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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다녀왔다. 어떤 모임의 회원들끼리 떠나는 2박3일의 투어를 따라간 것인데, 하루 세끼 열성적으로 챙겨먹는 것을 비롯해서 사소한 것에 기뻐하고 자기 내면과 타인에 지극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보았다. 상식을 실천하는 모습이 도리어 신기하더니, 이내 내 몸과 마음을 볕에 구워 말리는 느낌이었다.가이드를 자임한 동행의 제안에 따라 김영갑 갤러리에 들렀다. 작가가 별다른 상업적 활동 없이 20년 이상 제주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동행의 설명에 “부자 예술가인 모양이군요”라고 무심코 말했던 나는 그곳에서 집어든 책을 일별하며 말문이 막혔다. 버스값 아끼느라 걸어다니고 아침에 속을 달랠 우유 한잔을 자제하면서도 끄떡없던 사람이, 필름과 인화지가 떨어져가면 뿌리 잘린 풀마냥 작은 충격에도 중심을 잃는다고 썼다. 필름이 없으면 눈으로 찍고 마음으로 인화를 하며 다른 내일을 기다렸다고 했다. 제주에 매혹되어 그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사진에 담아온 이 사람은 루게릭 병으로 카메라를 내려놓게 되
절실함,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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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당선자가 조선일보 노조의 초청으로 강연한 것을 두고 마녀사냥이 벌어졌다. 오마이무현과 열린우리겨레가 선봉에 섰다. 언론노조와 인터넷 매체들도 분기탱천했다. 열린우리당 의장이 조선일보와 인터뷰했을 때에는 찍소리도 못했던 분들이다. 박영선 대변인이 안티조선을 “시대착오적”이라고 말해도 군소리 없던 분들이다. 열린우리당 후보들이 줄줄이 디지털 조선에 데뷔해도 아무 불만 없던 분들이다. 더러 불평이 나와도 궁시렁거리는 수준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노회찬에게만은 저들의 성스런 분노가 돌아간다. 왜 그럴까?제2의 노회찬 어록이 떠돈다. 인터넷 기자협의회라는 곳에서는 “조선일보가 품질에서 제일 낫다”는 노회찬 총장의 말을 걸고넘어지며 그의 사과를 요구했다. 한 마디로 변태적인 발상이다. 도대체 조선일보가 품질이 낫다고 ‘생각’하는 게 왜 그들에게 ‘사과’해야 할 이유가 될까? 게다가 그 정도의 발언은 이미 강준만도 했던 것. 얼마 전 한겨레신문의 기자도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
‘안티조선’, 점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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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준씨가 일본 여성들 사이에서 `욘사마'로 대인기입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배용준씨가 일본 여성들 사이에서 자신보다 더 인기가 있다며 익살스럽게 소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3일 저녁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주최 `아시아의 미래' 심포지엄 만찬에 참석한 자리에서 "근래 아시아 지역의 일체감을 피부로 느끼는 일이 많아졌다"면서 실례로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일본명 후유노소나타)를 들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배용준의 인기를 설명하면서 자신을 `준(純)사마'로 표현, "`용사마'가 `준사마' 보다 훨씬 인기가 있다"고 말해 주위를 웃겼다. 고이즈미 총리는 "아시아의 친근감, 매력을 소중히 하면서 함께 걷고 전진하는 커뮤니티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자"고 말했다. (도쿄=연합뉴스)
고이즈미 日총리, “배용준이 저보다 인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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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향수병에 시달리셨다. 산좋고 물좋은 시골에서의 평범한 농군에서 하루아침에 팍팍하고 치열한 서울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에 영 적응하지 못한 아버지는, 술만 취하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거기서 염소나 치고 고구마 밭이나 일구며 살고 싶다고 하소연을 하셨다. 아버지의 주사를 피해 집을 나온 중학생이 바라본 깊은 밤하늘에는 별빛이 유난히 맑게 총총 빛나곤 했다. 멀리서 빛나는 별을 보면서 나도 울컥, 정체 모를 어떤 그리움에 빠져들곤 했다. 아버지가 서울에서 400km 정도 떨어진 남쪽 땅이 그리워 신세한탄을 하는 동안, 지구에서 몇십, 몇백 광년 떨어진 별빛을 보며 내가 그리워했던 것은 무엇일까.영화 <스타트랙>(Star trek, 1979)에서는, 주변의 별들과 우주의 에너지를 닥치는 대로 흡수하며 지구로 다가오는 ‘비져’라는 이름의 초거대 지적존재가 등장한다. 엄청난 세월 동안 우주를 떠돌며 우주의 어마어마한 정보와 물질들을 닥치는 대로 흡수하여 거대한 지적 존재가
그리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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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상영 중인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미국에서 선보이고 있는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이 현지 흥행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홍보사 씨네와이즈 필름에 따르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지난달 19일 프랑스 전국 33개 스크린에서 개봉해 4일까지 4만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 홍감독의 영화는 그동안 전작 네 편이 모두 프랑스에서 선보여 호평을 받은 바 있으며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관객 동원 면에서 이들 영화를 뛰어넘는 성적을 거뒀다.
