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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워런 비티 감독·주연의 영화 <레즈>(Reds)를 본 것은 94년이었다. 2년 만에 처음 본 영화였다. 아니 정확히 말해, 중간쯤에 남몰래 숨어서 보았던 그 영화, <사랑과 영혼>을 제외한다면 5년 만에 처음 영화를 접해본 셈이었다. 영화는 천상 부르주아 매체라는 당시의 앳된 신념은, 몰래 수업 빼먹고 운동장을 포복으로 빠져나와 개봉관으로 달려갔던 고등학교 시절의 내 영화감독 꿈도 쉽게 단념케 했고, 누구 한명 나무라지 않을 게 분명한데도 몇년 만에 선후배들 몰래 찾아 들어간 극장에서 <사랑과 영혼>을 보며 전혀 동감할 수 없는 한 여성관객의 흐느낌을 들으며 자괴감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럼, 내가 투사였냐 하면, 그건 그 소리를 들으면 날 아는 사람들이 분명 웃어 나자빠질 만큼 난센스 같은 질문이다. 난 그저 맹숭맹숭한 관념론자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역시 그러하고. 하지만 94년 가을쯤이던가, 학술 세미나를 빙자해서 우연찮게 보게 된 <
내 영화의 시작, <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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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대학 도서관에서 옛날 학보들을 뒤적거리다 <문스트럭>에 대한 비평을 하나 읽은 적 있습니다.어디 것이었는지는 몰라도 대충 이런 내용의 문장이 들어 있었다는 건 분명히 기억해요. "도대체 오염된 뉴욕의 하늘에 어찌 그렇게 청명한 보름달이 뜰 수 있는가. 그리고 미국 같은 나라에서 배관공에 불과한 주인공의 아버지는 어떻게 교수보다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가."에헴, 사실 뉴욕 같은 곳에서는 서울보다 보름달이 더 잘 보일 겁니다. 해변 도시여서이기도 하지만 최근 들어 꽤 엄격한 규정을 적용시켰기 때문에 그 동네 대기조건은 서울보다 분명히 낫거든요. 게다가 주인공 아빠와 같은 일급 배관공이라면 대학교수 따위보다야 돈을 많이 벌겠죠. 왜 배관공이 돈을 못 버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어요. 노동자 계급이기 때문에?그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배를 잡았는지 몰라요. 주변 사람들이 신문철을 앞에다 두고 머리를 팡팡 박는 저를 이상한 눈으로 째려보던 게 생각납니다.하긴 10
별은 총총하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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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른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아니면 그 어느 쪽도 아닌, 말하자면 어느 쪽으로도 분류되기를 거부하는 사람인지 어떤지에 대해서도나는 아는 바가 없다. 하루의 빵을 위해 당신이 아침 몇시에 일어나고 몇호선 전철에서 흔들리며 아침 신문을 읽는지, 일터를 향해 걸어갈 때당신의 가슴에 당신만 아는 잔잔한 가락이 흐르는지 어떤지, 나는 모른다. 어제 아침 지하철 역사 계단을 오르면서 당신은 잠깐 발을 헛디디지않았던가? 알 수 없다. 당신은 걸음걸이가 아직 서투르지 않은가, 아기처럼? 아니, 어쩌면 당신은 아기였던 때를 기억하기 위해 가끔 허공을밟곤 하지 않는가? 알 수 없다. 나는 당신에 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내가 당신을 잘 모르는 것은 당신의 홈페이지에 당신 자신에 관한 신상 정보가 너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홈페이지를 만드는 이유와 당신이홈페이지를 지키는 이유는 너무 달라 보인다. 사람들이 부산떨고 자기네 홈페이지에 오만 가지 쓰레기를 쑤셔넣고 있는 동안 당
