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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는 중독된다. 늦은 밤 남산 소월길을 ‘목숨 내놓은 것’처럼 달리는 자동차들이나, 용인 레이싱 서킷을 돌고 도는 레이서들이나 속도에 중독된 것에는 차이가 없다.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줘>는 속도에 대한 만화는 아니지만, 속도가 주는 쾌감을 느끼게 해주는 레이싱 만화다.
키도 스즈카는 생명보험 영업사원이며 동시에 250cc 바이크를 모는 여성 레이서다. 늘 동경하던 천재 레이서 오사무가 경기 도중 사고로 죽자, 스즈카는 오사무의 헬멧을 쓰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서킷에 나간다. 그때 헬멧에서 들려오는 오사무의 목소리. 스즈카는 그 목소리가 일러주는 대로 바이크를 몬다. 스즈카는 보통의 만화 주인공처럼 타고난 ‘열혈’이 아니다. 바이크에 대한 열정보다는 짝사랑하는 남자에 대한 애정으로 레이서가 되고, 속도의 쾌감보다 사고의 공포에 더 시달리며 속도보다는 보험에 중독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던 스즈카가 오사무의 코치에 따라 바이크에 몸을 맡기고 달리며 속도가 주는
Run! 스즈카, RUN!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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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들에게 팝의 여신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마돈나라는 대답을 듣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단신의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여가수 카일리 미노그야말로 브리튼 섬이 지난 20여년간 숭배해온 여신이기 때문이다. 브리티시 인베이젼(British Invasion)에 인색한 미국을 제외한다면, 이미 카일리 미노그라는 이름은 팝계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그러나 카일리가 언제나 신전의 꼭대기에 고고히 앉아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88년 <Locomotion>을 전세계적으로 히트시키며 80년대 팝의 공주가 되었던 그는, 90년대 내내 실패를 거듭하며 <스트리트 파이터> 따위의 영화에서나 모습을 드러냈다. 카일리가 다시 신전에 오른 것은 2000년에 발표한 재기싱글 <Spinning around>에 이어 전세계를 “라! 라! 라!”의 광풍으로 몰고 간 <Can’t get you out of my head>의 성공 덕분이다.
<카일리 미노
영국인들이 사랑한 팝의 여신, <카일리 미노그-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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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내공이라 함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물론 각종 의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필자에게 내공이란 다름 아닌 ‘쓸따리 없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그림을 그릴 때는 얼마나 화려하고 세밀하게 묘사하는가보다 언제 그리기를 멈출 것인가가 더 중요한 것이요, 글을 쓸 때는 어떤 이야기를 써내는가가 아니라 어떤 이야기를 쓰지 않는가가 더 중요한 일이로다… 뭐 이런 카인드 오브 얘기다. 이런 면에서 원고지 7매라는, 김 6장가량에 해당하는 넓이의 공간에서 각종 종합 투덜을 일삼는 본 칼럼은 지난 일년 반의 세월 동안 필자의 일천한 내공을 수련하는 커다란 도량이 되어주었던 바, 이 자리를 빌려 <씨네21> 관계자 여러분과 독자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좀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여튼, 각설하고.
이러한 면에서 <왕의 남자>는 공력이 느껴지는 훌륭한 영화였다. 이미 닳고 닳도록 다뤄진 역사적 사실을 다룬 이러한 종류의 영화는
[투덜군 투덜양] 마지막 설탕 한 스푼, <왕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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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한번으로 영화 예매가 되고, 극장에서 보는 것과 (화면 크기 빼고는) 별 차이없는 음질과 화질의 DVD가 널린 세상에 산다는 일은 큰 복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왔다. 비디오 아이팟이면 드라마도 다운받아 보는 세상인데. 편하다. 너무 편하다. 그래서 가끔은 영화가 아쉽지 않다. 극장에서 못 본 영화는 DVD 출시를 기다리면 되고, DVD 살 돈이 없으면 대여점에서 빌리든가 케이블TV에서 방송해주기를 기다리면 된다. 그런데, 영화가 이렇게 아쉽지 않다는 게, 나는 가끔 너무 아쉽다.