씨네와이즈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평일에도 평균 50%가 넘는 좌석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면서 "영화가 주로 소규모 극장에서 선보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시아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좋은 성적"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 4월 2일 개봉한 <봄여름…>는 지난달 말까지 110만 달러가 넘는 흥행수익을 올려 역대 미국에서 개봉
홍상수ㆍ김기덕 감독 해외 흥행 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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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국제문화전문가단체(CCD) 총회는 4일 오전 서울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가 추진중인 문화다양성 협약의 체결을 촉구하는 '서울 선언문'을 발표했다. 참가자들은 선언문에서 "문화콘텐츠와 예술작품은 정체성, 경험 및 가치를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다른 상품, 서비스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며 "문화상품이 국제무역협상에 종속되서는 안되며 국가의 문화정책 수립 자주권이 국제법에 명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참가자들은 △문화다양성협약 체결 캠페인에 적극 참여 △각국 문화 관련 기관들의 연대, 공조 강화 △정부 지도자들에게 캠페인의 중요성 설득 등의 활동을 스스로 다짐한 뒤 각국 지도자들에게 △무역개방에 대한 약속을 강요하는 국제무역협상의 압력에 저항할 것 △문화다양성협약이 내년 유네스코 제33차 총회에서 채택되도록 노력해줄 것을 요청했다.유네스코는 한 국가의 문화정책 수립 및 집행, 유지 권한을 인정하고 문화상품을 자유무역 대상에서 제외한
CCD 서울총회 ‘서울선언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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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쟁반노래방>을 즐겨보았었다. 한 소절 한 소절 우리 동요를 따라 부르다 보면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우리말의 정겨움과 순진함이 가슴속으로 배어들어와서 아무도 옆에 없어도 혼자 즐거워지곤 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인가는 <과꽃>을 따라 부르다가 눈물까지 흘릴 뻔했다. 아니 실제로 난 잠겨 있던 슬픔을 몰아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 되어버렸다. 누구나 다 아는 1절에서가 아니었다. “과꽃 예쁜 꽃을 들여다보면/ 꽃 속에 누나 얼굴 떠오릅니다./ 시집간 지 어언 삼년 소식이 없는/누나가 가을이면 더 생각나요.” 1절만 열심히 따라 부르던 어린 시절, 나는 이 노래를 부르면서도 왜 과꽃을 좋아하는 누나를 그토록 애절하게 부르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꽃밭 가득히 피어 있던 과꽃은 실은 시집간 누나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그 누나는 아마 기저귀를 갈아주고 얼러준 사람이었을 것이며 과꽃이 핀 계절에는 아예 동생을 업고 들어가 꽃밭에서 나오지 않고 즐겼을
동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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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 <효자동 이발사>에서 포스트-386의 희망을 보다효자동 이발소에 가고 싶다. 안마사 문소리 때문이 아니다. 송강호에게 머리를 깎아보고 싶어서이다. 대한민국 일번지 강남의 이발소들이 가위를 버린 지 오랜 이 땅에 가위 하나로 폭력의 시대를 이겨낸 효자동 이발사 아저씨. 그에게 머리를 맡기면 좌우 어느 쪽으로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 철사 같은 내 머리카락도 순순히 아저씨의 이팔 가르마에 순응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정성 성(誠)씨 가문의 후손인 아저씨는 홀리(holly) 성(聖)으로 겁주지 않고, 섹스 성(性)으로 유혹하지 않으면서 정성 하나로 머리카락을 길들이는 고수이기 때문이다. 그의 손길에는 독재자도 항거불능이어서 날선 면도칼 아래 순순히 목을 내밀지 않던가.효자동 이발사의 특기는 ‘정 주고 뺨 맞기’지만 사실 그건 발언권을 얻기 위한 전략이다. 진짜 그의 특기는 목소리 큰 가짜 ‘깎쇠’들이 설쳐대는 바람에 봉두난발이 된 한국 근대사를 예쁘게 깎아 가르마 타주기이
