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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기억하지?” 테마파크에 놀러 갔다가 갱단의 총격으로 남편과 딸을 잃은 가정주부 라일리 노스(제니퍼 가너)의 복수극은 이 한마디로 시작된다. 뇌에 총상을 입었으나 기적적으로 깨어난 라일리는 당시 공격을 가한 조직원들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상태. 비겁한 경찰과 부패한 사법부가 라일리를 방치하는 사이, 그녀는 가족의 사망 5주기가 다가올 때까지 숨죽이며 처절한 단련을 거친다.
사건 발생 5년 이후로 점프하는 <아이 엠 마더>의 서사는 제니퍼 가너의 극적인 재등장을 알리면서 가장 재미있는 구간을 만들어낸다. 근육질로 몸을 바꾼 제니퍼 가너는 가격하고 들이받는 강한 타격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배우가 작정하고 덤벼든 모양새다. ‘아이 엠 마더’라는 다소 낯 뜨거운 한국어 제목 또한 일면 영화의 상징적인 정체성을 가리키고 있다. 똑같은 공식을 지닌 액션 복수극에서 늘 피해자의 자리에 있던 여성(아내)이 이번엔 행위의 주체자로 나섰다는 점은 환영받아 마땅하다. 이 지
<아이 엠 마더> 남편과 딸을 잃은 가정주부의 복수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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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루이스(제이슨 클라크)는 가족과 함께 보스턴을 떠나 메인주의 한적한 마을로 이사 간다. 두 아이와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아내 레이첼(에이미 세이메츠)과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다. 딸 엘리(주테 로랑스)는 이사한 집 뒷산에 공동묘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이웃집 할아버지 주드(존 리스고)는 엘리에게 죽은 애완동물을 묻는 곳이라고 알려준다. 어느 날 엘리가 아끼던 고양이 처치가 집 앞 도로에서 죽은 채 발견되고, 루이스는 주드의 청으로 처치를 애완동물 공동묘지에 묻는다. 다음날 처치는 산 채로 루이스 가족 앞에 나타나지만 예전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살아 있을 때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가족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 채 말이다. 스티븐 킹의 자전적 소설 <애완동물 공동묘지>를 각색한 <공포의 묘지>는 평범한 중산층 가족이
<공포의 묘지> 죽었던 딸이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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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우(강예원)는 야근이 많은 워킹맘이다. 야근할 때마다 자신의 자리에 와서 치근덕거리는 최 실장(주석태) 때문에 마음이 심란하고 공포스럽다. 그 때문에 도망치듯 회사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오고, 그때마다 마주치는 경비원 준호(이학주)에게 따뜻한 말을 전한다. CCTV를 통해 회사의 거의 모든 곳을 한눈에 꿰뚫고 있는 준호는 성실해 보이는 경비원이다. 어느 날 영우는 야근을 마치고 주차장에 내려왔다가 원인 모를 사고를 당한 뒤 납치당한다.
<왓칭>은 영우가 누구에게 납치되었는지 머리싸움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는 영우가 맨몸으로 지하 주차장에서 탈출하는 과정을 숨가쁘게 보여준다. 예측하기 어렵지 않은 서사 전개 방식인데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납치범 때문이다. 웃는 얼굴로 극악무도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납치범의 모습은 공포스러운 동시에 실소를 자아낸다. 영화는 경비원 사무실, 셔터, 자동차 등 다양한 장치를 가지고 지하 주차장이라는 폐
<왓칭> 회사 주차장에서 납치 당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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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사회의 풍경과 러시아인들의 심상을 진중하고 예리한 필치로 조명해온 작가 감독, 안드레이 즈뱌긴체프의 신작. <러브리스>는 이혼을 앞둔 젊은 부부, 제냐(마리아나 스피바크)와 보리스(알렉세이 로진)의 갈등에서 시작된다. 각자의 연인과 함께 새롭게 출발하고 싶은 두 사람에게 12살짜리 아들 알로샤(마트베이 노비코프)는 장애물일 뿐이다. 부모가 자식의 양육을 맡지 않으려 심하게 말다툼하던 날 밤, 아이는 욕실에서 부모 사이에 오가는 말을 듣고 숨죽여 오열한다. 그리고 아이가 사라진다. 며칠째 아이가 실종된 줄도 모른 채 각자의 연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부부는 뒤늦게 알로샤를 찾아나선다. 하지만 알로샤의 행방은 묘연하다.
