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롬 헬>의 프로듀서 돈 머피는 영화제작 여부를 가르는 제작사와의 첫미팅 때 휴즈 형제가 얼마나 당돌했는지 기억하고 있다. 20세기 폭스 부사장이 왜 그들에게 영화를 맡길 수 없는지 설명하려하자 앨버트가 거칠게 말을 막고 나섰다. “결국 우리가 흑인이라서 문제가 되는 것 아닌가.” 당황한 그 중역은 말을 더듬기 시작했지만, 디즈니와 뉴라인에게 퇴짜맞고 폭스까지 굴러온 <프롬 헬>은 마침내 촬영에 들어갈 자금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휴즈 형제가 흑인이라는 사실은 영화를 찍는 내내 그리고 영화를 완성한 뒤에도 <프롬 헬>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왜 백인영화를 만드는지 물었다. 그들은 흑인문화가 백인문화 주변에서 함께 자라난다는 사실을 자주 잊곤 한다”고 말하는 휴즈 형제는, 우습게도 반은 아르메니아 혈통이 섞인 ‘하얀 흑인’에 속한다.사람들이 <프롬 헬>을 걱정한 까닭은 감독이 흑인일 뿐만 아니라 유독 폭력적인 영화를
휴즈 형제가 <프롬 헬>을 상영하기까지, 6년간의 제작 `전투`
-
판타스포르투에 날아든 한국의 꿈들호텔에 짐을 풀고서는 홍보용 딱지와 영화포스터를 들고서 극장을 다시 찾았다. 그때 지난번 공항에서 나를 마중 나왔던 스탭이 반가운 얼굴로 다가와서는 가방은 잘 있냐며 환히 웃는다. 그의 첫인사말에 어찌나 미안하던지 그리곤 순간, 그때 고맙다는 인사로 건넸던 컵라면이 생각나서 먹어봤냐고 물어보니, 매운 줄 모르고 바로 먹었다가 매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단다. 어찌나 미안스럽던지, 정확한 사용법을 알려주지 않는 선물은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생활의 지혜를 깨달으며 그와 헤어지고는 이곳저곳 상영관을 돌아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자원봉사자인 듯한 사람이 내 영화포스터를 들고 와서는 사인을 해달란다.약간은 창피한 맘에 난 안 유명하다고 사인은 무슨 사인이냐고 하니, 지금 안 유명할 뿐이지 미래에는 어찌될지 모른다며 피터 잭슨도 92년엔 아무도 몰라보는 무명이었지만, 지금은 바빠서 오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나? 그러면서 나보고 언제 유명해질지 모른다며 자신의 아버지
민동현의 유쾌한 판타스포르투 영화제 기행 (2)
-
‘떨어져 죽느냐, 날아오르느냐. 스스로 벼랑에 선 김득구.’1982년 11월12일. 국내의 한 신문은 이틀 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벌어질 WBA 라이트급 챔피언 타이틀전을 앞두고 그렇게 썼다. 챔피언 맨시니에 비해 펀치력, 테크닉 등 모든 면에서 뒤지는 상황에서, 도전자 김득구에게 승산이 있다면 그것은 의외의 상황이 가져다줄 미지의 결과일 뿐. 그저 “잡초같이 살아온 스물셋 청춘”에게 가능한 ‘기쁨’이 있다면, 머나먼 타지의 링에 오르는 것만으로 1500만원의 목돈을 만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끝맺었다.그리고 한국시각으로 11월14일 오전 7시45분. 비유는 현실이 됐다. KO로 패한 직후, 김득구는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이송됐고, 2시간30분에 걸친 뇌수술을 받았다. 그로부터 나흘 뒤. 어머니 양선녀씨의 동의하에 그의 힘없는 맥동을 지탱해 주던 산소호흡기를 제거함으로써 오직 두 주먹만으로 세상을 버텨내던 강원도 청년은 불귀의 객이 됐다. 누구나 예상한 패배였으나, 누구도 예상치 못
<챔피언> LA 촬영현장을 가다
-
아래 인터뷰는 3월1일 미국 LA 현지취재와 3월6일 전화통화,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무엇보다 김득구와 맨시니의 격돌장면을 얼마나 찍었는지 궁금하다.오늘 13라운드까지 찍었다. 무릎을 꿇은 것은 다음 라운드이지만, 자체적으로 판단하기에 오늘 장면이 가장 중요했다. 가장 처절한 장면이기도 했고, 실제 외과의사와의 취재과정에서도 드러났듯이 이미 13라운드 때 엄청난 데미지를 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알리>처럼 시저스팰리스 장면에서 컴퓨터그래픽 대신 엑스트라를 동원할 계획은 없었나.사실 <알리>는 대규모 인원을 동원했지만, 그들의 세부 움직임이 카메라에 포착되지는 않는다. 또 이번에 사용하는 컴퓨터그래픽은 화면을 폼나게 만드려고 사용하는 게 아니라 엄연히 프로덕션의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사운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시 실제 해설자의 목소리를 넣을 것도 고려한 것으로 아는데. B보존되어 있는 사운드 자료가 믹싱에 충분할 만큼이 아니라 그건
