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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몇년 전 망년회의 기억을 들려주며 “모두 술취해 쓰러져 있는데 혼자 멀쩡한 정신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챙겨주던, 그 자리의 마지막 남은 이성(理性)”이었다고 말한다. 그럴 것도 같다. 곱고 반듯한 얼굴과 이름이 주는 느낌은 어찌나 바른지, 김석훈은 얄밉게 머릴 굴리느니 예의 갖춰 고개를 한번 더 숙일 사람이다. 잡음이 섞이지 않은 목소리 그리고 눈가의 선량함 덕에 쉽게 오해받을 일도 없을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이, 한번 움직이려면 의외로 운신의 폭이 좁다. 스스로 말하듯 “전형적인 A형”의 우유부단함까지 있는지라, 뭘 크게 지르지도 못하고, 크게 질렀는데 결과가 안 좋다고 악다구니를 부리는 것도 아니다.
이 가시적인 이미지에서 보자면, <귀여워>는 그에게 ‘대단한 도전’쯤 된다. 김수현 감독의 이 시끌벅적한 데뷔작은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까다로운 영화다. 아버지와 세 아들이 한 여자에게 품은 저마다의 판타지. 황학동이라는, 더 무너질 것도 없는 개발촌을 감싸는 이
착실하게 전진하는 A형 남자, <귀여워>의 김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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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에서는 알겠다. 영화에 반한 그 청년이 왜 그토록 비의 리듬에 몰두했는지를.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지난 11월18일부터 28일까지 열린 제17회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는 비 속에서 개막돼, 오가는 빗줄기에 젖어 있었다. 빗줄기는 그때의 빗줄기가 아니겠지만, 그때의 거리는 곳곳에 남아 있었다. 요리스 이벤스들이 영화에 관한 토론으로 밤을 지샜다던 살롱들이 영화제가 열리는 광장 주변에서 여전히 손님을 맞고, 푸도프킨의 <어머니> 상영을 당국이 금지하자, 이벤스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했다는 아메리칸 호텔에는 다큐멘터리 마켓, 독스 포 세일이 차려졌다. 여전한 것은 또 있다. 현실을, 현실의 변화를 포착하려던 다큐의 정신이다. ‘변화’는 올 IDFA에서 중요한 표제어였다.
‘벽에 붙은 파리처럼’ 현실로
60년대 미국 다큐멘터리사에서 솟아오른 ‘시네마베리테’(혹은 다이렉트시네마) 감독들이 암스테르담에 나타났다. 존 F. 케네디가 말 그대로 새로운
제17회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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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흑백 133분감독 신상옥출연 김진규, 황정순, 김승호, 최남현, 최은희EBS 11월14일(일) 밤 11시50분<독립협회와 청년 리승만>은 영화의 내용이나 스타일 등에 대한 얘기보다는 어쩌면 영화의 주변에 관한 얘기가 더 관심있는 영화다. 우선, 이 영화의 제작자인 임화수는 알다시피 1950년대 자유당 정권하에서 영화계의 ‘대부’로 일컬어질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다. 당시 임화수는 많은 통속·오락영화들을 제작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가 제작한 영화들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기록상으로 임화수의 한국연예주식회사가 제작한 작품은 19편인데, 그중 이 영화 <독립협회와 청년 리승만>만 유일하게 필름이 남아 있다. 다행히도(?) 당시 임화수의 힘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이 영화의 스탭과 출연진을 보면 당시 한국 영화계의 모든 인력을 총동원한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대단하다. 우선 촬영의 임병호는 이병일의 <시집가는 날>, 이규환
자유당 시절 충무로 대부, 임화수의 파워, <독립협회와 청년 리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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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inslow Boy 1999년감독 데이비드 마멧 출연 나이젤 호손EBS 12월12일(일) 낮 1시50분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는 색다른 즐거움을 주곤 한다. <윈슬로우 보이>는 작가 테렌스 래티건이 영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소재로 쓴 희곡을, 영화로 각색한 경우다. 권력에 맞서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길고 힘든 싸움을 해야만 했던 가족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제레미 노담, 레베카 피전 등의 배우가 출연하는 이 영화는 그리 튀지 않으면서 탄탄한 연기력을 과시하는 출연진의 면모가 돋보인다.영국의 중산층 아서 윈슬로우는 딸 캐서린의 약혼이 진행되는 가운데, 막내아들, 로니가 왕립해군사관학교에서 5실링짜리 우편함을 훔쳤다는 죄목으로 퇴학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모든 가족은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훔치지 않았다는 로니의 말을 직접 확인한 아서는 자신의 재산과 명예, 지금까지의 안정, 그리고 딸 캐서린의 약혼까지 위험으로 몰아넣을지 모르는 일을 벌이기 시작한다.