정말 10년 전만 해도 영화 보기가 이렇게 쉽지는 않았다. 영화 정보를 얻기는 더더욱 쉽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내가 유일하게 얻을 수 있는 ‘멋진’ 영화 정보는 <한겨레>에 매주 금요일마다 연재되던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의 글이었다. 대학 근처에 살았던 나는, <한겨레>가 다 팔리기 전에 신문 가판대로 가기 위해 점심시간이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 학교를 빠져나왔다. 신
[오픈칼럼] 아쉽지 않아서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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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이제까지 만든 모든 기계 중에서 나는 비행기가 제일 좋다. 아직도 초경량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꿈을 갖고 있지만, 땅 위에서 먹고사느라 바빠 아직 하늘 위에 뜬 꿈에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비행기 중에서도 제트기는 별로다. 비행기는 역시 프로펠러기가 최고다. 컴퓨터로 작동되는 제트기는 왠지 ‘인간적’이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어린 시절에는 하루에 10원씩 받는 용돈을 모아 플라스틱으로 된 비행기 모델을 사곤 했다. 포커 삼엽기, 메서슈미트, 스피드파이어, 제로센 등등. 대부분 1, 2차대전에 사용된 전투기들이다. 내 마음에 드는 비행기들은 왜 하필 죄다 전투기였을까? 아직도 나는 커다란 여객기나 뚱뚱한 수송기보다는 날렵한 전투기의 몸매가 훨씬 더 섹시하다고 느낀다.
비행기가 전쟁의 무기로 사용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붉은 돼지>에 나오는 장면이 생각난다. 포르코가 탄 비행기가 구름바다 위로 떠오른다. 잠시 뒤 그 옆으로 여러 나라의 국기를 단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푸른 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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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내가 결혼 생활을 시작한 지 10년째 되는 해다. IMF 직전인 97년 봄. 나는 이미 데뷔한 신인작가였지만 그 수입만으로는 살 수가 없어서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쳤고 아내 역시 나와 같은 처지의 비정규직 강사였다. 그 뒤로 많은 것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사이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가 없다. 몇번쯤 아이를 가져볼까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은 갖지 않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지지난해 겨울, 자식이 넷이나 되는 부산의 한 대형서점 주인은 내게 아이가 없다는 얘기를 듣더니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애를 안 낳아서 나라가 큰일이라는 것이다. 출산율이 저하되면 국가경쟁력이 약해지고 어쩌고저쩌고. 듣고 있자니 끔찍했다. 만일 불임 부부가 앞에 앉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아이를 갖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가질 수 없는 사람도 세상에는 있을 텐데 말이다. 그 폭력적인 설교가 듣기 괴로워서 “그럼 사장님
[이창] 애국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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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혁당 사건이 조작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의 야만적 살인인 인혁당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까지는 수십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이제 와서 국가가 잘못을 시인한다고 해도,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유족들의 고통도, 관련자들의 잃어버린 시간도 되돌려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보면, 국가란 참 무책임하다. 인혁당 사건 같은 정치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국가의 필요에 의해서라면, 개인의 재산이나 이익이 침해당하는 것도 다반사다. 물론 요즘의 사립학교법이 그렇다는 게 아니다. 대체로 국가는 지배계급에 포함되는 사람들의 재산과 이익은 철저하게 보호해준다. 이데올로기에 상관없이.
