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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 만화시장이 해적판이라는 적조로 뒤덮여 있던 때가 있었다. 단순한 저작권의 문제가 아니라 무책임한 번역, 제멋대로 권 수 나누기, 여러 만화가의 작품 뒤섞기 등 눈뜨고 볼 수 없는 횡포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러나 그 검붉은 바다 속에서도 반짝이는 진주를 찾아내던 만화 독자들의 노력은 가상했다. 만화가의 이름도 나오지 않고 원제와는 아무 상관없는 엉터리 제목을 단 작품들을 어떻게 엮어내며 이름 모를 누군가의 팬이 되었고, 출판사에 그 만화가의 책을 펴내도록 무언의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거쳐 우리 독자들로부터 최초로 작가적 아이덴티티를 얻게 된 일본 만화가는 아마도 아다치 미쓰루일 것이다. 정말로 웬만한 그의 만화들은 한두번씩 해적판으로 얼굴을 내밀었고, 많게는 서너개의 다른 제목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 아다치의 옛 만화들이 정식으로 우리 앞에 다시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만화 <미유키>, 그리고 10년 전의 만화 <일곱빛
아다치 미쓰루의 <미유키> <일곱빛깔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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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2>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영화의 내용이 심오해 깊이있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기보다는, 온갖 잡스러운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영화가 지루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전편 이상의 무언가를 찾을 수 없는 점이 아쉽기는 했지만, 현란한 컴퓨터그래픽으로 그려진 액션장면들과 여전히 파워풀한 웨슬리 스나입스의 연기는 ‘지루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나로 하여금 잡스러운 생각을 하게 한 진짜 이유는 <블레이드2>가 이전에 만들어진 수많은 영화들을 연상시킨다는 사실이었다. 평소 ‘영화간의 관계’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입장에서, 패러디영화도 아닌 SF액션영화에서 다른 영화들의 흔적을 찾는 일은 영화 자체를 즐기는 것만큼이나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우선 창조자를 찾아온 돌연변이 뱀파이어가 자신을 만들어준 뱀파이어의 왕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살해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딱 <블레이드 러너>를 떠올
<블레이드3> 및 TV시리즈에 대한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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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뱀파이어 영화. 화려한 특수효과가 볼 만하다. 반은 인간, 반은 뱀파이어로 태어난 블레이드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면서 복수를 맹세한다. 한편, 뱀파이어 세력을 이끌고 있는 프로스트는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인간들을 공격한다. 그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존재는 바로 블레이드다. 프로스트는 경전의 암호를 풀어 인간들을 정복하기 위한 야심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다. 웨슬리 스나입스, 스티븐 도프 등이 출연.
[TV영화]블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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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 팰트로, 이완 맥그리거 주연작으로 제인 오스틴 원작을 영화화했다. 작은 마을에 사는 엠마는 총명하고 사교적이다. 그녀는 남녀 커플을 맺어주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엠마는 마을에 부임한 목사 엘튼의 짝을 찾아주기로 결심하는데 자신의 친구인 해리엇이 일 순위로 오른다. 엠마는 엘튼과 친구를 중매하면서 일이 잘 풀려간다고 생각하지만 엘튼이 엠마에게 구혼하면서 모든 건 뒤죽박죽 얽힌다. 아기자기한 의상 등이 눈을 즐겁게 한다.
[TV영화] 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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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er Hunter 1978년, 감독 마이클 치미노 출연 로버트 드 니로 <EBS> 4월27일(토) 밤 10시“<디어 헌터>의 위대함은 혼란의 풍부함에 있다.” 어느 평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디어 헌터>는 위대한 영화다. 존 포드와 하워드 혹스 등 미국영화 거장들 작업을 연상케하는 이 영화는 마이클 치미노 감독에겐 처음이자 마지막 행운과도 같았다. 치미노 감독은 한때 “위대한 건축가이자 영화형식의 혁신자”라는 가슴 벅찬 찬사를 들은 적 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디어 헌터>는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으면서 치미노 감독에겐 행운의 열쇠가 되었지만 이후 그의 명성은 바닥에 떨어졌다. 대작 <천국의 문>이 흥행에 완전히 실패하면서 제작사를 파산지경으로 몰아간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영화는 세 남자의 이야기다. 제철소에 다니는 마이클과 닉 등은 종종 사슴사냥을 즐긴다. 이들은 스티븐이 결혼한 뒤 베트남으로 향한다. 마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디어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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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건물 청소부들의 애환을 경쾌하게 그린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에서 배우들은 스페인어와 영어로 말한다. 미국의 많은 도시 이름들이 그렇듯, ‘천사들’이라는 뜻의 로스앤젤레스(로스앙헬레스)도 스페인어다. 그러나 영화 속의 로스앤젤레스든 실제의 로스앤젤레스든, 스페인어와 영어가 그곳에 대등하게 뿌리내린 것은 아니다.사회언어학자들은 이(二)언어 병용상태를 흔히 바일링궐리즘과 다이글로시아로 나눈다. <빵과 장미>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히스패닉 등장인물들에게, 스페인어와 영어는 바일링궐리즘이 아니라 다이글로시아를 이룬다. 바일링궐리즘은 한 개인이나 공동체가 사용하는 두 자연언어가 사회적 기능에서 차별적이지 않은 경우를 가리킨다. 예컨대 캐나다의 퀘벡지방에서는 프랑스어와 영어가 둘 다 통용되고, 퀘벡 사람들 다수가 그 두 언어를 병용한다. 그리고 이 두 언어가 기능적 차이를 거의 지니지 않는다. 반면에 <빵과 장미>의 무대인
<빵과 장미> 본 아저씨, 두 언어에서 계급성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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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얄 테넌바움>은 올해 최고의 영화는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주어진 감사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미국에서는 성탄시즌에 개봉되었다- 역자). 사랑스럽고 유머러스하며 시종일관 괴팍한 것이 도를 넘어 소중한 느낌을 줄 지경인 이 작품은 웨스 앤더슨의 세번째 장편영화다. 존재하지 않는 어떤 책을 원작으로 삼은 듯이 스스로를 소개하며 마법에 걸린 듯한 맨해튼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 영화는, 자기들만의 과거에 갇혀 그 안에서 폐쇄된 삶을 살아온 한 가족의 이야기다.
