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를 서울에서 찍었다면 어땠을까? 조오련과 바다거북이 아니라 장재근과 치타의 대결이었다면, 영도다리가 성수대교였다면, 자갈치가 노량진이었다면, 용두산이 남산타워였다면, 비오는 영등포 뒷골목에 쓰레기차가 뒤집어지고 펄떡이던 쓰레기들이 사방으로 날리던 날, 죽어가던 동수는 이렇게 말하겠지. “어우 야, 그만해…. 나 많이 찔렸잖아.”영화는 결국 이야기지만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은 공간이다. <리베라 메>부터 <친구> <엽기적인 그녀> <나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예스터데이> <정글쥬스> <내추럴시티>, 일본영화 <KT>까지. 이미 개봉되었거나 준비중이거나 촬영중인 많은 영화들이 부산이라는 공간을 촬영장소로 선택하는 배후에는 이들, 부산영상위원회(Busan Film Commission, 이하 부산영상위) 사람들이 있다. 회색의 웅장한 부산시청 의회쪽 건물. 서류봉투를
“오이소, 안 되는 기 없십니더”
-
지난 22일 경기도 고양시의 한 폐공장.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다찌마와 리>의 류승완 감독이 신작 <피도 눈물도 없이>를 밤샘 촬영중이다. 그런데 공포물도 아닌 액션영화의 촬영장이 꽤 괴기스럽다. 부도난 뒤 오래도록 방치된 공장 자체가 워낙 음산한데, 45m 크레인을 동원해 비를 뿌리고 `번개 라이트'로 이따금 벼락치는 효과를 내자 분위기가 딱 잡힌다. 폐차 직전의 차가 공장 안으로 질주한다. 전도연씨가 달려드는 차를 가까스로 피하지만, 차에 내려 다짜고짜 주먹을 휘두르는 이혜영씨까지 피하지는 못한다. “컷!”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나자 두 배우가 지친 표정으로 곧장 모니터 앞으로 다가와 방금 촬영한 분량을 유심히 살핀다. 그러더니 서로 말도 없이 멀찍이 떨어져 앉아 물에 젖은 몸을 닦아내며 휴식을 취한다. 어딘가 신경을 곤두세우는 듯한 긴장감이 두 배우를 감싸고 돈다.격한 액션이 줄곧 이어지는 영화의 특성이 적잖이 작용한 탓이다. 마치, 여성버
감독 왈 펄프 누아르 “피도 눈물도 없이”
-
<나비>가 개봉하는 날. 드디어 개봉일이 왔다. 큰일났군.“안 끼던 반지는 왜 끼고 그래?” 아내가 묻는다. ‘좀 어른스럽게 보이려구 그런다, 왜?’ 속으로 대답해 본다. 거울을 보며 웃음을 지어본다. 거울 속에서 얼굴이 어색하게 웃다 일그러진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루 먼저 개봉한 메가박스의 관객 수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아니지. 정식 개봉일은 오늘인데, 뭐.’ 이리저리 변명거리를 찾다 좀 우습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둔다.주상영관인 서울극장. 어라? 매표소 앞에서 웬 사내가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다. “<나비> 보세요, <나비>. 올해 가장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빨리들 오세요.” 누구지? “배급사에서 나온 사람인데요.” 옆에 서 있던 김??(이름채워주세요) 이사(제작실장)가 가르쳐 준다. 뭔가 일이 잘 안 풀린다는 표정. 돌아보니 <나비> 제작팀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다. 익숙한 얼굴들.<나비>는 유난히 제목 때문에 말이
아직 못 본 사람이 많은데…
-
