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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시네마/ 오스트리아, 프랑스/ 미카엘 하네케/ 2001년/ 130분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남녀주연상 수상작. 비엔나 음악학교 교사 에리카는 잔소리 심하고 이해심 없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하루 종일 학생들을 상대로 레슨을 하고 집에서는 어머니에게 시달리는 삶에서 에리카의 유일한 탈출구는 포르노영화를 보면서 다른 사람이 버린 휴지에서 정액냄새를 맡거나 자신의 성기에 상처를 내는 자위행위뿐.어느날 자신의 수업을 받던 어린 제자 월터가 사랑을 고백해오자 그녀는 ‘보는 것은 그녀’라면서 자신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겠다고 한다.섬뜩하고 마조히즘 혐의가 짙은 이 ‘게임의 법칙’은 그러나 예상치 못했던 폭행과 강간으로 보답받는다. 이자벨 위페르는 겉보기엔 피아노 건반처럼 도도하지만 사실은 피아노 뚜껑처럼 폐쇄적인 신경증 환자 에리카를 섬세하게 연기, 심사위원 전원일치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지난 97년, 미디어와 폭력에 대한 도발적인 영화 <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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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ck freely!” 성과 정치의 상관관계, 그리고 성의 해방을 영화적 화두로 삼았던 서구의 그 어떤 감독보다도 진보적이고 과격한 유고슬라비아의 거장 두산 마카베예프의 작품들이 부산을 찾는다.유고슬라비아 뉴웨이브를 주도한 마카베예프는 어떤 형태의 억압도 존재하지 않는 진정한 성해방의 사회를 지향했다. (1971)가 그 대표적인 작품. 미국과 유고슬라비아에서 제작한 이 영화는 성과 노동 해방을 주창했던 빌헬름 라이히의 생애와 이론에 관한 자료화면을 토대로 한 기록영화와 자유연애주의자인 유고 여성에 관한 극영화를 교차해 보여주고 있다.WR은 성의 에너지인 오르곤을 연구한 공산주의 학자 빌헬름 라이히를 지칭하는 동시에 세계 혁명(World Revolution)을 뜻하고 있는데, 이처럼 영화는 성의 해방과 세계 혁명이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주장, ‘사랑과 노동의 해방이 진정한 노동자사회를 열어준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남성 파시즘에 죽음을, 여성에게 자유를!”이라는 신념
성 정치학의 최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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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시네마/ 프랑스, 독일, 알제리/ 라시드 부샤렙/ 2000년/ 93분미국엔 흑백갈등만 존재할까? <리틀 세네갈>은 고개를 가로젓는 소박한 드라마다. 세네갈의 노예박물관에서 오랫동안 관광 가이드로 일해온 알루네는 200년 전에 노예로 팔려간 선조들의 궤적을 따라가보기로 한다. 뉴욕의 세네갈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구역인 리틀 세네갈까지 찾아온 그는 길거리 신문판매대에서 먼 친척뻘 되는 여성인 아이다를 만난다.그녀는 미혼모가 된 손녀를 걱정하는 고된 삶을 꾸리고 있다. 아이다에게 고용된 알루네는 처음엔 고용주와 고용인 관계에서, 친구로, 다시 연인으로 발전한다. 다큐멘터리처럼 카메라는 정직하게 배우의 뒤를 쫓고, 배우의 고집스런 표정은 진실감을 배가시킨다. 프랑스 이민을 소재로 몇편의 영화를 만들었던 라시드 부샤렙 감독은 경제적으로만 해석되어온 노예제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었다고.선조들의 자취를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커다란 플롯은 흑백갈등은 물론, 흑인과 아프로-아프리칸