아들의 누명을 벗기려는 가족의 싸움, <윈슬로우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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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2년 연속 1위에 올라
줄리아 로버츠가 2년 연속 할리우드에서 가장 몸값 비싼 배우가 됐다. 매년 여배우 수입 톱 10을 조사하는 <할리우드 리포터>에 따르면, 줄리아 로버츠는 올해 <클로저>에 출연하면서 2000만달러를 받아 카메론 디아즈와 니콜 키드먼 등을 누르고 출연료 1위에 올랐다. 오스카 트로피에다가 얼마전 태어난 쌍둥이 남매와 최고의 수입까지, 줄리아 로버츠는 지금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듯하다. <클로저>는 현재 미국에서 개봉중이고 국내에서는 내년 초 개봉예정이다.
카메론 디아즈는 역시 2000만달러 배우지만 올해 <슈렉2>외의 출연작이 없어서 2위로 랭크됐다. 니콜 키드먼, 리즈 위더스푼, 드루 배리모어는 1500만달러로 3,4,5위에 올랐다. 최근 내한했던 르네 젤위거는 1200만달러를 벌어 9위이고, 큰 흥행작이 없었던 제니퍼 로페즈는 9위에서 10위로 하락했다. 이외에 조디 포스터, 멕 라이언, 기네
줄리아 로버츠, 할리우드 최고 몸값 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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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작품 전체 36편에 전체 상영은 60회. 국제영화제치고는 조촐하기 그지없는 규모다. 하지만 지난 11월20일부터 28일까지 펼쳐진 제5회 도쿄필름엑스영화제(TOKYO FILMeX 2004)엔 활력과 도전적 기운이 넘쳐났다. 지난해보다 관객도 5% 정도 늘어 1만8천여명이 행사장 세곳을 메웠다. 작지만 차별적이고 탄탄한 국제영화제. 대부분의 영화제들이 갈수록 규모와 비즈니스에 방점을 찍으며, 도대체 무슨 작품들이 상영되는지 파악하기도 힘든 요즘 한국의 상황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아시아의 젊은 작가들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영화들을 일본에 처음으로 소개하며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자리잡은 이 행사는, 올해도 주목받을 만한 작품과 이벤트로 눈길을 끌었다. 개막작인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환생>)의 신작 <카니리아>는 95년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던 옴진리교의 독가스 사린사건을 배경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에 이어 올해 또 하나의
[도쿄] 작지만 색깔있는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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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연가>의 윤석호 PD가 <키네마순보> 역사상 처음으로 특별상을 수상하는 외국인이 되었다. 지난 11월30일 <키네마순보> 주최, 주한 일본대사관 홍보문화원 후원으로 윤석호 감독에게 한·일 우호 공로상이 수여되었다. 시상식에는 <키네마순보>의 대표 고바야시 히카루가 윤 PD에게 트로피를 전했다. 트로피는 <가게무샤> <영웅> <연인>의 의상디자인을 담당했던 와다 에미가 디자인한 것이다.
이날 윤 PD는 “2002년 1월 방영을 시작으로 3년 동안 <겨울연가>와 함께했다”고 이제까지의 일을 회상하며 “한국과 일본이 정치·경제적으로는 이해관계 탓에 불편한데 문화적으로 그걸 많이 순화할 수 있다는 점을 양국을 오가며 수차례 체감했다”고 수상소감을 덧붙였다. 그는 트로피를 받아들자마자 전부 금이냐고 농담을 해서 좌중을 웃게 만들었다.