제목이 암시하듯 영화는 사랑 없는 사회의 비정한 풍경을 응시하고 있다. 자기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만 충실한 사람들은 타인의 감정을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등장인물들이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건네는 “사랑한다”라는 말은 이 영화에서 감정 표현의 수단으로
<러브리스> 사랑 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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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이란 건 있을 수 없다. 오독이 가능하려면 정독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하려는 일은 정답 풀이와는 다르다.” 영화를 글로 옮긴다는 무모하고 지난한 항로에 등대가 되어준 말이 있다면, 허문영 평론가가 슬쩍 건넨 한마디 조언이었다. 얕은 시선과 무지를 들킬까 두려운 나는 지금도 저 한마디 말의 끈을 부여잡은 채 불안을 견디고 영화를 근심하다가, 매번 실패한다. 지금부터 털어놓고 싶은 건 한편의 영화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나 통찰력 있는 시선이 아니다. 그저 사적이고 단편적인 고백, 나는 아직 잘 모른다는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바탕으로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고자 하는 발버둥이다. 강력한 자장으로 우리를 뒤흔드는 영화를 어떻게, 어디까지 읽어내야 할지 근심해온 한 사람의 실패의 기록이라 해도 좋겠다.
홍상수 영화를 마주할 때마다 도망치고 싶다. 그에게로 가는 길은 늘 무겁고 부담스럽고 어렵다. 이미 여러 차례 고백했지만 나는 홍상수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 부끄럽진 않다. 위
[한국영화 비평③] <강변호텔> 홍상수라는 세계를 읽고자 한다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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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상>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많은 기자와 블로거들은 <우상>이 너무나 많은 상징과 은유를 포함한 영화라고, 그래서 이 영화는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로 완성되었다고 말한다. 정말이지 나는 묻고 싶다. <우상>에 상징과 은유가 있다면 얼마나 있고, 또 무엇이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운지 말이다. 나는 <우상>이 불친절한 영화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지나친 상징과 은유로 인해 어려운 영화로 완성되었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 없다. 내게 <우상>은 꽤 직선적인 드라마를 가진 영화고, 상징적으로 표현된 그 주제 역시 너무나 직접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영화를 모호성이 내재한 영화, 관객이 이해하기 벅찬 영화로 오인하도록 만든 것일까?
모호성을 오독한 모호성
내게 <우상>의 흥미로운 지점은 작품 자체보다는 그에 대한 여러 평자의 반응이다. <우상>이 개봉하자마자 많은 평자는 이
[한국영화 비평②] <우상> 모호성이라는 이름의 스노비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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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을 본 뒤 무엇보다 앞선 궁금증은 이 영화를 본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소감이 어땠을까 하는 것이었다. 연락이 닿는 유족들에게 영화에 대한 감상을 여쭸다. 최종 편집본이 나오기까지 2차례에 걸쳐 유족 대상 시사회를 거친 터였다. 단원고 2학년 7반 곽수인 학생의 어머니 김명임씨는 다음과 같이 전했다. “우리 아이들 이야기가 이렇게 드러나도 되는 세상이 됐구나 하는 생각에 그 자체만으로도 고마웠어요. 위안이 됐지요.” 2학년 7반 정동수 학생의 어머니 김도현씨는 아들 생일 모임을 못 챙긴 게 아쉽다고 했다. “동수랑 친한 친구들이 지금 동수랑 같이 있어서, 참석할 친구가 없을까 봐 생일 모임을 못했어요. 생일 영상은 영화로 처음 본 거예요. 참 예쁘더라고요. 생일 모임 못해준 게 미안하고, 영화가 고마웠어요.” 다행이었다. 이종언 감독이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듯 “상업영화 시스템에서 되도록 큰 규모로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의도와 유족의 뜻이 닿았다. 그거면 됐지 비평의
