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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정말 아름답고 재능있는 배우다.” <데드맨 워킹> <스텝맘>의 배우 수잔 서랜던이 평소의 신중한 태도를 버리고 신작 <뱅어 시스터즈>(The Banger Sisters)에 함께 출연하는 신인 에바 아무리를 지나치게 칭찬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올해 열일곱살이 된 에바 아무리는 서랜던이 이탈리아 감독 프랑코 아무리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과의 인터뷰에서 “딸에게 연기에 관해 충고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나는 통달하고 있지만 에바는 아직 잘 모르는 유일한 분야가 연기일 것”이라면서 흐뭇한 미소를 보였다. <파 앤 어웨이>의 작가 밥 돌먼이 연출하는 <뱅어 시스터즈>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딪친 두 중년 여자의 우정을 그리는 영화. 골디 혼과 제프리 러시가 출연하며 올해 8월부터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스크린 모녀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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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시절엔 은반 위의 요정을 꿈꾸었다. 키가 너무 자라 7년 동안 했던 피겨스케이팅을 접었을 때가 고교 1학년 때였으니 연기자의 길은 어린 시절의 꿈은 아니었다. 그러나 필연은 언제나 우연과 종이 한장 차이. 8살 때 미국 시카고로 이민을 갔던 한채영은 12년 만인 2000년 여름, 잠시 다니러 왔던 서울에서 인사동 카페 ‘학교종이 땡땡땡’에 갔다가 인연과 조우했다. 개그맨 전유성씨가 사진을 찍어주겠다면서 ‘얼굴에 뭔가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던 것. 연예계에서 일해보자는 섭외를 받았고, 그해 겨울, 미국의 대학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밀리오레, 샤워껌, 에버랜드, 프렌치카페 등 CF와 함께 SBS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뒤바뀐 운명 때문에 은서를 미워하는 신애, SBS 주말 드라마 <아버지와 아들>에서 과수원집 딸 강자 역 등으로 얼굴을 알렸다.
지금 촬영중인 김동원 감독의 80년대풍 코믹액션영화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는 ‘바비인형
피겨 소녀, 달동네 봉자 되다,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의 한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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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하가 돌아간 뒤 책상 위에 엽서 두통이 도착했다. 339호에 실린 <와이키키 브라더스> O.S.T 발매 소식을 접하고 몹시 기쁘다는 서울 독자 한분과 뒤늦게 <와이키키…>를 보고 긴 감상을 적어 보낸 경남 창원의 밴드맨의 것이었다. 엽서를 읽으며 ‘왜 좀더 일찍 도착하지 않았을까’ 안타까웠다. 김성하에게 보여줬더라면 안심하고 좋아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 그런 생각이 들만큼 그의 영화에 대한 염려와 걱정은 은근하고도 깊은 것이었다. 음악하는 사람들이라면 괜히 외면하고 싶을 만큼 ‘딱 있는 그대로’ 그려진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는, 그래서 일반인들에겐 딴 세상 얘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김성하의 걱정은 다름 아닌 그것이었다. “공감이 가세요? 우리는 서로 ‘딱이다’ 하고 보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 영화에 공감하는 이유가 밴드의 삶 자체가 아닌 그것을 타고 전해지는 고단함과 비루함이 아니던가. 김성하는 그제야
<와이키키 브라더스> O.S.T, 김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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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시나리오를 가슴에 안고 아파서, 가슴속 깊은 곳이 너무 아려와서 한동안은 그렇게 멍한 채 있었다. 그리고 불현듯 ‘내가 해야겠다. 해보고 싶다. 소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민정 - ‘컨셉북 <버스, 정류장> 중’
“어, 내가 왜 이러지? 어우∼ 야, 나 왜 이래요….” <버스, 정류장>의 첫 시사회. 이미연 감독과 김태우가 순서대로 인사를 한 뒤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첫 인사를 떼던 김민정이 갑자기 주저앉듯 무너진다. 주르르륵,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려내리는 통에 옆에 있던 김태우가 “신인여우상 받는 장면을 예행연습 하나봅니다”라고 재치있게 넘어가긴 했지만, 정작 당황한 건 본인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냥 무대 올라가기 전부터 기분이 너무너무 이상해서 누가 야!, 라고만 불러도 당장 울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글쎄 뭐였을까. 긴장, 기대, 두려움, 이런 것들이 다 섞였던 게
<버스, 정류장>의 소희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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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우기가 뿌려대는 빗줄기 속에 놓여진 평창동의 버스 정류장에서, 늦가을 차가운 새벽 바람을 맞고 있는 성북동의 버스 정류장에서, 자신의 상처를 감당하기 버거워 훌쩍 사라져버리는 어린 소녀를 기다렸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재섭이 되어가고 있었다….”
