 관계였던 두 남자는 바닷가 섬에서도 여전히 악동마냥 다툰다.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리 마빈이야 익히 짐작되는 바고, 존 웨인도 <조용한 남자>에서 그랬던 것처럼 감히 아일랜드 여자의 엉덩이를 때리곤 하니 신사는 못 된다. 그들은 그런 남자다.
존 웨인의 곁에 리 마빈이 서
[DVD vs DVD]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vs <도노반의 산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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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Bonnie and Clyde1967년감독 아서 펜상영시간 111분화면포맷 1.85:1 아나모픽음성포맷 DD 1.0 영어자막 한글, 영어출시사 워너1960년대 미국에서 벌어진 인종차별반대운동, 동성애해방운동, 페미니즘, 히피 반문화 등의 사회적 변화에 기반을 둔 이른바 아메리칸 뉴시네마는 기존 할리우드영화를 탈신화하는 기능을 했지만, 이제 그 자체로 신화가 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 이후 미국의 작가주의 전통을 이어간 뉴할리우드라는 것은 과거의 급진주의와는 거리를 두게 된다. 어쨌든 옛날 옛적에 미국에서도 새로운 흐름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 전환점의 시작을 1967년이라고 한다면, 이 해에 제작된 아서 펜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그 상징적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이 영화의 장르를 갱스터영화라고 볼 수 있겠지만, 1930년대 하워드 혹스의 <스카페이스>와 같은 영화들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1930년대 갱스터들은
60년대 미국에 대한 반항의 텍스트,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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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미트먼트> The Commitments1991년감독 앨런 파커상영시간 117분화면포맷 1.85:1 아나모픽음성포맷 DD 5.1 영어자막 영어출시사 폭스<벅시 멀론> <페임>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 <에비타> 등 새로운 경향의 뮤지컬로 일가를 이룬 앨런 파커의 필모그래피에서 이번에 소개하는 <커미트먼트>(The Commitments)만큼 가장 친근하고 유쾌하며, 동시에 감독 자신의 영화와 인생에 대한 애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작품도 없을 것이다. “아일랜드인은 유럽의 흑인이다”란 철학을 가진 더블린의 괴짜 청년 지미 래빗이 더블린 하류 인생들을 모아 만든 솔(Soul) 음악 밴드 커미트먼트의 부침을 그린 이 독특한 음악영화는 한국 사람들만큼이나 음주가무에 능하다는 아일랜드인들의 문화와 정서를 외부자인 동시에 상대적인 내부자라고 할 런던 출신 감독의 시선으로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내세울 만한 변변한 배우 하나없이
지독한 고집쟁이 감독의 마력, <커미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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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의 <메모리즈>는 허크 하비의 <영혼의 카니발>과 유사한 길을 걷는다. 차이점이라면 한쪽이 사고사당한 여인의 이야기라면 다른 쪽은 살해당한 여인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제목이 복수형인 것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기억을 다른 형태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낭낙>은 99년 이 영화를 사랑 이야기로 알고 입장했던 타이 관객을 놀라게 했으며 <타이타닉>의 흥행을 넘어선 영화다. 하지만 <낭낙>에서 로맨스를 빼고 호러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 논지 니미부트르의 의도가 빗나간 <휠>은 호러적 요소마저 빠진 단편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호러적 분위기에 사랑을 잘 접목시킨 사람은 진가신이다. 여명, 증지위와 같은 배우들의 출연으로 더욱 보석 같은 작품이 된 <고잉 홈>은 이후 금마장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휠>과는 별도로 디스크1에 함께 수록된 <메모리즈>와 <고잉 홈>은 여러모로 대구를 이
333 공포, <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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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나 출연배우를 보고 자신에게 맞는 영화를 선택하는 것은 영화의 탄생만큼이나 오래된 방법이지만 제작사를 보고 영화를 선택한다는 것은 여전히 불확실하기만 하다. 그런데 픽사의 애니메이션이나 트로마의 엽기영화들을 선택하는 것만큼이나 로맥틱코미디에 있어 보증수표 같은 제작사가 있으니 바로 영국의 워킹 타이틀이다. <노팅힐>이나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흥행 덕분에 영국에서 가장 많은 개런티를 받았던 워킹 타이틀의 작가 리처드 커티스는 자신의 연출 데뷔작에서 사랑은 흔해빠진 것이라고 말한다. 근데 공기와도 같은 사랑은 어디에나 있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사랑을 빼앗긴 제이미는 사랑도 통역이 되냐고 묻기보단 외국어 공부를 하고, 영국 총리는 체면을 버리고 여비서에게서 느꼈던 사랑을 찾아간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판타지일 뿐이라 주장하는 싱글족도 있겠으나 어차피 사람에게 사랑은 판타지이지 않았던가? 사랑이라는 판타지를 현실 속의 드라마로 만들 준비가
