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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라면, 또 자기 사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악몽’을 꿔봤을 것이다. 대기업의 비리사건으로 한순간에 실직자가 돼버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현대사회에서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슈가 지금까지 미국 내에서 다큐멘터리 이외의 다른 포맷으로 작품화되지 않았던 것은 아직도 엔론이나 월드컴 사건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음에 이유를 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뻔뻔한 딕 & 제인>의 뉴욕 시사를 가진 짐 캐리는 다르게 생각한다. “코미디언이 이같은 사람들의 상처를, 모두에게 불편한 이슈를 보듬지 않으면 과연 누가 할 것인가”라고.
<뻔뻔한 딕 & 제인>은 캐리의 초창기 영화인 <에이스 벤츄라>를 연상시키는 육체적인 코미디를 주로 한다. 그러나 이 영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대기업의 부패는 물론 미 정권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블랙코미디임을 알 수 있다. 딘 패리솟 감독은 “많은
[현지보고] 짐 캐리 주연의 <뻔뻔한 딕 & 제인> 뉴욕 시사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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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털리 포트먼의 형형한 눈빛은, 삭발한 머리보다 인상적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린 소녀였을 때부터 그랬다. <레옹>의 마틸다는 킬러 앞에서 마릴린 먼로를 흉내내며 자신을 드러낼 줄 알았다. 12살 어린 나이에 성적 대상으로 낙인 찍힌 것이 두고두고 끔찍한 일이었다고 반복해 말하지만, 자신이 하는 몸짓이, 표정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모르고서도 소녀는 끔찍할 정도로 요염한 롤리타가 될 줄 알았다. <스타워즈> 프리퀄 시리즈와 함께 10년을 보내면서 소녀는 여인이 되었다. <클로저>를 통해 <레옹>의 기억을 환기시킨 동시에 그 벽을 뛰어넘었다.
우연히도, <레옹> <스타워즈> <클로저>에 이르는, 그녀를 기억하게 만든 굵직한 작품들에서 포트먼은 헤어스타일로 인물을 표현했다. 머리 색깔을, 스타일을 바꿀 때마다 포트먼은 새로운 환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브이 포 벤데타>에 이르러 포트먼은 삭발을 했
성인 마틸다의 또다른 도전, <브이 포 벤데타>의 내털리 포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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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킨 피닉스를 인터뷰한 <타임>의 기자는 자연인 피닉스를 “따뜻하고 정중하며, 꽤 지루한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스크린 밖의 피닉스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고. 몇년 전, 제이 르노는 자신의 <투나이트 쇼>에 출연한 피닉스와의 인터뷰 끝에 “다음번엔 피닉스 본인이 직접 오세요”라고 투덜댔다. 토크쇼가 요구하는 사생활 노출이나 개인사 고백에 그가 유독 인색하기 때문이다. 특히 형 리버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그는 가면 같은 정중함 뒤로 물러선다. 와킨 피닉스가 미디어의 주목을 받은 가장 인상 깊은 최초의 순간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1993년 10월31일, 형 리버 피닉스가 LA의 클럽 ‘바이퍼 룸’ 앞에서 약물과용으로 쓰러졌을 때 함께 있던 그는 응급구조를 요청하는 전화를 걸었다. 911에 전화를 건 초조한 그의 음성은 전세계에 퍼졌다. 그는 오랫동안 형의 그늘 아래 있어야 했다. 사람들은 그의 얼굴에서, 연기에서 리버 피닉스의 그림자를 발견하려고 애썼
연기를 종교로 믿는 남자, <앙코르>의 와킨 피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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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할리우드의 대세는 프랫 팩(The Frat Pack)이라 불리는 일당들이다. 벤 스틸러가 일종의 회장으로 암약하는 프랫 팩 집단의 회원들은 오언과 루크 윌슨 형제, 윌 페렐과 잭 블랙. 스스로 망가지며 세상을 웃기는 데 개의치 않는 젊은이들이다. 그러고 보면 60년대 랫 팩(Rat Pack)과 80년대 브랫 팩(The Brat Pack)에서 따온 프랫 팩이라는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다. 미국 대학의 남자 사교클럽을 일컫는 프래터니티(Fraternity)의 준말인 프랫은, <아메리칸 파이>나 <올드 스쿨>에서 심심찮게 봐온 미국 청년들의 난장판 파티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실없이 덩치 큰 과체중 남자 하나가 파티장에 걸어들어왔다. 빈스 본이라 불리는 이 남자는 프랫 팩이라 불리는 건 또 싫단다. “프랫 팩? 그거야 미디어가 제 마음대로 만들어낸 단어에 불과한 거 아닌가.”