이 영화가 제시하는 특유의 판타지는 바로 이것이다. “그대 다시 고향에 갈 수 있으리, 그러나 그대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앤더슨은 98년작 <빌 머레이의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의 자의식 강한 주인공 영웅 맥스에다가 3을 곱하고는 그 소년이 미래에 맞음직한 불행을 추정한다. <로얄 테넌바움>은 테넌바움 일가가 “20년간의 실패와 배신과 비극
어둠 뒤, 멜랑콜리한 핏줄, 웨스 앤더슨의 <로얄 테넌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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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들을 용서해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의 편견은 공허해져버렸다. 스스로 악이고자 했던 것은 일종의 선일 뿐이며, 악의 매력은 무(無)화시키는 힘에 집착할 뿐이므로 무화(無化)가 완성된 이후에는 그것은 더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악의는 ‘가능한 최대한으로 존재를 무(無)로 변모’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의 행위가 실현이므로 무가 존재로 변하고, 동시에 악인의 절대성은 예속으로 들어선다.’ 다른 말로 하면, 악은 선이 그렇듯이 하나의 의무가 되었다. - 조르주 바타유 <문학과 악>
모든 말은 말하여지기 위하여 말하여지지 않은 곳 속에서 그 자체를 둘러싼다. 그리고 문제는 이 모든 말이 어째서 이 금지 자체를 말하지 않는가를 아는 것이다. 즉 이 금지는 그것을 인정하고자 하기도 전에 인정될 수 있는 것일까? 어떤 말은 그것이 말하지 않은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의 부재조차도 표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정한 거부는 금지된 말을
정성일의 <복수는 나의 것> 비판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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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정시에 도착한다
그러니까 원인과 결과 사이에 어떤 중재자가 들어온다. 이때부터 <복수는 나의 것>은 현실에서 실재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대신 원인이 괄호 쳐진 환상의 형식으로 후퇴하기 시작한다. 그럼으로써 이 영화를 지배하는 것은 하드보일드가 아니라, 절대적 필연성에 사로잡힌 목적론의 세계이다. 또는 신비주의가 서술과정을 장악하고, 그 안에서 인과관계는 중재자를 절대자의 자리에 끌어올려 그의 내재적 결정을 따른다.