도덕은 개인들 사이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일지 모른다. 집단간에, 나아가 국가나 민족 간에 벌어지는 일들의 동기를 설명하거나 책임을 따질 때 도덕이라는 게 쓸모가 있을까. 전쟁이 벌어져 집단적 광기가 횡행할 때, 도덕을 믿고서 눈 앞에 보이는 시람을 찾아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어리숙한 인간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배신을 당할 수 있다. 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는 중국의 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한 <귀신이 온다>는 그 배신의 순간을 충격적으로 잡아낸다.일본군 기지 바로 옆 마을의 한 집에 복면한 이들이 나타나 포박한 일본군인 두명을 맡긴다. 주인에게 총을 겨누고서 다시 돌아올 때까지 이 두명을 가둬놓고 있으라고 협박하고 돌아간다. 어쩔줄 몰라하던 주인은 마을회의를 열어 복면한 이들이 중국군일 것으로 단정짓고 그들이 올 때까지 두명을 광에 가둬두기로 결정한다.선량한 주인은 두명에게 정성을 다해 밥을 지어 먹이고, 일본군에게 들킬 위험에 처해 마을 사람들이 죽이
일본군 구해줬더니 학살로 갚더라
-
-
6년째를 맞아 이제 아시아 최고 영화제로 발돋움한 부산국제영화제가 오는 11월 9일부터 17일까지 8일 동안 부산의 5개 극장, 15개 스크린을 통해 영화의 향연을 펼친다. 예년보다 3주 정도 늦게 시작하는 탓에 가을이 제철인 전어의 싱싱한 맛을 즐기기는 힘들어졌지만, 60개국 203편의 상영작은 여전히 이 영화제가 아니면 보기 힘든 선도 높은 것들이다.올해는 아시아 신인 감독들의 작품이 많아졌고, 영화 초청 국가수가 늘면서 영화들이 더 다양해졌다. <칸다하르> <델바란>에서는 최근 관심이 집중되는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간접적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고, 한국과 함께 자국영화 시장점유율이 폭증하고 있는 타이와 프랑스의 흥행작들을 만날 수 있다. 코언 형제, 고다르, 허우샤오시엔 등 대가들의 신작을 예년보다 많이 만날 수 있는 것도 한 특징이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아시아 신진 감독들의 영화들을 상대로 한 경쟁부문 `새로운 물결' 등 6개 상영 부문 외에 타이영화 1
[부산국제영화제] 60개국 203편 화제작 큰잔치
-
“그녀는 내가 끝내려고 한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나비>는 기억상실을 원하는 여인과 생명을 걸고 출산을 감행하려는 어린 처녀, 그리고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헤매는 남자의 동행기다. 서로 다른 결핍과 소망을 지녔지만, 세사람은 결국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는다. <나비>는 <이방인>으로 데뷔한 문승욱 감독의 두번째 작품이며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청동표범상과 젊은 비평가상을 받은 수작이다. 실패한 데뷔작의 상처를 딛고 <나비>의 주인공들처럼 멀고 추운 길을 돌아 힘겹게 두번째 작품을 만들어내기까지, 문 감독은 쓰라림과 외로움, 때로 섬광처럼 찾아든 기쁨의 기억들을 제작기에 담았다. 편집자근 1년여 동안 난 어떤 한 분위기 속에 갇혀 있었다. 끊임없이 내리는 비, 폭우, 폭우에 쓸려내려가는 자재도구들, 사람들의 아우성, 누런 흙탕물, 쉼없이 돌아가는 물펌프의 기계음.1999년 서울의 여름은 카뮈의 <페스트>라는 소설 속에
디지털의 날개로 희망을 날다
-
2001년의 한국영화는 일견 중국의 ‘5세대’ 영화 만들기의 전성기를 연상시킨다. 중국의 새로운 감독들이 만들어낸 모든 영화가 그 나라의 상황에 대한 암호였던 1984년에서 1987년까지의 시기 말이다. 지금의 한국영화와 당시의 중국영화간의 비교가 아주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중국의 감독들(첸카이거, 티엔주앙주앙, 황지엔신, 장저밍 등등)은 작품 속에 시정과 정묘함, 그리고 다의성을 되살리고자 노력함으로써 엄격하게 통제되는 공산주의자의 영화 만들기 시대에 반발하고 있었고, 이는 중국영화에 새로운 형식적 구조와 영화언어를 실험하는 것이었다. 지금 한국의 영화감독들은, 반발해야 할 거라곤 영화산업을 돈이나 찍어내는 면허로만 보는 경향뿐인 상황에서 일한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은 과제지만, 그 배후에 국가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의 키를 찾는 강박이 있다는 것은 아주 비슷하다.전의를 잃어가는 한국 중년의 초상임순례의 새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그 적절한 사례다. 캐릭터들과
