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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은 <도둑들> 중 캐스팅이 가장 까다로운 배우였다. 최동훈 감독에게 김수현은 ‘기준미달’이었다. 막내도둑 잠파노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어도 극의 균형에서는 한치 빠져서도 안되는, 김윤석, 김혜수, 전지현, 이정재의 에너지를 다분히 나눠가질 수 있는 배우여야 했다. “이미 김수현은 <드림하이>로 가능성이 입증된 때였고, 주변에서도 가장 추천을 많이 한 배우였다.” 최동훈 감독의 딴죽은 그래서 ‘잠파노 역을 하기에 이미 너무 유명했다’는 정도였다. “감독님이 역할이 크지 않으니 미안해서라도 너를 캐스팅하기가 쉽지 않다고. 근데 난 드라마 몇편 한 거지 영화는 처음이다. 오히려 좋더라. 그러니 부담이 덜해지고, 부담이 줄어드니 여유가 생기고, 여유가 생기니 배울 기회도 더 많아지더라. 내겐 최고의 캐릭터였다.”
42.4%라는 기록적 시청률을 올린 드라마 <해를 품은 달>로 모두가 ‘훤앓이’를 하는 와중에, 김수현은 이미 도둑팀의 임무를 완수했다.
[김수현] 영화를 품은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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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씨네21>(408호 ‘전지현에 대한 3가지 보고서’ 기획기사 중)은 전지현에게 “10년 뒤면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 적 있다. 그때 그의 대답이 궁금하지 않은가. “물론 여자니까, 결혼을 했을 것 같고. 연기를 계속 하고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해외로) 많이 나가고 싶다.” 놀랍게도 세 가지 예상 모두 적중했다. 얼마 전 결혼을 했고, <도둑들>을 찍었고 현재 류승완 감독의 신작 <베를린>도 찍고 있다. 그리고 <블러드>(2007), <설화와 비밀의 부채>(2010) 등 해외 프로젝트도 몇편 경험했다. 그러나 이 얘기를 들은 전지현은 새삼스럽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 맞았네. 사실 기억이 잘 안 난다. 너무 어렸을 때라. 그런 예상을 했다니 신기하다.”
잠깐 잊고 있었다. 무심하고 시크하면서도 장난기 많고 건강했던 ‘엽기적인 그녀’ 전지현 말이다. 영화면 영화, CF면 CF
[전지현] 해피엔딩은 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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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수염은 뽀빠이의 자존심인데 그걸 마카오 박한테 뜯긴 거지!” 차분히 말하던 이정재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멋있다’라는 표현보다 ‘허세’라는 표현이 어울릴 콧수염을 자존심처럼 지키는 남자, <도둑들>의 뽀빠이는 그런 남자였고 이정재는 뽀빠이가 된 것처럼 장난기 섞인 분함을 감추지 못했다. 뽀빠이에게 마카오 박은 그가 훔치고 싶은 것들을 모두 갖춘 동경의 대상이자 언제라도 짓밟고 싶은 가장 큰 적수다. 그래서 마카오 박에게 뽀빠이의 콧수염이 무참히 뜯기는 순간 관객은 묘한 쾌감과 함께 발가벗겨진 뽀빠이를 목격하게 된다. 그날, 가장 치욕적인 순간인 ‘콧수염 장면’을 설명하는 이정재는 다시금 그 현장에 선 것처럼 보였다.
