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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남자가 골목길에 서 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한다. 어떻게? 여자가 먼저 남자의 뺨을 때린다. “뭐야, 내 손이 아프잖아.” 그리고 뺨을 내밀고 남자의 손찌검을 기다린다. 놀란 남자는 소리지른다. “그만하래두! 이런 거 취미없어!” 그러나 여자는 간절히 바란다. 남자는 과연 그녀를 때릴까, 말까? 잠시 뒤 남자는 집으로 향하는 가파른 계단을 미친 듯이, 헐떡대며, 뒤도 보지 않고 달려간다. 때렸을까, 말았을까? 이 시대의 연애가 만들어내는 물음들이다.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는 구태의연한 스캔 만화와 웹툰을 벗어나 다양한 연재 만화를 싣고 있는 ‘엠파스 만화’에서도 묘한 빛을 내고 있다. 세심한 그림 선이 개성 강한 이야기의 베틀을 따라 잘 엮여진 작품 속을 들여다보면, 강도하라는 이름이 더욱 낯설게 느껴진다. 이 정도 실력의 만화가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을까? 작가 소개를 보면, 그 해답이 나온다. 강도하는 <슬픈 나라 비통 도시>의
이 시대의 연애가 만들어내는 물음, 강도하의 <위대한 캣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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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끝났다. 수능 시험장을 보여주는 TV 뉴스를 보다가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교문 앞에 나와 선배를 응원하는 후배들, 시험장에 늦어 경찰관의 호위를 받으며 급히 달려가는 아이들, 100일 불공을 드리고 추운 날씨에도 교문 앞을 떠나지 못하는 어머니들, 모든 풍경이 내가 시험을 쳤던 20년 전과 다를 게 없다. 그동안 입시제도가 많이 바뀌어서 지금은 어떻게 대학을 가는지도 모르지만 그 풍경만은 똑같다. 갑자기 요즘도 수능점수가 당신들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가르치는지 궁금해졌다. 온갖 신문에서 1면 머릿기사로 수능 난이도에 대해 언급하는 걸로 봐선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대부분 어른들이 이 시험만 잘 보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말했다. 연애는 나중에 해도 된다, 취미 활동은 나중에 해도 된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약간 의심은 했지만 대충 믿어버렸다. 그래서일 것이다. 대입시험이 끝난 뒤 일종의 공황상태가 왔다. 한달간 매일 술을 마시기
적당한 비관을 즐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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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절대최강 산왕과의 전장. “팔이 올라가지도 않는다”며 죽어가던 불꽃남자 정대만(혹은 미츠이)은 추격의 절정을 이루는 3점슛 한방을 꽂고 나지막이 속삭인다, “나를 몇번이라도 살아나게 한다” . 주간지 인생 9개월차인 나에게도 매주 레이스에서 중요한 승부처를 꼽으라면 영화 촬영현장에서 회식자리를 돌아 클럽에 도착하는 세 코스다. 그리고 이 자리들은 나를 살아나게 한다, 몇번이라도.먼저 촬영현장에 가면 벤치워머 아니 관객이다. 스탭복을 입지 않은 기자에게 스탭들 시선이 고울 리 만무하다. 유니폼을 입고 경기하는 선수들 사이에 수첩 들고 뛰어든 훼방꾼의 모습을 그려보라. 그러다 조명 세팅이 바뀔 때 재빠르게 움직이지 못해 거치적거리거나 휴대폰이라도 울리면? “알 만한 사람이 왜 저래!” 촬영장에서 떠드는 동네 구경꾼보다 나쁜 놈으로 추락하는 건 한순간이다. 대체로 배우와 감독 주위를 맴도는 저널적 동선도 그러한 어색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되도록 그날 촬영분을 쫑치는 걸 보고 일어나
‘놀이 중독’ 기자의 주간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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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하나 제대로 된 게 나왔다 싶으면, 그걸 개나 소가 말이나 꿩 될 때까지 흉내내고 베껴먹고 우려먹는 것이 작금의 추세인 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자들이 흉내를 제대로 내기라도 하면 또 모르겠는데, 좋은 것에서 떨어지는 떡고물을 마치 집먼지진드기마냥 각종 구린 인분(일명 ‘쒯덩어리’)으로 재가공하고 있는 현실이니 어찌 개탄을 금할 수 있을쏜가.
