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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5-8-13-21…. <다빈치 코드>의 개봉을 앞둔 톰 행크스(50)의 커리어는 한 숫자가 앞의 두 숫자를 합한 값과 같은 피보나치 수열을 연상시킨다. 시트콤에서 출발해 견실한 코미디언으로 자리를 굳힌 그는 유머와 페이소스가 어우러진 페니 마셜의 드라마 <빅>과 <그들만의 리그>, 노라 에프런의 로맨틱코미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으로 스타성을 공인받았고 이어 승부수를 던진 <필라델피아>(1993)와 <포레스트 검프>(1994)가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따내면서 일약 할리우드의 거물로 도약했다. <댓 씽 유 두>(1996)로 시작한 감독 경력도 톰 행크스는 지극히 안전한 방식으로 가꿨다. 성공을 거둔 출연작 <아폴로 13>과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뿌리를 둔 TV 프로젝트 <지구에서 달까지>(1998), <밴드 오브 브라더스>(2001)를 통해 연출
Mr. 할리우드, 루브르에 가다, <다빈치 코드>의 톰 행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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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재료로 이루어져 있다. 아마도 별을 구성하는 성분과 동일한 물질로. 다만 각 요소의 함량은 제각각이다. 억지를 쓴다면 세상 모든 사람을 잘생긴 순서대로, 혹은 힘이 센 순서대로 줄을 세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아름답다거나 가장 강하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반하지 않는다. 인간을 다른 인간에게 매료시키는 것은, 바람직한 특정한 자질의 함량이 아니라 온갖 자질의 배열이 한 사람 안에 그려놓는 고유한 무늬이기 때문이다.
강금실 변호사가 지닌 무늬는 대중의 시선을 잡았다. 여성 최초 형사 단독부 판사(1991),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부회장(2000), 여성 최초 법무부 장관(2003∼2004.7)의 이력은 주류 질서 안에서 그가 가진 경쟁력을 입증했지만 그 자리들이 요구하는 일을 실행하는 스타일은 분방했다. 허식없는 태도로 법무부 직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고, 국회에 나가 흥분하거나 울먹이는 대신 의원들의 형식 논쟁 앞에서 “코미디야, 코미디!”라고
전직 법무부 장관, 서울시장 예비후보 강금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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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마지막주는 <별남별녀>와 뉴스를 제외한 순위권 프로그램 시청률이 전반적으로 하락했다. <야심만만>을 밀어내고 <불량가족>이 처음으로 10위권 내에 진입했다. 종영이 가까워지는 시점에서의 막판 스퍼트가 애청자들을 한껏 달구고 있는 셈.
이로서 SBS는 <하늘이시여> <어느날 갑자기>까지 드라마만 세 개씩이나 순위에 올리는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개그 콘서트>의 아성은 여전하지만, <웃찾사>의 15위 기록(20위권 내 진입이 실로 오랜 만이다)이 주목할 만하다. 긴급수혈이 있었던 걸까, 혹은 숨겨두고서 꾸준히 섭취한 보약이라도 있는 것일까. 이번 주 목요일에는 2인자 특유의 집요함을 <웃찾사>에서 느껴보시길.
시청률 전반적으로 하락, SBS 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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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영화평론가, 특히 아시아영화쪽의 평론가들은 TV를 무시하려면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물론 실제적으로 어마어마한 제작량의 아시아 TV드라마를 섭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가끔 한 나라 영화계에 대한 평론가의 견해를 뒤집어놓는 시리즈물이 있다.
최근 중국에서 우연히 구입한 것이 필자에게 TV드라마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줬다. 단순히 박스 앞면에 나온 스타들 때문에 사게 됐다. 주징레이, 리빙빙, 리샤오루, 주신 등의 여배우들과 시아유, 장우(슈퍼스타 장원의 동생), 왕수에빙 같은 남자배우들이 포함된 중국 본토의 젊은 탤런트들의 놀라운 라인업이 있었다. 2002년에 제작된 30부작 시리즈물이었는데, 항공사에서 일어나는 얽히고 설킨 로맨스물처럼 들리는 ‘Skylovers’라는 우스운 영어제목이 붙어 있었다. ‘티안콩샤데 위안펜’이라는 중국어 제목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늘 아래’에서 우연이나 운명으로 함께하게 된다는 뜻으로 좀더 시적인 의미를 지닌다.
