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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여인상의 이단, 혹은 관능의 페르소나현대의 여성주의자들을 열광하게 만든 도금봉, 그 회고전의 의의1960년대 황금기의 한국영화에는 최은희, 황정순, 문정숙, 주증녀 등 훌륭한 여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희고 오동통한 얼굴과 독특한 음색을 지닌 도금봉은 때로는 이들 기라성 같은 스타들의 옆에 서 있는 조연으로, 때로는 틈새를 꿰찬 주연으로 자기만의 자리를 만들었다. 도금봉의 무엇이 오늘날 현대적인 여성주의자로 하여금 쾌재를 부르게 하는지, 여기 그 비밀의 지도를 펼쳐보기로 한다.주유신/ 영화평론가, 서울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cinefemme@hanmail.net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는 다름 아닌 ‘기억’이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서 스스로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역사를 써내려가기도 하고 자아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런데 20세기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대중들을 위무해온 대중문화 속에서도 영화는 이러한 기억의 의미나 역할에 있어서 가장 중심을 차지한다. 영화를 만든다는
제5회 서울여성영화제 가이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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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영화를 찾아서매진예감! 서울여성영화제 화제작 9편영화제는 관객의 잔치다. 이 영화제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해마다 90%가 넘는 좌석점유율을 자랑한다. 의미도 좋지만, 재미난 작품을, 안전한 작품을 기대하는 관객이여! 그대들을 위한 일급 정보가 있다. 조기 매진이 예상되는, 그래서 예매를 서둘러야 할 작품들을, 여기 은밀히 소개한다. 소문내지 말 것!개막작 <미소>는 시력을 잃어가는 여류 사진작가가 극단적인 불안과 고통에 직면해, 초월과 비상을 꿈꾸게 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반가사유상의 미소에서 착안했다는, 그 영화 <미소>를 수식하는 말은 참 많다. 박경희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자, 임순례 감독의 프로듀서 데뷔작이자, 송일곤 감독의 배우 데뷔작. 이번 여성영화제 개막 상영이 ’월드 프리미어’라는 점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미소>의 제작과정을 지켜본 이들의 증언에도 주목하자. 그들은 <미소>가 제작 공정의 일선에 선
제5회 서울여성영화제 가이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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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켜라!>는 이야기와 캐릭터 모두 지금까지 한국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아주 괴상한 영화다. 그러나 이건 분명 애니메이션이나 괴수가 나오는 특촬영화, 패러디영화가 아니다. <지구를 지켜라!>는 신랄한 드라마다, 철저하게 비주류 감성으로 무장한.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해줄 수 없는 마지막 반전은 너무 이상해서 오히려 현실적이다. 평론가들은 <지구를 지켜라!>를 어떻게 보는지. 김봉석에게 물었다. <지구를 지켜라!>는 4월4일 개봉한다.
<지구를 지켜라>. 이건 독수리 오형제에게나 어울릴 대사가 아닐까? <지구를 지켜라!>란 제목을 듣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일 반응이다. 나 역시 그렇다. 스파이더맨과 엑스맨, 헐크까지 지구를 지키겠다고 나서는 판이지만 여전히 <지구를 지켜라!>라는 제목은 촌스럽고 유치하다. 지가 뭔데 지구를 지키겠다는 거야? 게다가 누구한테? 그런데 외계인이란다. 병구가 홀
<지구를 지켜라!> & 백윤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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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한 선배가 있었다. 시도 쓰고, 동화도 쓰던 그 선배. 엄청나게 가난한 탓에 중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채 막노동판을 떠돌았고, 글을 쓰면서도 돈이 떨어지면 여전히 막노동을 하곤 했다. 개인적으로 아주 친하지는 않았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자주 보고 집에 놀러가기도 했다. 한동안 그 선배의 얼굴이 보이지 않다가 아프다는 말을 들었다. 병원에 입원했고, 정신병원이란 말을 들었다. 정신분열증이었다. 얼마 뒤 조금 호전되어 퇴원했다는 말을 듣고는 친구들과 함께 집을 찾았다. 언덕을 올라 집으로 향한 때는, 날선 바람이 불던 연말이었다. 선배의 얼굴은 약간 수척했지만, 약간은 경박하게 느껴지던, 그 맑은 웃음만은 여전했다. 그런데 조금 달랐다. 선배는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엊그제는 지구의 미래가 걱정되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이 지구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를 고민하며 밤새 뒤척였다. 선배의 눈에는 밝은 빛이 서려 있었다. 그건 일종의 믿음이었다. 왜 그랬는
