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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 발행되는 영화 비평지 <시네아스트>의 조지 라파엘과 영국의 영화 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의 크리스 다크는 클레르 드니의 근작 <아름다운 직업>에 대한 글을 쓰면서 공교롭게도 동일한 문구로 시작한다. 이 둘은 공히 “프랑스영화계가 가장 잘 감춰온 비밀스런 존재”라는 말로 클레르 드니를 정의한다. 여기서 두 평자들이 드니라는 영화감독이 지금껏 지나온 행보에 대해서 경탄과 안타까움이 반반씩 뒤섞인 감정을 갖고 있음을 읽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10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드니가 이룩해놓은 견고한 영화 세계를 되짚어보면 분명히 경탄할 만하지만, 미국에서나 영국에서나 일반 극장에서 ‘공식적으로’ 소개된 그녀의 영화가 별로 없다는 사실은 또한 안타까움을 주기에도 충분한 일인 것이다. 다시 말해 드니는 지금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아 마땅한 그런 시네아스트인 것이다.한번 더 외지를 인용해보자. 미국의 영화 비평지 <필름 코멘트&
아웃사이더의 계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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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트레인스포팅>은 영국영화의 경향을 완전히 새롭게 바꿔놓았다. 감독 대니 보일, 배우 이완 맥그리거와 로버트 칼라일의 인생 역시 단박에 바뀌었다. 이른바 <트레인스포팅> 팀인 프로듀서 앤드루 맥도널드, 라이터 존 호지와 함께 할리우드로 떠났던 대니 보일은, <이완 맥그리거의 인질>과 <비치>가 그저 그런 결말을 얻은 뒤 영국으로 다시 돌아왔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치>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캐스팅하느라 이완 맥그리거와 껄끄럽게 헤어지고만, 상처뿐인 귀향처럼 보였다.지난 9월30일과 10월7일, 일요일 밤 10시, 그가 영국으로 돌아와서 <BBC2>를 위해 만든 두편의 영화 <Vacuuming Completely Nude In Paradise>와 <Strumpet>이 각각 TV 전파를 타고 방영됐다. 두편 모두 <트레인스포팅> 팀과 헤어져, 극작가이기도 한 짐 카트라이트의
[런던 통신] 웰컴 미스터 대니 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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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웍스로부터 99년 개봉된 <더 헌팅>의 촬영을 제안받았을 때 칼 월터 린덴라웁은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유니버설시티 촬영소의 세트가 완공되어 있어서, 막 다른 작품의 촬영을 마친 그가 준비를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이 선뜻 제의를 수락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지만, 정작 그를 부담스럽게 한 것은 이 영화의 감독인 얀 드봉(Jan de Bont)의 존재였다. 감독이기에 앞서 할리우드 최고의 촬영감독으로 눈부신 경력을 가진 그와의 작업이 그리 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과 달리 얀은 촬영의 전권을 주고 칼에게 주었다. 촬영감독과 감독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던 그이기에 현장에서 누구보다도 자유로울 수 있었음이다.1943년 네덜란드의 아인트호벤에서 태어난 얀 드봉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게 된 것은 12살 되던 해 무심코 맡은 결혼식 촬영을 통해서였다. 영화의 가능성에 주목하게 된 그는 암스테르담 국립영화학교에 진학해
대담하고 거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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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2일부터 27일까지 6일간 베이징영화대학(北京電影學院)에서 열렸던 제1회 독립영상제(首獨立映像節)가 남긴 신선한 여운은 행사가 끝난 지 한달 가까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이번 행사는 베이징영화대학 감독과 <남방주말신문>, 베이징 ‘스지엔써’(實踐社)가 공동으로 주관했다. 스지엔써는 영화대학 졸업생과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시네마테크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으며, 단지 영화를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직접 제작에 참여함으로써 활동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민간단체. 이런 모임들은 상하이의 ‘01 영화작업실’(電影工作室), 선양의 ‘자유영화’(自由電影), 광저우의 ‘연영회’(緣影會) 등 전국에 퍼져 있으며 많은 작품들을 배출하고 있다.출품작들은 35mm, 16mm는 물론이고 베타캠, 디지털영화와 컴퓨터그래픽 작품까지 포함되었으며, 1996년 이후 제작한 작품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베이징영화대학 학생들의 작품은 가능하면 배
[베이징 통신] 인민이여, 극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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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순에 대해서 “한 사람의 뛰어난 녹음기사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난 50년 동안 그는 영화녹음의 발전사 그 자체, 더 나아가서 한국영화사 발전에 하나의 기둥과도 같은 역할을 해왔다.
