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 머릿속 다큐멘터리는 어떤 모습인가. 복잡하고 하품나는 영화? 나와는 동떨어진 고매한 교양물? 하지만 여기 이 두 여성감독이 세상에 내놓은 영화는 다르다. 이들의 카메라 렌즈는 밖이 아니라 안을 향해 있다. 그리고 감독 자신은 뷰파인더가 아니라 렌즈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올해 제4회 여성영화제에서 선보인 호주동포 이규정 감독의 <사랑에 관한 진실>은 한국계, 일본계 두명의 남자와 동시에 사랑에 빠진 감독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화법으로 담아냈다. 4월26일 시작되는 2002 전주영화제에서 상영되는 김진아 감독의 <김진아의 비디오다이어리>는 타자의 시선에 마비된 채 심한 거식증에 빠져들었던 감독이 그것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아주 기이한 방식의 일상기록을 통해 의식을 치러내듯 담아냈다.김진아의 영화가 일기쓰듯 찍어내려간 2년8개월의 삶을 157분으로 추려낸 끈기어린 기록이라면 이규정의 영화는 지나간 사랑의 한 계절
이규정, 김진아, 도발의 다큐 실험
-
변기에 머리를 쳐박고 먹은 것을 다 게워내면서 틈틈이 자신이 잘 찍히도록 카메라의 높이를 조절하는 사람을 일찌기 다큐에서 본 적이 있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동물의 날간을 으깨 먹으면서 그런 자신의 입에 딱 맞게 카메라를 셋팅해 놓는다는 건 과연 가능한 일인가. 집의 틈새들을 미친 듯 만지고 다닌다거나 주문을 외우며 팔을 허공에 흔드는 비일상적인 몸짓들은 또 무엇인가. 카메라에 담을 생각이 없었다면 그녀는 과연 엄마의 웨딩드레스를 입거나 할머니의 보자기들을 빨랫줄에 너는 상징적 행위를 했을까.셀프 다큐인 <김진아의 비디오일기>는 일반적인 다큐멘터리라면 금기시하는 작위적인 장면들로 가득하다. ‘저기 어딘가 카메라가 있고, 그 카메라가 피사체로서의 김진아를 찍는다’, 라는 느낌을 주는 장면은 극히 몇 장면뿐, 김진아 감독은 아주 많이 언제나 카메라를 의식하며 카메라 앞에서 일종의 퍼포먼스를 한다. 삶은, 이 작품에서 퍼포먼스와 곧잘 혼동된다. 그것은 그녀가 카메라를 통해 자
카메라로 치유해가는 거식증의 기록 <김진아의 비디오일기>
-
“…여기에 만약 부모님이 계셨다면 어땠을까? 둘중에 한 남자를, 아마도 리처드를 고르라고 하셨을 거다. 그는 한국인이니까. 하지만 일본인의 피가 흐르는 마크와 사귄다는 것, 이건 유대인이 독일인과 데이트를 하는 것과 같은 것일까….”2002년 2월,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한국계 호주인 여성 다큐감독 멜리사는 한국계 미국인 다큐감독들에 관한 영화를 찍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그들을 카메라에 담고 때론 파티에서 함께 어울리던 어느 날 밤, “키스해도 될까?” 하고 물어오던 한국계 미국인 다큐감독 리처드 킴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일주일 뒤, 그녀는 리처드의 친구이자 일본계 미국인 전직배우 마크 하야시에게 또 다른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어떻게 하나. 이 여행은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함이지 연애를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게다가 한꺼번에 두명이라니. 이 와중에도 졸업을 위한 다큐멘터리 촬영은 계속 진행된다. 아, 두 남자 중 누가 진정한 사랑일까? 그리고 이민온
스스로 재연한 사랑이야기, 이규정의 <사랑에 관한 진실>
-