김태우 - ‘컨셉북 <버스, 정류장> 중’
남자가 운다. 꺽꺽 소리내어 서럽게 운다. 열일곱 어린 소녀 앞에서 엄마품에 안긴 소년처럼 서럽게도 울어댄다. “어떻게 울어야지, 이런 느낌을 살려서 울어야지 하는 생각도 없었어요.” 어쩌면 꿍 하니 웅크리고 살아왔던 초라한 서른둘 인생을 위한 한 바탕, 어쩌면 찰 것도 빌 것도 없던 마음에 큰 구멍 하나를 내버린 소녀를 향한 한 바탕. 차곡차곡 쌓아왔던 감정들이 분출구를 찾은 순간, 재섭도 김태우도 아무런 계산없이 그렇게 울고 있었다.
우리가 오랫동안 김태우를 알아왔다고 자부해도, 그의 연기를 드라마나 영화에서 수차례 봐왔다고 방심해도, <버스, 정류장>의 김태우
<버스, 정류장>의 재섭 김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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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복절도할 엽기적인 커플도 봤다. 눈을 떼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커플도 봤다. 간혹 서먹서먹한 커플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 커플도 봤다. 그러나 이렇게 따뜻하게 기분좋은 커플은 처음이다. “선생님은 진실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같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열일곱 소녀와 “세상을 띄엄띄엄 살 순 없을까?”며 자문하는 서른두살 남자. 그들의 만남과 소통을 그린 <버스, 정류장>의 김태우와 김민정은, 얌전하고 내성적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세상없이 유쾌한 청춘들이었다.
“내 얼굴이 어려 보여서 그런 거야.” “내가 정신적으로 성숙해서 그런 거라니까요.” 71년생, 82년생. 한살 빠진 띠동갑인 이들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놀리다가 여고생처럼 맞장구치며 속닥거리는 모습은, 누구에게 실례인지는 모르겠지만, 동갑의 연인 혹은 익숙한 친구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막역함도 “백이면 백, 모든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나리오”를 들고 “가장 근접한 느낌”을 찾기 위해 감독
<버스, 정류장>의 김민정, 김태우의 행복한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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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장 가는 길> 등 일련의 경마장 시리즈와 <새> <진술> 등을 통해 새로운 소설을 해온 작가 하일지씨가 또 한번의 실험을 감행했다. 지난 2월에 <마노 카비나의 추억>(민음사 펴냄)이라는 시네로망을 내놓은 것이다. ‘시네로망’이란 영화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읽히기 위해 쓴 시나리오. <마노 카비나…>는 50살의 시인 서인하가 자신에 관한 문학 관련 다큐멘터리를 찍는 현장에서 만난 23살의 여자 강수미를 보면서 느끼는 심리적 변화와 그로 인한 내면 파괴를 그리고 있다. <경마장 가는 길>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 등의 소설이 영화화되고, <경마장 가는 길>을 직접 각색하는 등 하일지씨와 영화계의 인연은 꽤 가까운 편. 처남을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갑자기 체포된 철학교수의 독백으로 이루어진 소설 <진술>도 배우 박광정이 감독 데뷔작으로 영화화하고 있다.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
시네로망 <마노 카비나의 추억> 출간한 소설가 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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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가 레오폴드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기이한 것은 이들이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왔다는 사실. 케이트는 21세기 뉴욕의 커리어우먼이고, 레오폴드는 19세기 알바니 공작 3세다. 레오폴드는 케이트의 전 남자친구가 발견한 시간의 틈에서 빠져나왔지만, 사람들은 그가 시대극에 출연중인 배우쯤으로 생각한다. 레오폴드는 출세지향적인 케이트에게 삶의 작은 기쁨들을 돌아보게 하고, 케이트는 레오폴드에게 문명의 이기들을 예시해 보이며, 서로가 자기의 반쪽임을 깨닫는 기쁨에 들뜬다. 이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서 100년이 넘는 세월의 강을 뛰어넘어야만 한다. 하지만 어떻게?<케이트 & 레오폴드>는 심상치 않은 로맨틱코미디다. 음악 영화 <헤비>, 범죄 스릴러 <캅 랜드>, 소녀들의 성장영화 <처음 만나는 자유>의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1940년대와 50년대 로맨틱코미디의 광팬”이었던 자신의 전력을 살려 도전한 작품. 로맨틱코미디의 요정으로 불리기에