처음부터 빈스 본에게서 프랫 팩 회원의 미래를 본 점쟁이는 없었을 것이다.
누구도 예상 못한 코믹스타, <웨딩크래셔>의 빈스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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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에서 이소연은 모든 것을 흡수하는 스펀지 같았다. 시대의 바람둥이 조원에게 사랑의 기술을 전수받으면서 음양의 이치를 몸으로 깨치는 똘똘한 처자, 소옥. 1년 반 뒤 우리는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그를 만났다. 씩씩한 파도의 기운으로 도시 남자의 상처를 치유하는 섬처녀로(<깃>), 세파에 흘러다니다 맞닥뜨린 사랑을 뒤로해야 했던 술집 여자로(<봄날>). 이후 <신입사원> <결혼합시다> <봄의 왈츠> 등의 드라마에서 그는 주로 악역에 속했다. 모두가 응원하는 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주연이 아니면 대부분 악역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계속 망가지고 얄미운 캐릭터를 연기하다보니 <깃>에서처럼 순수하고 밝은 역할이 너무 하고 싶었던 시기에 <공항남녀> 시나리오를 받았다.”
이소연은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세명의 감독이 만든 옴니버스영
나이테 쌓아가는 시간, <눈부신 하루>의 이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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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 메이어만큼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세계를 구축한 이도 많지 않을 것이다.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의 사진작가 출신인 그는 평생에 걸쳐 여성의 가슴 크기에 집착했고, 따라서 그의 영화는 해부학적으로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거대한 가슴을 지닌 여배우들이 넘쳐나는, 남자들에겐 꿈에 그리던 마초주의의 판타지적 공간이 되어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거대한 가슴의 여주인공들이 기존의 성역할과 가치관에 반기를 들고 남성 세계를 향해 키치적이고 폭력적인 반란과 전복을 일삼는 그만의 블랙코미디에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전복적이며 무정부적인 하위문화적 발칙함이 깔려 있다. 사뭇 ‘작가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필모그래피에 깔려 있는 유쾌한 전복의 상상력과 뒤틀린 여성의 몸에 스며 있는 마초주의의 여운에는 60년대의 아니키적인 사회상과 전위적인 문화 스타일, 그리고 성의 해방과 여성성의 약진에 대한 남성들의 공포가 읽힌다. 작품 대부분을 독립적으로 제작한 메이어는
[해외 타이틀] 성으로 대화하는 러스 메이어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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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음성해설은 솔직하고 당당하다. 감독의 말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라지만, 뻔한 변명이나 항변으로 흘러가 듣는 이를 답답하게 하는 대신 장면 하나하나의 문제점을 철저히 파헤치고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추운 날씨와 촉박한 스케줄, ‘피가 3t쯤 들어가야 하는데 이러다 개봉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자기 검열과의 싸움, 많이 찍어놓고도 영화의 전체적인 균형 때문에 그만큼 많이 들어내야만 했던 안타까움, 좋은 장소를 잡아놓고도 사소한 실수로 그보다 못한 장소에 가야 했던 고민 등을 감독은 또박또박 들려준다. 그 솔직당당함 속에 자리한 아쉬움이 느껴지기에 충분할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킬리만자로>의 음성해설은 창작자의 한풀이 자리라기보다는 영화 밖에서 다시 한번 관객과 접촉하고자 하는 작은 몸부림처럼 들리기도 한다. “마지막에 혼란을 겪었던 관객과 찍은 장면들이 잘려나간 배우들에게 미안하다. 더 좋은 영화 만들겠다”는 다짐은 무척 진솔하게