영원한 사랑의 판타지, <러브 액츄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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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모델> La Belle Noiseuse1991년감독 자크 리베트상영시간 229분화면포맷 1.33:1 스탠더드음성포맷 DD 2.0(모노) 프랑스어자막 한글, 영어출시사 알토미디어<누드모델>의 줄거리는 ‘노화가가 아름다운 여인을 그린다’는 딱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자크 리베트는 오노레 드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에서 기본 줄거리와 몇몇 이름을 따왔을 뿐, 사실 이야기하기엔 별 관심이 없다(그런 면에서 <누드모델>은 이야기를 해체하고 재구성했던, 리베트식 즐거운 이야기하기 <셀린느와 줄리 배를 타다>의 반대편에 서 있다). 또한 <누드모델>을 단순히 예술이 창작되는 과정을 다룬 영화로 볼 수만도 없는 게, 리베트는 주인공들의 관계를 엉성하게 짜놓은데다가 완성된 그림- ‘아름다우나 싸움을 일으키는 여인’(La belle noiseuse)- 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반면 리베트는 ‘한정된 시간의 흐름 위에 놓인 예술가(그리
진정한 무삭제, 4시간도 즐거워, <누드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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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커피 칸타타- 오늘 라디오에서 바흐의 <커피 칸타타> 중 <커피는 왜 이다지도 맛있을까>와 <고집 센 딸자식>을 들었다. 가사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간드러지게 넘어가는 대목에서, 커피잔을 돌려 향을 맡은 뒤 한 모금 들이키며 ‘히야~’ 하고 감탄하는 300년 전 음악가의 느낌이 전해진다. 동글동글 사람 좋게 생긴 바흐가 커피를 앞에 두고 말 안 듣는 딸내미를 탄식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신윤동욱의 너스레- 이번주 ‘TV를 보다’ 칼럼은 민주노동당이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약진을 이루라는 응원가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남부럽잖게 생각 많고 점잖은 신윤동욱 <한겨레> 기자가 노회찬 ‘빠돌이’를 자처하며 꺅꺅거리고 정준하식 개그까지 구사하는 폼새가 여간 재밌는 게 아니다. 정치의 진보를 욕망과 쾌락의 지점에 놓고 선동하는 노련함을 보이는 것이다. 젊은이의 눈에는 불꽃이 있고 노인의 눈에는 빛이 있다고 했다.
즐거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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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위에 글로 씌어진다고, 아니 모니터상에 활자로 박힌다고 모두 같은 글은 아니다. 예를 들어 서류와 책은 아주 다른 계통에 속하는 글이어서, 그것을 쓰는 데 아주 다른 능력을 요구한다. 내 경우를 예로 들면, 나는 논문이나 책을 쓰는 데는 매우 숙련되어 있어서, 글 한편 쓰는 것은 별로 일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구계획서나 보고서 같은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 경우에는, 무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미숙해서 너무도 고생을 한다. 반면 학교나 관청의 관료들이라면 정반대일 것이다.서류나 문서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항목에 동일한 내용을 써넣을 것을 요구한다. 갖추어야 할 서류도 일정하게 고정되어 있어서 하나라도 빠뜨리면 내용이 아무리 훌륭한 거라도 영락없이 퇴짜다. 반면 논문이나 책은 남과 동일한 내용은 물론 동일한 형식으로 쓰면 욕을 먹는다. 가능하면 남과 다른 자신만의 독창성을 발휘해야 하며, 쓰는 스타일도 남다른 면이 있어야 좋은 작품이 된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의식과 주장이
독서와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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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국제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의 어른에 대한 존경심이 가장 낮은 나라가 한국이란다. 아직도 버스에서 자리를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한살이라도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선배대접을 하고, 피 한 방울 안 섞여도 형, 언니, 누나, 아저씨, 아주머니,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제 가족과 다름없이 부르는 이 동방예의지국의 젊은이들이 더이상 어른을 존경하지 않는다. 어른이란 ‘단지 나이가 많은 사람’이며 나이가 많다는 것은 ‘늙었다. 한물갔다. 구식이다. 고리타분하다’ 정도로 생각한다. 어른을 우습게 아는 것은 옛날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옛날에 대해서 우리의 의식은 ‘못산다. 원시적이다. 촌스럽다. 낙후됐다. 더럽다. 싸구려. 무식하다’는 것이 보편 정서가 돼버렸다. 그런 까닭에 옛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아주 무례하다. 텔레비전에서 10년 전, 20년 전 생활상을 보여주면 폭소를 터트리며 헤어 스타일을 비웃고, 패션을 비웃고, 말투를 비웃는다. 그리고 간혹 옛것이지만 훌륭한 것을