<지구를 지켜라!> & 백윤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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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지켜라!>를 절찬하는 이유 하나는 바로 그것이다. 데뷔작이라는 것. 요즘 한국영화의 신인감독들은 너무 물렀다. 좋은 영화를 만들고는 있지만 너무 쉽게 타협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세련되고, 매끄럽고, 원숙하고, 장르적 규칙을 적절하게 수용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은 나중에도 할 수 있다. 잘 다듬어진 데뷔작을 보는 일은 나름대로 좋은 일이지만, 희열을 주지는 못한다. 나는 지금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허름한 코아아트홀에서, 전혀 낯선 이름의 홍상수 감독이 만든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고 나오자, 유난히 바람이 몸을 휘감고 돌아가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 세상이 조금 더 회색으로 보였다. <지구를 지켜라!>는 그런 점에서 탁월하다. <지구를 지켜라!>를 보고 나오면서, 주변을 돌아보니 기분이 묘했다. 현실과 비현실이 뒤엉킨 느낌은 이상하게 즐거웠다. <지구를 지켜라!>는
<지구를 지켜라!> & 백윤식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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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랄하고 비굴하고 때론 인간이길 포기했어요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고, 백윤식은 오십에 영화를 만났다. 50여년의 세월 속에서 30년 넘도록 브라운관의 스타로 군림해왔던 그는 <지구를 지켜라!>를 통해 연기인생의 새 장을 열었다. 1970년 KBS 공채로 연기활동을 시작한 이후 뭇 여성의 애간장을 태우는 꽃미남이었고, 특집극에서 나운규, 이중섭 등이나 <TV문학관>의 주연을 단골로 맡는 연기파였으며, <서울의 달> <파랑새는 있다>에선 무표정한 얼굴로 촌철살인의 유머를 구사해 ‘코미디언을 웃기는 연기자’로 불렸던 백윤식이지만 <지구를 지켜라!>의 강 사장 역은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었다. TV와 제작 패턴이 크게 다른 영화현장에 적응하는 것에서부터 한국영화사에서 전례가 없을 정도로 황당한 내용의 시나리오를 소화하는 점,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을 표출해야 하는” 강 사장 캐릭터를 체화하는 일까지 그로선 하나같이 난
<지구를 지켜라!> & 백윤식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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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3. ‘찌리리’와 ‘찌지직’을 극복하라 -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살다
“잠깐 스톱. 영화사에서 온 분들 좀 불러줘요.” 백윤식은 등골 저편에서 뭔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아직 촬영을 시작하기도 전인데 벌써 찌리리하다니.’ 백윤식은 걱정이 됐다. 일을 하다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을 맞거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몸 안 깊숙한 곳에서 전류 같은 게 발생하곤 하는데, ‘찌리리하다’는 건 이때 쓰는 그만의 표현이다. 이보다 더한 단계는 ‘찌지직’이라고 하는데, 촬영 도중 이 단계로 진입한 적이 없었던 건 천만다행으로 보인다.
이날의 ‘찌리리’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 쌀쌀하던 어느 날 신체의 틀을 뜨기 위해 미사리 부근의 특수분장 업체를 찾았을 때 발생했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특수분장 직원이 그에게 “혹시 감기 걸리지 않으셨어요?”라고 물었다. 난데없는 질문에 도리질을 치며 맥락을 파악하려는데 갑자기 콧구멍만 남겨두고 머리 전체에 실리콘을 칠하는 게 아닌가.
