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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의 만화 <트라우마>가 드디어 탄탄한 두권의 책(애니북스 펴냄)으로 우리 앞에 당도했다. 2003년 <스포츠서울>에 연재 개시된 이 만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몇년만 잘 버티면 양영순의 <아색기가>, 김진태의 <쾌걸 조로>에 버금가는 작품이 될지 모른다는 조심스런 예측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과 1년 뒤인 지금, <트라우마>는 한국 신문 만화, 개그 만화의 안방에 떡허니 자리를 잡아버렸다. 일본 메이저 잡지인 <빅코믹 스피리트>에까지 진출했다. 참으로 건방지기까지 한 도약이다.만화가 곽백수가 1998년 <영점프>에 투맨 코미디를 선보였을 때 이미 그의 개그 자질에는 뭔가 꾸리꾸리 잘 숙성될 것 같은 냄새가 났다. 그러나 비슷한 정도의 재능을 선보인 만화가들이 신문 연재에 돌입해서는 불과 한두달 만에 맥을 못 추고 쓰러진 반면, 그는 단기간에 풀타임 신문 만화가로 정착해 지칠 줄 모르게 공을 뿌려대고 있다.
정통 개그만화의 힘, 곽백수의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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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액션배급 코에이 코리아플랫폼 PS2언어 영어 음성/영어자막미지의 외계 생명체 ‘메너스’에 맞서는 인간병기의 활약을 그린 <붉은 바다2>는 ‘하나뿐인 길을 따라 열심히 적을 베며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엔딩 화면에 이르더라’는 핵 & 슬래시 장르의 한계, 즉 ‘단순함’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게임. 선택 가능한 60여 가지 미션은 전형적인 초토화 작전 이외에도 아이템 회수, 특정 캐릭터 호위 등 다양한 유형으로 구성되어 있고, 여기에 파괴력의 ‘쇼’와 스피드의 ‘피네’ 중 원하는 캐릭터를 선택하고, 이들을 조종하여 미션을 클리어하는 동안 획득한 ‘오리진’으로 무기를 강화하는 롤 플레잉 요소도 첨가되어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질리지 않고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붉은 바다2>는 어디까지나 핵 & 슬래시 게임. 제작사 코에이는 화끈한 액션으로 화면을 가득 채워야 한다는 이 장르의 기본에 충실해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총과 검/채찍을 활용
완전히 ‘다른’ 핵 & 슬래시, <붉은 바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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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발림(www.sugarspray.com)이라는 곳은 도대체 뭘 하는 곳일까. 돈 버는 곳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진지하게 공부하는 곳은 더더욱 아닌 것 같다. 놀이터. 일단 이 말이 가장 어울릴 것 같다. 그래 여기는 번잡하게 노는 곳이군. 그런데, 이런! 놀이터라는 말을 하려고 돈이니 공부니 하는 설을 깔다니. 나도 어지간히 낡았다. 노는 데 이유가 없다는 건 오랜 신조였으면서도 사탕발림의 맘먹고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뭔가 불안했던 것인가. 사탕발림의 하위메뉴는 ‘판다판다’, ‘말존’ 등 낯선 것도 있지만, 한번만 훑어보면 이해하는 건 물론, 여기서 어떻게들 노는지도 한눈에 들어온다.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사진도 찍고 그렇게 논다. 이것저것 조물거리면서 작고 예쁜 것들을 만드는 걸 보니, 참 재미난 감성들이다. 쉽게 말해 재미난다고 했지만, 이 분위기란 사람에 따라 버거울 수도 있는 종류의 것이다. 사탕발림이란 이름대로, 그 단맛에 몸서리를 치는 게 ‘취향’이니 말이다
달콤한 놀이터로 놀러와, 사탕발림(www.sugarspr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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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빌 Vol.2> I 워너뮤직코리아 발매브라이드가 마침내 빌을 죽이러 가기까지의 여정을 읊는 목소리로 시작하는 <킬 빌 Vol.2>의 O.S.T는 쉬바레의 <굿나잇 문>, 롤레 이 마뉴엘의 <투 미라>, 루이 엔리케 바칼로프의 <서머타임 킬러>, 말콤 맥라렌의 <어바웃 허> 등 시절과 상관없이 여전히 매혹적인 리듬과 멜로디의 음악들로 채워져 있다. 1편에 비해 더 풍성해진 오리지널 스코어는 세곡 포함돼 있는데, 엔니오 모리코네의 스코어라 해도 타란티노가 선곡한 곡들에 비해 밋밋할 수 있다.<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재발매) I 포니캐년코리아 발매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작업에 들어가기 전 스토리보드를 바탕으로 이미지 앨범을 먼저 완성한다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을 귀로 먼저 설명해주는 안내서다. 지난해 여름 개봉하면서 이미 출시된 바 있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가