[한국영화 비평①] <생일> 애도의 정서를 나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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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은 징후를 읽는 작업이다. 간혹 비평이 영화를 보는 좋은 길잡이가 될 순 있지만 빼어난 해석이나 가이드가 모두 좋은 비평이 되는 건 아니다. 영화를 재단하고 평가하는 대신 함께 고민하고 때로는 치열하게 부딪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법이다. 적어도 2000년대 초·중반 한국영화의 풍성함은 그렇게 쌓여왔다고 믿는다. <씨네21>은 최근 한국영화의 흥행 성적과 별개로 몇몇 영화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징후들이 있다는 판단에 이번 특집을 마련했다. 우선 송형국 평론가가 <생일>을 중심으로 한국영화가 세월호의 상처를 위로하는 방식에 대해 살폈다. 다음으로 안시환 평론가가 <우상>을 통해 작가주의적 모호성에 기댄 감독들이 어떻게 장르를 오인, 오용하는지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송경원 기자가 작가성의 관점에서 <강변호텔>을 읽으며 영화를 어디까지 적극적으로 해석할지에 대해 고민한다. 2019년 상반기 한국영화의 위치를 가늠할 좌표가
비평으로 읽는 한국영화의 현재 ① ~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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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3일 개봉한 레이프 파인스의 세 번째 연출작 <더 화이트 크로>가 개봉 첫주 영국 박스오피스 7위에 올랐다. 영화는 러시아 발레의 전설 루돌프 누레예프가 첫 유럽 투어를 하던 1960년대 초반, 파리로 망명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활력 넘치고 자신만만하며 보기에 무난한 영화”라며 작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영국 내 총 87개 영화관에서 약 22만3천파운드의 수익을 올린 <더 화이트 크로>의 극장당 수익은 약 2500파운드로, 이는 이주 개봉한 작품 중 1, 2위에 오른 <캡틴 마블>과 <어스>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금액이다. 개봉 전 열린 시사회 등을 포함하면 <더 화이트 크로>가 개봉 첫 주말 동안 벌어들인 수익은 약 32만7천파운드까지 올라간다. 지난 2012년 파인스의 첫 연출작 <코리올라누스: 세기의 라이벌>과 2014년 연출한 <인비저블 우먼>이 각
[런던] 영국 박스오피스 관객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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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릴리 워쇼스키, 라나 워쇼스키 /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 제작연도 1999년
1999년 <매트릭스>는 혁명적이었다.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비주얼과 <공각기동대>를 연상시키는 로비 총격전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 다층적인 스토리 구조가 나를 사로잡았다. 볼만한 영화라고 하면 보통 둘로 나뉘는 것 같다. 보는 동안 즐겁긴 했지만 극장을 나오면서 ‘뭘 봤더라?’ 하게 되는 영화와 이게 뭐지 싶다가 어느 순간 끝 모를 깊이 속으로 나를 내던지게 만드는 영화. 그런데 <매트릭스>는 둘의 장점을 합친 영화였다. 표층은 명확한 선악 구조를 띤다. 인간을 생체 배터리로 써먹는 나쁜 인공지능(AI) 기계들과 놈들이 만들어놓은 매트릭스 속에서 반동분자를 처단하는 에이전트들. 그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고자 하는 사람들. 초등학교만 나와도 쉽게 몰입할 수 있는 대결 구도다. 그렇다고 식상하지도 않다. 특이점 너머의 AI는 인류의 재앙이 될 거라고
[내 인생의 영화] 김병인 대표의 <매트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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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니 핑크> <내 남자의 유통기한> 등을 연출한 독일의 도리스 되리 감독은 소설가로도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에도 그림책과 소설이 여러 권 출간되었고,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는 도리스 되리의 대표작인 <파니 핑크>와 설정을 공유하는 단편소설 <오르페오>가 실린 연작 단편집이다. 총 18편이 실려 있다. 도리스 되리의 소설들은 대부분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며, 많은 경우 이성애에 ‘시달린’(달리 적합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여성 혹은 여성들이 벌이는 크고 작은 일들을 그린다. 소설 속 여자들은 남자의 사랑을 원하고 그것을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만큼 얻지 못한다. 그 좌절한 내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희망은 헛되고 불행은 구체적이다. 영화 <파니 핑크>로 발전된 <오르페오>의 제목은 오르페오라는 점술가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주인공 안토니아는 조니와 살고 있는데 조니가 월드컵에 빠져 지내자
