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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사투리’는 어느 날 떡하니 박준형의 머릿속에서 잉태된 ‘순수혈통’의 코너는 아니다. 이런 유의 영어교육프로그램을 응용한 사투리 교육코너는 SBS 창사초기 코미디나 강원방송 정규 라디오 프로그램 등에서 보거나 들었던 것이다.그러나 이뿐이 아니다. <개그콘서트>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코너들은 어디서 본 듯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지난 1월19일 보수작업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다는 ‘봉숭아학당’이다. 이미 이창훈의 맹구 시절부터 시작된 이 코너는 <개그콘서트> 내에서도 수많은 멤버이동을 보이며 장수하고 있다. 한참 인기를 끌었던 박성호의 ‘뮤직토크’만 해도 “냉장고를 녹이는 뜨~거운 남자” 박세민이 80년대 코미디에서 써먹던 ‘팝개그’의 재탕이었고, 난쟁이처럼 무릎으로 발을 대신하는 ‘몽당친구들’은 이미 <개그콘서트> 내에서 이병진이 선보였던 코너다. 하지만 이런 현상에 대해 김영식 PD는 “미묘한 데커레이션이 불러일으키는
<개그콘서트>가 우리를 사로잡은 7가지 이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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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의 띄어쓰기가 낳을 수 있는 다른 해석의 결과처럼 <개그콘서트>는 동작이나 상황보다는 끊임없이 말을 해체시키고 재결합하는 언어적 유희에 집중한다. ‘무사들의 대화’, ‘생활사투리’, ‘우비삼남매’, ‘우격다짐’ 등 <개그콘서트>의 많은 코너들이 “언어를 가지고 노는 코너”들이다.“당신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습니다“란 표준어를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각각 “좋은 겅께 챙겨”, “오다 줏었다!”는 다른 식으로 표현한다는 ‘생활사투리’나,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발로 차! 발로 차!” “저 푸른 초원 위에, 교복을 벗고…” 식으로 서로 다른 노래의 구절을 이어붙임으로써 엉뚱한 뜻을 만드는 ‘도레미 삼총사’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언어유희는 단순한 슬랩스틱코미디와는 달리 관객을 귀찮게 하는 부분이 있다. 얼마 전 새로 선보인 ‘우비삼남매’는 <개그콘서트>의 방향과 현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시험용 리트머스 같은 코너다. 애니메이
<개그콘서트>가 우리를 사로잡은 7가지 이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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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남자, 사랑할까요?서른 넘긴 지 오래인 남녀에게 요정 애칭이 거북살스럽긴 하지만, 줄리아 로버츠가 로맨틱코미디의 팅커벨이라면 휴 그랜트(43)는 오베론쯤으로 불려도 무방할 것이다. 현재 은막에서 휴 그랜트보다 로맨틱한 코미디언, 혹은 그보다 코믹한 연인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왕도 왕 나름. 요정의 왕이라고 한들 로맨틱코미디 장르의 왕에게는 경배하는 백성이 따르지 않는다. 하긴 휴 그랜트와 자주 비교되는 선배 캐리 그랜트도 비슷했다. 마치 이름이 정한 팔자인 양 두 사람의 그랜트는 언제나, 당연히, 지척에 있는 스타로 여겨질지언정(GRANTED), 존재해주어서 고맙다는 따위의 감격어린 치사를 받는 부류에 속하지 않았다. 배우로서 쓸쓸한 노릇 아닌가, 라고 굳이 염려해줄 필요는 없다. ‘배우 휴 그랜트’의 소명을 누구보다 가볍게 여기는 것은 휴 그랜트 본인이기 때문이다. 어느 명사보다 재미있는 인터뷰를 남기면서도 의미심장한 인물로 여겨지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연기 경력 20년
