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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아주 재밌는 곳을 하나 발견했다. 그곳은 광화문에 위치한 미대사관 내 미국 비자 발급처 또는 신청소다. 뉴욕의 링컨센터와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줄여서 MOMA라고 한다)에서 주최하는 뉴디렉터스/뉴필름스에 초청되었기 때문에 미국 비자를 신청하러 그곳에 간 적이 있다. 처음엔 미국에서, 그것도 권위있는 영화제라고 하니까, 그런 데서 초청한다고 하니까 비자가 그냥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인터뷰라는 걸 해야 된다고 하기에 내심, “음, 역시 중요한 영화제라고 해서 그런가?” 하면서 브라이언 드 팔마의 <스카페이스>의 첫 장면을 떠올렸다. 푸에르토리코 난민이었던가 이민자였던가… 하여튼 알 파치노가 의자에 앉아 미국의 어떤 행정관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떠올랐던 것이다.적어도 난 이민자가 아니고 난민은 더더욱 아니니까 책상을 사이로 소파나 의자에 앉아 인터뷰라는 걸 하겠군. 무슨 차를 마시겠냐고 물으면 미국 커피는 화가 치밀 정도로 맛이 없으
광화문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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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은 금물이다. <베사메무쵸>의 촬영장인 양수리 종합촬영소. 본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감기에 걸렸는지 검은 패딩 점퍼를 두른이미숙의 코 훌쩍이는 소리만이 스튜디오의 공기를 흔든다. 이미숙은 한 신 촬영이 끝나면 곧바로 감독 옆에 놓여진 의자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서모니터를 응시한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안 나. 두번째는 어떻게든 하려고 해. 그런데 더 잘 안 돼. 그래서 세 번째는 하기 싫어져.”한참을 들여다보다 이미숙이 전윤수 감독에게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이어지는 다음 장면. 18평 아파트에 네 아이들과 따뜻한 보금자리를 영위하던부부가 남편의 실직이라는 사건 앞에 점점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만반의 준비를 한 카메라도 긴장한 것일까. 숨을 죽이고 인물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던카메라도, 예기치 않게 끼어든 실수 앞에 잠깐 당황스러워 한다. 영희의 손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 “다시 찍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 스탭이묻자 박희주 촬영감독은 “그냥 가자”고
18평 아파트에 드리워진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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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의 민족주의자 밀로셰비치가 전쟁범죄자로 낙인찍힌 일을 패권주의의 승리라고 말할 생각이 적어도 내게는 조금도 없다. 무자비한 인종청소, 그 과정에서 인종개량의 이름으로 자행된 강간, 그건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다. 오늘 과거를 반성한다한들, 그 잘못을 되풀이하는 바보짓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나마 회복한 ‘건강한 정신’으로 세상과 삶을 일으켜 세우려 안간힘을 쓰는 동안, 우리는 한뼘씩 사람답게 사는 영역을 확장시켜나갈 수 있다.제3회 여성영화제가 ‘쟁점’이라는 부문을 따로 만들어놓고, ‘포화 속의 여성들’을 초청해들였다. 그 ‘여성’들은 때로 남편과 아들을 전쟁에서 잃어버린 아내거나 어머니이다. 직접 싸움터에서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의 슬픔과 비탄은 전쟁의 비극을 정서적으로 환기시키는데 더없이 적절하다. 전쟁은 물론 그러한 상실만 강요하지는 않는다. 아이다처럼, 환향녀들처럼 남자들이 패배하면 그들의 여자들은 승리자의 전리품이
제3회 여성영화제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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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1. 현장에 모니터가 귀하던 시절, 영화의 순서편집을 대행하듯 촬영 카메라의 앵글대로 컷을 연결해 현장 사진을 찍던 때가 있었다. ‘스틸’이라는 말조차 생경하던 현장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최근 한국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스틸 스탭의 위치는 어제와 사뭇 다르다. ‘정지해 있다’는 뜻의 ‘still’이 말해주듯, 움직이는 영화의 장면장면을 사각의 틀 안에 고정시키는 작업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으나, 기록과 보존의 역할이 강조되던 예전에 비해 예술적 측면이 많이 부각되었다. 홍보 때문이다. 홍보를 통한 사전 이미지 메이킹이 영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지금, 각종 보도자료로 동원되는 사진이 바로 스틸사진이다. 하나 더, 영화보다 먼저 만나는 포스터 역시 잘 찍은 스틸사진을 이용해 만든다. 여기서 ‘잘 찍었다’의 의미는 마케팅 전략과 영화의 이미지, 그리고 찍는 사람의 정서와 감각이 한데 어우러진 사진을 의미한다. 그러한 한장의 사진은 두고두고 관객의 뇌리에 남아