리틀 세네갈 Little Seneg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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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 인터뷰에서 보면 그런 고민 안 하실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데 최저로 들어가야 하는 돈은 있잖아요, 아무리 감독님이 돈을 적게 받아도. 예를 들어서 7억∼8억원, 마케팅까지 10억원이면 적어도 서울에서 한 10만∼15만명 정도 봐줘야 하는 돈이잖아요. 사실 그게 쉬운 건 아닌데, 어떤 부분이 보강되면 그걸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으세요? 김 >>> 많은 사람들은 소재를 그 이유로 삼지만, 그건 1/10밖에 안 된다고 생각해요. 50%는 스타 시스템과 제작비, 과대광고 뭐 이런 게 차지하죠, 사실은. 나머지 중 40%는 용감하게 관객한테 돌리고 싶어요. 관객이 이 시대의 다양한 작가들이 갖고 있는 의식세계에 대한 접근을 상당히 게을리하는 아닐까 하는. 물론 핑계죠. 그 핑계도 상관없는 것이, 결국 그런 관객을 위해서 영화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를 보고 이해하는 1만명을 위해서 난 영화를 만들어야 하고, 그 1만
“현실적인 여건? 길은 만들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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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영화의 창/ 인도/ 산토시 시반/ 2001년/ 150분
올 베니스영화제에서 특별상영된 <아쇼카>는 서구의 영화 수입 관계자들 사이에 ‘필견 영화’로 꼽혔던 작품이다.
인도영화계의 대작 시대극 트렌드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전작 <테러리스트>로 명성을 얻은 감독 산토시 시반에 대한 기대가 상승작용을 일으킨 덕이다. <아쇼카>는 인도 마다가 왕국의 아소카 대왕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는데, 특히 천진한 왕자에서 피에 굶주린 전쟁의 화신으로, 다시 비폭력의 정치가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기까지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소카와 라이벌 왕국의 공주 카우르와키가 서로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 비극을 예비한 사랑에 빠지는 것이 또다른 이야기축. 맥락에 어울리지 않게 에로틱한 뮤지컬 시퀀스와 코믹한 에피소드가 끼어드는 등 인도의 가장 대중적인 영화장르인 마살라의 전통도 엿보인다.
아쇼카 Aso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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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막작/ 타이/ MC 차트리찰레름 유콘/ 2001년/ 185분
100억원이 훨씬 넘는 제작비를 들인 초특급 대작. 부흥하는 타이영화계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지난 8월 타이에서 개봉, 첫주에만 2억바트(약 60억원)의 수익을 올렸으며, 현재까지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점은 뭐니뭐니해도 장대한 스케일.
2000여명의 엑스트라, 50여 마리의 코끼리, 70여 마리의 말이 등장하는 전투신을 비롯해 화려하고 웅장한 궁전세트나 의상 등이 눈길을 붙든다. 1548년 버마의 침공에 맞서, 직접 칼을 들고 전투에 참여했다가 숨진 아유타야 왕국의 수리요타이 왕비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린다.
‘승자의 역사’를 그리는 탓에 드라마 구성은 다소 밋밋하지만, 왕위를 둘러싼 치열한 암투는 우리에게도 흥미롭게 읽힌다.
수리요타이 Suriyoth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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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영화의 창/ 인도/ 산토시 시반/ 2001년/ 150분
올 베니스영화제에서 특별상영된 <아쇼카>는 서구의 영화 수입 관계자들 사이에 ‘필견 영화’로 꼽혔던 작품이다. 인도영화계의 대작 시대극 트렌드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전작 <테러리스트>로 명성을 얻은 감독 산토시 시반에 대한 기대가 상승작용을 일으킨 덕이다.
<아쇼카>는 인도 마다가 왕국의 아소카 대왕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는데, 특히 천진한 왕자에서 피에 굶주린 전쟁의 화신으로, 다시 비폭력의 정치가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기까지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소카와 라이벌 왕국의 공주 카우르와키가 서로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 비극을 예비한 사랑에 빠지는 것이 또다른 이야기축.