얼핏 허세어린 콧수염 하나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캐릭터 같지만 뽀빠이는 <도둑들>에서 탐욕, 사랑, 배신, 동경 등 자신의 내면을 가장 다양하게 드러내 보이는 인물이다. 이정재 역시 “본인은 굉장히 명석한 줄 알지만 실은 모든 게
[이정재] 댄디가이의 끝없는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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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이 인터뷰가 <타짜>의 정 마담과 <도둑들>의 팹시에 대한 비교가 아니면 좋겠다.” 아마도 <도둑들>의 합류를 결정하고 가장 많이 들었을 질문. 김혜수는 그 비교를 일단 내려놓자고 제안한다. “흔히 말하는 이전 캐릭터를 뛰어넘는다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좋은 건 좋은 것대로 보존돼야지, 만날 자기를 뛰어넘고 싶지도 않고.”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저음과 고음을 절묘하게 오가는 어투, 똑 부러지는 화법. 확신에 찬 태도. 인터뷰를 하는 그녀의 모든 것이 정 마담의 것을 똑 닮아 있다. <타짜>의 정 마담은 배우를 관찰하고, 그 배우의 말투와 표정까지 시나리오에 반영하는 최동훈 감독에게 포착된 자연인 김혜수가 틀림없다. 어쩔 수 없지만, 이러니 팹시와 비교를 시도할밖에 없다. <타짜>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도둑들>의 팹시엔 어떤 김혜수가 반영되어 있을까. “감독님이 정 마담을 내가 가진 외적 이미지의
[김혜수] 물러서서 조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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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연기파야? 액션배우지.” 사진 촬영을 위해 옷 갈아입다 말고 나온 김윤석을 누군가가 치켜세웠나보다. 심드렁한 김윤석의 저 반응은 겸손을 가장한 표현이 아니다. 전작을 일일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최근의 <황해>만 봐도 그는 정신없이 먹잇감을 뒤쫓고, 족발이든 도끼든 손에 잡히는 거라면 뭐든지 집어들어 괴물처럼 휘두르지 않았나. <완득이>의 동주 선생은 잠시 잊자. 조선족의 내면을 보여줘야 했던 구남(하정우)과 달리 영화 속의 면가(김윤석)는 조선족의 끈질긴 생존본능과 그것으로 인한 극단적인 육체성을 겉으로 드러내야 했다. 그 광기를 그의 오랜 동료 최동훈 감독이 놓칠 리 없다. “<황해> 시사를 마친 뒤 따로 술 한잔 더 했다. 그때 <도둑들> 얘기를 처음 꺼내더라. 중국어하는 거 보니까 간지도 나고, 중국어 대사도 가능하겠다고 하더라. (웃음)” <타짜> <전우치> 등 최동훈 감독의 거의 모든 작품에 출
[김윤석] 액션으로 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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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렬 구조다. 한·중 연합 도둑들이 마카오 카지노에서 300억원짜리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동안, 10명의 배우들은 관객의 마음을 훔쳐야 한다. 수치로 볼 때 n분의 1이니 배우당 책임의 분량이 적어질 거라고 판단하기 쉽다. 그건 명백한 오해임을 알려둔다. 극적 클라이맥스가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이 영화에서 배우들은 각 신을 완벽히 장악해야 한다. 쿨하고 멋있는 <오션스 일레븐>의 도둑들 대신, 홍콩 누아르에서 튀어나온 듯한 사연과 정서까지 모두 통틀어 표현해야 한다. 도드라지지 않게 자신을 각인시키는 절체절명의 미션. 캐릭터의 경합이 아니라, 이건 분명 겁이 날 정도의 연기 각축전이다.
‘최동훈 사단’이라 불리는 김윤석, 김혜수와 새로 영입된 이정재, 전지현, 김수현 다섯 배우를 <도둑들>의 이름으로 소환했다. 공덕동 스튜디오가 원래 작긴 하지만, 이번엔 다섯 배우의 에너지를 담기에 좀 심각할 정도로 협소해 보였다.
[도둑들] 배우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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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 그는 2005년 이후 망명객이 됐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타지키스탄으로, 다시 프랑스로, 또다시 영국으로 테러 위협을 피해 옮겨다니는 실정이다. 인권운동가이며 진보주의자인 그의 비판적 시선과 의견을 곱게 보지 않는 이란 내 보수세력 때문이다. 2009년 개혁파 대통령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선 이후 상황은 더 좋지 않다. 그러나 그는 그동안에도 영화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고 또 하나의 결과물로 신작 <정원사>를 완성했다. 이 작품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펀드 후반작업 지원부문 선정작 중 하나가 됐다.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였다는 후문이다. 부인, 아들과 함께 후반작업을 위해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났다.
-신작 <정원사>가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영화펀드(ACF) 후반작업 지원부문에 선정됐다.