해외신작 <케이트 & 레오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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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너 오늘은 오버하지 마라. 누가 얘 좀 말려줘요.” 김민에게 눈까지 흘기며 말하던 김원희는 물론이고 이미숙 김현수까지 다섯대의 카메라가 돌아가자 화려한 오버 춤연기로 나이트클럽 세트장을 흥분의 도가니로 만든다. 3대째 라이벌 관계인 네모클럽의 인수 위협에 맞서 라라클럽을 지키기 위해 결성된 기상천외한 댄스그룹 ‘울라라 씨스터즈’의 데뷔 무대인 오늘 촬영분은 의상과 무대배경과 음악을 바꿔가며 디스코, 로큰롤, 재즈댄스, 막춤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배우들이 4개월간 연습했다는 춤실력이 만족스러운 듯 박제현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쉽게쉽게 떨어진다. <울랄라 씨스터즈> 촬영장은 아침 9시부터 체조와 함께 시작해서 저녁 7시 정도면 어김없이 끝난다. 이는 치밀한 사전준비를 통한 합리적 제작시스템 도입 덕분으로 배우와 스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고.‘유쾌 상쾌 통쾌한 논스톱 슈퍼 코미디’를 표방한 <울랄라 씨스터즈>는 슬랩스틱보다는 등장인물 각각의 독특한 캐릭터
<울랄라 씨스터즈>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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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유학 때 사고치고 돌아온 뒤 한국생활에 몸이 근질근질했던 21살의 고등학생 성환(송승헌), 가정방문 호스트 아르바이트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좋은 우섭(권상우), 인터넷 방송사를 운영하며 방송사 PD를 꿈꾸는 엉뚱한 행동의 진원(김영준). 그들은 시끌벅적한 고3의 하루를 마치고, 성환이 ‘그 자식’이라 부르는 졸부 아버지의 생일에 다녀오던 길에 갑자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차 지붕 위로 떨어진 피투성이 시체와 수십억대의 달러를 만난다. 순식간에 선택의 기로에 놓인 것. “이걸 갖고 튀어? 말어?”강남 아셈센터와 압구정, 둔촌동 창덕여고 등에서 촬영중인 <일단 뛰어!>는 세명의 청춘스타가 등장하는 바람에 항상 많은 여성팬들이 모여들었다. 특히 외진 지역에 위치한 창덕여고에서의 촬영은 어떻게 알고 왔는지 많은 팬들이 모여 스탭들이 통제하기 힘들 정도였다.난데없이 떨어진 수억대의 돈을 둘러싸고 압구정동 한복판에서 악동들과 신참 형사가 벌이는 좌충우돌 추격전을 그리는 청춘명랑
<일단 뛰어!>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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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간 `뜀박질` 넉달간 `주먹질`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링으로 올라서는 샷을 찍는 2시간여 동안, 유오성(34)씨는 단 한차례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김득구의 등장을 환호하는 관중들의 모습을 위에서부터 훑어 내려가며 찍는 샷으로 유씨의 얼굴은 카메라에 자세히 잡히지도 않았으나, 그는 촬영을 멈추는 잠깐 잠깐 조차도 자신이 김득구임을 잊지 않았다.“그가 참 외로웠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이라곤 관장과 코치, 딱 2명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외로운 상황 속에서 14라운드까지 싸운 것만으로도 그가 존경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유씨는 김득구역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 많이 망설였다. “돌아가신 분이라 연기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았고, 행복한 삶을 산 분도 아니었죠. 그럼에도 이 역을 하기로 한 건, 그의 삶이 개인의 삶이라기 보다 인간의 보편적인 삶이고, 용기를 가진 삶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돌아가신 분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