네 가지 키워드로 읽는 휴 그랜트의 매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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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둘. 세속적 이기주의자나태한 휴 그랜트가 시종일관 성실하게 멀리하는 가치가 있다면 ‘심오함’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제 연기의 열병에 감염되셨나요?” <피츠프레스>의 인터뷰어가 던진 진지한 질문에 그는 그런 병력은 없다고 대답했다. “학교 때는 여학교 학생들과 무대에 같이 오르고 남들이 나에게 호감을 표하는 것이 기뻐서 연기를 했다. 나는 온갖 올바르지 못한 동기로, 돈과 명성과 얄팍한 재미 때문에 이 직업을 좋아한다.” 여러 미녀들과 스페인의 섬에서 몇주를 지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영화를 고른 적도 있는 휴 그랜트는 <어바웃 어 보이>의 귀족급 백수 윌과 세계관을 같이하는 남자다. 성가신 파파라치는 혐오하지만, ‘로맨틱코미디의 왕자’니 ‘가장 섹시한 수입품’이니 하는 언론이 붙여준 타이틀과 트로피에 대해서는 진지한 연기자 이미지를 해치건 말건 환영이다. 상이라면 밥상이건 뭐건 받는 편이 낫다는 주의. ‘깊이에의 강요’를 얼마나 싫어하냐면, 만의
네 가지 키워드로 읽는 휴 그랜트의 매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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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넷. ‘내추럴’형의 유혹자로버트 그린이 쓴 <유혹의 기술>의 분류를 응용하자면, 휴 그랜트는 ‘내추럴’형의 유혹자다. ‘내추럴’은 자연스럽고 천진난만하며 자신의 행위가 야기할 파장에 상대적으로 무심하며 스스로의 결함과 약점을 최대한 간접적인 방식으로 전해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유혹자. <네번의 결혼식…> 오디션장에서 “배우는 성인의 직업이 아니다”라고 스스로 말한 바 있는 휴 그랜트의 가슴에는 듬뿍 사랑받고 자란 소년이 들어앉아 있다. 좋은 머리와 귀여운 외모로 얻는 호의와 사회적 혜택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집에 돌아와서 엄마가 없으면 불안해서 눈꺼풀에 경련을 일으키는 소년. 1994년 매춘 스캔들이 솔직한 사과 한마디로 대중에게 쉽게 용서된 것도 돈많은 스타의 추태가 아니라 사춘기 남학생의 철없는 탈선으로 비쳐진 덕택이 컸다.“어머니는 나와 형에게 애정을 퍼부었다. 넉넉히 사랑받으면 사랑을 공기처럼 당연시하게 된다. 문을 열고 나아가 사랑을 찾아 헤매고
네 가지 키워드로 읽는 휴 그랜트의 매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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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기 멜로로 귀환한 ’소나기’ 동화가분명 예외적인 일이다. 사람들은 누군가가 어떤 계기로 성공을 하고나면, 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그 사람의 일기장을 들춰보는 행사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만약 그 사람이 오랜 기간의 ‘공백기’를 거쳤거나, 지극히 입지전적인 인물일 경우, 그 행사에 동석하지 못해 조급해하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반가움과 궁금함의 표시일 것이다. 하지만 뒤늦은 관심과 호기심으로 도배된 칭송은 여전히 현재와 맞물려 있다고 생각하는 당사자의 자기 판단과는 달리, 그 과거 궤적들을 추억의 앨범 속에서만 찾아내도록 유도하거나 구태여 묻어놓도록 강요하는 무례함으로 전도되기도 한다.곽재용 감독은 8년간의 공백을 깨고 <엽기적인 그녀>로 한국영화사에 또 하나의 거대 흥행작을 추가했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엽기적인 그녀>의 상업적 성공 이후, 그러니까 ‘곽재용이 돌아왔다’고 소문이 자자하던 그때, 반가움의 표시이건 무례함의 호기심이건 ‘감독 곽재용’에
`흥행감독` 타이틀 얻은 곽재용 감독의 어제와 오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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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클래식>의 지혜가 어머니 주희의 남자친구 준하의 편지를 읽음으로써, <비오는 날의 수채화>의 지혜와 지수의 사랑은 되살아난다(참고로 <비오는 날의 수채화> 1, 2편과 <클래식>에서의 딸의 이름은 모두 ‘지혜’이다. “원래 딸아이 이름을 지혜라고 지으려고 했지만, 한자가 좋지 않다고 해서 ‘지수’로 바꿨다.” 그리고, 곽재용 감독이 진짜 엽기녀를 창조하기 위해 요즘 세대인 딸들에게 알게 모르게 많은 힌트를 얻은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지혜의 목소리, “아침에 창문을 열었을 때 생량한 바람이 가을을 예고해줍니다. 그 바람을 편지지에 실어 당신에게 보냅니다…”. “생량한?… 바람을 편지지에 실어 당신에게 보냅니다?… 유치해!… 음… 클래식하다고 해두지 뭐….” 마치 조소처럼, 하지만 풀리지 않을 주문처럼 영화의 초입부에 등장하는 이 대사는 멜로의 감정을 촌스럽다고, 또는 보수적이라고 비판하는 시각들에 대해 지혜의 입을 통해