따뜻한 영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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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하셨어요? 밥부터 먹고 하죠.” 아침부터 바빴던 탓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왔다는 이 배우는 인터뷰 전날 편집부로 전화를 해왔다. “정운택인데요.” 그리고 재빨리, 행여 전화를 받은 사람이 자신을 모를까 “<친구>의 정운택”이라고 인사를 정정한 뒤 “뭘 준비해가면 될까요, 지하철 어떤 역에서 내릴까요”라며 입학식 앞둔 신입생 같이 달뜬 목소리로 이것저것을 물어왔다. 그렇게 다음날 이루어진 그와의 만남은, 연기가 모락모락나는 오징어덮밥을 앞에 두고 ‘이팅 앤 토킹’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to부정사가 수동태로 쓰일 때의 예문을 말해볼 사람…” 하던 선생의 눈을 피해 열심히 이사(?)를 다니던 ‘쥐같은 새끼’, 공원에서 여학생을 괴롭히는 깡패들을 향해 이소룡 쌍절곤으로 돌진하던 무모한 놈. 울산에서 자란 정운택(26)은 부산예대 연극과를 졸업하고 서울 대학로에 입성한 연극배우였다. 대표작은 <유리가면> <세일즈맨의 죽음> . “처음엔 10년 정
영화? 초심`대로 한다, <친구>의 정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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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요, 머리로 배우해요.” 오천련은 스스로를 별로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대신 머리가 좋다고 주장하는, 흔치 않은 여배우다. “머리 때문에 성공했다”고 그녀는 스스럼없이 말한다. 어렸을 때 그녀는 ‘나중에 커서 보고 실망할까봐’ 어머니가 사진을 찍어두지 않았을 만큼 배우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던 평범한 아이였다. “선원이나 비행사가 꿈이었죠. 연기를 하게 된 건 대학에 들어와서였어요.” 대만 예술대학 재학 시절 처음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한 그녀는 스물두살 때 <천장지구>로 영화배우 데뷔를 했다. 이후 <음식남녀> <야반가성> 등에 출연, 이제 서른셋 나이인 그녀에겐 언제부턴가 ‘지적인 배우’라는 호칭이 따라다닌다. “생각을 많이 하고 여러 방면의 지식을 흡수하는 것, 무엇보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제 힘이에요.”
“타깃 거리 확보!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요즘 오천련은 이승수 감독의 영화 <비너스>에서 ‘엔젤’ 역을 연기하고 있다.
꼼꼼하고 까다롭게, 머리로 하는 연기, 오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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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도 초반, ‘다슬이’ 심은하의 청순함과 함께 농구공을 튕기며 나타난 장동건의 젖은 눈동자는 별이 되어 가슴에 박혔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 별은 조금의 흔들림 없이 브라운관을 수놓았고, 잠시 스크린 위에서 그 빛이 쇠락할라치면, 먼 베트남이나 중국의 하늘에서 몇 곱절의 광채를 띤 채 빛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광채 뒤에 숨겨둔 다른 모습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10년이 걸렸다. 사람들의 찬사를 기대로 바꿔놓기까지.
“처음 찍은 영화 같았어요.” <홀리데이인 서울>부터 <아나키스트>까지 결코 적지 않은 영화를 찍었던 장동건은 서른의 첫해를 넘기며 찍었던 <친구>를 ‘첫 작품’의 마음으로 대했다. 개봉 전까지는 “상상 밖의 생일선물을 준비해놓고 기다리는 아이의 심정”이었다. 물론 드라마 <의가형제>를 통해 악역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기도 했지만 늘 ‘착하고, 멋지고, 잘생긴 장동건’이 삐딱한 눈매에 사시미칼
송아지 같은 눈망울 속 태양은 가득히, <친구>의 장동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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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민병천 감독이 준비중인 SF <내추럴 시티>에 <노랑머리>의 이재은이 캐스팅되었다. 이미 유지태의 캐스팅을 알렸던 <내추럴 시티>는 2080년, 미래의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미래는 유전공학과 기계공학의 발달로 파출부, 쇼걸 등 인간이 하기 싫은 일을 인간유전자를 변형해 만든 사이보그 인간 ‘컴 바이너’들이 대신하는 사회. 여기에 한 컴바이너를 사랑하게 된 인간이 그를 제거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면서 비극은 시작된다. 이재은은 비록 창녀지만 인류의 미래를 구할 마지막 인간인 ‘시온’ 역으로 출연할 예정. <내추럴 시티>는 현재 미니어처작업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이고 4월15일 크랭크인한다.