맥락에 어울리지 않게 에로틱한 뮤지컬 시퀀스와 코믹한 에피소드가 끼어드는 등 인도의 가장 대중적인 영화장르인 마살라의 전통도 엿보인다.
아쇼카 Aso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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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영화 특별전/ 타이/ 타니트 지트나쿤/ 2000년/ 119분
지난해 말 개봉해 타이의 흥행기록을 경신한 작품. 18세기 말 아유타야 왕국 멸망기를 배경으로 국경 부근 방라잔이라는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1765년 버마는 아유타야를 침공한다. 하지만 8개월 동안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데, 바로 방라잔 주민들의 결사적인 저항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마을 사람들이 마을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두려움을 떨치고 하나의 뜻 아래 마음을 모으는 과정을 그린다.
박진감 있는 액션장면에 멜로적인 요소까지 녹여 이들의 비극적인 최후를 잘 묘사했다. 이 영화의 특출난 볼거리는 수십 마리의 물소떼.
이 영화가 수많은 타이 관객을 끌어들인 요소 중 하나도 뿔이 기다랗고 멋진 물소였다고 한다.
방라잔 Bang Raj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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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영화의 창/ 인도/ 아슈토쉬 고와리커/ 2000년/ 224분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보유하고 있던 19세기 중반, 인도의 한 마을에 비가 내리지 않아 주민들이 애를 태운다. 가장 큰 문제는 라가안이라는 이름의 곡물세를 내지 못하는 것.
세를 감면해 달라는 청원을 하기 위해 통치자를 찾아간 주민들은 영국군으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마을 주민이 영국군과 크리켓 경기를 벌여 이기면 3년치 라가안을 면제해주겠다는 것. 하지만 지게 되면 3배의 세를 바쳐야 한다.
결국 청년 부반을 중심으로 주민들은 난생 처음 크리켓 배트를 들고 맹연습에 들어간다. 뜻하지 않은 역경에 맞서는 사람들의 모습이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그려져 3시간40분이 지루하지 않다. 인도영화 특유의 뮤지컬장면 또한 흥겹다. 올해 로카르노영화제 관객상 수상작.
라가안 Once upon a Time in 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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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감독과 <수취인불명> 김기덕 감독. 언뜻 별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두 감독은, 사실 꽤 많은 고리를 공유하고 있다. 이들의 시선을 좇다보면, 야간업소를 전전하는 30대의 삼류밴드와 기지촌을 배회하는 혼혈아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음을 발견하게 되니까. 소박한 리얼리즘과 회화적인 이미지라는 화술은 달랐다해도, 이들이 그려내는 그림은 늘 소외된 인간군상의 초상으로 닮아 있는 것이다. 또한 주류의 틈새를 비집고 카메라를 들이댄 이들의 영화는, 대규모 자본이나 스타시스템과 같은 주류 영화의 공식에서도 같이 한발 비껴나 있다. 작더라도 제 목소리가 담긴 영화, 시장의 질서에 쉽게 갇히기보다는 그들만의 시선을 보여주고자 하는 영화 만들기의 자세가, 이들이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지점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개봉이 다가온 10월 네쨋주의 첫날, 성북동의 한 고풍스런 한옥 찻집에서 두 감독을 만났다. 아껴둔 이야기로 2번째 영화
“현실적인 여건? 길은 만들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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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시네마, 타이영화 특별전/ 타이/ 논지 니미부트르/ 2001년/ 120분
<낭낙>으로 타이영화의 르네상스를 열어젖힌 논지 니미부트르의 화제작. 과감한 성 묘사로 1960년대 타이 젊은이들의 가슴을 졸이게 한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1940년대 방콕을 배경으로 잔다라라는 청년이 성에 눈떠가는 과정을 그린다.