어쨌든, 최근 그러한 사회적 진드기 집단에 집중적으로 먹이가 된 영화로 우리는 단연 <식스센스>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개나 소나 말이나 꿩은 물론이고, 영화를 만든 감독 본인조차도 자신의 작품을 베껴먹게 하고야 만, 근래 보기 드문 초강력 소스였다 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국내외에서 양산되었던 그 수많은 <식스 센스>의 후예들 중, 놀랍게도 쒯덩어리의 함정을 뛰어넘어 나름대로의 입지를 구축해내는 데 성공한 영화가 있었으니 그 영화가 바로 <나비효과>다.
그러나 필자는
영화는 멀쩡한데, 작명을 잘못했구먼!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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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한 계절을 눈앞에 두고 정세는 파업국면으로 뜨겁다. 하긴 파업에 앞서 ‘지도부만으로 끝나지 않는 100% 해임과 100% 복직 불가’로 변죽을 울릴 때부터 만만치 않았다. 결국 파업 찬반투표의 봉쇄에서부터 파업 참가자 3200여명에 대한 파면, 해직에 이르기까지 노무현 정권의 전투적 국정수행은 일체의 타협도 거부한 채 일사불란하게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개혁입법에서부터 시작해 고작 종부세 하나를 두고도 대가리만 남은 개구리를 만들 정도로 눈치를 보는 사팔 정권이 파업에 대해서는 이처럼 직선적으로 단호하다. 과잉으로 넘쳐흐르는 자신감의 근원이 못내 궁금한데 마침 전공노 파업전야에 내뱉은 행자부 기획실장의 발언이 실마리를 던져준다. “거의 모든 신문사설에서 있을 수 없는 일로 지적했다. 공무원 신분의 안정성 때문에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은 수백 대 일에 달하고 있다.” 말하자면, 조중동을 등에 업고 실업난을 무기로 능히 파업을 분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덕분에 안티조선과 노빠는 유
그들만이 개혁의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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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달루시아의 개> Un Chien Andalou
1929년
감독 루이스 브뉘엘
상영시간 16분
화면포맷 1.33:1 스탠더드
음성포맷 DD 1.0(무성영화)
출시사 BFI(영국)
<니스에 관하여> A Propos de Nice
1930년
감독 장 비고
상영시간 22분
화면포맷 1.33:1 스탠더드
음성포맷 DD 2.0(무성영화)
자막 아터피셜 아이(영국)
출시사 스펙트럼
<야수의 피> Le Sang des Betes
1949년
감독 조르주 프랑쥐
상영시간 22분
화면포맷 1.33:1 스탠더드
음성포맷 DD 1.0 프랑스어
자막 영어
출시사 크라이테리언(미국)
DVD의 쓸모가 더 느껴질 때가 있다. 단편영화는 디스크 용량을 감안하면 홀로 출시되긴 힘든데, 간혹 애타게 찾던 단편이 DVD 뒤편에 담기면서 적잖은 기쁨을 주곤 한다. 러시아 인형애니메이션의 선구자 라디슬라브 스타레비치의 <마스코트>
본편보다 빛나는 단편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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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가든> Midnight in the Garden of Good and Evil1997년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상영시간 155분화면포맷 1.85:1 아나모픽음성포맷 DD 5.1자막 한글, 영어출시사 워너브러더스(1장)<미드나잇 가든>은 존 베렌트의 동명 저서를 영화화한 작품인데, 책에서 묘사된 사건들은 모두 1980년대 미국 조지아주 사바나에서 벌어졌던 실화이다. DVD에는 역시 실존 인물들인 영화의 등장인물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부가영상이 수록되어 있다. <The Real People in the Garden…>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부록에서 감상자는 사바나 지도 모양의 메뉴에서 머서 저택이나 버나벤처 공동묘지 등 사바나의 실제 지명을 이동하면서 해당 장소와 관련된 인물들의 인터뷰를 볼 수 있다.아쉽게도 영화의 주인공인 짐 윌리엄스(케빈 스페이시가 멋지게 연기해냈다)는 고인이 되었고 극중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인 부두교 신자 미네르바의 모습
영화의 실존 인물들과 만나다, <미드나잇 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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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주요 영화제의 관객상을 휩쓴 <웨일 라이더>가 국내에 선보인 것은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였다. 거의 같은 시기 이 영화를 태평양 상공의 기내에서 작은 스크린으로 보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당시 수영만의 초대형 스크린으로 바닷바람을 맡으며 바다를 날던 고래등의 파이를 보았던 분들의 감동은 더 컸으리라…. 니키 카로 감독은 외지인들에겐 전설이지만 왕가라 주민들에겐 역사였던 파이키아(이하 파이) 이야기를 원작소설로부터 재구성, 현실감 있는 드라마로 펼쳐 보이며 세계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영화 속 할아버지와 파이간의 갈등구조는 우리에겐 진행형적 의미를 지니기에 이 영화는 우리에게 더욱 각별한 느낌을 준다. 특히 파이가 고래 등을 타고 뒤돌아보며 “괜찮아요 할아버지”라고 말하는 모습은 숨을 턱하니 막히게끔 만드는 장면이기도 하다.