<킬 빌 Vol.2>,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101번째 프로포즈> OST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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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죽은 자들만이 전쟁영화의 종말을 봐왔다”라는 (플라톤식의) 말이 있다. <전쟁과 영화>(폴 비릴리오 지음 | 권혜원 옮김 | 한나래 펴냄)라는 제목의 책과 마주할 때, 아마도 우리는 전쟁 자체와 그에 대한 이야기의 항구성을 이야기하는 그런 식의 언급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폴 비릴리오의 이 책을 직접 펴보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가진 사고의 폭이라는 게 얼마나 협소한지 자책을 할 수도 있다. 이건 스크린 위에 재현된 전쟁의 양상들을 다룬 영화비평 혹은 영화사 기술 정도에 머무는 책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비릴리오의 논의에 중심이 되는 문장을 다시 고른다면 충분히 흥미로우면서도 언뜻 다소 과격해 보이기도 하는 이런 것이다. “전쟁은 영화이고 영화는 전쟁이다.” 비릴리오의 <전쟁과 영화>는 그처럼 전쟁과 영화 사이의 은밀한 교감을 다루는 책이다.비릴리오가 전쟁을 영화와 관련지을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전쟁이란 스펙터클의 생산을 목표로 삼
시각의 ‘병참학’, <전쟁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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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군인에게서 편지가 왔다. 연두색 봉투가 하도 얌전하여 나도 얌전하게 가위로 봉투를 오리는데 천원짜리 지폐 몇장이 먼저 툭 떨어졌다. 의아해하며 내용물을 펼쳐보니 <어린 신부> 비평문 두장, 따로 자신의 심경을 적은 편지 한장이 들어 있고, 본인의 리뷰가 혹시 <씨네21>에 실리게 되면 한권 보내달라는 메모가 말미에 붙어 있었다. 동봉된 돈의 액수는 3천원. <씨네21> 한권값이다.그 군인은 제대하면 영화 공부 열심히 해서 5년 안에 <씨네21>의 표지에 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외출하는 동료들에게 <씨네21>을 사다 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현역 군인이자 예비 영화인인 그에게는 중요한 일인 모양이다. 자신의 삶이 유예되어 있다고 느끼며 피안을 건너다보는 젊은이에게 강 건너에서 반짝이는 환상은 얼마나 눈부시고 간절할 것인가.참으로 오랜만에 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중이다. <씨네21>은 독자의 개성과 조건에 따
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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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집에 우환이 있어 한 닷새 정도 신문, 방송, 인터넷을 통 볼 수 없었던 적이 있었다. 일을 치르고 나서 보니 세상은 온통 이라크에서의 미군에 의한 포로학대로 시끌벅적했다. 공개된 사진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요즈음 식의 귀엽고 깜찍한 ‘엽기’가 등장하기 이전의 역겨운 ‘엽기’가 컴퓨터화면을 가득 메웠다. 그렇지 않아도 큰일을 치르고 멍해진 내 머리는 또다시 띵해졌다. 며칠이 지나자 이번에는 포로학대에 대한 보복이라며 검은 복면을 한 이라크 무장세력이 미국인 한 사람의 목을 베는 광경이 동영상으로 공개되었다. 끔찍하고 충격적인 장면들이 서로 경쟁이나 하듯 속속 공개되고 있다.뉴스를 접하지 못하는 동안, 나는 황망한 중에도 이라크 팔루자 학살의 속보가 궁금했었다. 미군의 봉쇄가 풀려 자세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겠지 하는 생각에 여기저기 사이트를 기웃거려보았으나 포로학대 얘기만 가득할 뿐, 뜻밖에 팔루자 소식을 찾기는 어려웠다. 1천명 안팎의 목숨을 앗아간 팔루자 학살