씨네21 추천도서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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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얘기지만 내 경우에는 외국 역사에 대한 지식 상당수가 <먼 나라 이웃 나라>에서 비롯했다. 다른 왕 이름은 기억도 못하면서 프랑스의 ‘피의 여왕’ 메리와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해서는 잊지 않는 것이 다 어릴 때 읽은 <먼 나라 이웃 나라>의 영향인데, 여왕의 이름 앞에 ‘피의’라는 수식이 붙게 된 연유를 짙은 먹물로 표현한 페이지는 지금도 선명히 기억난다. 다소 복잡한, 글로 읽으면 암기의 영역에 들어가는 역사나 철학을 만화로 읽을 때에는 쉽게 읽히고 오래 기억된다는 장점이 있다. <철학의 이단자들>은 유럽 철학 연구 권위자(그중에서도 스피노자 전문가)인 스티븐 내들러가 글을 쓰고 그의 아들 벤 내들러가 그림을 그린 철학 만화책이다. 기독교 교리를 옹호하고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이론에 무비판적으로 헌신했던 1600년대 수많은 사상가 중에서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연구하고 논쟁 벌이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상가들의 사유와 논리를 만화로 묶었다. 지
씨네21 추천도서 <철학의 이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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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기형도”라고 답했다가 비웃음을 산 적이 있다. 나를 마치 중2병 소녀처럼 바라보던 그 사람은 “넌 아직 많은 시를 읽어보진 않은 모양”이라고 나를 비웃으며 “그 시인은 다소 과대평가되었지”라고 읊조렸다. 세상 다 아는 척 쓸쓸한 눈빛을 지어 보이던 그의 표정을 떠올리면 지금은 그저 웃음만 난다. 그로부터 몇년이 지나 이제 다시 나는 좋아하는 시인이 기형도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의 시를 다시 꺼내 볼 때에는 웬일인지 서글프고 쓸쓸하고 이대로는 못 살겠다 싶은 기분이 들 때이다. 너무 유명해져서 이제 닳아버린 문장,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질투는 나의 힘>)를 읽다가 눈길을 위로 올리면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가 우두커니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무리 유명해지고 흔해져서 나만의 것이 아닌 시라 하여도 어찌
씨네21 추천도서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기형도 시전집), <어느 푸른 저녁>(젊은 시인 88 트리뷰트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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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를 읽을 때 가장 난감한 순간은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 함께 여행을 즐기는 기분으로 글을 읽은 후 ‘나도 여기 가고 싶어’서 정보를 찾았을 때 책에 감상만 있고 공간에 대한 정보가 없을 때다. 아니, 좋은 건 충분히 알겠는데요, 그러니까 거기 어떻게 찾아가야 하냐고요! 게다가 해당 장소에 대한 외향 묘사나 저자의 감상만 있고 그 공간에 대한 정보는 일절 없어서 다 읽었을 때 ‘저자의 좋았던 감정’ 말고는 얻는 게 없었던 책은 또 얼마나 많은지. <씨네21> 이다혜 기자의 <교토의 밤 산책자-나만 알고 싶은 이 비밀한 장소들>이 기존 여행 에세이와 다르다는 걸 설명하느라 말이 길어졌다. 그가 짧은 휴일에 다녀온 여행지에 대해 신이 나서 설명할 때 얼마나 믿음직한 영업왕이 되는지를 아는 사람으로서 이 책을 소개할 수 있어 기쁘다.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 발견한 음악이나 책, 빛나는 무언가를 소개할 때 ‘다혜리’는 대단한 영업왕이다. 그가 옥장판이나 마늘즙
씨네21 추천도서 <교토의 밤 산책자-나만 알고 싶은 이 비밀한 장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