`흥행감독` 타이틀 얻은 곽재용 감독의 어제와 오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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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을 향하여,그리고 흥행도 좀 향하여유난히 춥고 음습한 겨울날씨를 동정받을 때마다, 독일 사람들이 잘하는 말이 있다. “그 대신 우리한테는 따뜻한 난방기가 있잖아요.” 심리상태에 영향을 줄 정도로 우울한 기미가 가득한 바깥의 추운 날씨에도, 난방이 잘된 집안에 들어와 ‘하이중’(Heizung)이라고 부르는, 라디에이터 난방기의 온기를 쬐며 창 밖을 내다보면서, 자기들만의 은밀한 위로감을 맛본다는 이야기다.베를린영화제가 2월에 열리는 것은,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영화관람이 베를린 사람들에게 ‘실내오락’으로서 솔깃할 뿐더러 절실한 것이리라는 계산 내지 배려가 작용했을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부산영화제를 가본 사람들이라면 깜짝 놀랄 법하게, 베를린영화제가 거리에서는 거의 축제 분위기를 내뿜지 않는 것도 따뜻한 ‘실내’로 파묻히고 싶어하는 독일 사람들 특유의 겨울심리 탓일지 모른다.‘관용을 향하여’(towards tolerance)2월6일 제53회 베를린영화제가 개막했다. 그에 하루
제 53회 베를린영화제 개막리포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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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댑테이션> <디 아워스>, 예측최고별점 받아세계 변방의 사람들을 다룬 영화들이 ‘관용을 향하여’라는 영화제 모토와 함께 영화제 서두에 거론되는 것과는 별도로, ‘황금곰상을 향하여’ 좀더 기대를 받고 있는 영화들은 따로 있는 것이 사실이다. 22편의 경쟁부문 작품들 가운데서 스파이크 존즈의 <어댑테이션>, 스티븐 달드리의 <디 아워스>는 가장 먼저 경쟁작 예측별점을 매긴 TV영화잡지 <TV무비>에서 최고별점을 받은 작품들. 이 밖에도 앨런 파커의 <데이빗 게일의 생애>, 스티븐 소더버그의 <솔라리스>, 스파이크 리의 , 조지 클루니의 <위험한 마음의 고백> 등 미국영화들은 올해 막강한 라인업을 경쟁부문에 갖추고 있다. 사형제도 반대운동가인 대학교수가 동료 여자 운동가를 살해한 뒤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은 <데이빗 게일의 생애>는 개막작 <시카고>를 제외하고는 일반
제 53회 베를린영화제 개막리포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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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작 <시카고> 기자회견“관용? 글쎄… 감독이 날 참아줬다”▶ 롭 마셜 감독뮤지컬을 각색하면서 어떤 것에 주안점을 두었나.뮤지컬과 영화는 상당히 다른 각자의 방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을 뮤지컬과 ‘비슷한’ 드라마로 만들었다. 노래를 스토리 중간중간에 나오게 하고, 또 스토리는 노래의 일부로서 서로 분리될 수 없게 하도록. 노래가 나올 때는 관객들이 엔터테인먼트로서 노래를 즐기고, 또 노래가 끝나면 스토리로 돌아가는 걸 무리없게 하는 게 나의 의도였다.영화의 쇼장면들이 마치 진짜 웨스턴 쇼처럼 완성도가 있다. 어떤 방식으로 작업했나.실제로 쇼공연을 하듯이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하고 춤을 추는 리허설을 6주 동안 했다. 캐서린이나 르네, 존 모두 잘해주었고, 정말 쇼 같다는 말에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 우리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뉴욕 브로드웨이에 서도 될 정도로. (웃음)(왼쪽부터) 존 C. 레일리, 르네 젤위거, 리처드 기어, 캐서린 제타존