그래도 그들은 살아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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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눈, 갸우뚱거리는 표정, 보들보들한 솜털로 덮인 짧고 통통한 몸에 만화처럼 큰 머리. 강아지와 병아리와 아기곰, 아기코끼리, 동물의 새끼들은 모두 귀엽다. 내 새끼가 아니라도 고슴도치 새끼조차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새끼들은 왜 귀여울까? 꽃들은 왜 예쁠까? 이런 질문이 어디 있어. 새끼니까 당연히 귀엽게 느껴지는 거지, 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겠지만, 사실 유형기(幼形期)의 귀여운 외모는 생존에 필요한 용의주도한 설정이며 필사의 노력이다. 새끼들은 생존경쟁이 치열한 자연환경에서 부모와 집단으로부터 사랑의 욕구를 불러일으켜 헌신적인 양육을 받으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 치밀한 생존전략으로 ‘귀여운 외모’를 구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 인간이 보기에만 귀여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누가 봐도 귀여운 것이다. 실제로 동물의 세계에서 우연히 남의 새끼, 심지어 다른 종의 새끼까지 열심히 양육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늑대소년 이야기가 전혀 터무니없는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귀여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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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느냐 안 팔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결혼하고 싶은 여자’ 이신영(명세빈)의 실존적 고뇌다. 32살의 노처녀, 신영은 지금 결혼시장의 냉혹함을 처절하게 경험하고 있다. 왜냐고? 안 팔리니까. 오랜 연인은 젊은 애한테 뺏겼고, 새로 찜한 남자는 한눈만 판다. 방송기자에 중산층 가정. 그리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그런데도 ‘안 팔린다’. 물론 과년한 탓이다. 그래도 신영은 어떻게든 ‘팔고야 말겠다’는 야무진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신영의 친구 진순애(이태란)도 안 팔리긴 마찬가지다. 결격사유는 소녀가장. 또 다른 친구인 장승리(변정수)는 재벌에 팔렸다가 반품당했다. 백인 아이를 낳은 죄다. 32살, 그녀들의 세일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한국 같이 나이가 계급이 되는 사회에서 여자 나이 30대 중반이면, 게다가 미혼이면 하층민 중의 하층민이다. 나이 카스트의 밑바닥에 깔려 죽을 지경이다. 대다수의 총각들이 만나기조차 싫어하는 불가촉 천민이다. 그래도 32살, 아직은 30대 초반이
노처녀의 미션 임파서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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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를 열면 친지들이 꽃을 보내온다. 꽃에 대해서 거의 백치나 다름없는 나도 그 덕에 모처럼 꽃을 가까이 해본다. 오토바이 헬멧을 쓴 꽃집 아저씨가 가까운 사람들의 이름을 붓글씨로 적은 꽃다발이나 화분을 가져다놓고 인수증에 서명을 받아간다. 화환을 정중히 사절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축하하는 마음을, 또는 감사하거나 애도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는 더 나은 수단을 찾아내지 못한 것 같다. 어버이날에 아이들이 달아주는 카네이션, 직장에서 승진하거나 자리를 옮긴 사람들에게 배달되는 난초 화분, 장례식장의 흰 국화 화환과 연인에게 슬며시 건네주는 붉은 장미…. 그것들은 사람의 마음을 전하는 오래된 기호이다.그저 전시장에 와주는 것만으로, 또는 축하한다는 한마디 말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하면서도 그 화사한 꽃이라는 기호에 말과는 또 다른 각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먹을 수도 없고 입을 수도 없으며 황금이나 보석처럼 오래가지도 않는다. 꺾으면 쉽게 꺾을 수 있는
꽃과 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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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몸 속에는 교통경찰이 있어.” 친구가 내게 던진 말이다. 무너져내릴 듯 바스러질 듯하다가도 끝내 망가지지 못하는 나의 희미한 ‘범생이’ 기질을 말함일까. 그 교통경찰의 호루라기를 빼앗고 오토바이 타이어에 펑크도 내고 싶지만, 몸은 매번 제자리다. 그래서 난 더더욱, 변화하는 것들에 넋을 놓는다. 특히 ‘불혹’을 넘은 나이에 무언가에 진정 ‘혹’해버리는 사람들에게는. 멕 라이언도 그렇다. 다행스럽게도, <인 더 컷>에 로맨틱코미디의 여왕 ‘멕 라이언’은 없다. 영화 속 그녀는 선연한 잡티와 주름 사이로 지친 눈물을 떨구는,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프래니가 되어 있다. 그녀가 모르는 그녀의 열망과 섬광처럼 조우할 때, 변신은 시작된다.다시는 대면하고 싶지 않은 상처와 꼿꼿이 마주함으로써, 아니 온몸을 상처 속으로(in the cut) 깊숙이 들이밂으로써 프레니는 변화한다. 끔찍이 사랑하는 이복동생이 토막살인당하는 극한의 상처.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살인범으로 몰릴 수 있음