오시이 마모루는 철학적이다. 그의 애니메이션, 영화, 만화 모두 오락보다는 진한 철학적 질문에 경도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진화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인가 등등. 오시이는 우리가 결코 안전하지 않고, 결코 평화롭지도 않고, 결코 선하지도 않은 인간과 야수의 중간쯤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우리의 얼굴을 어두운 거울에 비치면 야수의 이빨이 번득거리는, 반인반수일지도.오시이 마모루가 쓴 <야수들의 밤>은 출발부터 기이한 소설이다. 소니엔터테인먼트, SPE 비주얼웍스, 가도카와 출판사 등이 합작하여 ‘블러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오시이 마모루가 소설을 직접 쓰고, 애니메이션 기획까지 맡으며 <Blood-the last vampire>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 소설, 게임을 동시 발매하는 프로젝트다. 세일러복을 입고 커다란 일본도로 뱀파이어를 도륙하는 소녀 사야의 등장만 같고, 그 밖의 내용은 독립적이다. 애니메이션은 66년 베트남 전쟁 당시
인간의 존재에 대한 난상토론
-
-
한때 우리 만화시장이 해적판이라는 적조로 뒤덮여 있던 때가 있었다. 단순한 저작권의 문제가 아니라 무책임한 번역, 제멋대로 권 수 나누기, 여러 만화가의 작품 뒤섞기 등 눈뜨고 볼 수 없는 횡포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러나 그 검붉은 바다 속에서도 반짝이는 진주를 찾아내던 만화 독자들의 노력은 가상했다. 만화가의 이름도 나오지 않고 원제와는 아무 상관없는 엉터리 제목을 단 작품들을 어떻게 엮어내며 이름 모를 누군가의 팬이 되었고, 출판사에 그 만화가의 책을 펴내도록 무언의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거쳐 우리 독자들로부터 최초로 작가적 아이덴티티를 얻게 된 일본 만화가는 아마도 아다치 미쓰루일 것이다. 정말로 웬만한 그의 만화들은 한두번씩 해적판으로 얼굴을 내밀었고, 많게는 서너개의 다른 제목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 아다치의 옛 만화들이 정식으로 우리 앞에 다시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의 만화 <미유키>, 그리고 10년 전의 만화 <일곱빛
아다치 미쓰루의 <미유키> <일곱빛깔 무지개>
-
<블레이드2>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영화의 내용이 심오해 깊이있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기보다는, 온갖 잡스러운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영화가 지루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전편 이상의 무언가를 찾을 수 없는 점이 아쉽기는 했지만, 현란한 컴퓨터그래픽으로 그려진 액션장면들과 여전히 파워풀한 웨슬리 스나입스의 연기는 ‘지루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나로 하여금 잡스러운 생각을 하게 한 진짜 이유는 <블레이드2>가 이전에 만들어진 수많은 영화들을 연상시킨다는 사실이었다. 평소 ‘영화간의 관계’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입장에서, 패러디영화도 아닌 SF액션영화에서 다른 영화들의 흔적을 찾는 일은 영화 자체를 즐기는 것만큼이나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우선 창조자를 찾아온 돌연변이 뱀파이어가 자신을 만들어준 뱀파이어의 왕을 ‘아버지’라 부르면서 살해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딱 <블레이드 러너>를 떠올
<블레이드3> 및 TV시리즈에 대한 소식
-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뱀파이어 영화. 화려한 특수효과가 볼 만하다. 반은 인간, 반은 뱀파이어로 태어난 블레이드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면서 복수를 맹세한다. 한편, 뱀파이어 세력을 이끌고 있는 프로스트는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인간들을 공격한다. 그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존재는 바로 블레이드다. 프로스트는 경전의 암호를 풀어 인간들을 정복하기 위한 야심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다. 웨슬리 스나입스, 스티븐 도프 등이 출연.