당신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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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게임>이란 음반 타이틀로 가요계에 컴백한 가수 박진영씨는 요즘 자신의 6집 음반의 노래말로 인해 기독교 윤리실천운동과 YMCA 등 수십개 시민단체들과의 선정성 논쟁에 휩싸였다. 이유는 몇몇 곡의 가사가 청소년들에게 섹스를 조장한다는 것이다.섹스를 조장한다고? 그래서 나는 시민단체들이 문제시한 몇몇 곡들의 가사를 하나하나 뜯어보려다 금세 흥미를 잃고 그냥 노래를 들었다. 노래로 들었을 때는 전혀 선정적이지 않았지만 시민단체들이 문제시한 가사 하나하나를 눈을 감고 음미해보고 거기에 상상력을 가미하고 진짜 그럴까? 하면서 노래를 들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요즘 시대에 그 정도 가지고 누가 그 따위 할 일 없는 짓들을 할까 하고도 생각했다.그러면서 나는 아스라히 피어오르는 눈물없이는 듣지 못할 나의 청소년기가 걷잡을 수 없이 떠올랐다. 때는 1980년대 초반이었다. 우리는 멋을 낸 깜장 교복을 입고, 멋을 냈다고 하지만 교복 가지고 얼마나
우린 그렇게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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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렉>성 밖 늪지대에 사는 거인 슈렉은 독재자 파콰드에게 쫓긴 동화 속 주인공들이 떼지어 몰려오는 바람에 고요한 안식처를 잃게된다. 슈렉은 잠자는 숲 속의 공주 피오나를 데려다 파콰드와 짝지어주고 숲을 되찾기로 계약을 맺고 수다스러운 당나귀 덩키와 함께 모험을 떠난다.앤드루 애덤슨, 비키 젠슨 감독, 마이크 마이어스, 카메론 디아즈, 에디 머피 목소리 연기, CJ엔터테인먼트 수입·배급, 상영시간 83분박평식 드림웍스, 마침내 어른과 아이의 꿈을 낚아올리다 ★★★★심영섭 디즈니 떡됐다 ★★★★유지나 디즈니 판타지의 불온함을 날려버리는 진정한 패러디 ★★★★★■ <스워드 피쉬>FBI에 체포된 뒤, 2년간 복역했고 출감 뒤에는 컴퓨터에 접근금지명령을 받은 세계 최고의 해커 스탠리에게 진저는 자기 보스를만나는 것만으로 10만달러를, 모든 것이 끝나면 1천만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도미니크 세나 감독, 휴 잭맨, 존 트래볼타, 할 베리 출연,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슈렉 / 스워드 피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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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여고생 나미는어느날 교문 앞에서 인신매매를 당하여 짐승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창녀촌을 전전한다. 홍 여사는 필사적인 노력 끝에 딸을 되찾아 집으로 데려오지만너무 늦었다. 나미는 정신착란증세를 보이다가 결국 스스로 목을 매어 자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홍 여사의 복수극뿐이다. 박철수의<어미>는 당시 사회문제화되던 인신매매범들에 대한 일종의 예술적 단죄인데,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면서 나는 전율했다. 절제된 대사와세련된 연출로 빚어낸 한 여자의 집요하고도 냉철한 복수극이 관객의 혼을 쑥 빼어놓았던 것이다. 특히 홍 여사 역을 맡은 윤여정이 마지막으로인신매매단의 보스까지 살해한 다음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경찰이 들이닥치기를 기다리며 담배를 한대 빼어무는 라스트신은 단연 압권이다. 과연 시체도벌떡 일어나 앉게 한다는 김수현이로군! 나는 찬탄했다. 그리고 그의 다음 작품을 목놓아 기다렸다. 그러나 불행히도 김수현은 <어미>이후로는
강렬한 애증과 복수의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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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ngsof New York제작 알베르토 그리말디, 마틴 스코시즈 감독 마틴 스코시즈 각본 스티브 자일리언, 제이 콕스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카메론 디아즈, 다니엘 데이 루이스,토비 맥과이어 수입·배급 코리아픽처스개봉예정 12월도시는 어떻게 갱을 낳는가. 도시는 어떻게, 끝내 스스로를 파괴할 세계를 건설하는가.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뉴욕 창세기’<갱스 오브 뉴욕>은 스코시즈가 그토록 질기게 애착하고 증오해온 고담(Gotham)시의 기원으로 회귀하는 복수의 드라마다. 대서양을건너온 이민들의 충혈된 삶이 길바닥에서 뒤엉키던 1840년대 말 뉴욕. ‘데드 래빗’파의 보스 발론(리암 니슨)은 ‘아메리칸 원주민파’가 사주한‘도살자’ 빌 풀(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손에 쓰러진다. 세월이 흘러 이민들의 표를 매수하며 시정(市政)을 조작한 보스 정치 기구 태머니 홀과뒷거래를 한 ‘원주민파’가 기세를 올릴 무렵 발론의 아들 암스테르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조직을 규합해 복수