<챔피언> 김득구역의 유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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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1월 14일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레이 맨시니와 김득구의 WBA(세계권투협회) 라이트급 세계타이틀 쟁탈전. 한국 최초로 라이트급 세계 챔피언에 도전한 김득구는 14회에 KO패한 뒤 병원에 실려갔다가 며칠 뒤 숨졌다. 20년 가까이 흐른 지난 1일, 로스앤젤레스 근교 세펠베다 댐 옆에 새로 만든 특설링 세트에서 이 비운의 복서의 마지막 경기를 재현하는 작업이 시작됐다.김득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챔피언>의 곽경택 감독은 800여명의 미국인 엑스트라를 동원해 6일 동안으로 예정된 김득구와 맨시니 경기장면 촬영의 `레디 고'를 외쳤다. 곽 감독의 전작 <친구>에 나왔던 장동건씨가 제작진을 격려하기 위해 촬영장에 와 있었다. 이날 찍은 건, 김득구의 등장을 환호하는 관중들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담은 샷으로 생생하고 자연스러운 관중들의 환호 모습을 뽑아내기 위해 곽 감독의 이런저런 주문 아래 10여 차례 이상 촬영이 반복됐다.“지금 눈에 보이는 건 허
`권투`가 아닌 `꿈`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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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아이어 감독의 <아이리스>는 영국 작가 아이리스 머독(1919∼1999)의 실제 삶에서 빌려온 이야기다. 감독은,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희곡과 소설을 통해 자기 세계관을 피력해온 이 위대한 작가의 ‘작품세계’ 대신 사랑이야기에 관심이 있다. 사랑이야기라면 우선 청춘남녀가 떠오를 테지만, 영화는 사랑이 젊은 날의 열정일 뿐 아니라 삶의 긴 여정과도 동행할 수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젊은 날의 아이리스(케이트 윈슬렛)는 수면 위를 막 차고 오른 물고기처럼 거침없고 솔직하다. 파티에서 처음 만나 그를 안경 너머로 몰래 지켜보던 존 베일리(휴 본빌)라는 풋내기 영문학 강사는 말도 더듬는 데다 소년처럼 수줍은 발그레한 볼을 지녔다. 독수리나 사슴으로 변해 달아나는 그리스 신화의 여신처럼 아이리스는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분방한 삶을 살지만, 존은 그런 아이리스를 지켜볼 뿐이다.영화는 젊은 날의 이야기와 노년의 이야기를 엇갈려 보여준다. 작가로서 명성을 확고하게 쌓은 아이리스
화려한 봄날은 가도 사랑은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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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토레 피시첼리 선두로 극단출신 나폴리 출신 영화인들 활약 두드러져이탈리아영화의 중심이라 한다면, “영화는 가장 강한 무기”라는 슬로건 아래 무솔리니에 의해 세워진, 말 그대로‘영화의 도시’라 할 수 있는 세트장 치네치타와 영화학교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국립영화센터(Scuola Nazinale di Cinema, 1905년 설립)가 위치한 로마다. 영화라는 강한 무기는, 이제는 TV의 침공을 받아 참패했고, 네오리얼리즘의 힘도 사라진 90년대 중반까지 이탈리아영화의 중심은 토스카나 지방의 감독들(로베르토 베니니, 레오나르도 피라초니, 다리오 아르젠토 등)로 옮겨갔다. 이들은 이탈리아영화의 중심부로 진출해 코미디, 멜로, 공포 등 여러 장르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며 이런 지역적 흐름이 남쪽의 항구도시인 나폴리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 들어 나폴리 출신의 여러 감독, 제작자, 배우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낙후된 땅 나폴리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겨 이탈
[로마리포트] 이탈리아영화 나폴리로 중심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