[TV영화]블레이드
-
기네스 팰트로, 이완 맥그리거 주연작으로 제인 오스틴 원작을 영화화했다. 작은 마을에 사는 엠마는 총명하고 사교적이다. 그녀는 남녀 커플을 맺어주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엠마는 마을에 부임한 목사 엘튼의 짝을 찾아주기로 결심하는데 자신의 친구인 해리엇이 일 순위로 오른다. 엠마는 엘튼과 친구를 중매하면서 일이 잘 풀려간다고 생각하지만 엘튼이 엠마에게 구혼하면서 모든 건 뒤죽박죽 얽힌다. 아기자기한 의상 등이 눈을 즐겁게 한다.
[TV영화] 엠마
-
Deer Hunter 1978년, 감독 마이클 치미노 출연 로버트 드 니로 <EBS> 4월27일(토) 밤 10시“<디어 헌터>의 위대함은 혼란의 풍부함에 있다.” 어느 평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디어 헌터>는 위대한 영화다. 존 포드와 하워드 혹스 등 미국영화 거장들 작업을 연상케하는 이 영화는 마이클 치미노 감독에겐 처음이자 마지막 행운과도 같았다. 치미노 감독은 한때 “위대한 건축가이자 영화형식의 혁신자”라는 가슴 벅찬 찬사를 들은 적 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디어 헌터>는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으면서 치미노 감독에겐 행운의 열쇠가 되었지만 이후 그의 명성은 바닥에 떨어졌다. 대작 <천국의 문>이 흥행에 완전히 실패하면서 제작사를 파산지경으로 몰아간 것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영화는 세 남자의 이야기다. 제철소에 다니는 마이클과 닉 등은 종종 사슴사냥을 즐긴다. 이들은 스티븐이 결혼한 뒤 베트남으로 향한다. 마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디어 헌터>
-
●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건물 청소부들의 애환을 경쾌하게 그린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에서 배우들은 스페인어와 영어로 말한다. 미국의 많은 도시 이름들이 그렇듯, ‘천사들’이라는 뜻의 로스앤젤레스(로스앙헬레스)도 스페인어다. 그러나 영화 속의 로스앤젤레스든 실제의 로스앤젤레스든, 스페인어와 영어가 그곳에 대등하게 뿌리내린 것은 아니다.사회언어학자들은 이(二)언어 병용상태를 흔히 바일링궐리즘과 다이글로시아로 나눈다. <빵과 장미>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히스패닉 등장인물들에게, 스페인어와 영어는 바일링궐리즘이 아니라 다이글로시아를 이룬다. 바일링궐리즘은 한 개인이나 공동체가 사용하는 두 자연언어가 사회적 기능에서 차별적이지 않은 경우를 가리킨다. 예컨대 캐나다의 퀘벡지방에서는 프랑스어와 영어가 둘 다 통용되고, 퀘벡 사람들 다수가 그 두 언어를 병용한다. 그리고 이 두 언어가 기능적 차이를 거의 지니지 않는다. 반면에 <빵과 장미>의 무대인
<빵과 장미> 본 아저씨, 두 언어에서 계급성을 생각하다
-
<로얄 테넌바움>은 올해 최고의 영화는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주어진 감사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미국에서는 성탄시즌에 개봉되었다- 역자). 사랑스럽고 유머러스하며 시종일관 괴팍한 것이 도를 넘어 소중한 느낌을 줄 지경인 이 작품은 웨스 앤더슨의 세번째 장편영화다. 존재하지 않는 어떤 책을 원작으로 삼은 듯이 스스로를 소개하며 마법에 걸린 듯한 맨해튼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 영화는, 자기들만의 과거에 갇혀 그 안에서 폐쇄된 삶을 살아온 한 가족의 이야기다.