LA에서 촬영중인 곽경택 감독 인터뷰
-
-
● 내시 균형이라는 말을 내가 처음 접한 것은 복거일씨 글에서였을 것이다. 학교 다닐 때 별 뜻 없이 경제학과 강의실을 기웃거리기도 했던 터라 혹시 그 전에도 그 말이 내 귀를 스쳤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장기 기억으로서 내 뇌리에 박히지는 않았다. 10여년 전에 쓴 어느 글에서 복거일씨는 이인 비영합 경기의 비협력적 해결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경우에는 한쪽이 원래의 전략을 고수하면 다른 쪽은 원래의 전략보다 나은 전략을 찾을 수 없는 상황, 곧 내시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내시 균형은 여럿 있을 수 있으므로 경기가 진행됨에 따라 양쪽에 점점 더 불리한 상태에서 균형이 이뤄진다. 복거일씨는 그 예로서 한쪽에서 추구한 군사력의 우위가 다른 쪽의 대응을 부르는 과정이 되풀이되어 결과적으로 처음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균형이 이뤄지는 상황을 들었다. 아무튼 내가 그 글을 읽은 것은 내시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기 전이었다. 그 뒤, 물론 내시가 노벨상을 받은 뒤에, 어
아저씨, <뷰티풀 마인드> 보고 천재 수학자들을 떠올리다
-
● 서부극의 시대가 지나간 지금, 할리우드가 역사를 대변하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다. 첫째는 위대한 인간의 전기영화를 통해서이며 두번째는 특정 사건을 전체적이고 생생하게, 제법 사실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세번째는 한 가지 주제를 따라 허구와 인공물을 잔뜩 가미한 테마파크를 만듦으로써다. 이 세 가지 길들은 한번에 하나씩 사용되는 것은 아니고, 함께 뒤섞임으로써 예측하지 못한 방법으로 서로를 이리저리 비옥하게 만들어준다.요즘 들어 상당히 성공적인 이런 역사물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여러편 나오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마이클 만의 <알리>는 보기에도 즐겁고 또 사려깊게 만들어진 작품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놀라운 인간 중 하나였던 알리의 삶을 훌륭히 그려낸다. 이 영화를 특히 빛나게 해주는 것은 배우 윌 스미스다. 헤비급 챔피언의 상징인 무하마드 알리 역을 맡아 근육을 잔뜩 붙인 커다란 덩치와 설득력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낸 그는 배역에 대한 적절한 자신감을 풍기며 독주한다
위대한 독주, 짜릿한 협주, <알리>
-
오는 4월 10∼17일 네덜란드에서 개최될 제18회암스테르담 판타스틱 국제영화제에 <단적비연수>(감독 박제현), <텔 미 섬딩>(장윤현), <해변으로 가다>(김인수)가 초청됐다. 올해 암스테르담 영화제는 `포커스 온 아시아`란 이름으로 한국과 일본의 판타스틱 영화 특별전을 마련한다. 일본 영화로는 <이치 더 킬러>(미케 다카시), <회로>(구로사와 기요시), <이누가미>(하라다 마사토)가 상영될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한국영화 3편 암스테르담영화제에 진출
-
찰리 헤이든 & 곤잘로 루발카바 듀오 재즈 콘서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월23일 8시/ 서울예술기획/ 02-548-4480, 1588-1555
원래 지난 2월에 예정됐다 급성 맹장염 때문에 한달 연기되었던 찰리 헤이든의 첫 내한공연. 체 게바라에게 헌정한 <Song for Che>를 작곡하는 등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가치관을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감성으로 풀어내는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이 화려하고 강렬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쿠바 출신 재즈 피아니스트 곤잘로 루발카바와 함께한다.