무너진 남성적 연대를 넘어
-
<Live Scenes From New York> Dream Theater 최고의 기량을 지닌 프로그레시브 메탈밴드 드림시어터의 뉴욕공연 실황음반. 전생에서 억울하게 살해당한 청년이 이승에서도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다는 내용의 컨셉트 음반 <Metropolis PT. 2: Scenes From A Memory>를 발표하고 전세계에서 가진 ‘Metropolis 2000 Tour’의 종착지였던 뉴욕의 공연실황을 담았다. <Scenes From A Memory>의 수록곡 전체와 <Images & Words> <Awake> 등의 앨범에 담겼던 <Learning To Live> <The Mirror> 등 드림시어터의 과거 명곡들도 모두 들을 수 있다. 불타는 뉴욕을 형상화한 재킷은 미국 테러 뒤 미국에서는 디자인이 바뀌어 발매됐다.<통해야> 공명 유니버설뮤직 발매아직도 국악이 그저 따분하다고 생각한
음반... , <통해야>
-
<오사마 빈 라덴>9·11 미국 동시테러의 주범으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의 전기. 사우디에서 태어난 재벌 2세 오사마 빈 라덴이 서구에 맞서는 이슬람 성전의 지도자로 부상하게 된 ‘특별한 과거’와 라덴의 지하조직, 그가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방대하고도 세밀하게 추적했다. 25년간 이슬람의 지하드 전사들, 테러리스트, 군사령관, 망명자 등을 취재하여 이 책을 쓴 요제프 보단스키는 저명한 군사, 테러 분석가로 미 의회 대테러리즘 특별팀의 책임자로 있다. 미국이 만들어낸 ‘적’에 대한 치밀한 분석서라는 점을 감안하고 보면 좋을 책.<미국은 과연 특별한 나라인가>김봉중 지음/ 소나무/ 1만2천원 혈통적인 공통분모도 없고, 공통된 건국신화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 미국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미국 현대외교사를 연구해온 전남대 사학과 교수인 필자는 미국의 정체성을 만들어낸 네 가지 코드를 프런티어 정신, 민주주의, 지역 정서, 다
책... <오사마 빈 라덴>, <미국은 과연 특별한 나라인가>
-
<황보령 2집 <태양륜> 발매 기념 단독공연> 카리스마와 몽상이 어우러진 독특한 감성의 뮤지션 황보령이 98년 <귀가 세개 달린 곤양이> 이후 3년간의 공백기간을 깨고 낸 두 번째 정규앨범 <태양륜太陽輪>의 발매를 기념하여 단독공연을 연다. 새로 결성한 ‘황보령밴드=Smacksoft’라는 이름의 밴드와 함께할 이번 공연은 어쿠스틱한 분위기의 1부와 일레트로닉한 분위기의 2부로 나뉘어 진행된다. 김윤아, 넬, 슈가도넛 등이 게스트로 나오며 촛불과 향, 황보령 자신의 그림들로 공연장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한껏 풍길 전망이다.<Punk Rock Show! 크라잉넛 with Punk Friends>트라이포트홀/ 10월27일, 28일 6시30분/ (주)드럭레코드/ 1588-1555한국의 크라잉넛, 레이지 본, 런 캐럿, 올라이즈 밴드와 일본의 라이더스, 루드 본즈, 미국의 브루스 리 밴드 등 한·미·일 펑크의 대표주자들의 공연이 펼쳐지는
공연... <황보령 2집 단독공연>,
-
문학평론가이자 이화여대 교수 이어령은 퇴임강연에서 “회색 지대야말로 창작의 공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물론 ‘회색주의’라기보다는 ‘주의=회색’이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어쨌거나 그렇다면 더욱, ‘회색’ 자체보다는 ‘회색’과 ‘공간’의 어울림 혹은 상간(相姦)이 더 의아하다. 왜냐하면 회색은 (정치와 무관한) 장소개념이 아니라 (정치 속에서의) 태도 개념이다.예술가는 자신의 논리적 신조와 관계없이 회색인이다. 왜냐하면 그는 정치 속에서 자신의 논리 혹은 신조를 정치와 구별되는 ‘예술의’ 방법으로 구사하며 심지어 그 결과물은, 예술적 형상화의 특수성 때문에 자신의 신조를 배반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복고적 세계관을 지녔던 발자크 소설의 시민적 리얼리즘.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예술가의 태도는 무정부주의적이지만 감동을 향해 스스로 응집한다는 점에서 내용이 볼셰비키적이다. 그렇게 볼 때 비로소, 정치적 회색의 모험 속에서, ‘모든 진정한 예술은 회색’이라는 정의가,