날자, 훨훨 날아보자, <인 더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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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생미셸의 한 작은 극장에서는 두달 전부터 <국경의 작가들>(Ecrivains des frontieres)이라는 영화가 상영 중이다. 매일 저녁 7시 상영이 끝나고 나면 관객은 이 영화를 만든 사미르 압달라와 호세 레이네스와 함께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가 만든 영화가 좋았다면,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어주기 위해 이 포스터를 여러분들이 가는 곳에 붙여주세요.” 영화관람 뒤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관객에게 압달라와 레이네스는 절실한 부탁의 말을 전한다.
텔레비전 채널이나 영화시장의 개입없이 만들어진 독립다큐멘터리로서 <국경의 작가들>은 파리 시내 단 하나의 극장에서 개봉한 뒤 한달 만에 4천명의 관객 수를 기록한다. 이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일반 극장이나 멀티플렉스에서는 상영되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한편의 영화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단지 만들어지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관객을 만나지 못한 영화는 완전한 것이 되지 못한다. 비디오로 촬영된
[파리] 독립다큐멘터리의 활로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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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이사장 이효인, 이하 영상자료원)의 고전영화 DVD와 VHS 열람료가 지나치게 비싸 이용자들에게 불만을 사고 있다. 영상자료원은 지난해 김기영 감독의 <하녀>(사진)(1960), 신상옥 감독의 <연산군>(1961) 등 영화제가 아니면 쉽게 만날 수 없는 1950, 60년대 한국영화 52편을 선정해 DVD와 VHS로 제작했고, 올해 5월3일부터서 일반인들에게 열람을 허용해 주목받았으나, 열람료가 편당 5천원이나 돼 이용자들이 열람을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참고로 영상자료원이 주최하는 상영회의 관람료가 2천원이고, 일반 비디오 자료의 열람료가 500원이다. 이에 비하면 열람료가 지나치게 높은 것이 사실. 영화과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저변을 넓히고 공공성을 강화해야 할 영상자료원에서 극장 관람료에 버금가는 가격으로 비디오물의 관람료를 책정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영상자료원쪽은 제작에 들어간 비용을 고려한 가격이라
영상자료원 5월3일부터 서비스, 비싼 열람료에 이용자들 불만 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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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전야>를 만들던 25살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뛰는 심장을 가진 아름다운 시인이었다. 자신을 속박하는 종교와 특권에 분노하고, 거침없이 이야기하며,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부르주아계급 청년 파브리지오는 바로 베루톨루치였다. 하지만 파브리지오는 같은 계급의 여자와 교회에서 결혼하고 오페라 공연에 참가하면서, 자신이 그토록 저주했던 삶을 받아들인다. 혁명 이전의 시간을 살고 있는 그는 한 인간의 역사가 과거의 연장이며 환경의 산물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다고 우린 <혁명전야>를 공허한 울림으로 치부할 순 없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고 부르짖는 파브리지오가 바랐던 것처럼, 한 인간의 삶이 끝나는 곳에서 다른 이의 생존이 시작되는 것처럼, <혁명전야>는 새로운 인간이 혁명의 시간을 맞이하기를 열망하고 있었다(고 우린 생각했다).
그리고 1968년, (서구에서 흔히 말해지듯) 1848년에 이은 두 번째 혁명이 일어났다. <몽상가들
[DVD vs DVD] <혁명전야> vs <몽상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