찰리 헤이든 & 곤잘로 루발카바 듀오 재즈 콘서트
-
영화관 옆 철학카페김용규/ 이론과실천 펴냄/ 1만8천원철학을 전공한 지은이가 사랑, 희망, 행복, 성, 시간, 죽음 등 삶의 6가지 보편적인 주제를 <안개 속의 풍경> 등 18편의 영화를 통해 풀었다. 예를 들어 <나라야마 부시코>에서는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러 떠나는 오린에게서 스토아학파의 존재론적 승화를 떠올리며,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까지를 사고를 확장한다. 지은이는 되도록 비디오를 빌려본 뒤, 책을 읽기를 권한다.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이케다 가요코 구성/ 국일미디어 펴냄/ 6800원북미 지역 네티즌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세계의 인구를 100명밖에 안 사는 마을로 축소시키면…”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이 일본을 거치면서 그림책으로 다시 태어났다. 63억 인구가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세계를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라는 동화 같은 가정을 세우고 오밀조밀하게 축소된 숫자의 행진을 시작한다. 행
영화관 옆 철학카페 /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
Emerald Forest-The Very Best of Tim Mac Brian헉스뮤직 발매프랑스의 뉴에이지 뮤지션이자 작곡가 팀 맥 브라이언의 베스트 음반. 1996년부터 지금까지 발표된 7장의 음반 가운데 국내에 소개된 2장을 제외한 나머지 미발표 음반 중에서 선곡했다. 뉴에이지 음악에 주로 쓰이는 피아노와 전자음악을 기본으로, 새소리, 물소리 같은 자연의 음향과 플루트 등의 샘플링까지 좀더 풍성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동양적인 선율의 <Song of The Reed>,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가 돋보이는 <The Memory of The Old World> 등 12곡이 수록됐다.Under Rug Swept 앨러니스 모리셋워너뮤직 발매얼터너티브와 포크록을 바탕으로 여성의 삶에 대한 성찰을 노래해온 싱어송라이터 앨러니스 모리셋의 세번째 정규음반. 1998년 말 2집을 선보인 뒤 거의 3년여 만이다. 육중한 기타 리프로 문을 여는 첫곡 의 얼터너티브풍 사운드나 귀에
Emerald Forest-The Very Best of Tim Mac Brian/Under Rug Swept/Remembrance
-
‘성기완’이 한 멤버로 있는 3호선 버터플라이의 음반에 대해 ‘신현준’이 글을 쓰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일이다. 성기완도, 신현준도 금시초문인 사람이거나, 성기완을 성시완으로 오해하고 신현준을 영화배우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거나, 신현준과 성기완이 <씨네21> 지면에서 ‘본업’과는 거리가 있는 글을 써대는 존재로 알고 있는 사람이 이 글을 읽으면 얼토당토않은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더 절망적이다. 어쩌면.성기완도 신현준도 대단찮은 것은 분명하고 그건 본인들도 안다. 물론 성기완은 음악을 직접 만드는 사람인 반면, 신현준은 남이 만든 음악을 듣고 구시렁대는 사람이므로 성기완은 신현준보다는 대단하다. 그렇지만 둘 다 별볼일 없는 이유는 그들이 ‘제3세계 아시아의 록 폐인’이기 때문이다. 아시아라도 ‘제3세계’만 아니었더라도(일본처럼), 혹은 제3세계라도 ‘아시아’만 아니었더라도(라틴아메리카처럼) 혹은 제3세계 아시아라도 ‘록음악’에 목매지만 않았다면 이렇지는 않았을
3호선 버터플라이 (Numb, 2002)