고바야시 대표는 자신의 아내와 여동생도 <겨울연가>
<겨울연가> 윤석호 PD, 한·일 우호 공로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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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쾌척이 난파 일보직전의 대학 영화학부를 구해냈다. 내년 5월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를 개봉하게 될 조지 루카스 감독, 최근 그가 데이비드 토히를 비롯한 할리우드의 재주꾼들을 배출한 대학원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영화 및 전자예술 학부에 장학금과 장비구입비용으로 십만달러를 기부했다. 학교 관계자는 루카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난 10월의 폭풍으로 인해 손상된 영화 장비들의 수리도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조지 루카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 10만달러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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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겸 탤런트 정준호(34·사진 맨 왼쪽), 김정은(28·오른쪽)씨가 내년 10월 말 문을 여는 새 용산국립중앙박물관의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은 8일 오후 새 박물관 6층 회의실에서 홍보대사 위촉식을 열어 두 사람에게 위촉장을 주었다. 박물관쪽은 “두 배우가 사회봉사 단체 등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등 특유의 친근한 이미지를 지녀 국민에게 다가가는 새 박물관 방향과 어울린다”고 말했다. 정씨와 김씨는 위촉장을 받은 뒤 “시내 한복판에 9만평에 달하는 대형 박물관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국민적 자부심을 느낀다. 박물관이 편안한 이미지로 국민에게 다가가도록 몸으로 뛰겠다”고 다짐했다.
배우 정준호·김정은 중앙박물관 홍보대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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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경쟁 신설 등 변화의 물결, 진화하는 선댄스
2005년 선댄스영화제(1월20∼30일)가 상영작 목록을 발표했다. 2613편에 달하는 출품작 가운데에서 마침내 상영작을 결정한 제프리 길모어 선댄스 집행위원장은 “영화제 역사상 가장 흥분되는 경쟁부문 상영작 목록”이라고 총평, 2005년 프로그램의 새로운 변화를 공언했다. 1월20일부터 열흘간 상영될 120여편의 영화들 중에서 파크시티의 커튼을 열어젖힐 작품은 중산층 미국 가족의 자화상을 코믹하게 비틀어낸 돈 루스 감독의 <해피 엔딩>.
이번 선댄스영화제는 극영화 국제경쟁부문을 신설함으로써, 미국 독립영화의 산실이라는 세평을 넘어서 국제적인 영화제로 발돋움하려는 야심을 보여주고 있다. 이 부문에는 2004년 칸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에콰도르의 신성 세바스천 코데로의 <크로니카스>, 피터 뮬란이 도버해협을 헤엄쳐 건너려는 노동계급 남자로 분한 영국영화 <맑은 날에>, 쇼핑에 중독된 아내를 말리려는 샐러리
2005년 선댄스영화제 라인업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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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 !느낌표 > 12월11일 방영 재개… 통일과 장기기증 문제 등 과감한 아이템 도입< !느낌표 > MBC 토 밤 10시45분오는 12월11일 < !느낌표 >가 돌아온다는 소식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MBC에는 ‘환영’의 전화가 쇄도했고 “그렇게 좋은 프로그램을 왜 없앴냐!”는 종영 이후 계속되던 항의도 사라졌다. “그래서 더 부담스럽다”고 제작진은 고백하지만 또한 자신한다. “전작을 능가할 만큼 파장은 클 것”이라고.제작진의 말마따나 지난 2년2개월간 < !느낌표 >가 가져온 파장은 대단했다. 온 국민을 책벌레로 만들었는가 하면 ‘나라’도 못할 것 같던 고등학교 0교시를 폐지시켰고, 청소년 복지법 개정은 물론 외국인 노동자의 가족상봉은 국민의 잠재됐던 의식을 일깨우기도 했다.하지만 아무리 화려했던 < !느낌표 >라 한들 제작진의 자신감이 너무 큰 건 아닐까? 어쨌든 아이디어의 한계를 느껴 종영됐던 프로그램이 아니던