존경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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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렇게 좋아?”“지금?…… 묻지마라.”“그렇게 요란스럽게 결혼하더니 행복해?”“행복? … 글쎄….”<장미의 전쟁>에서 남편의 무능함에 화가 나서 집을 나온 미연(최진실)이 동생 미란(송선미)과 여관에서 하룻밤 지내며 나누던 대사였다. 분명히 수철(최수종)을 죽도록 사랑하여 독한 어머니, 허영심 여사(윤여정)를 배반하고 보란 듯이 결혼하여 잘사는 모습을 과시하고 싶었을 미연은 미란의 좋으냐는 질문에도 행복하냐는 질문에도 선뜻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그녀의 주저하는 태도는 정작 미란이 두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재하(류진)와의 결혼을 강행하려고 하자 싸늘하게 충고하는 데로 이어진다. 엄마가 반대하는 결혼을 해서는 안 된다고.이 대목에서 우리는 사랑과 행복에 대하여 질문하면서 새로운 동반자를 찾았거나 찾아가는 딸들의 배후에 굳건한 이미지로 자리잡고 있는 어머니에 대하여 새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들의 어머니, 허영심 여사는 남편의 여자에게까지 콩팥을 떼어주
그저 성장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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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c spe nec metu.라틴어 nec=영어 not,라틴어 spes=영어 hope,라틴어 metus=영어 fear.‘꿈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시오노 나나미의 처녀작 <르네상스의 여인들>이 다루는 첫 번째 여인은 “타고난 정치적 재능과 예술적 영혼을 한껏 발휘하여 강대국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를 슬기롭게 지켜낸 만토바 후작 부인 이사벨라 데스테”. “이사벨라에게는 눈앞에 있는 현실이 곧 인생이었다. 설령 그 현실이 청결하거나 아름답지 않다해도, 그게 바로 인생이었다.” 그런 인생을 살아간 그의 좌우명이 ‘꿈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다.주인공이 한 여자에게 질문을 받는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세요?” 주인공이 대답한다. “희망이 없으니까 만족이지요. 만족이란 지금 있는 그대로에서 어떤 희망도 목표도 필요로 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만족하게 살고 있습니다.” 임영태의 소설 <비디오를 보는 남자>에 나오는 이야기. 주인공은 자기 앞에 놓인 생을 딱
n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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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 >> 하드보일드 사내들이 만났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은 재일동포 최양일 감독(<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 <개 달리다>)의 신작 <피와 뼈>에서 주연을 맡을 예정이다. 재일동포 작가 양석일의 소설을 영화화하는 이 작품에서 기타노 타케시가 맡게 될 역할은 2차대전을 겪은 폭력적인 아버지. 두 사람은 오시마 나기사의 <고하토>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뭔가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질 만도 한데 정작 기타노는 “배우로서 처음 시작하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해리슨 포드 >> 환갑이 넘어도 액션히어로의 열정은 계속된다. 해리슨 포드의 차기작은 액션스릴러 <잘못된 요소>(The Wrong Element). 그는 이 영화에서 납치된 가족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일하고 있는 은행으로부터 돈을 횡령하고 동시에 경찰로부터도 쫓기게 되는 은행의 보안책임자 역할을 맡았다. 도망자도, 납치범과 싸우는 가장도, 포드가 연기
[캐스팅 소식] 하드보일드 사내들이 만났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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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7일 새벽, 런던의 공원에서 개를 산책시키던 케빈 스페이시가 강도에게 폭행당하고 휴대전화를 강탈당해 경찰에 신고했다가 갑자기 이유없이 이를 철회했다. 서구에서는 새벽의 공원이 동성애자들의 모임 장소로 쓰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의 성 정체성에 대한 타블로이드의 가십성 기사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이에 케빈 스페이시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강도에게 폭행당한 적이 없으며 너무 화가 나서 거짓증언을 했다”라고 해명했다.
왜 거짓증언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