[코멘터리] “피바다 영화에 위안받은 관객들 고마워”, <킬리만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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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린은 전성기의 마지막에 <라이언의 딸>을 연출한 뒤 14년 동안 침묵을 지켰는데, DVD의 음성해설에 그 이유와 대답이 나온다. <라이언의 딸>의 개봉에 맞춰 뉴욕비평가협회의 초대를 받은 린은 그들의 질타에 정신을 잃었으며, 특히 <밀회>를 사랑했던 폴린 카엘과 리처드 시켈로부터의 혹평이 두고두고 린을 괴롭혔단다(당시 협회장이었던 시켈이 그 진실을 두고 항변한 부분은 꼭 찾아 들을 일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1910년대 아일랜드에서 벌어지는 <보바리 부인> 이야기(배역 이름도 <보바리 부인>에서 따왔다)가 과연 <보바리 부인>처럼 스캔들을 딛고 걸작으로 재탄생될 수 있을까? 린의 여섯 번째 부인인 샌드라 린의 말대로 <라이언의 딸>이 ‘가장 훌륭한 린 영화’는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가장 아름다운 린 영화’라는 주장에는 반대하기 힘들다.
대규모 서사극이 판치던 60년대를 마감한 작품인 <
[명예의 전당] 데이비드 린의 가장 아름다운 영화, <라이언의 딸 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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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이>는 군더더기 없이 잘 빠진 영화이지만, 조금은 운이 없다. 좀더 일찍 나왔더라면 지금보다 더 신선한 영화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위험천만의 불륜 행각을 배우자에게 들키지 않도록 알리바이 조작을 하는 컨설턴트 레이. 그가 고객이 저지른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리면서, 자신을 위해 완벽한 알리바이 조작에 도전하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극적 구성이 흥미롭다. DVD에는 제작현장과 감독, 배우들의 인터뷰를 수록한 20여분의 메이킹 필름이 볼 만하다.
당신은 알리바이가 있습니까, <알리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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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쪽같이 사라진 11명의 소녀들의 행방을 찾는 그림 형제와 거울여왕의 저주. 영화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음산한 분위기를 지닌 마르바덴 숲의 풍경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DVD 타이틀에는 세트 촬영이 많았던 영화 특성을 반영한 부가영상을 수록하고 있다. 영화 곳곳에 사용된 시각효과 마술의 비밀을 공개하며, 극장에서 보지 못했던 삭제장면 모음 등을 제공한다. 국내 발매는 2종류로, 일반판과 2천 세트 한정판이며, 한정판의 경우 <그림동화집>을 포함한다.
순진남 히스 레저를 만나세요, <그림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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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그룹으로 서서히 잊혀져가던 ‘듀란 듀란’의 화려한 컴백 라이브 공연을 담은 DVD가 나왔다. 세월은 지났지만 그들은 여전하다. 존 테일러, 사이먼 르 봉, 닉 로즈, 로저 & 앤디 테일러 오리지널 멤버 그대로 젊은 시절 못잖은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DVD 구성은 공연 실황 DVD 1장과 역시 생생한 라이브의 생동감을 그대로 담은 CD로 구성했다. 오랜 팬이라면 007의 주제가 중 유일하게 빌보드 1위에 올랐던 <A View to a Kill>을 라이브로 다시 듣는 감동이 상당할 듯.