새로
[외신기자클럽] TV 드라마의 중요성, 간과하지 말라 (+영어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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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판 007의 이야기 <OSS 117: 카이로-스파이의 둥지>가 프랑스에서 큰 인기다. <OSS 117…> 홈페이지에 따르면 4월21일 개봉한 이 영화가 첫날 동원한 관객은 3만여명. 그날 500여개에 달하는 극장 앞에선 관객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드 라 바스는 프랑스 작가 장 브루스가 1949년 창조한 비밀 요원으로, 살인면허가 있고 여자를 좋아하며 스타일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제임스 본드와 비슷한 스파이다. 드 라 바스 시리즈는 17개국에 번역돼 7500만부가 팔렸고, 일곱편의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OSS 117…>은 30여년 만에 만들어진 드 라 바스 영화다.
<OSS 117…>은 프랑스 정부를 위해 일하는 비밀요원 드 라 바스가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카이로로 떠나면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소비에트 출신 인사들과 비밀 나치당원들, 이슬람근본주의자들로 붐비는 카이로에서 그는 방아쇠를 잘못
[What's Up] 007이 아니고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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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마피아 대부 ‘프로벤자노’가 최근 경찰의 집요한 추적 끝에 붙잡혔다. 40년을 도망자로 살아온 프로벤자노가 숨어지낸 곳은 양 치즈를 만드는 허술한 집이었다. 그 집에는 치즈를 만드는 통과 막 짜낸 우유가 가득했고 그가 거처하던 방에는 성경책과 건강관리책 그리고 타자기가 놓여 있었다. 타자기 옆에는 유명 정치인들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다. 경찰은 확실한 근거를 잡기 전에는 이 명단을 언론에 밝히지 않겠다고 말했다. 현실이 영화 같고 영화가 현실 같은 순간이었다. 어려운 작업이었음이 틀림없을 추적 작업을 성공적으로 끌고 온 마피아 두목 검거팀에 이탈리아 국민은 열렬한 찬사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올해 50주년을 맞는 이탈리아 영화대상인 다비드 도나텔로상도 이러한 흐름을 무시하지 못했다. 집권 여당이 총선에서 패배하고 거의 반세기를 숨어지내온 이탈리아 마피아 대부가 검거된 역사적인 4월에 치러진 제50회 이탈리아 영화대상은 정치인과 마피아를 다룬 두 영화에 수상 영화를 안겨
[로마] 정치인과 마피아 소재 영화 잘나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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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음악을 국내에 알린 1등 공신을 대라면 빔 벤더스의 음악다큐멘터리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다. 이 다큐는 이브라힘 페레, 루벤 곤잘레스, 콤바이 세군도 등 뿔뿔이 흩어져 세상에 묻혀 살던 뮤지션들이 라이 쿠더를 통해 음악적 결합을 이루는 과정을 순수하게 담아냈다. 쿠바의 전설적인 뮤지션들은 부활했고, 영화는 쿠바 음악을 세계에 알렸다. 베보 발데스 역시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쿠바 음악계의 전설이다. 그는 여든일곱살이다. 1948년부터 프로로 활동했는데, 국내 첫 라이선스 음반은 2004년에 나왔다. 플라멩코 보컬 디에고 엘 시갈라와 낸 듀엣앨범 <Bebo Y Cigala>이다. 베보 발데스 역시 뒤늦게 발견됐다.