이 영화가 제시하는 특유의 판타지는 바로 이것이다. “그대 다시 고향에 갈 수 있으리, 그러나 그대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앤더슨은 98년작 <빌 머레이의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의 자의식 강한 주인공 영웅 맥스에다가 3을 곱하고는 그 소년이 미래에 맞음직한 불행을 추정한다. <로얄 테넌바움>은 테넌바움 일가가 “20년간의 실패와 배신과 비극
어둠 뒤, 멜랑콜리한 핏줄, 웨스 앤더슨의 <로얄 테넌바움>
-
저 사람들을 용서해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의 편견은 공허해져버렸다. 스스로 악이고자 했던 것은 일종의 선일 뿐이며, 악의 매력은 무(無)화시키는 힘에 집착할 뿐이므로 무화(無化)가 완성된 이후에는 그것은 더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악의는 ‘가능한 최대한으로 존재를 무(無)로 변모’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의 행위가 실현이므로 무가 존재로 변하고, 동시에 악인의 절대성은 예속으로 들어선다.’ 다른 말로 하면, 악은 선이 그렇듯이 하나의 의무가 되었다. - 조르주 바타유 <문학과 악>
모든 말은 말하여지기 위하여 말하여지지 않은 곳 속에서 그 자체를 둘러싼다. 그리고 문제는 이 모든 말이 어째서 이 금지 자체를 말하지 않는가를 아는 것이다. 즉 이 금지는 그것을 인정하고자 하기도 전에 인정될 수 있는 것일까? 어떤 말은 그것이 말하지 않은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의 부재조차도 표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정한 거부는 금지된 말을
정성일의 <복수는 나의 것> 비판론 [1]
-
모두들 정시에 도착한다
그러니까 원인과 결과 사이에 어떤 중재자가 들어온다. 이때부터 <복수는 나의 것>은 현실에서 실재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대신 원인이 괄호 쳐진 환상의 형식으로 후퇴하기 시작한다. 그럼으로써 이 영화를 지배하는 것은 하드보일드가 아니라, 절대적 필연성에 사로잡힌 목적론의 세계이다. 또는 신비주의가 서술과정을 장악하고, 그 안에서 인과관계는 중재자를 절대자의 자리에 끌어올려 그의 내재적 결정을 따른다.
류가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 그 순간에 장기밀매단 스티커를 붙이는 청년들이 나타난다. 팽기사는 류의 공장장의 딸로부터 동진의 딸에게로 대상을 바꾸게 만들어주기 위해 그 시간에 도착한다. 누나를 묻는 그 장소에, 그 시간에 뇌성마비장애자가 나타나 잠 든 유선을 깨워준다. 유선은 결국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동진이 류의 아파트에 갔을 때 옆방에서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마침 류의 사연을 낭송하고 있다. 그걸 동진은 놓치지 않고 듣고, 그 냇가에 다시 간
정성일의 <복수는 나의 것> 비판론 [2]
-
그치지 않은 열병“나는 잠시, 돌고 도는 말의 원형 트랙/ 그 견고한 욕망과 권태에 절망을 견딘다// 세상이여, 이 허무맹랑했던 꿈을 용서해다오/ 말의 이미지의 라스베가스,/ 나는 결국 지금 나를 스쳐가는 저 바람에 베팅할 것이다”(‘천일馬화- 경마장의 함정’ 중에서, <천일馬화>)영화 실패 뒤 그를 스타로 모셔갔던 “블랙홀 같은 대중문화”는 그를 비췄던 관심의 조명탑을 철수하기 시작한다. 따지고보면 키치에 대해 반성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했던 그가 키치에 너무 빠져들었던 탓이지만, “대중문화가 나를 요리했던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첫 영화의 씁쓸한 기억을 지우기도 전인 93년 11월 유하는 또 하나의 충격을 맞이한다. 대학 시절부터 그와 두 친구의 정신적 지주이자 ‘대장’이었던 진이정 시인이 급작스레 타계한 것.커다란 정신적 방황이 시작됐다. 간간이 시를 쓰며 허한 나날을 보내던 그의 눈에 경마장의 트랙이 들어온 것도 그 무렵이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로 돌아온 감독 유하, 시와 영화의 나날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