공익성에 재미를 더해 부활! < !느낌표 > 12월11일 방영 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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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트 이블2>라는 텍스트는 무책임한 대기업 엄브렐라와 살아남은 노동자-시민들의 대결을 얼개로 삼고 있다. ‘이상한 좀비나라의 앨리스’(밀라 요보비치)와 함께 끝까지 남아 좀비와 엄브렐라에 대항해 싸우는 사람들은 질과 카를로스인데, 앨리스는 엄브렐라의 직원이면서 실험대상으로 이용되었던 노동자이고, 카를로스 역시 엄브렐라 소속의 보안요원이며, 질은 라쿤시 경찰국 소속의 ‘공무원 노동자’다. 이 셋은 모두 애초에 기업에 소속되었거나 기업을 지키는 일을 했지만, 기업으로부터 이용만 당한 뒤에 철저하게 버림받는다. 좀비들에게 둘러싸인 자신을 버리고 이동하는 엄브렐라 헬기를 바라보면서 카를로스가 “저들은 우리를 이용만 했어. 이제는 나를 위해 싸우겠어”라고 말할 때, 그는 착취당하는 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진보적 자각을 표출하고 있다. 거대 다국적 기업(우산 펼치듯 뻗어나가는 엄브렐라)의 위험한 확장과 도덕적 해이(바이러스 확산)에 대해 정부나 시당국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자본에 맞선 노동자의 핏빛 투쟁, <레지던트 이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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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싸이클 다이어리>의 종반부에서 게바라가 헤엄쳐 강을 건널 때, 목놓아 <공무도하가>라도 부르고 싶었다.
공무도하(公無渡河) 제발 임이시여 그 물을 건너지 마오.
하지만 우리의 게바라는, 아니 에르네스토는 기어이 그 강에 뛰어든다.
공경도하(公竟渡河) 임은 그예 건너시고 말았네.에르네스토 아니 푸세는 자유형, 접영 섞어가면서 강을 건너고야 만다.타하이사(墮河而死) 물에 빠져 죽으시니.다행히 푸세는 물에 빠져 돌아가시지는 않는다. 천식을 극복하고 도강에 성공한다.당내공하(當奈公何) 가신 임을 어이할꼬.푸세는 민중의 환호를 받지만, 어이할꼬, 인간 게바라는 가시고 영웅 게바라만 남는다.
월터 살레스의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체’(스페인어로 ‘아저씨’라는 애칭)가 되기 이전의 게바라, 청년 에르네스토 게바라(혹은 애칭인 푸세)를 다룬 영화로 알려져 있다. 영화는 초반부터 자막까지 써가며 “이건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선언하지만, 정작
너무 낭만적이라 상투적인,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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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은 우리나라에서 극장 개봉하는 올리비에 아사야스(49) 감독의 첫 번째 영화다. 영화제를 제외하면 1996년작 <이마베프>의 비디오 출시가 국내 관객과 아사야스의 유일한 대면이었으니, 배우 장만옥은 그와 한국 관객 사이의 가느다란 징검다리인 셈이다(두 사람은 1994년 베니스영화제에서 만나 2편의 영화와 2년 반의 결혼생활을 함께했다).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경솔한 작명을 즐기는 언론에 의해 ‘누벨 누벨바그’로 불렸던 프랑스 감독군의 일원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파리의 지도를 펴놓고 더듬어보자면 필립 가렐, 앙드레 테시네, 브누아 자코, 클레어 드니 등이 아사야스의 동지로 거명되는 감독들이고, 변두리 뒷골목을 서성이며 지루한 (프랑스)영화에 대한 염증을 표명해온 마티외 카소비츠, 가스파 노에가 이들과 적대적 긴장을 형성하는 감독들이다. 그리고 아사야스는 그가 존경하는 에릭 로메르, 클로드 샤브롤, 프랑수아 트뤼포가 그랬듯 <카이에 뒤 시네마>의
영화가 인상주의를 만났을 때, <클린>의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영화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