제 53회 베를린영화제 개막리포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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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기네스북, 신기록 진기록 열전1919년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가 탄생한 이래, 80몇년 동안 한국영화가 남긴 기록을 들춰보는 일은 엉뚱하다. 영화 자체가 무언가를 기록하는 매체라곤 하나, 스포츠가 아닌 이상 기록을 위해 만들지는 않을 터. 신성일이 ‘최다 작품 출연’ 기록을 세우기 위해 숨을 참아가며 536편의 영화에 출연했을 리 없고, 109편의 영화를 연출한 김수용 감독이 ‘최다 작품 연출’ 부문 메달을 따기 위해 고영남 감독과 임권택 감독을 상대로 ‘할리우드 액션’을 펼쳤을 리도 없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영화의 진기록들은 영화의 본질과는 거의 연관이 없을지도 모른다.물론, 아무리 한국영화의 갖가지 기록이 예술이나 장사와 무관하다 되뇐다 해도 그리로 눈길이 쏠리는 것마저 막을 순 없다. 크고, 길고, 많고, 강한, 그리고 오래된 것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관심을 끌어당기지 않는가. 여기 소개되는 기상천외 신통방통 황당무계 기록들 또한 어떤 이에게
스크린 진기록 대행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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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이 영화화된 소재, 소설, 캐릭터 춘향단연 남원골의 절세미인 춘향이었다. 1935년 문예봉과 한일송이 출연한 이명우 감독의 <춘향전>이 발표된 이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에 이르기까지 이 이야기는 모두 13번에 걸쳐 극영화로 제작됐다. 1999에는 애니메이션으로 <성춘향전>이 만들어지기도 했고, <탈선춘향전>(1960)이나 <그 후의 이도령>(1936) 같은 ‘유사작’도 발표됐다. 멜로드라마에 민족정서를 고루 녹인 이 고대소설이 그동안 가장 각광받았는다는 사실은 1961년 극적으로 표출된다. 당시 설 극장가에서 김지미를 내세운 홍성기 감독의 <춘향전>과 최은희 주연, 신상옥 연출의 <성춘향>이 피할 수 없는 정면대결을 펼친 것. 결과는 신상옥의 압승이었지만, 사실 주가가 오른 것은 춘향 캐릭터였다. 당시 춘향을 연기한다는 것은 최고의 여배우의 다른 표현이었다. 김지미, 최은희 외에도 홍세미, 문희,
스크린 진기록 대행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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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 Maker #1: <서편제> 개봉관에서 가장 오랜 기간 상영된 영화(194일), 단관 최다 관객동원(84만6427명)<서편제>의 성공은 일종의 신화다. <쉬리>가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영화 흥행의 한계치’라는 120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았고, 1개관에서 개봉하던 당시 가장 오랫동안 상영되며,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사실, <장군의 아들> 시리즈로 큰 수익을 올렸던 태흥영화는 이 영화에서 상업적 성공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임권택 감독의 예술성을 보여주려 했을 뿐이다. 하지만 1993년 3월10일 첫 기자시사회가 열리자 태흥 모든 직원의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영화를 본 기자들이 침이 마르도록 칭찬에 또 칭찬을 했고, 다음날 열린 평론가 시사회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쏟아졌다. 태흥은 빗발치는 요청 때문에 당시로선 이례적으로 연일 시사회를 열며 개봉일인 4월10일의 ‘대박’을 기대했다. 아뿔싸, 개봉관인 단성사의 첫날 결과는
스크린 진기록 대행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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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가 가장 사랑한 작가는 이광수, 최인호간발의 차로 이광수가 최인호를 앞섰다. 지금까지 이광수의 작품이 영화화된 것은 21번. 1925년 이경손 감독이 <개척자>를 스크린에 옮긴 이후 김기영, 전창근, 강대진 감독들이 뒤를 이었다. 1960∼70년대 여러 감독들이 다들 한번씩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무래도 문예영화 제작 붐과 관련이 있다. 14편 중 특히 <무정> <유정> <사랑> <흙> 등은 2번씩 영화화됐고, <꿈>은 배창호 감독이 1번, 신상옥 감독이 2번 모두 3번씩이나 영화화됐다. 하지만 이광수보다 최인호의 작품이 영화화된 게 하나 더 많다. 최인호는 <바보들의 행진> <적도의 꽃> <겨울나그네> <황진이> 등 15편이, 21번 영화화됐다. 필모그래피 중 배창호 감독과의 작업이 압도적으로 많다. 1976년 <걷지말고 뛰어라>를 직접 연출하기도
스크린 진기록 대행진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