이경순은 1921년 평안북도 창성군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창성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큰형이 운영하는 ‘춘일악기점’이라는 자전거포 겸 악기점에서 축음기와 유성기판, 라디오 보급과 수리 등의 일을 도왔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소리와 인연을 맺게 된 이경순은 1935년 서울의 빅터축음기주식회사 레코드부에서 각종 음향시설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해방 뒤 월남한 그는 1949년 주한미군 홍보대인 502부대에서 영화에 입문, 이후 협동제작소, 중앙청 공보처 영화과 녹음실, 수도영화사 안양촬영소 녹음실을 거쳐 한양스튜디오를 설립하게 된다.
이경순 자신과 그의 감독하에 있는 한양스튜디오에서 완성한 녹음작품은 총 3500편 내외를 헤아린다. 이것은 1950년에서 1990년까지의 40년간
“마이크 하나로 대사, 음악, 효과음을 한꺼번에 녹음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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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이키키 브라더스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는 남성 4인조 밴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불경기로 인해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출장 밴드를 전전한다. 팀의 리더 성우는 어쩔 수 없이 수안보의 와이키키 호텔에서 일자리를 얻는다. 성우는 옛 친구들과 재회하지만, 그들은 찌든 생활인으로 변해 있다. 임순례 감독, 이얼, 류승범 출연, 명필름 제작, CJ엔터테인먼트 배급, 상영시간 109분박평식 알겠다, 세상 노래의 절반이 슬픔인 것을 ★★★☆심영섭 투박한 진심으로 다가오는??? 진정성의 힘! ★★★★유지나 누추한 삶을 그윽하게 들여다보는 묘미 ★★★☆홍성남 처연함이 유일한 넘버 원 히트송인 그들 ★★★☆관객 평점 8.00(10점 만점, 18명 투표)■ 귀신이 온다2차대전 말 일본군이 점령중인 중국의 외딴 마을. 과부 유아와 사랑을 나누고 있던 마다산(장원)의 집에 정체 모를 사람이 일본군 포로 두명을 맡기고, 자신이 다시 찾으러 올 때까지 잘 감시하고 있으라며 떠난다. 포로의 신상에 무슨 일
와이키키 브라더스/귀신이 온다/물랑루즈/바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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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두살의 남자는 묻는다. 사람은 왜 꼬박꼬박 살까, 띄엄띄엄 살 순 없을까. 열일곱살의 여자는 생각한다. 사는 이유는 사실,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 것 같아. 너무 일찍 지친 남자와 너무 많은 걸 알아버린 소녀. 세상 무엇에도 반짝이지 않던 그들의 눈이 서로를 알아본 순간 잠시 빛을 띤다. 10월15일 저녁 서울 평창동에서 진행된 <버스, 정류장>의 열네 번째 촬영은, 두 사람이 서로에게 특별해지는 그 조심스런 ‘처음’의 예민한 느낌을 건져올리는 중요한 모멘트. ‘두명이 앉는 좌석이 비었지만 혼자 앉는 좌석에 따로따로 앉아 있는 둘. 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단 두줄의 지문만으로 이루어진 신을 만들기 위해, 평창동 한 주차장에 불러들인 36번 시내버스에 올라탄 이미연 감독과 스탭들은 말없이 떨어져 앉은 두 남녀, 그리고 어둠을 적시는 빗줄기 사이에 보이지 않는 ‘사건’에 집중했다. ‘컷’ 사인이 떨어지자 부지런히 물을 뿜던 강우기가 침묵한 대신, 침묵하던 김태우와
비가 내린다, 사랑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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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안이다. 두 남자가 마주 보고 있다. 뭐 하는 걸까?한 남자의 손에는 무전기가 다른 한 남자의 손에는 이상한 하얀 물건이 들려 있다. 어라, 자세히 보니 그 물건은 순간접착제다. 두 사람, 갑자기 칼싸움이라도 하듯이 접착제와 무전기를 휘두르기 시작한다. 한 남자는 단속이라고 쓰여진 완장을 팔에 차고 있다. 그는 지하철 행상을 단속하러 나온 공익근무요원이다.다른 남자는 순간접착제를 팔러 나온 가난한 가장이다. 결국 남자는 지하철에서 급히 쫓겨나오면서 순간접착제가 가득 든 가방을 놓고 나와버렸다. 허탈해 하며 공원에 앉아 있는 그에게 비눗방울을 쏘며 한 노숙자가 다가온다. 부서져 있던 장난감을 남자가 준 접착제로 붙인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서로 웃는다. 그 웃음을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단편영화 <순간접착제>의 이석훈 감독은 ‘그렇다’고 말한다. 죽지 않기 위해서 죽여야 하는 전쟁의 극한 상황, 베트남 정글에 낙오된 한국병사와 베트공 소녀의 대치상황에서도, 따뜻
