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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운화의 얼굴은 대만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준다. 단편영화와 뮤직비디오로 데뷔한 송운화는 의류학과 3학년 무렵 <카페, 한 사람을 기다리다>의 오디션에 응모했다. 제작자인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구파도 감독은 오디션에서 “우리가 기다리던 완벽한” 소녀를 찾았고, 그렇게 전에 없던 활기로 가득 찬 젊은 배우가 대만영화계를 사로잡았다.
<카페, 한 사람을 기다리다>에서 사랑의 설렘에 달뜬 대학생을 연기하며 제 나이에 맞는 건강한 데뷔를 만끽한 송운화는 자신의 강점을 재빨리 눈치챈 배우다. 한국 관객이라면 송운화의 얼굴에서 얼핏 <응답하라 1988>의 혜리를 떠올릴 법한데, 그건 송운화 역시 물색없는 ‘그 시절’ 소녀를 표현하기에 타고난 생김새를 지닌 덕분이다. 크고 또렷하면서 영락없이 개궂은 눈, 웃을 때면 한없이 시원하게 벌어지는 입매, 제멋대로 튀어오르는 팔다리에 까만 피부까지. <나의 소녀시대>
<안녕, 나의 소녀> 송운화 - 어느덧 어른의 미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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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윈터보텀의 여행영화를 만끽하기 좋은 계절이 왔다. 2010년 방영된 TV시리즈 <더 트립>을 영화화한 <트립 투 잉글랜드>(2010)에서 출발한 나들이는 <트립 투 이탈리아>(2014)를 거쳐 어느덧 스페인까지 와버렸다. 2018년에 당도한 세 번째 시리즈를 보고 있자니, 새삼 한국 방송가의 트렌드인 다큐멘터리형 예능, 미식 예능의 원조 격을 마주한 듯한 감흥이 든다. 웬만한 사람들에게 이미 친숙하고, 웬만하면 사랑하지 않기가 힘든 구성이다. 그럼에도 <트립 투 스페인>(2017)은 여전히 의외의 생경함을 던진다. 그사이 배우들이 50대에 진입했고, 여행지의 풍경 너머로 세상은 더 엄혹해진 것이다. 코미디 듀오의 걸출한 입담과 재간 외에도 들여다볼 것이 많은, 믿고 보는 프랜차이즈 여행영화 <트립 투 스페인>의 매력을 소개한다.
‘트립 투 시리즈’ 세편의 영화는 모두 전화기를 든 채 발코니에 서 있는 스티브 쿠건의 모
<트립 투 스페인>, 돈키호테와 산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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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석이 기획한 <챔피언>(2018)은 마동석의 팔씨름 사랑으로 탄생한 영화다. 그런 만큼 영화에는 팔씨름에 대한 거의 모든 정보와 재미가 들어 있다. 마동석 배우와 김용완 감독은 대한팔씨름연맹 소속 선수들을 통해 팔씨름 자문과 팔씨름 지도를 받았다. 이들은 영화에 스치듯 잠깐잠깐 등장하기도 한다. 배승민 대한팔씨름연맹 대표, 국내 통합랭킹 1위 백성열 선수, 국내 무제한급 1위 남우택 선수, 국내 -80kg급 1위 홍지승 선수 역시 기꺼이 <챔피언>에 참여했다. <챔피언>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을 만났다. 마동석 배우에 대한 깊은 신뢰, <챔피언>을 향한 애정, 팔씨름 선수로 살아가는 것의 즐거움과 힘겨움에 대한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챔피언>을 본 소감은.
=배승민_ 지금까지 개봉한 그 어떤 영화보다 몰입해서 봤고, 그 어떤 영화보다 감동적이었다. 그냥 우리 얘기를 보는 것 같았다.