듀란 듀란이 돌아왔습니다, <듀란 듀란: 런던 라이브 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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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폴란스키는 문학작품을 다시 영화화하면서 평범한 노선을 택했다. 날선 해석을 보여주던 <맥베드> 때와는 많이 다르다. 도둑, 장물아비, 소매치기, 창녀의 틈 사이에서 꽃을 피운 소년의 이야기를 위해 폴란스키가 만든 19세기 중반의 런던은 과거 데이비드 린과 캐럴 리드의 것과 별 차이점이 없다. 기본적으로 린 버전의 캐릭터와 이야기 전개, 세트 디자인을 따른데다 영상과 색감 그리고 다소 낙관적인 분위기에선 리드의 버전이 느껴져서 폴란스키가 중용을 택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출생의 비밀이 빠지고, 성숙과 관용의 결말을 붙인 게 눈에 띄는 차이다). 폴란스키는 찰스 디킨스의 고전을 선택한 이유를 단순히 “내 아이를 위한 작품을 하고 싶었다”고 밝혔지만, 전작 <피아니스트>와 <올리버 트위스트>를 나란히 두면 연결된 주제가 읽힌다. ‘고통에 빠진 개인이 갈구하는 구원의 손길.’ 인간으로서 그리고 감독으로서 극적인 비극과 영광을 경험한 그에게 영화는 후회
로만 폴란스키의 고백록, <올리버 트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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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론 크로 영화의 분위기를 이끄는 건 대중음악이다. 오죽했으면 데뷔작의 엔딩 크레딧에서 음악감독의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오겠나. <엘리자베스타운>에 이르면 음악 사용은 거의 과잉에 가깝고, 이전 영화들의 반짝이던 마술이 많이 희석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크로가 아내 낸시 윌슨과 찾아낸 곡 하나하나는 현재 영화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노래들이며, 그것만으로도 <엘리자베스타운>은 놓치기 아까운 영화다. 회사에 9억7200만달러의 손실을 안기고 쫓겨난 남자는 자살 직전에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전화를 받는다. <엘리자베스타운>은 그가 아버지의 고향으로 떠났다가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그 길 위 어딘가에 사랑스러운 여자가 서 있음은 물론이고 마지막엔 짜릿한 한순간이 기다리고 있다. 크로는 <금지된 사랑> 이후 가족과 갈등을 빚는 주인공을 즐겨 다뤄왔는데, 가족과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 그리고 삶의 희망을 매번 훈훈한 눈길로 묘사하는 그의 작
우리 모두 가슴을 쫙 폅시다, <엘리자베스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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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의 멤버들이 입 거칠고 성격 괴팍하다는 건 익히 소문난 터다. 데뷔 12년 만에 처음 한국을 찾게 된 밴드 오아시스의 리더 노엘 갤러거와의 인터뷰가 어떻게 흘러갈지, 그러므로 인터뷰룸에 모인 기자들 중 절반은 짐작하지 않았을까 싶다. 1시로 예정된 시간에 정확히 맞춰 나타난 노엘 갤러거는 사뿐사뿐 걸어들어와 사뿐히 자리에 앉았다. 리엄 갤러거와 함께 일명 ‘숯검댕 눈썹 형제’로 유명했던 노엘 갤러거의 눈썹은, 나이 때문인지 이제 밝은 갈색을 띠고 있었다. 순한 것은 인상뿐만이 아니었다. 노엘은 자기 앞에 놓인 녹음기에 잡음이 녹음될까봐 왼쪽 손목에 찬 굵은 금팔찌를 오른손으로 붙잡아두고 인터뷰에 응했다. 귀찮은 질문이나 대답하기 싫은 질문을 피해가는 직설법은 여전해도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데뷔한 지 12년 만에 처음 한국에 왔다. 왜 이제야 오게 되었나.
=뮤지션으로서 언제 어디서 공연할 것인지의 문제에는 크게 개입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야 한국에 오게 되었다
오아시스 내한공연 [3] - 노엘 갤러거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