다행히도 인혁당 사건은 명명백백한 인권침해이자 살육이었기에 인정이 되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인정된 범죄보다 인정되지 않은 만행들이 더욱 많다. 그런 피해에 대해서는 보상을 받을 수도 없고, 사과를 받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끊임없이 호소하고, 청원하고
[B딱하게 보기] 국가에 대한 복수, <와일드 소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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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월 개막하는 제59회 칸영화제의 개막작은 <다빈치 코드>다. <뷰티풀 마인드>의 론 하워드가 감독하고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올해 할리우드 최고의 기대작 가운데 하나다. 프랑스의 상징물인 루브르박물관을 배경으로 하고 프랑스 여배우인 오드리 토투가 출연했지만 전형적인 할리우드 장르 영화인 이 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하기까지 주최쪽은 고민을 꽤나 했을 것이다.
칸영화제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영화제임에도 불구하고 ‘예술’만으로는 세계인들의 시선을 잡는 데 갈수록 한계를 드러내면서 해마다 할리우드 스타 모시기에 점점 더 열을 올려왔다. 그러나 영화제 기간 중의 상영일정에 맞춰 상영작에 출연하는 스타들이 도착하는 바람에 정작 축포가 터지는 개막식은 썰렁하자 아예 개막작으로 할리우드 대작영화를 선정했다. 지난해에도 <스타워즈 에피소드3:시스의 복수>를 개막작으로 올리려고 하다가 결국 막판에 유럽영화인 <레밍>으로 선회했다. 2
[팝콘&콜라] ‘흥행’ 좇다 ‘정체성’ 놓친 한국의 국제 영화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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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동네에 보따리장수 아주머니가 칠레산 과자랑 통조림 등속을 갖고 온 적이 있다. 동네 할머니들은 “칠렐레 나라가 어디냐?”며 궁금해했다. 우리는 사탕을 하나씩 물고 “칠래? 맞을래?” 까불었다. 막연하지만 그 나라가 꽤 칠렐레팔렐레 하리라 여겼다. 칠레가 관심 안에 다시 들어온 건 2004년 우리나라와 최초로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면서다. 국회 비준동의를 앞두고 몸싸움이 이어질 즈음 “농민들 반대를 무릅쓰고 협정까지 맺었는데 왜 칠레산 와인값은 안 떨어지냐”고 성토하며 퍼마시다 급체한 일이 있다. 그러던 ‘나의 칠렐레팔렐레’가 이번엔 여성 대통령을 배출해 ‘지대로’ 놀랐다. 무신론자에다 미혼녀, 이혼녀 딱지를 붙인 중도좌파연합의 미첼레 바첼레트 언니가 우파 억만장자 기업인을 큰 표차로 눌렀다. 남미에선 직선 여성 대통령이 니카라과와 파나마에도 있었지만, 둘 다 대통령인 남편의 후광을 입은 이들이었다.
바첼레트는 피노체트 군정에 저항해왔고, 의사 출신으로 보건장관에 이어
[이슈] 공주님, 아직도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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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갑작스런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에 반대해 영화계가 집행위원만 80명이 넘는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영화인들의 릴레이 농성 이틀째인 2월2일, 서울 중구 남산동 감독협회 시사실에서 열린 ‘스크린쿼터 투쟁선포’ 기자회견에는 안성기, 정지영, 이춘연, 신우철 등 대책위 신임 공동위원장 4인 외에도 심재명, 오기민, 이현승, 류승완, 김대승, 정윤철, 민규동 등 50여명 가까운 영화인들이 자리했다.
대책위 공동 집행위원장에 뽑힌 정진영은 “비상시국이니만큼 (과거 대책위 보다) 확대된 형태”라고 탈바꿈한 조직을 소개하고, “영화인들이 집단 이기주의자들로 매도되는 현 상황을 극복하고 문화주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대책위는 릴레이 농성을 진행하면서 2월7일 오후 2시 영화인 총회와 2월8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대규모 장외집회를 여는 것으로 초기 대응을 일단 마무리 할 계획이다.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영화인들의 릴레이 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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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음악과 무대매너로 유명한 마릴린 맨슨이 영화 감독으로 데뷔한다. 마릴린 맨슨이 영화<Phantasmagoria: The Visions of Lewis Carroll>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 루이스 캐롤을 연기하고 연출도 하면서 시나리오도 집필한다고 <할리우드 리포터>가 2월2일 전했다. 본명이 브라이언 워너인 마릴린 맨슨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하드코어 록밴드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는 뮤지션이다. 그동안 <레지던트 이블><매트릭스 리로디드> 등 여러 사운드트랙에 참여했고 <로스트 하이웨이><The Heart Is Deceitful Above All Things> 등에 출연한 적은 있지만 연출을 한 적은 없었다.