<지구를 지켜라!> & 백윤식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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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 5. 세대를 넘어 부산을 넘어 - 행운과 불운의 쌍곡선
따지고 보면 운이 좋은 거였다. 천재인지는 몰라도 특별한 것만큼은 확실한 장준환 감독이나 개성이 진한 홍경표 촬영감독, 집요할 정도로 자기 세계를 추구하는 장근영 미술감독을 굳이 거명하지 않더라도 그의 영화작업에 함께한 스탭들은 모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일벌레들이었으니까. 백윤식에게 2002년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단지 만족스런 영화 한편에 출연했다는 것만이 아니라 대부분 20년 이상 어리지만 마음만은 어울릴 수 있는 ‘동료’들과 함께 보냈다고 추억하기 때문이다. 이건 스탭들이 그를 배려했던 만큼, 그 또한 그들의 젊음 안으로 들어가려 무던히 노력한결과이기도 하다. 장준환 감독에 따르면 백윤식은 촬영장의 활력소였다. 그는 김 형사 역의 이주현을 보면서 “쟤는 칙칙이(백윤식은 땀을 표현하기 위해 물을 분사하는 기구를 그렇게 불렀다)만 뿌려주면 좋아하더라” 식으로 엉뚱한 말을 툭툭 던져 촬영장의 긴장감
<지구를 지켜라!> & 백윤식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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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反戰)과 반전(反轉), 어두웠던 파티장전쟁과 쇼 사이에서 갈등했던 75회 오스카, 작품상은 <시카고>몇몇 스타들이 이라크 전쟁을 이유로 불참할 것을 밝혔을 때, 이번 오스카에서 반전의 목소리가 적지 않게 터져 나올 것은 이미 예상된 일이었다. 그러나 이 '지상 최대의 쇼'는, 세계 최고의 각본 없는 드라마답게 또 다른 반전을 준비하고 있었다.제75회 아카데미 영화상 주요 부문 수상 결과작품상 <시카고>(미라맥스 제작) | 감독상 로만 폴란스키 <피아니스트> | 여우주연상 니콜 키드먼 <디 아워스> | 남우주연상 에이드리언 브로디 <피아니스트> | 여우조연상 캐서린 제타 존스 <시카고> | 남우조연상 크리스 쿠퍼 <어댑테이션> | 각본상 페드로 알모도바르 <그녀에게> | 촬영상 콘래드 L. 홀 <로드 투 퍼디션> | 각색상 로널드 하우드 <피아니스트> | 의상상 콜린 애
제75회 아카데미 영화상 The 75th Annual Academy Award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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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부시 정신차리시오!" 부시 대통령에게 강도 높은 비난을 한 마이클 무어.캐서린 제타 존스(왼쪽)는 만삭의 몸에도 퀸 라티파와 <시카고>의 주제가를 불렀다.스코시즈 역시 미라맥스의 열의에 밀려 각종 토크쇼 홍보까지 참여했다. 작품상 후보 중 유일하게 미라맥스와 연고가 없는 <피아니스트>의 선전도 ‘무조건 따놓은 당상이니 인정하라’는 식의 귄위적인 홍보전이 저항을 자극했음을 짐작게 한다. <갱스 오브 뉴욕>에 비할 수는 없지만 <디 아워스>의 실망도 컸다. 문학적 배경, 유려한 형식미, 명품 연기 앙상블로 제작단계부터 확실한 오스카 카드로 불렸던 <디 아워스>는, 영화가 지닌 미덕의 1/3 미만인 니콜 키드먼의 연기를 공인받는 트로피 한개로 만족해야 했다.또 다른 통쾌한 반란은 시상식 현장 공연에서 제외된 에미넴의 <Lose Yourself>에 돌아간 주제가상. 놀라움을 숨기지 못한 시상자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에게서
제75회 아카데미 영화상 The 75th Annual Academy Award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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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 계기로 본 히치콕 베끼기의 역사4월4일부터 4월11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히치콕 회고전’이 열린다. 수없이 많은 숭배자들을 거느리고, 여전히 서스펜스의 아버지로 우뚝 서 있는 히치콕. 히치콕과 그를 따르는 히치콕주의자들의 관계를 따라가며 그 간격의 폭을 재본다. (서울시네마테크는 5월 중순 히치콕 회고전 2탄을 준비 중이다.)프랑수아 트뤼포는 이렇게 썼다. “히치콕이 서스펜스만을 다루었다고 비난하는 것은 그가 가장 덜 지루한 영화감독이라고 비난하는 것과 같다.” 1925년 <쾌락의 정원>으로 데뷔하여 76년 <패밀리 플롯>을 끝으로 은퇴하기까지 총 54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히치콕이 흥행에 실패한 사례는 손에 꼽힐 정도이다. 그는 언제나 대중을 사로잡는 감독이었다. 누벨바그 세대는 그런 히치콕을 전면에 세워 영화의 본질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누구의 작품인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몇 안 되는 감독 중 하나”라고 트뤼포는 히치콕의 독창적