정치적 회색의 모험
-
당연하게도, 나이테가 쌓일수록 밴드의 음악은 달라진다. 그러니까 어쩌면 기억에 남는 색을 보였던 밴드의 신보를 기다리게 되는 건, 귀에 익은 그들의 인장을 확인하고 싶으면서 동시에 이를 거스르지 않는 변화를 기대하는 이율배반의 과정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델리 스파이스의 <D>는 꽤 영민해보이는 음반이다. 더없이 서정적으로 청각을 파고드는 세련된 선율, 열창이나 화려한 기교없이 절제된 담백한 미성, 너무 무겁지 않고 울림이 많은 기타 사운드와 소소한 일상의 풍경, 그리고 내밀한 우울함의 정서를 드러내는 가사. 어느덧 6년의 시간을 쌓아온 델리 스파이스 특유의 색을 여전히 담고 있어 낯설지 않다.그럼에도 <D>가 익숙한 것처럼 들려주는 음악은, 사실 델리 스파이스의 음반 중에서 가장 다채롭기도 하다. 유난히 경쾌함이 튀어오르는 첫곡 <뚜빠뚜빠띠>, 연인에 대한 낙관적인 기다림을 노래한 <항상 엔진을 켜둘께>는 특유의 담백한 보컬과 단순하고
벌써 6년, 여전한 듯 새로운
-
<킬러들의 수다>에서 음악을 맡은 한재권은 장진 감독의 오랜 파트너이다. 그는 <기막힌 사내들> <간첩 리철진> <극단적 하루> 등의 영화뿐만 아니라 <박수칠 때 떠나라> <택시 드리벌> 같은 연극에서도 장진 감독과 호흡을 맞추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영화에서도 한재권은 비교적 편안하게 음악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는 스릴을 느끼게 하는 긴장어린 분위기에서부터 코믹하고 따뜻한 분위기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다양한 단면을 화면에 담고자 한 장진 감독의 의도에 발을 맞추고 있다.계속되는 반전이 있기는 하나 음악의 대강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초반전에는 스릴러 분위기, 중반전에는 코믹한 분위기, 그리고 클라이맥스라 할 <햄릿> 상연장면에서는 웅장한 분위기. 끝에 가서는 긴장감 있는 분위기와 강렬한 록 비트의 혼합.초반 스릴러 분위기의 음악은 관객의 심리를 집중시키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깡패 두목인 탁문
긴장과 위트를 쥐락펴락
-
가끔 상상해본다. 차원이 교차하는 지점을 우연히 지나게 된다면, 그래서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게 된다면, 그곳에서도 운명은 이어질까. 오는 11월22일부터 KBS에서 방영되는 13부작 TV시리즈 <아장닷컴>은 모든 차원의 세계가 뫼비우스 띠처럼 이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제목에서 알 수 있듯 <아장닷컴>은 사이버 세계를 주무대로 한다. 그러나 <바스토프 레몬>이나 <유틸리티 파이터> <넷보이>와는 설정이 다르다. <아장닷컴>을 지탱하는 세계는 인간계와 정령계, 그리고 사이버 세계다. 작품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정령계가 다른 두 세계와 어떻게 결합하는지 주의를 기울여 보자.먼 옛날 함께 어우러져 살았던 인간과 정령은 이제 서로 별개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던 중 정령계의 신들은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만들기로 하고 영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어 ‘디멘션 스톤’을 만든다. 그러나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는
아기장수 따라 새로운 차원으로 휘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