애증으로 다시 쓰는 뉴욕 창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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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지방에 장마가 시작됐다는 기상청 예보가 나온 지난 6월23일, 광주에서 세 시간 하고도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전남 고흥군 도양읍의한 폐교는 모처럼 북적거리고 있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의뭉스런 남학생들과 순둥이 같은 여학생들이 조잘거렸을 이 중학교 터를 점령한 것은학원무협영화 <화산고> 제작진이었다. 멀리서 보면 마치 큰 집회라도 열리는 줄 알 정도로 타워에 매달린 커다란 붉은 천이 인상적인이 장소를 포함, 이곳저곳을 돌며 영화 스탭은 벌써 10개월째 진땀을 쏟아내고 있다. 이날 촬영분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조명 타워가 무너지는장면. 세우는 데만 5일이 걸렸고 설치비만 해도 1천만원이 넘게 들어갔다는 시설이라지만 막상 쓰러지고 나면 ‘폐자재’에 불과한 탓에 제작진은이틀 동안 정성들여 촬영준비에 임했단다. 하지만 ‘사건’은 항상 예기치 못한 순간에 벌어지는 법. 사진기자가 잠시 숨을 돌리는 틈에 “어-어-”하는 소리가 나더니 타워가 기울기 시작했다. 보통 공사장
장마야 저리가라, 무협소년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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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다닐 때면, 가장 골치 앓는 질문 중의 하나가 지명이다. 한글을깨치고 나서는 표지판에 적힌 온갖 도시며 동네이름을 가리켜서 저게 뭐냐고 묻는데, 응 동네이름이야 저것도 동네이름이야, 하고 대충 넘어가면서아이들에게 어떻게 읍면동 특별시 광역시 보통시의 차이를 알려주냐 말이야, 하고 자기 변명을 늘어지게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겐 미군정보당국 손에들어간 진주만 암호문처럼 뜻모를 기호지만, 지명은 때로 기억의 저수지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아줌마 고향은 논개로 유명한 진주 남강 바로앞동네인데, 그 지명에는 물살이 급해 동네 친구를 여럿 잡아간 의암바위, 아이들이 한두번씩은 다 빠져보았던 쏘풀밭의 똥통 등의 추억을 비롯해,빤쓰 바람으로 뛰놀던 유년 시절의 한때가 고스란히 갇혀 있다. 갓 어른이 되었을 무렵엔 부산, 하면 여름방학마다 놀러갔던 해운대 해수욕장이생각났고 경주, 하면 너무 재미없고 지루하고 배운 거 없었던 고등학교 수학여행이 떠올랐다. 조금 시간이 지나 부
울고 싶을까요, 웃고 싶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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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 관해 쓰기에 앞서 영화 <진주만>의 포스터를 본다. 포스터 하단에는제목 위에 커다란 전투기 한대가 박혀 있다. 그 위로 지그시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영화 속 세 남녀 주인공들의 얼굴이 보인다. 인물들과 전투기사이에는 빨간 글씨로 다음과 같은 카피가 씌어 있다. “전세계가 숨죽여 기다렸던 사상 최대 전투액션 블록버스터!” 특색없고 진부한 데다가 부조화의기미마저 내비치고 있는 이 포스터는 그런 대로 영화 <진주만>의 성격- 멜로드라마와 전쟁영화의 어정쩡한 결합- 을 잘 요약해놓고있다.컴퓨터 게임을 닮아가는 드라마새벽하늘을 가로지르며 저공비행으로 몰려오는 300여대의 전투기들, 전함으로 돌진하는 어뢰, 그리고 붉은 불길과 함께 침몰하는전함들과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숱한 사람들. 이러한 이미지들이 스펙터클한 소재를 찾는 제작자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다. 이런제작자들의 관심으로 만들어지는 할리우드영화들이 대개의 경우 수긍하기 힘든 이데올로기적