바다만큼 깊은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한장의 DVD에 담겼지만 다양한 부록을 수록하여 SE 버전 부럽지 않게끔
고래 촬영의 신비를 만나다, <웨일 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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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시 윌리엄스의 단막극을 각색한 <저주받은 재산>은 1930년대 미국 미시시피 작은 마을의 비극을 이야기한다. 이미 스타였던 내털리 우드 외에 이후 할리우드를 빛낼 시드니 폴락과 프랜시스 코폴라 그리고 로버트 레드퍼드의 이름이 무색하게 <저주받은 재산>은 실패작이란 판정을 받았다. 영화가 불만스러웠던 테네시 윌리엄스는 크레딧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라고 했고, 전설적인 촬영감독 제임스 웡 하위가 만든 영상도 묻혀버렸다. 그러니 <저주받은 재산>의 의미는 밖에서 찾아야 한다.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미국의 비극>이 <젊은이의 양지>로 영화화된 뒤 수많은 적자가 뒤를 이었다. <저주받은 재산>과 <허드>와 <초원의 빛> 그리고 그 영향 아래에 있는 <그들은 말을 쏘았다> <파이브 이지 피시스> <라스트 픽처 쇼>는 시끌벅적한 자본주의의 모퉁이에서 부도덕, 빈부 격차, 인간
너무나 화려한 실패작, <저주받은 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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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 여자 누구야? 이영애 아니야?” 수많은 승객들이 제각기 바쁜 발걸음을 재촉하는 서울역 광장, 뭇사람들의 시선이 한 여자에게 꽂혔다. 추운 겨울날씨 속, 긴 생머리에 검은 선글라스와 철에 맞지 않은 나풀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등장한 묘령의 여인 이금자(이영애). 박찬욱 감독의 차기작 <친절한 금자씨>(제작: 모호필름, 투자배급: CJ엔터테인먼트)는 지난 1일(수) 서울역 광장에서 파격적으로 변신한 이영애를 앞세우며 그렇게 촬영을 시작했다.
이날 촬영분은 13년간의 복역생활을 마치고 출소하면서 서울역에 도착하는 여주인공 이금자(이영애)의 모습을 담는 것. 파격적인 모습의 톱스타 이영애가 예고없이 등장하자 서울역 광장은 그녀를 보기 위해 북새통을 이루기도 했다. 이영애는 2000년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오랜만이 스크린 나들이를 하면서 개성강한 캐릭터 ‘이금자’의 연기를 위해 얼굴표정과 시선처리, 대사 하나까지 염두에 두는 철저한 사전준
이영애, 13년간의 복역생활을 마치고 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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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단체였던 한국영화제작가협회가 지난 11월26일 새 임원진을 선출하면서 사단법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99년부터 본격화된 한국 영화의 비약적 성장은 5년 사이에 관객 수를 5배 가까이 불려놓았지만 막상 영화 제작 환경은 그 성장세 만큼 개선되지가 않았다. 투자자와 제작자의 이익 분배 비율이 ‘6대 4’이던 것이 몇몇 큰 제작사를 빼면 ‘7대 3’, 더 나쁜 경우엔 ‘8대 2’까지로 내려가고 있다. 또 비디오와 DVD 시장이 크게 줄어 극장 수입 외의 부가 수입도 현저히 감소하고 있다. 여건이 이런 만큼 제작자들이 이 협회를 통해 발언권을 높여야 한다는 바램이 커져, 이번 선거에서 부이사장 선출을 두고 3차 투표까지 치르는 열기를 보였다. 최근 들어 영화인회의의 활동도 부진해진 만큼, 제작가협회는 앞으로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체가 될 가능성이 크다.