사실 평범한 식견으로 남미 음악을 나라별로 따져 듣기란 쉽지 않다. 쿠바와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멕시코간의 음악적 차이를 설명한다는 건 엔카와 트로트를 구분하는 것만큼 섬세한 작업이다. 20세기 초의 쿠바 스탠더드와 발데스 본인의 작품
대중적인 쿠바 거장의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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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더풀 아메리카’라는 제목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세계의 ‘기준’으로 군림하는 초강대국 미국에 ‘원더풀’이란 수사는 식상할 뿐 아니라, 불쾌하다. 그러나 ‘미 역사상 가장 특별했던 시대에 대한 비공식 기록’이라는 부제가 달린 <원더풀 아메리카>를 읽어가다보면, 1920년대의 미국에 붙일 수사는 바로 그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부터 1929년 주식대폭락까지 20년대 미국은 잘 꾸며진 박람회의 풍경처럼 과거와 미래를 망라하는 미국의 전경을 세밀화로 그려놓은 느낌이다. 에이즈도, 9·11도 없었지만 20년대 미국에는 빨갱이 사냥과 부동산 투기, 대량생산과 과대 소비, 대통령 하딩의 스캔들과 마피아 등 ‘미국적’이라고 부를 만한 모든 것이 이미 존재했다. 아니 바로 20년대에 완성됐다.
1920년대를 다르게 말하자면, ‘현대’의 틀이 잡힌 시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욕망을 원초적으로 억압하는 금주법이 실행되어 마피아가 거대 조직으로
혼돈과 가능성의 20년대 미국 관찰기, <원더풀 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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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하게 분노하라.’
그러면 모든 게 다 되는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세상을 바르게 사는 셈이고, 당연히 세상도 좀더 좋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노동자들이 대형 크레인에 올라가 항의할 때 ‘고공농성’이라는 표현을 쓴 것도 이 무렵이고, 농민들이 쌀수입 개방문제 때문에 경운기를 몰고 서울로 향하는 모습에 심정적으로 깊이 기울어졌던 것도 이 어름이었다. 그 연장선에서 모든 눈과 마음에 거슬리는 일상사까지 따지는 식으로 이어졌다. 왜 아파트 경비원들은 이런 대형 덤프트럭이 마구 들어와 매일 밤 주차까지 하도록 내버려두는 거야, 여기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다니는데! 어떻게 한국 최고의 문화거리라는 인사동에서 파는 특산품에 영문 설명이 하나도 없어요? 아니, 그 박스는 메이드 인 차이나, 이거 중국산이잖아요? 세상은 온통 불만투성이였으며, 나는 스스로 작동시키는 비판과 분노의 메커니즘에 빨려들어가 끝내 절망 속으로 찌그러들곤 했다.
그래도 살아야 했다. 체념이라는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불만의 화학적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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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비디오카메라를 갖게 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소니에서 나온 작은 캠코더로 값이 200만원을 웃도는, 그야말로 눈부신 고가의 제품이었다. 눈 딱 감고 하나뿐인 통장을 깼다. 흥정을 위해선 현찰 박치기를 해야 한다는 말에 만원권 뭉치를 들고 잔뜩 긴장한 채 남대문 상가를 누볐다. 그렇게 손에 쥔 카메라는 정말이지 빛이 났다. ‘이제 뷰파인더로 세상을 보는 거야!’ 웅대한 꿈이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도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조차 없었던 나는 ‘후진’ 그림만 주야장천 찍어댔고, 한 학기를 마친 뒤 받아든 촬영 수업의 학점은 참담 그 자체였다. 공부 못하는 애가 책가방 탓한다고, 나는 모든 실망과 분노를 카메라에 퍼부었다. 첫날의 감격은 힘없이 사그라들었고, 카메라는 육중한 케이스에 넣어진 채 옷장에 처박혔다.