-
출판은 여자들이 해야 한다…. 페미니스트들이 화들짝 눈을 켜고 긴장할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운동권에서만큼은 난 이 말을 거의 명제 수준으로 신봉한다. 술자리에서 인심좋게 책 내주겠다고 호언장담하면 손해가 1천만을 쉽게 넘본다.그렇게 ‘덕’이 쌓이면 뭐하나. 고료를 지불 못하게 되니 덕이 ‘악업’으로 직결되게 마련이다. ‘운동권 여사장’은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나병식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 옮겨가고 그의 아내 김순진이 총책을 맡은 ‘풀빛’출판사를 찾아가는 일은 기분좋았는데 위 책을 선물받아 오니 역사선생인 아내도 반색이다.확실히 이 책은 기존 역사학자들의 구한말관(舊韓末觀)을 기분좋게 깨부순다. 고루가 질타되고 2분법이 극복되고 왜곡이 교정된다. 3∼4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분량에 이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독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재미는, 분량 운운했지만, 사실 엄청난 노고의 결과다. ‘서구인이 쓴 한국 풍물지’ 전집 23권을 번역출판한 뒤
신복룡, <이방인이 본 조선 다시 읽기>
-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영화의 긴 서두는 소니 리스턴과 캐시어스 클레이의 타이틀 매치를 중심으로 유색인 전용 버스와 어린 시절, 말콤 X의 설교 등이 전설적인 흑인 가수 샘 쿡의 콘서트 장면과 한데 버무려진다. 샘 쿡 자신의 노래가 아니라 데이비드 엘리어트가 다시 부른 노래가 나오긴 하지만, 이 여러 시간대의 알리를 받쳐주는 음악으로 샘 쿡의 걸작 <Bring It Home to Me>가 흐르도록 한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스물두살의 알리(클레이)가 골리앗 같이 거대한 소니 리스턴을 때려눕히는 기적의 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고조되는 이 노래의 주인공 샘 쿡은 흑인의 ‘자존심’ 중 하나이다. 불세출의 음색을 가졌을 뿐 아니라 애절하면서도 신명이 담긴 멜로디를 끝도 없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이 천재 가수는 솔 가수가 되기 전 이미 십대 시절에 전 미국을 휩쓴 가스펠 가수였다. 그 인기를 등에 업고 솔 가수로 데뷔한 그는 리듬 앤 블루스를 재정의했다. 그 이후 솔은 더이상 걸쭉한
<알리> O.S.T
-
한 소년이 배에서 떨어져 무인도로 표류해간다. 처음에는 ‘살려달라’고 외치며 어쩔 줄 몰라 하지만, 금세 현실을 깨닫고 살아갈 방법을 찾는다. 카메라 렌즈로 모닥불에 불을 붙이고, 판초에 맺힌 이슬로 식수를 해결한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의 물맷돌을 직접 만들어 새를 잡고, 대나무로 낚시하는 법도 어렵지 않게 익힌다. 겨울이 다가오자 나무와 짚을 엮어 집을 만들고, 썩은 머루로 만들어낸 술로 한껏 취해보기도 한다. 정말 대단하다. <마스터 키튼>이나 <고르고 13>도 두렵지 않은 프로페셔널한 생존의 능력이다. 하지만 3년이 지난 뒤 소년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뗏목을 만들어 육지로 향한다. 약간의 시련은 있지만 역시 예상 밖으로 쉽게 도착. 그러나 진짜 비극은 이제부터 시작이다.예상치 못한 사고로 한 소년이 고립된다. 천신만고 끝에 바깥 세상으로 나온다. 그러나 자신이 이전에 알던 안락한 세상은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다. 이제 어디로 탈출할 것인가? 우리는 동아시아
박흥용의 <그의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