=나와 나의 가족이 부산영화제로부터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방면으로 지원을 받아왔다는 말부터 해야 할 것 같다. 14년 전에는
[모흐센 마흐말바프] “우리 가족은 전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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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2012 <우주형제>
2010 <악인>
2010 <고백>
2009 <하와이언 레시피>
2009 <하프웨이>
2007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2007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하와이섬의 북쪽에 위치한 호노카아 마을에서 영사기사로 일하는 대학생 레오 역을 맡았다.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요시다 레오 작가가 쓴 원작 소설을 읽었다. 레오에게 호노카아는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 마을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나 역시 레오에게 끌렸다.
-도쿄라는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까닭에 하와이에서 넓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던 레오라는 청년이 쉽게 이해가 되던가.
=솔직히 나와 닮은 점이 없는 멋진 청년이다. 내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고. 역할을 위해서 스스로 찾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성장했던 것 같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응석을 부리면 안된다
[who are you] 오카다 마사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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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의 강형철 감독이 그녀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박진주는 연기 천재다.” 이제 막 영화 한편에 출연한 신인에게 그리고 같은 또래의 여자 배우들이 유독 많았던 촬영현장에서 편애라는 오해를 무릅쓰고 감독이 그녀를 칭찬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묻자 박진주의 대답이 당차다. “제가 신인이니까 북돋워주려고 장난처럼 하신 말씀이라 생각해요. 연예계가 삭막하다는 말 많이 들었는데 아직까지 좋은 사람들만 만나서인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써니>에서 욕쟁이 진희로 이름을 알린 박진주에 대한 인상은 강렬할 수밖에 없었다. 들어본 적도 없는 욕을 속사포로 내뱉지만 그 상스러움이 어딘가 귀여워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 잔상이 남았다. 그리고 강형철 감독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박진주는 <써니> 멤버 중 가장 바쁜 한해를 보냈다. 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드라마 <프로포즈 대작전> 그리고 뮤지컬 <연탄길>
[박진주] 하이킥! 욕쟁이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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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가 보면, 제대 뒤 첫 작품이니 굉장히 노심초사하고 고심한 것 같잖아요? 그냥 모든 게 잘 맞아떨어졌어요. 로케이션도 가까운 편이고, 제작기간도 짧고, 한 공간에서만 사건이 일어나는 거라 (연기) 감 익히기에도 좋을 것 같고, 새로운 장르에 안 해본 캐릭터고.” 물론 홍콩 여행 중에 접한 <두개의 달> 시나리오는 여행을 방해할 정도로 흥미로웠고, 2년 동안 못한 연기를 다시 하려니 현장에선 가슴이 벅찰 정도로 행복했다. 김지석은 솔직했다. 그리고 청산유수였다. 군대에서 대화의 기술이라도 연마한 건지, 그의 얘기는 청자를 춤추게 했다. 김지석은 말하길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리액션이 좋은 대화 상대였다.