2003년말에 이 협회 회장으로 선출돼 1년 동안 협회를 끌고온 김형준(44) 한맥영화사 대표는, 사단법인의 첫
영화제작가협회 새 이사장 김형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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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일본의 영화감독 겸 만능엔터테이너인 기타노 다케시(57)가 내년 봄 도쿄 예술대 교수로 취임할 예정이라고 대학 쪽이 2일 밝혔다. 다케시는 요코하마에 신설되는 이 대학 대학원 영상연구과의 영화전공 부문을 이끄는 전공장을 맡게 됐다. 대학 쪽은 “실력과 국제성, 실적에서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선임 이유를 밝혔다. 영화전공 교수로는 다케시 외에 영화 〈회로〉의 감독인 구로사와 기요시 등 7명이 선임됐다.
1997년 〈하나비〉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99년 〈기쿠지로의 여름〉으로 칸영화제 본선에 진출해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그는 최근 일본에서 개봉된, 재일동포 1세의 이야기를 다룬 〈피와 뼈〉의 주연을 맡는 등 영화 출연도 활발하다. 그는 또 일본 민영방송의 여러 프로그램에서 사회자, 코미디언 등으로 활동하는 가장 바쁜 연예인 가운데 한사람이다.
기타노 다케시 도쿄 예술대 교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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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동안 만들어진 독립영화들의 흐름을 일별하고 그 의미를 정리하는 서울독립영화제가 올해로 30돌을 맞이한다. 10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용산 CGV 2개관에서 열리며 총 82편을 상영한다. 1975년 한국청소년영화제로 출발한 이 영화제는 금관단편영화제, 한국독립단편영화제 등을 거치면서 한국 독립영화계의 최고, 최대 축제로 자리잡았다. 30년이라는 해수의 무게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올해는 연륜을 느끼게 하는 개막작 선정이 눈에 띈다. 독립영화라는 단어가 등장하기도 전에 만들어졌던 70년대의 독립 단편영화 세 편을 묶어 상영한다.
이 가운데 이익태 감독의 70년작 <아침과 저녁사이>는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단편실험영화다. 함께 상영되는 <색동>(한옥희 감독,1976)과 <또 다른 방>(이공희 감독,1979)은 한국청소년영화제 시절 발굴된 단편영화들. 이밖에 <백일몽> (이정국 감독) <비명도시>(김성수 감독)
서울독립영화제 30돌 아주 특별한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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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갖고 보고 놀았던 건 평생 따라다니는 것같다. 나는 어릴 때 서부극, 그중에서도 마카로니 웨스턴을 보고 자랐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리반 클리프, 프랑코 네로 같이 냉소적이고 냉정한 총잡이들이 좋았던 건 총 잘 쏘고 말과 행동에 군더더기가 없는 데 더해 마지막에 쿨하게 혼자 떠났기 때문이었다. 황량한 벌판으로 홀로 떠나는 그 뒷 모습! 멋있지 않은가. 그래도 어릴 때 그게 그토록 멋있었던 건 뭘까. 어쩌면 나는 평생 그렇게 하지 못한 채 동경하며 살지 모른다는 예감 아니었을까.
어른이 돼 마카로니 웨스턴보다 빨리 나왔던 존 포드 감독의 56년 영화 <수색자>(사진)를 봤다. 가족을 납치해 간 샤이언족을 찾아 복수하러 수년을 헤매고 돌아온 존 웨인은 백인 마을에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떠난다. 그때 알았다. 왜 서부의 총잡이들이 황야로 떠나는지. 폼 잡으려고 떠난 게 아니라 그들의 시대가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존 웨인이 돌아왔을 때 마을사람들은 샤이언족이나 전쟁같은
[팝콘&콜라] 멋진 뒷모습을 보이면 떠날 서부라도 있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