<챔피언>에 참여한 배승민 대한팔씨름연맹 대표, 백성열·남우택·홍지승 선수와의 이야기 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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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아내 이외의 여자와는 어떤 일대일 만남도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가, 세계의 수많은 여자 대표들과 어떻게 만날 셈이냐며 세간의 빈축을 샀다. 2002년 빌 클린턴과 대비되도록 신사적인 이미지를 어필하기 위한 말 정도로 취급되었던 ‘펜스룰’(아내 이외의 여자와는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는 규칙)은 2018년에는 당대 성차별주의를 대표하는 말이 되었다. 시대가 변한 것이다. 몇몇 특출난 여성이 남성 집단 사이에서 특별한 역할을 맡는 정도로는 변화한 시대를 반영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여성 정치인이 필요하다. 여성이 정치에 진출하던 초기에 여성 정치인들은 남성 중심적인 대의제 내에서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거라고 주목받았다. 여성은 더 부드럽고, 청렴하고, 헌신적일 거라고 기대를 모았다. 여성 정치인들은 남성 연대의 바깥에서 새로운 기대주가 될 만큼 예외적이고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가족사업의 일환으로 정치에 뛰어들거나, 정당 내에서
더 많은 여성 정치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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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 헤인즈 감독은 이미지와 정체성의 관계를 연구하는 다양한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원더스트럭>도 예외가 아니다. 1927년의 소녀 로즈(밀리센트 시먼스)와 1977년의 소년 벤(오크스 페글리)은 그들이 어떤 세계에 속하는 존재인지 발견하고자 집을 떠난다. 그러자면 우선 세상 전체를 조감해야 하기에 영화 속에는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이즈로 줄여진 세계의 대체물이 여럿 등장한다. 곳곳의 신기한 사물을 모아놓은 ‘호기심의 방’, 자연을 축소한 디오라마, 종이로 접은 도시가 그것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람회를 위해 정확한 비율로 줄여 만든 미니어처 뉴욕 전체가 등장한다. <원더스트럭>의 주인공에게 모형 제작은 세계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본인의 위치를 파악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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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 헤인즈 감독의 <원더스트럭>을 비행기에서 처음 보았을 때, 첫 10분 동안은 영화 제목을 잘못 누른 줄 알았다. 이유는 단순무식하다. 토드 헤인즈의 필모그래피는 대략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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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콜럼버스>(2017)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콜럼버스의 건물들에 대해서 다소 긴 설명이 필요하다. 영화잡지에 쓰는 글에 건축가 이름을 나열하며 건축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왔지만, <콜럼버스>는 어쩔 수 없는 영화다. 건축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미국 인디애나주의 콜럼버스는 미국 현대건축에서 의미 있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도시다. 중서부 농장지역에 위치한 인구 4만명의 이 작은 도시에는,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대부분의 건축가가 건물을 설계했다. 그러한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콜럼버스에 자리 잡은 엔진 제작 공장의 소유주 J. 어윈 밀러가 만들어낸 독특한 건축 지원 시스템에 있었다. 공공건물을 설계할 때 밀러 재단이 선정한 리스트에서 건축가를 선택하면 설계비 전액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에로 사리넨, I. M. 페이, 로버트 벤투리, 리처드 마이어, 시저스 펠리, S.O.M 같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건축
<콜럼버스>는 현대건축을 영화에 완벽하게 이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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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공연예술극장 중 하나인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극장에서 쇤베르크의 오페라 <모세와 아론>을 기획한다. 보통의 오페라는 6주 정도 리허설을 하지만, 이 오페라는 리허설만 무려 1년을 하는 대작 공연이다. 영화는 주로 이 오페라의 준비 과정을 담고 있다. 기획자들은 <모세와 아론>에 등장할 소도 1년 전부터 섭외해 음악에 익숙해지게 하고 무대 적응 훈련을 하는 등 철두철미하게 공연을 준비한다.
한편 이 영화는 단지 <모세와 아론>이라는 오페라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극장 경영과 공연 기획 전반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오페라 티켓에 대한 가격 결정, 그리고 노조와의 갈등과 합의 등 그야말로 극장 경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극장장인 스테판 리스너이지만 영화는 다른 극장 직원들에게도 조명을 비춘다. 그중 한명은 러시아 출신의 21살 성악가 미하일이다. 영화는 이제 막 극장에 신입 성악가로 들어온 그
<파리 오페라> 한 편의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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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립 투 잉글랜드>(2010), <트립 투 이탈리아>(2014)에 이은 세 번째 ‘트립 투 시리즈’ 다. 레스토랑 리뷰를 쓰기 위해 스페인으로 떠나는 스티브 쿠건은 롭 브라이든에게 동행을 제안한다. 육아에 지친 롭은 그 제안에 흔쾌히 응하고 둘은 또다시 여행을 떠난다.