그 이발소에 가고 싶다, <효자동 이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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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앙 세자르 몬테이로 감독은 자신의 유작 <오고 가며>에서 “이렇게 좋은 날씨에 침대에 누워 있기보단 차라리 바깥에서 죽겠다”며 병원을 떠난다. 그리고는 영화를 찍다 정말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학창 시절 땡땡이 제법 쳤던 사람도 사회인이 되면 날씨 좋다고 몬테이로와 같은 객기로 무단결근하지는 못한다. 대리출석도 안 되는데 해고의 위험까지 감내할 순 없지 않은가? 2002년 베를린영화제서 은곰상을 수상한 오타르 요셀리아니의 <월요일 아침>에는 직장인의 판타지를 겁없이 실행한 사람이 등장한다. 용접공인 뱅상은 그림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생활은 그를 점점 권태롭게 만들고 결국 아내와 두 아들을 버리게끔 만든다. 전작인 <안녕 나의 집>에선 감독 자신이 아버지로 등장하여 집을 나가더니 자기 작품을 론도라 표현하는 감독의 말마따나 <월요일 아침>에서 뱅상은 수개월이 지난 뒤 결국 귀환한다. 잠시나마 베니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DVD vs DVD] <월요일 아침> vs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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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의 춤> Dracula: Pages from a Virgin's Diary2002년감독 가이 매딘상영시간 75분화면포맷 1.85:1 아나모픽음성포맷 DTS 5.1, DD 5.1, 2.0자막 영어출시사 타탄비디오(영국)‘육체의 에로티즘은 대상을 범하는, 죽음에 가까운, 살해에 가까운 행위다.’ 조르주 바타이유가 <에로티즘>에 썼던 말은 꼭 드라큘라를 두고 한 것 같다. 배다른 형제 프랑켄슈타인이 신화적이라면 드라큘라는 인간적이다. 드라큘라는 생명의 소멸과 유한함 앞에서 자신과 대상간의 깊은 골과 단절을 극복하고 저주받은 영원으로 향하고자 절망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존재다. 그런 존재를 표현하기 위해 언어가 필요없다고 본다면, 드라큘라의 육체적 언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르는 무용이다. 카나다의 로열 위니펙 발레단이 <드라큘라의 춤>을 공연한 것이나, 그간 모호한 시공간을 무성영화적 표현에 담아온 가이 매딘이 그 공연을 다시 영화로 만
그로테스크한 교향악, <드라큘라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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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리베트의 영화는 종종 현기증을 유발한다. 사건을 만들고 부풀려놓고는 마지막에 가선 모든 것을 처음으로 되돌려놓는다. <셀린느와 줄리 배 타러 가다>나 그로부터 30년 뒤의 이야기인 <마리와 줄리앙 이야기>를 봐도 그렇다. 대상은 반복의 고리를 끊으며 구출되고 탈출하는 듯 보이지만 그건 원점으로의 회귀 혹은 또 다른 반복의 시작이었다. 젊어서나 늙어서나 부정한 커플들의 게임에 관심이 많은 리베트는 <알게 될거야>를 <셀린느와 줄리…>마냥 이중의 반복구조 속에 가둬버린다. 까미유는 무대에선 매일 반복되는 연기를 보여주고 현실에선 오프닝 때 함께했던 사랑으로 원복한다(영화의 엔딩 장소마저 오프닝 장소로 되돌아온다). 모든 것은 비밀이 되고 ”장소 외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감독의 말이 또 한번 적용되는 셈이다. <지상의 사랑> <누드모델>에서처럼, 감독과의 대화자에 낙점된 배우 까미유는 재정적 위험에 빠진 극단