게스트와 호스트 자리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김지석의 대화법은 그의 연기와도 닮아 있다. <두개의 달>에서 김지석이 맡은 대학생 석호는 소희와 인정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중심추 역할을 한다. 영문도 모른 채 숲속 낯선 집의 지하실에서 눈을 뜨는 세 사람은 각
[김지석] 평범함과 광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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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려고 소파에 자리를 잡자마자 박한별은 신발을 벗고 양반다리를 했다. 다소곳함, 섹시함, 도도함의 범주를 넘어서는 좌식법이었다. 이내 박한별은 말했다. “버릇없… 나요?” 털털하고 솔직하고 귀여운 박한별의 일면을 엿본 순간이었다. 신기하게도 박한별은 일상에서의 풀어진 모습을 작품에서 보여준 적이 거의 없다.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여우계단> <숙명> <요가학원>을 거친 그녀는 늘 새장에 갇힌 관상용 새의 인상을 풍겼다. 물론 그 새는 창공을 날게 될 날을 고대했다. “데뷔하고 인지도는 높아졌는데 연기 못한다는 소리를 엄청 들었잖아요. 저도 제가 하고 싶은 거, 제가 잘할 수 있는 거 하고 싶었어요. 예를 들면 <환상의 커플>의 나상실 같은 역할. 제가 연기한 오유경보다 나상실이 제 성격에 더 잘 맞거든요. 그런데 늘 청순하고 차분한 역할만 들어왔어요. 그땐 진짜 불행했어요.” 어느 순간 박한별은 쓸데없는 고민으로 자신을 몰아세우
[박한별] 다시, 깨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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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두개의 달>의 세 주인공 소희(박한별), 석호(김지석), 인정(박진주)은 이 질문의 답을 구하려고 애쓴다. 이들은 죽은 자들이 깨어나는 집에 갇혔다. 석호와 인정은 필사적으로 해답찾기에 달려들고, 소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이 질문을 세 배우에게 던져보면 어떨까. 난 누군가, 지금 난 어디쯤 와 있나. 박한별은 “여우 같은 이미지”를 버리고 미스터리한 인물 소희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그리고 더이상 공포영화의 마리오네트 인형이길 거부한다. 군 제대 뒤 첫 작품으로 <두개의 달>을 택한 김지석은 석호의 옷을 입고 평범함과 광기 사이를 오간다. 현장에서 연기할 날을 벼르고 별렀을 그의 모습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써니>의 욕쟁이 그녀, 박진주는 두 번째 영화에서 당당히 주연 자리를 꿰찬다. 그리고 <두개의 달>을 통해 ‘기분 좋은 주연의 중압감’을 맛본다. 지나온 길도, 걸어갈 길도 달라
[박한별, 김지석, 박진주] 미스터리를 품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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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 뺑소니, 재난. 극한 상황이 닥치면 요즘엔 아빠가 전문가다. 할리우드영화(<테이큰>), TV드라마(<추적자>) 모두 아빠가 해결한다. 기생충 연가시의 재난에 대처하는 것도 바로 아빠다. 거대 기생충 ‘연가시’가 사람 몸에 기생한다는 가정하에서 출발한 영화는 자본주의 사회의 다툼과 속물근성, 정부의 안일한 대책에 평범한 가장을 대치시킴으로써 대한민국의 모순과 치부를 드러낸다. <바람의 전설> <쏜다>로 세 번째 연출에 도전한 박정우 감독의 신작이다. 접근방식과 장르 모두 의외지만 주제의식은 그대로다
-기대작으로 인터뷰한 게 벌써 1년 전이다. 드디어 <연가시> 모습이 공개됐다. (힌트를 주자면) 영화 보고 우동은 못 먹겠더라. 비주얼적 충격효과가 확실히 컸다.
=질감, 크기, 움직임 모두 고민이었다. 질감 표현이 어렵더라. 실제는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보면 모자이크 무늬인데 그걸 사람 몸에 기생하는 걸로 크게 하고 보니 구
[박정우] 현실에도 변종들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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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얼마 전까지 방영된 올리브 채널의 푸드 에세이 <이하늬의 비건 레시피>도 그중 하나였다. 물론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하늬가 진행한 그 프로그램을 유심히 본 까닭은 내가 아는 이하늬의 모습과 달랐기 때문이다. <불굴의 며느리>(2011), <불후의 명작>(2012) 등 드라마에서 그는 대체로 당차고, 자기주장이 강한 도시 여자였다. 반면, 요리 프로그램 속 그는 어찌나 상냥하고 친절한지. 몇번 연습을 해본 듯한 조리 실력이며, 누구나 들어도 쉽게 이해가 되는 멘트며, 재료를 꼼꼼하게 손질하는 태도며, 방송 속 그는 정말 요리를 사랑하는 여자였다. 그런 여자라면 자신이 맡은 캐릭터도 진정 아끼고 사랑할 줄 알 것이다. 살인기생충을 소재로 다룬 재난영화 <연가시>에서 끊임없이 정부 시스템에 항의하는 국립보건원 연구원 연주를 맡은 이하늬를 만났다. 영화 데뷔작 <히트>(2011)에 이은 두 번째 영
[이하늬] 할 말 다 하면서도 사랑스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