이 시리즈의 전작들이 그러하듯이 영화의 주된 내용은 음식이 아니다.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두 남자의 대화가 주를 이룬다. 세르반테스부터 조지 오웰, 피카소, 스페인 내전에 이르기까지 두 남자의 알아두면 쓸데 있는 넓고 얕은 지적 대화가 이어진다. 그렇다고 영화가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두 남자는 끝없이 마이클 케인, 말론 브랜도 등 유명 배우들을 성대모사하면서 <대부>나 ‘007 시리즈’ 등을 패러디한다. 호흡이 잘 맞는 콩트 콤비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드라마가 주는 여운에 있다. 두 남자는 여행을 떠났지만 그들 각자가 가진 삶의 무게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트립 투 스페인>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두 남자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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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마르크스>는 제목 그대로 마르크스의 청년 시절을 담고 있다. 더 정확하게는, 1843년부터 1848년에 이르는 5년 동안 20대 후반의 마르크스가 어떤 사상적, 정치적인 궤적을 밟아갔는지를 연대기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영화는 1843년 자신이 <라인신문>에 기고한 글을 낭독하는 마르크스의 목소리로 시작해서, 1848년 막 완성된 ‘공산당 선언’을 낭독하는 마르크스의 아내 예니의 목소리로 끝을 맺는다. 라울 펙 감독에 따르면, 이 영화의 대부분(상황과 대사)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교환한 서신에 근거해서 구성된 것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청년 마르크스>는 무엇보다 대상 인물 자신이 남긴 말과 글을 통해 인물의 초상화를 그려내고자 하는 라울 펙식 ‘전기영화’인 셈이다.
<청년 마르크스>는 이후 ‘마르크스주의’ 또는 ‘공산주의’라 불리는 한 사상의 형성 과정에 대한 짧은 요약으로 손색이 없다. 특히 그 사상의 태동 과정에서 두 여성(
<청년 마르크스> 마르크스의 청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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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케네 군단과의 전투가 끝나고 10년 후, 마징가 Z의 조종사 카우토 코우지(모리쿠보 쇼타로)는 군대를 떠나 광자력 연구소의 연구원이 되었다. 그레이트 마징가를 조종했던 츠루기 테츠야(세키 도시히코)는 방위군에 남았고 호노오 쥰(고시미즈 아미)은 테츠야와 결혼해 출산을 앞두고 있다. 광자력 에너지 덕분에 인류가 간만의 평화를 누리고 있던 중 후지산에서 고대 유적 인피니티가 발굴되고 코우지는 그곳에서 안드로이드 소녀 리사(우에사카 스미레)를 만난다. 한편 부활한 닥터 헬 일당은 인피니티를 탈취해 최대 병기 고라곤을 가동시키려 하고, 이에 맞서 코우지는 봉인했던 마징가 Z를 다시 출동시킨다.
<마징가 Z>(1972) 탄생 45년 만에 리부트된 <마징가 Z: 인피니티>는 TV 시리즈 마지막 회로부터 10년 이후의 설정이다. <마징카이저>(2001), <마징카이저 SKL>(2011)의 결과가 다소 실망스러웠기에 ‘마징가 Z 시리즈’의 원류로 돌
<마징가 Z: 인피니티> 인류를 구하기 위한 최후의 출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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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5·18 힌츠페터 스토리>는 영화 <택시운전사>(2017)의 실제 모델인 독일 언론인의 카메라를 매개로 80년 5월 광주를 소환하는 작품이다. KBS <역사스페셜-푸른 눈의 목격자>(2003) 편을 통해 위르겐 힌츠페터와 깊은 인연을 맺었던 장영주 PD가 연출을 맡았다. 택시운전사 김사복씨와 함께 어렵사리 광주에 잠입한 힌츠페터는 광주 시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상상을 넘어서는 잔혹한 일이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었고 시민들은 이 참상이 알려지기를 바랐다.