자크 리베트의 유혹의 도미노, <알게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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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베른의 는 산업과 과학의 발전 덕에 여행과 이동의 개념이 거리에서 시간으로 바뀔 당시 상황을 반영한다. 그런데 마이클 앤더슨의 는 기실 과학적 사실이나 살아가는 이야기엔 별 관심이 없다. 첫 인공위성 스푸트닉호가 지구를 돌기 바로 1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100년 전으로 훌쩍 넘어간 것 같다. 쥘 베른의 이야깃거리를 호화찬란한 스펙터클로 바꿔놓은 것이다. 1872년, 카드게임 도중 벌어진 내기 때문에 세계일주에 나선 영국 신사와 프랑스인 하인(영화에선 멕시코인)의 앞길엔 세계 곳곳의 신기한 풍물과 풍광 같은 볼거리만이 가득하다. 이야깃거리가 닳아없어질 즈음의 할리우드를 반영하고 있는 는 스타와 좌충우돌 코미디로 뒤범벅된 이후 어드벤처영화들- <매드 매드 대소동> <대경주> <럭키 레이디>- 의 큰형뻘되는 영화라 하겠다.
DVD에선 잡티와 불안정한 색감이 간혹 드러나지만,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복원 상태를 보여준다. 충실한 음성해설 외에 대부
버스터 키튼 등 카메오 찾는 재미, <80일간의 세계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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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블록버스터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그 첫 주자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재난 블록버스터 <투모로우>가 4일 개봉한다. 전작 <고질라>나 <패트리어트: 늪 속의 여우>에서 보듯 이 감독은 드라마 연출력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사이즈와 스케일로 화면을 휘몰아치게 하는 게 주특기이다. 기상이변으로 재앙이 닥친 상태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 간다는 단순한 이야기를 빼곤, 이렇다할 줄거리 없이 미국이 자연재해로 쑥대밭이 되는 장면을 묵시록처럼 연출한다. 미국에서 교토의정서를 탈퇴한 부시를 겨냥해 이 영화를 반부시 영화로 활용할 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일본영화 <완전한 사육>은 장르에서나 스케일에서나 <투모로우>와 정반대이다. 홍보물에는 ‘에로 멜로’라고 적혀있지만 예술영화에 가깝고 등장인물은 주인공 남녀 포함해 10명을 넘지 않는다. 보는 이에따라 남성의 위험한 성 판타지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할지도 모르지만, ‘반(半)’ 포르노
[주말극장가] 반부시 재난극 vs 아슬아슬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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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의 99번째 영화 <하류인생>은 이태원 태흥영화사 사장의 젊은 시절 이야기와 매우 닮아있다. 사춘기에 고아처럼 내던져진 뒤 주먹판에 들어갔다가 4·19, 5·16의 격변기를 겪으며 영화제작자, 건설업자로 변신하는 주인공 태웅의 삶엔 그 시대의 비리, 협잡, 야만스런 권력의 횡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격변기에 살아남아 자수성가하기까지의 이 지난한 여정은, 영화제작자와 건설업자의 순서만 바꾸면 바로 이태원 사장의 것이 된다.
그는 70년대 혹독한 검열 아래 신음하던 한국 영화를 80년대에 부활시킨 장본인이다. 그가 제작했던 임권택 뿐 아니라 배창호, 장선우, 김유진, 김홍준, 이명세, 송능한의 영화가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 영화 전성기는 불가능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력과 돈 사이의 줄타기를 버티면서 거친 하류를 거슬러올라온 그의 생존본능과 직관은 한 개인의 범위를 넘어서는 성취를 이뤄냈다. 그의 자수성가는 자기 집안 뿐 아니라 한국영화를 일으켜 세웠다.
<하류인생> 제작한 이태원 태흥영화사 사장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