그는 이번 데뷔작의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2월9일 개막하는 베를린영화제의 유럽필름마켓(European Film Market)에 참가할 예정이다. 예상 제작비는 420만달러 규모이고
마릴린 맨슨, 호러영화로 감독 데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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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 듯 다른, 다른 듯 닮은 두 남자의 매력 속으로
누구나 소심함 하나쯤은 갖고 있다. 이 소심함이라는 유전자는 꼭 결정적인 순간에만 발동해 사람을 난처하게 만든다. 그렇지 않아도 소심한 인간이 난처한 상황을 맞아 더욱 소심해지는 그 순간을 지켜볼 때면 터져나오는 웃음. 그것이 결코 비웃음이 아님을, 그것이 오히려 인간적인 매력을 이끌어냄을 영화 속 김주혁과 휴 그랜트는 제대로 보여준다.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는 어느 순간 손을 뻗어 그들을 도닥이고 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데이비드 캐시디의 말을 빌리자면 당신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 만일 당신이 원한다면, 아아. 아뇨 물론 안 될 일이죠. 내가 바보란 것 알죠?… 분명히 말하려고 오랫동안 연습했어요. 휴, 말했다는 거 자체가 중요하죠(주저리주저리).”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찰스)
“(짝사랑하던 윤경과 키스하기 위해 다가서다가) 메리 크리스마스!” (<광식이 동생 광태> 광식)
김주혁 vs 휴 그랜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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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청스럽다. 소심하다. 허점투성이다. 한데, 사랑스럽다.
그리 잘생긴 것도 아니다. 누구처럼 ‘몸짱’도 아니다. 한데, 자꾸 정이 간다.
아주 로맨틱하지도 않다. 당연히 멋진 멘트만 쏟아낼 리 없다. 한데, 자꾸 생각이 난다.
아름다운 장동건과 브래드 피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오묘한 매력을 지닌 배우.
그들이 바로 김주혁과 휴 그랜트다.
현실에 발을 딛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 손을 뻗으면 어딘가 닿을 듯한 이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소심함과 허점은 누구에게나 있는 그런 것이니까.
김주혁
2005년은 그에게 매우 뜻깊은 해였다. 아버지 김무생씨와의 이별이라는 악재도 있었지만, 호재가 더 많았다. 오랜만에 출연한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고(사실 그동안 그는 연기력에 비해 대중적 인기가 따라주지 않는 배우 중 하나였다),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는 그간 끼만 보여왔던 ‘소심남’의 정수를
김주혁 vs 휴 그랜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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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의 후속편이 올해 후반기에 제작된다. <할리우드 리포터>가 2월1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전편의 감독 앤드류 애덤슨과 주요 출연진들이 그대로 속편에 참여한다. 이번에 영화화되는 작품은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시리즈 7권 중 두 번째로 1951년에 출판된 <나니아 연대기: 캐스피언 왕자>다. 페벤시 4남매가 황폐화된 나니아에 다시 방문해 새로운 왕의 조카 캐스피언과 함께 옛나니아를 되살리게 된다. 2007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한다는 계획이다.
후속편 제작 소식은 사실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나니아 연대기: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이 전세계에서 무려 6억3780만달러를 거둬 디즈니와 월든 미디어에게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디즈니가 만든 역대 실사영화 중 최고의 해외흥행성적이며 미국흥행으로는 3위에 해당한다.
앤드류 애덤슨은 드림웍스의
<나니아 연대기: 캐스피언 왕자> 올 하반기 제작 착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