희망은 방울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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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박경림한테서 전화가 왔다. 약속한 영화시사회를 가야하는데, 몸이 아파서 갈 수가 없으니 대신 갈 수 있겠냐고.... 목소리가 허스키한 게 이럴 땐 좋은 것 같다. 너무 애절하게 들려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라는 영화인데 밴드 얘기라서 오빠가 보면 무척 좋을 거라고 했다. 조금 겁이 났다. 개인적으로 밴드가 나오는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크게 내키지는 않았지만 극장으로 향했고, 영화는 시작됐다.점차 그 어떤 마법처럼 영화에 빠져들었다. 첫번째 마법은 밴드이야기인데, 전혀 음악영화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같은 자리에서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난 어디에 속하는가를 찾기 위해 무척 애를 쓰고 있었다.두번째 마법은, 어떻게 장면이 바뀔 때마다 지나온 날의 기억들을 계속 떠올리게 되는지 신기했다. 두시간 남짓한 시간에 살아온 날을 다 정리한 듯 싶다. 오랫만에 느껴본 영화의 무서운 힘이었다.세번째는, 왜 자꾸만 웃고
가수 김장훈씨 <와이키키...> 관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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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지도 다르지도 않은 빛깔로 나, 너, 우리의 청소년영화제를 꿈꾸자.” 제3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가 ‘오버 더 레인보우’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10월25일부터 28일까지 나흘간 CGV강변11 극장에서 열린다.이번 영화제 출품작 수는 예년에 비해 많은 500편. 국내 400편, 해외 100편의 작품이 출품된 가운데, 국내 400편 중 80편의 영화가 경쟁부문인 본선에 진출해 있고, 해외 출품작 중 프로그래머가 뽑은 15편은 비경쟁부문인 ‘해외작’부문에서 상영된다.이 밖에도 가능하면 많은 작품에 상영기회를 준다는 취지에서 본선에 진출하지 못한 국내작품 중 47편이을 siyff 추천작으로 선정해 나흘간 130여편의 작품들이 상영한다. 개막작은 중학생 때부터 계속적인 영화창작활동을 해온 중앙대 영화학과 학생 정소영의 이며, 민병훈 감독의 <괜찮아, 울지마>가 초청작으로 이번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총 80편의 본선 진출작들은 주제별 8개의 섹션으로 묶었다. 청소년의 자
무지개 너머, 나를 찾아가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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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어권 영화들이 2001년 들어 미국시장에서 흥행호조를 보이고 있다고 10월17일치 <스크린 데일리>가 보도했다. LA와 뉴욕 중심으로 제한된 수의 스크린에서만 개봉되는 것이 보통인 외국어영화의 ‘고지’는 100만달러. <스크린 데일리>는 연말을 두달 남겨둔 10월 현재 2001년 개봉해 북미지역 입장수입이 100만달러를 넘어선 외국어영화가 예년보다 많은 11편에 이른다고 집계했다.수위를 차지한 영화는 미라맥스가 미국 배급, 크리스탈필름이 캐나다 배급을 맡았던 프랑스영화 <클로셋>으로 총 630만달러 수입을 기록했다. 2위는 라이온스 게이트의 멕시코영화 <아모레스 페로스>(540만달러), 3위는 미라맥스가 배급한 프랑스영화 <당신의 영원한 친구 해리>(380만달러)가 차지했으며, 파트리스 르콩트의 <길로틴 트래지디>가 310만달러로 그뒤를 이었다.<와호장룡>이 바람을 일으킨 지난해까지 <시네마천국>