미국에서 잠시 살게 됐을 때 카메라를 챙긴 건 순전히 과제 때문이었다. 실기 수업을 들어야 했으니까. 이민 가방 두개를 양손에 든 채 카메라 가방을 간신히 둘러메고
[오픈칼럼] 카메라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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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물에 나오는 연쇄살인마들을 프로파일하면 대개 어렸을 때 학대를 받았다고 나온다. 폭력의 희생자였던 그들은 폭력에 저항할 만한 나이가 되어 가해자에게 복수를 하기도 하고, 전혀 무관한 대상을 찾아 다시 폭력을 휘두른다. 자신이 당한 폭력을 인지하는 경우도 있고, 무의식 속에 감추어버린 경우도 있다. 어떤 쪽이건 끔찍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동일하다. 하지만 <크리미널 마인드>의 하치 요원은 어린 시절 학대를 받았지만 정상적으로 성장했고, <FBI 실종수사대>에는 똑같이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했지만 형은 범죄자가 되고 동생은 요원이 되는 경우가 나온다. 학대가 정서적 불안이나 심각한 심리적 손상을 가져올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절대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오로지 성장기의 환경 때문에 한 인간이 잔악한 살인마로 변한다는 데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이란 복잡하면서도, 나약한 존재다. 범죄물이나 실제의 범죄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당한 학대나
[B딱하게 보기] 약자를 공격하는 당신은 비겁자, <크리미널 마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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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특기이자 취미는 바보짓이다. 이건 자조적일 뿐 자학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이 말은 자위적이다). ‘바보짓’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다. 쉽게 풀이하면 닭대가리 짓이요(전국의 닭님들아, 미안), 어렵게 말하면 형이상학적 부조리와 모순이 어우러져 탱고를 추는 꼴이라 할 수 있다. 홍상수 감독 말마따나 죽은 자들의 찌꺼기가 뭐라 하든, 내가 바보짓을 자주 한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내가 언제부터 그 짓을 하게 되었을까? 일단은 나의 탄생부터 바보짓이었다. 나는 정자가 난자를 껴안으려 했던 1970년대 끝자락의 어느 찬란한 여름에 벌어진 사건을 막았어야 했다. 과대망상자의 뇌를 빌려 생각해보건대, 그 찐득했을 밤(혹은 낮?)과 1980년대 한국사회에 일어난 중차대한 사건 사이에는 알 수 없는 카오스모스적인 인과관계가 작용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대체 어떤 실수들을 저질렀기에 이토록 자신의 바보짓을 (바보스럽게도) 홍보하고 있는 것일까?
첫 번째 사건은
[이창] 나의 바보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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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엑소시스트>라 하면, 1973년을 버리버리벌벌벌 떨게 했던 전설의 공포영화다. 그런데 자타가 공인하는 귀신무서워하기계의 권위자인 필자는, 신기하게도 이 영화가 전혀 무섭지 않았다. 특히, 미국 개봉 당시 졸도 관객을 양산했다고 전해지는 그 유명한 ‘360도 목 돌아가기’ 장면은 오히려 상당히 코믹하게 느껴졌더랬는데, 그 천진난만한 악마의 옹알이와 함께 사장실 회전의자 돌아가듯 돌아가던 그 목, 상당히 귀엽지 않았나요? 뭐, 아님 말고. 여튼.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는 그러나, 이러한 <엑소시스트>의 영향으로 완전 방심 상태로 관람에 임한 필자를 실로 오랜만에 바짝 쫄게 하였다. 물론, 기독교 교리만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라 설파하는 듯한 당 영화의 주제의식은 상당히 거북살스런 것임에 틀림없었다만, 뭐 딱히 기독교도라서 <벤허>를 재밌게 봤던 건 아니니까.
사실 필자가 당 영화에 대해서 문제를 느끼는 대목은, 그런 종
[투덜군 투덜양]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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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에 따르면 사진은 결정적 순간을 담는 예술이다. 그가 말하는 결정적 순간은 무엇인가? “한순간에 사건의 의미와, 사건이 비로소 표현력을 얻게 되는 사건의 형식적인 구조를 동시에 얻는 순간을 의미한다”고 <클라시커50 사진가>는 적고 있다. 말이 좀 어려우나 브레송의 사진을 본 사람이라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바라본 세상이 어떤 완벽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순간, 셔터를 눌렀다. 스스로는 사진을 찍기 전이나 후에만 생각을 하고 사진 찍는 순간엔 무념무상이었다고 하지만 아마 그의 사진 대부분은 셔터를 누르기까지 많이 기다리고 관찰하고 사색한 결과물일 것이다. 그렇다고 결정적 순간이라는 말이 무조건 기다리면 좋은 사진이 나온다는 식으로 이해돼선 안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남과 다르지 않다면 결정적 순간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브레송의 사진 가운데 카페에 앉아 있는 마릴린 먼로를 찍은 사진과 미국의 야구장을 찍은
[편집장이 독자에게] 결정적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