잔다라는 축복받지 못한 채 태어난 인물. 그를 낳다 어머니가 사망한 탓에 아버지는 그를 증오한다. 아버지의 구타와 학대에 시달려온 잔다라 역시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을 키운다. 그를 감싸주는 것은 후처로 들어온 이모뿐이지만, 그녀와의 관계 또한 야릇한 점이 있다. 그의 삶을 결정적으로 바꿔놓는 여인은 아버지의 옛 애인 분루엥 부인. 이웃집으로 이사온 그녀의 퇴폐적인 매력에 이끌린 그는 그녀와 과감한 성애의 세계에 빠져든다.
과감한 성 묘사 때문에 타이의 여배우들이 출연을 고사해 홍콩의 종려시가 분루엥 부인 역할을 맡았다.
문석·박은영
잔다라 Jan D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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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가 급히 글을 보내주었다. <고양이를 부탁해>와 <나비>가 개봉 이틀만에 스크린에서 퇴장당한 요즘의 사태를 ‘좌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영화가 그동안 외부를 향해 ‘문화적 종 다양성’을 지키는 데 스크린쿼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설득해왔는데, 내부적으로는 그 다양성을 추구할 수 없다는 그의 비판과 절망은 최근 여러 자리에서 산발적으로 들려왔었다.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이 한국영화 관객의 수를 늘려놓는 동안, 대안영화 또는 예술영화가 디디고 설 좁은 땅이 어느새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흥행폭발을 일으킨 <조폭마누라>와 <고양이를 부탁해>의 참담한 현실이 보여준 극단적 대비는 그러한 한국영화의 경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당신들의 근심은 문화적 특권의식의 발로일 뿐이라는 역비판도 있다. 대중이 옹호하는 영화에는 그럴만한 이유와 미덕이 있는 법이니 그것을 발견하는 노
고양이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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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시네마|멕시코|아르투로 립스테인|2000년|106분|흑백매복이라는 비장한 행동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흙먼지 길. 추레한 두 남자가 몸을 숨기더니 손수레를 끄는 한 사내를 덮쳐 때려죽인다.대관절 왜? 느닷없는 살인으로 허두를 뗀 감독은 <저수지의 개>의 수다를 방불케 하는 범인들의 실없는 대화와 죽은 남자의 시체를 놓고 두 아내가 벌이는 이악스런 줄다리기, 그리고 범인을 간파한 조강지처의 기묘한 복수로 카메라를 옮겨간다. 그리고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 두 아내 사이에 도중(途中)의 집을 짓고 야구연습에 몰두했던 죽은 남자의 일상을 보여준다.루이스 브뉘엘의 ‘도제’로 성장해 멕시코영화를 대표하는 이름이 된 아르투로 립스테인이 “나의 첫 코미디”라고 공언한 이 영화를 보면, 극중 인용된 노래처럼 “여자들 탓”인지는 불분명해도 망가진 것이 남자들의 삶이라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똑같은 빈곤과 불행 속에서도 명분과 실리를 챙기는 여자들의 다부진 면모는 그와 대조를 이룬다. 소의
남자들의 파멸 The Ruination of 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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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앵글/ 이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2001년/ 84분/ 35mm 컬러
키아로스타미의 눈이 전하는 아프리카의 절망과 희망. 질병과 가난에 시달리는, 그러나 생명력을 잃지 않는 아프리카인들의 삶이 다양한 영상기록으로 담겨져 있다. 에이즈 치료센터 병상에서 고통에 신음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나무그늘 아래서 노란 교복을 맞춰입고 노래하는 학생들이 있는 곳.
에이즈와 말라리아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과 아이들을 잃은 어머니의 절망 한쪽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서로의 아이를 데리고 다시 신랑신부로 손맞잡는 곳, 우간다. 키아로스타미는 그저 스케치하듯 그곳을 둘러보지만, 어느새 그곳의 명암을 통찰해내기에 이른다. 제목에 들어 있는 ‘ABC’는 작품에 나오는, 한 오스트리아 부부에게 입양된 우간다 아이의 티셔츠 로고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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