영어가 아니어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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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마누라>가 할리우드로 건너간다. 지난 10월16일 <조폭 마누라>의 해외배급을 담당하는 씨네클릭아시아는 미라맥스가 <조폭 마누라>의 리메이크 판권을 구입했다고 밝혔다. 계약조건은 판권료 95만달러에 리메이크된 영화에서 수익이 발생할 경우 그중 5%를 추가로 받는다는 것. 미라맥스는 리메이크 판권과 더불어 영화 판권도 15만달러에 샀다.미국 메이저급 영화사가 리메이크 판권을 구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간 한국영화 가운데 해외로 리메이크 판권이 팔린 사례는 <접속>과 <조용한 가족>이 있다. <접속>은 독일 박스프로덕션이 <해피엔드와 여인2>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해 개봉했고, <조용한 가족>은 <오디션>의 미이케 다카시 감독이 뮤지컬 스타일로 다시 만들어 일본에서 내년 초 개봉할 예정. <접속>의 리메이크 판권비가 5천만원 정도였으며 <조용한 가족>도 2천만
할리우드야, 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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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길촌 위원장 불신임을 둘러싸고 내홍을 겪은 영화진흥위원회에 대한 문화관광부의 시선이 곱지 않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를 중심으로 영화진흥법 개정안 준비가 한창인 가운데, 최근 문화관광부가 내놓은 영진위 체제 개편안의 일부 조항이 그 증거다.협의과정에서 문화부는 현재 위원들이 호선하도록 되어 있는 영진위 위원장직을 문화부 장관이 임명토록 하고, 9인의 영진위 위원 중 3인을 매년 교체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을 제시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영화인들이 “문화부의 지나친 간섭이 우려된다”며 반발, 결국 영진법 개정안에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영진위의 파행 운영’ 등을 지적받은 문화부의 불편한 심기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문화부의 한 관계자는 “장관 임명은 형식적인 것이고, 위원 교체 역시 현 임기 3년을 줄인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시청각위원회처럼 3인씩 위촉 시기를 달리해서 탄력적으로 위원을 구성하자는 것인데 받아들이는 쪽에서 과대 해석한 것 같다”고 해
[충무로는 통화중] 문광부는 불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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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y <컨텐더스>라는 가상의 TV쇼가 있다. 복권추첨처럼 뽑힌 출연자들은 단 한명 살아남을 때까지 서로 죽여야 한다. <시리즈7>은 <컨텐더스>의 7번째 시즌 방영분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가짜 다큐멘터리다. 지난회까지 10명을 죽인 주인공 돈(브룩 스미스)은 임신 8개월 된 여인이다. 그녀는 이번 회에 새로 뽑힌 경쟁자 5명과 대결을 벌여야 한다. “오직 배 속에서 숨쉬는 아기를 위해 죽인다”는 그녀가 챔피언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Review <시리즈7>은 다큐멘터리처럼 찍은 극영화이다. 무작위로 출연자를 뽑아 서로 죽이는 걸 생중계하는 TV 프로그램이 있다면 어떨까? 출연자에겐 총기가 주어지고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게임의 룰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상관없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시청률은 오른다. 엔딩을 예측할 수 없는 살인게임을 보여주는데 누가 채널을 돌리겠는가? <시리즈7>은 이 TV 프로그램
시리즈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