누가 이데올로기를 두려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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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무술인’ 혹은 ‘한국의 성룡’? 이상인이 최첨단 신소재 섬유개발을 둘러싼 국제적인 산업스파이들의 암투를 다룬 <나티 프로젝트>에서 막가파 장 형사로 출연한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항상 ‘정의’와 ‘의리’에 목숨거는 코믹한 이미지의 장 형사. <파랑새는 있다>와 ‘출발 드림팀’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환상적인 발차기가 스크린으로 옮겨지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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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선택’된 <선택>의 주인공들. 정의의∼ 졸라맨? 아니 ‘집념맨’ 홍기선 감독의 <선택>에 조재현, 유인촌, 김갑수, 김규철이 캐스팅되었다. <선택>은 전향서 쓰기를 거부하다 결국 ‘43년 10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세계 최장기수’로 복역한 김선명씨의 실화를 토대로 한 작품. 이미 홍기선 감독의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에 출연하면서부터 돈독한 우정을 유지해 왔던 조재현은 “홍 감독님 영화라면 만사 제치고 달려가겠다”며 주인공인 김선명 역에의 ‘부름’을 거절하지 않았다. 코믹하고 망가지는 캐릭터에서 광기어린 모습까지 그 변화의 폭을 감지하기 힘든 조재현은 현재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에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한참 촬영중이다. 김선명의 정신적 지주이자, 감옥에 함께 있으며 그의 사상 확립을 도운 이영운 역은 연극배우이자 <전원일기>의 둘째아들로 변함없는 믿음을 주는 유인촌이, 김선명과 평생 악연의 고리
희생의 역사에 ‘선택’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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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그녀를 막을 수 없다? 충무로의 큰언니, 이미숙이 드디어 큰일을 냈다. 강제규필름의 창립멤버이자 <단적비연수>의 프로듀서였던 변무림을 대표이사로 하여 <단적비연수>의 감독인 박제현과 함께 영화제작사를 차린 이미숙. 청담동 한편에 자리잡았고 ‘메이’(May)필름이라고 이름지은 이 제작사에서 이미숙은 ‘이사’ 직함을 달고 활동하게 된다. “‘메이’ 즉 5월은 대내외적으로 혁명의 달로 기억되는, 무한한 도전의 신념이 담긴 달이에요.” 이름이 무색하기 않게 메이필름은 이후 ‘20대 관객지향에서 벗어나 소외된 관객을 위한 영화도 만들 것임’을 약속하고 있다. 메이필름은 창립작품으로 <비천무>의 조감독을 지낸 이정철이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하는 <유리케이크>를 내놓을 예정이다. <유리케이크>의 크랭크인은 8월 말이나 9월 초쯤에 이루어진다.20대, 청순한 외모와 담백한 연기로 당시 젊은이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연인’ 이미숙은
메이퀸, 이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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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브가 베이컨이 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전하게 되어 기쁩니다.” MSN 엔터테인먼트뉴스는 꼬마돼지 베이브가 도축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사실무근이었다고 밝혔다. <포스트>의 기사를 비롯한 오보는 돼지의 ‘신분’을 확인하지 않은 데서 기인했다. 그런티라는, 구제역 때문에 도축장에 실려간 6살짜리 영국 돼지가 베이브로 잘못 알려졌던 것이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그런티는 검은 돼지였다고. 더군다나 <꼬마돼지 베이브>가 촬영된 호주에는 가본 적이 없었다니, 베이브가 베이컨이 되지 않은 것은 분명해보인다.
걱정했다, 베이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