4월 4∼11일까지 열리는 히치콕 회고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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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 드 팔마는 그를 모방하지 않았다?히치콕에 대한 트뤼포의 말을 조금 변형하자면,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누구의 영화를 따라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몇 안 되는 감독’이 바로 브라이언 드 팔마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는 자신을 히치콕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싸이코>에 영감을 얻어 <자매들>을 만든 것이라고 말한 그 순간부터 평단은 브라이언 드 팔마를 히치콕의 인형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브라이언 드 팔마는 <강박관념>을 만든 뒤에 꼭 그런 건 아니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나아가 히치콕의 <현기증>과 <사이코>를 조합한 것으로 유명한 <드레스드 투 킬>을 만든 다음에는 자신의 영화가 히치콕과 다른 점이 많다며 오히려 성질을 냈다. 특이한 반응이긴 하지만, 다행스럽게 드 팔마만의 창조력은 점점 더 빛을 발한다.하지만 <강박관념>은 <현기증>을, <드레스드 투 킬>
4월 4∼11일까지 열리는 히치콕 회고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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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가 사랑한 영화들4월4일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히치콕 회고전 상영작 9편39계단 | The Thirty-nine Steps | 1935년 | 감독 앨프리드 히치콕 | 출연 매들린 캐롤 | 81분 | 흑백“<39계단>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빠른 전환입니다.” 영국 시절 히치콕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영화이며, 히치콕의 이름을 알리는 데 공헌한 영화. 영국을 여행 중이던 리처드 핸니는 ‘미스터 메모리’의 공연을 보게 된다. 공연 도중 총성이 울리고 뮤직홀은 엉망이 된다. 핸니는 공연장을 빠져나오며 영국 스파이인 한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자신이 영국을 위해 일하는 스파이고, 39계단이라는 국제 범죄단이 중요한 정보를 국외로 빼돌릴 것이라고 말한 뒤 칼을 맞고 죽는다.숙녀 사라지다 | The Lady Vanishes | 1938년 | 감독 앨프리드 히치콕 | 출연 마거릿 록우드 | 97분 | 흑백도시에 눈사태가 나고 기차가 정지한다. 승객들은 호텔에 머문다. 그리
4월 4∼11일까지 열리는 히치콕 회고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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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씨 부부 | Mr. and Mrs. Smith | 감독 앨프리드 히치콕 | 출연 캐롤 롬바르드 | 95분 | 흑백“이 영화는 여배우 캐롤 롬바드에게 내 우정을 표하기 위해 만든 겁니다.” 데이비드 스미스와 애니 스미스 부부는 많은 부분에서 규칙들을 무시하면서 살아간다. 애니는 시간을 거슬러갈 수 있다면 그래도 다시 결혼할 거냐고 데이비드에게 묻는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그러지 않을 거라고 털어놓는다. 스크루볼코미디에 가까운 히치콕 코미디영화. 그러나 질 들뢰즈가 가장 히치콕적이라고 부른 영화.망각의 여로 | Spellbound | 감독 앨프리드 히치콕 | 출연 잉그리드 버그만 | 111분 | 흑백그린 매너스 정신병원 원장 머치슨 박사가 은퇴하고, 에드워즈 박사가 새로 부임한다. 그러나 에드워즈 박사에게서 이상한 모습들이 발견된다. 직원들의 질문에 이상한 답변을 하기도 하고, 극도의 신경증적인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여의사 피터슨은 에드워즈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가 심한 정신분열
4월 4∼11일까지 열리는 히치콕 회고전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