류가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 그 순간에 장기밀매단 스티커를 붙이는 청년들이 나타난다. 팽기사는 류의 공장장의 딸로부터 동진의 딸에게로 대상을 바꾸게 만들어주기 위해 그 시간에 도착한다. 누나를 묻는 그 장소에, 그 시간에 뇌성마비장애자가 나타나 잠 든 유선을 깨워준다. 유선은 결국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동진이 류의 아파트에 갔을 때 옆방에서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마침 류의 사연을 낭송하고 있다. 그걸 동진은 놓치지 않고 듣고, 그 냇가에 다시 간
정성일의 <복수는 나의 것> 비판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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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지 않은 열병“나는 잠시, 돌고 도는 말의 원형 트랙/ 그 견고한 욕망과 권태에 절망을 견딘다// 세상이여, 이 허무맹랑했던 꿈을 용서해다오/ 말의 이미지의 라스베가스,/ 나는 결국 지금 나를 스쳐가는 저 바람에 베팅할 것이다”(‘천일馬화- 경마장의 함정’ 중에서, <천일馬화>)영화 실패 뒤 그를 스타로 모셔갔던 “블랙홀 같은 대중문화”는 그를 비췄던 관심의 조명탑을 철수하기 시작한다. 따지고보면 키치에 대해 반성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했던 그가 키치에 너무 빠져들었던 탓이지만, “대중문화가 나를 요리했던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첫 영화의 씁쓸한 기억을 지우기도 전인 93년 11월 유하는 또 하나의 충격을 맞이한다. 대학 시절부터 그와 두 친구의 정신적 지주이자 ‘대장’이었던 진이정 시인이 급작스레 타계한 것.커다란 정신적 방황이 시작됐다. 간간이 시를 쓰며 허한 나날을 보내던 그의 눈에 경마장의 트랙이 들어온 것도 그 무렵이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로 돌아온 감독 유하, 시와 영화의 나날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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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 연표1963 전북 고창에서 태어남1981 세종대 영문학과 입학1986 8mm 단편영화 <게으름의 찬양> 제작1988 동국대 연극영화학과 대학원 입학,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1989 시집 <武林일기> 출간1990 16mm 단편영화 <시인 구보씨의 하루> 제작1991 시집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출간1993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개봉, 시집 <세상의 모든 저녁> 출간1995 시집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산문집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 출간1999 시집 <나의 사랑은 나비처럼 가벼웠다>, 산문집 <재즈를 재미있게 듣는 법> 출간2002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개봉시인이자 영화감독 유하. 그는 언제나 대중문화 한복판에 있었다. 할리우드 고전영화와 배우 문희는 유년 시절의 첫사랑이었고, 이소룡과 무협지
<결혼은, 미친 짓이다 >로 돌아온 감독 유하, 시와 영화의 나날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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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 동기생인 <무사>의 김성수 감독과 <아줌마> 등을 만든 안판석 PD는 유하의 21년지기들이다. 그는 김성수와는 고등학교 시절 학교보다는 뒷골목을 자주 찾았고, 교과서보다는 주먹을 믿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고, 안판석과는 문학에 조예가 깊고 69번 버스를 함께 타러 다녔다는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대학 시절부터 어울렸던 이들은 고 진이정 시인과 함께 ‘관극회’라는 모임을 결성해 영화, 연극, 무용, 미술 등에 관해 평론을 하기도 했다. ‘반영화’ 모임도 “영화 한번 만들면 재밌겠다”는 누군가의 말에 진이정이 “그럼 하면 되지”라고 답하면서 만들어졌다. 김성수가 영화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도 결국 유하 덕택이었다. ‘반영화’ 결성 직전, 신촌 ‘우리마당’에서 8mm영화 워크숍 수강 신청을 했던 유하는 갑자기 시를 써야 하는 상황을 맞았고, 김성수에게 대신 참여할 것을 권했다. 여기서 재미를 느낀 김성수는 87년 동국대 연극영화과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이
유하와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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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어린 시절 그는 <미워도 다시 한번> <별아 내 가슴에>를 보며 문희에 대한 연모의 정을 키웠다. 그녀의 초롱한 눈빛에 유하는 황홀경에 빠졌고, 그녀가 눈물을 흘리면 그의 마음속에는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다. “쑈하는 사람들이 저 스크린 뒤에 들어가 가짜로 연극하는 게 영화야”라는 금자라는 동네 누나의 말을 믿었던 그는 영화가 끝나고 나면 눈물 훔칠 새도 없이 후닥닥 스크린 뒤로 달려가 문희의 체취를 느끼려 하기도 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 <십계>의 앤 백스터, 아니 ‘안 박스터’ 역시 그가 추앙한 여신들이었다.이소룡이소룡은 그에게 둘도 없는 절세의 영웅이었다. 극장 갈 돈이 넉넉지 않았던 어린 날, 그는 <사망유희> <당산대형> 같은 영화가 답십리극장 같은 재개봉관에 도착하기를 간절히 기다리곤 했다. 유하의 입을 빌려 이소룡의 세계를 한마디로 묘사하면 “모든 복잡을 뚫고 단숨에 핵심에 이르는”
유하의 키워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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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벽제 국립공원 묘지에서 치러진 김상진 열사 27주기 추모식에 다녀왔다. 창창한 햇빛이 무덤들을 더 유구한 젖무덤으로 봉긋봉긋 도들새김했지만 추모식 내내 강한 바람이 불었다. 소풍 나온 종이컵, 음료수팩, 빈 김밥 도시락곽이 혼미 속을 휩쓸려다녔다.김상진은 1975년 4월11일 서울대 농대 캠퍼스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중 양심선언물을 읽고 할복 자살한 열사다. 당시 4학년. 당황한 당국은 시신을 강제 탈취, 지금의 장소에 서둘러 매장했다.정말 27년 만이군…. 그의 할복 자살 뒤 곧바로 월남이 해방되고, 어둠의 긴급조치 9호가 발효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5월22일 열린 ‘김상진 열사’ 장례식에서 추도시를 읽었고 그렇게 ‘긴조시절’에 걸맞은 시인 데뷔를 한 셈이지만 그의 무덤에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안한 건 물론이고, 그때의 슬픔과 열정이 그만큼의 나이를 먹은 모습을 새삼 확인하는 건 스스로 안쓰러운 일이다.추모식을 준비한 김상진 기념사업회는 ‘열사’ 자가 빠
[컬렉터파일] 김상진 27기 추도식에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