국내 일간지는 다급히 송고된 기사를 묵살했다. 참상을 보도하지 않는 MBC, KBS 지역 방송국을 시민들은 불태웠다. “시민은 거리로 나오지 마십시오.” 계엄군의 광주 재진입 날, 라디오는 방송을 내보냈다. 폭력적 진압 후 공영방송은 광주가 평정을 되찾았노라 보도했다. 광주는 그렇게 고립됐다. 힌츠페터가 세 번째 광주를 찾았을 때 시민들은 더이상 카메라맨을 환영하지 않았다. 서울은 광주
<5·18 힌츠페터 스토리> 80년 5월 광주의 처절했던 민주항쟁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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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은 역사에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이던 젊은 세대가 부모의 신념과 희생, 그리고 역사의 민낯을 알아가는 반성과 화해의 드라마다. 1980년 5월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녀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인기 코미디언 희수(김꽃비)의 생모 명희(김부선)는 5·18광주민주화항쟁 당시 머리에 총알이 박힌 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인물. 정신분열과 치매 증상으로 1980년 광주에 몸과 마음을 빼앗긴 채 살아가는 명희의 얼굴에 유일하게 웃음기가 도는 순간은 TV에서 딸이 우스운 춤을 출 때다. 희수는 결혼을 앞두고 생모의 정체를 밝혀야만 하는데, 연인의 아버지는 “빨갱이는 정신병처럼 유전된다”는 폭언을 서슴지 않는다. 영화는 현재의 희수와 1980년의 젊은 명희(김채희)를 오가며 잊히지 않고, 잊어서도 안 되는 참혹한 광경들을 목도해나간다. 학생운동 중 의문사한 희수의 생부 이철수(전수현)는 조선대 이철규 열사 변사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제목인 <임을 위한
<임을 위한 행진곡> 반성과 화해의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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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노파에게 목련꽃 세 송이를 건네받은 정샹(류이호)은 목련꽃 향기를 맡고 쓰러진다. 다시 눈을 떴을 땐 고등학교 졸업식을 3일 앞둔 1997년. 과거로 돌아간 정샹은 함께 문밴드 활동을 했던 첫사랑 은페이(송운화)가 버젓이 자기 앞에서 웃고 떠드는 모습이 신기하기만 하다. 하지만 은페이와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을 마냥 음미하고만 있을 수 없다. 정샹은 은페이의 과거를 움직여 미래를 바꾸려 한다. 기껏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미래가 아닌 첫사랑의 미래를 바꾸려 하는 건, 꿈을 이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린 은페이의 미래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가수가 되는 게 꿈인 은페이는 일본에서의 데뷔 기회가 주어지는 중요한 오디션을 앞두고 있다. 정샹은 은페이가 오디션을 보지 못하도록 온갖 방법을 동원해 방해공작을 펼치고, 그 과정에서 은페이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새삼 확인한다.
<말할 수 없는 비밀>(2007),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안녕, 나의 소녀> 눈 떠보니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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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희준은 잠시 잊자. “어느 날 문득,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졌다”고 그는 말한다. 원치 않는 생각과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강박장애를 앓고 살아가는 주인공 병훈이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단편영화 <병훈의 하루>(2018)는 이희준의 연출 데뷔작이다. “주변에 연출해보겠다는 이야기도 전혀 안 했다. 일단 부끄러웠고. (웃음) 내 진심을 정직하게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불안한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 병훈은 감독 자신의 고민도 담겨 있는 인물이다. “강박장애를 앓는 이들의 사연을 듣고 자료를 구해보니 대부분 자기 안에 갇혀서 처지를 비관하더라. 그들이 영화를 보고 공감을 얻게 되면 그것만으로 큰 위로가 될 것 같았다.”
넉넉한 예산을 갖고 진행되는 현장이 아니다 보니 제작 규모도 본인이 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조촐하게 스탭을 꾸려야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의 진심을 알아주는 이들이 주변에 많았다. 경험상 “카메라앵글을 찍히는 느낌 정도만 알고
[전주가 맺어준 인연⑪] 이희준 감독 - 나 자신을 위로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