시온이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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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레터>의 이와이 순지의 조감독 출신으로 작년 제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해바라기>로 국제영화평론가연맹상을 수상했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 재일동포의 이야기를 다룬 <고>(Go)를 연출한다. 도에이가 제작할 예정인 <고>는 지난해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하는 작품으로 재일동포 학생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나서는 이야기다. 유키사다 이사오는 부산에서의 촬영도 기획하고 있으며, 올 11월에 열리는 제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프리미어로 상영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고>, 레디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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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만 해외로 가는 게 아니다. 감독도 간다. 이미 <박하사탕>이 칸, 카를로비 바리 등의 해외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국제무대를 주름잡은 바, 이창동 감독도 당분간 국내에서 보기 힘들 것 같다. 이창동 감독은 4월19일부터 29일까지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뒤 <박하사탕>의 감독 자격으로 샌프란시스코영화제로 날아간다. 게다가 6월9일부터 17일까지 열리는 상하이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 요청을 수락한 상태. <박하사탕> 이후 신작소식이 뜸했던 이창동 감독이 준비하고 있는 다음 영화는 <오아시스>(가제). <초록물고기>나 <박하사탕>처럼 복잡한 서사구조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가련하고 추악한 남녀의 사랑”을 단순하게 그려내겠다는 <오아시스>는 주인공으로 <박하사탕>의 설경구, 문소리를 염두에 두고 있긴 하지만 아직 시나리오가 완성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변동 가능성도 있다. “6
감독님은 출장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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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에딘버러 태생의 숀 코너리에게 스코틀랜드가 도움을 요청했다고 가 보도했다. 스코틀랜드계 미국인들의 문화적 기여를 기념하는 ‘타탄주간’ 동안 “스코틀랜드는 안전하다”는 홍보를 할 인물로 숀 코너리가 선정된 것. 스코틀랜드는 구제역 때문에 관광수입이 줄어 고민에 빠져 있다. “그는 스코틀랜드를 돕고 싶어해요. 시체를 태우는 장작연기는 끔찍하기 그지없지만, 불행 중 다행은 미국인들이 뭐든지 잘 잊어버린다는 거 아닐까요”, 대변인의 말이다.
고향에서 온 S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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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감독님?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맨숭맨숭 입에 올리던 별 뜻 없는 인사말이 이정향(37) 감독을 만나서는 가장 굵직한 질문이 됐다. 3년 전 겨울 우리를 예쁜 자전거에태워 미술관 옆 동물원에 데려다놓고는, 지금껏 편지 한통 없었던 그녀가 드디어 두 번째 영화 소식을 알려왔다. 왜 그리 오래 걸렸냐고 볼멘소리를하려다보니, 하긴 이정향 감독은 언제나 넉넉한 ‘쉼표’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조감독이 되고, 두 번째 조감독을 하고, 데뷔하기까지 그는매번 2년, 3년의 터울을 타박타박 건너왔으니까. 튜브픽처스가 <파이란>에 이어 두 번째로 제작하는 영화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는,“엄마가 섬 그늘에…” 하는 동요 소절을 흥얼거리게 만드는 할머니와 손자의 이야기. 갑작스런 ‘동거’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세상이 잘 알지못하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일러주는 영화라는 점에서, <집으로…>는 <미술관 옆 동물원>과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께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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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한 느낌의 배우 휴 그랜트가 이미지 변신을 위해 한 연예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실수담에 가까운 무용담을 과시했다. “몇년 전, 운전을 하고 있는데 어떤 차가 휙 앞으로 뛰어드는 거예요. 저는 엄청 열이 받아서 그 차의 와이퍼를 뜯어버렸어요. 그러나 곧 정신이 돌아와서 운전사에게 사과하고 새 와이퍼를 살 돈을 물어줬죠. 결국은 같이 웃으며 망가진 차를 쳐다봤어요.” 곧 미국 내 개봉할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그랜트는 여자 꼬시기 잘하는 남자로 나온다. 실제의 그와 흡사한 역이라는 게 친구의 말.
무용담? 아니,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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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디 포스터가 둘째를 가졌다. 그녀에게는 이미 세살이 되어가는 아들 찰리가 있다. 포스터의 둘째 아기 예상출산일은 올 11월. “전 찰리를 가졌을 때 참 좋았어요. 또 한번 전 몸에 좋은 음식과 요가로 가득한 생활을 시작할 거예요”라면서 포스터는 둘째 아기의 별자리가 자기와 같은 전갈자리라는 데 기뻐하고 있다. 찰리의 아버지가 누군지 말하지 않았듯 새 아기의 아빠도 비밀. 그녀는 요즘 부상으로 빠진 니콜 키드먼을 대신해 <패닉 룸>을 촬영하고 있다.
`둘째가 생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