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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노래> <파괴된 사나이> <살인비가> <온에어> <여우비> <돌아서서 떠나라>….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모두 기획단계에서는 영화 제목으로 채택됐지만, 최종적으로는 다른 제목에 밀려난 경우들이다. 이들 영화는 결국 각각 <킬리만자로> <복수는 나의 것> <스물넷> <중독> <약속>으로 바뀌어 개봉됐거나 개봉될 예정이다.
영화의 제목은 영화의 첫인상을 크게 결정짓는 요소다. 때문에 영화를 만들고 홍보하는 이들은 제목에 상당한 신경을 쓴다. 하지만 그렇게 결정된 제목도 자주 바뀌곤 한다. 사람 이름을 바꾸는 일보다 훨씬 쉽고 간단한 일인데, 더 나은 게 있다면 주저할 이유가 있겠나.
물론 영화 제목을 바꾸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앞서 관객에게 선보였던 영화와 비슷할 경우. 의 애초 제목은 <즐거운 편지>였다. <편지>가
제목 바뀐 한국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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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는 것, 모든 나라들은 이러한 희생의 유혹을 알고 있었다. 체코인들의 적이었던 독일인들과 러시아인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민족이다. 그들의 애국심은 다르다. 그들은 그들의 영광, 그들의 중요성, 그들의 보편적인 사명에 열광한다. 체코인들이 조국을 사랑했던 것은 조국이 영광스러워서가 아니라 작고 끊임없이 위험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애국심은 조국에 대한 커다란 연민이다.”- 밀란 쿤데라 <향수> 중비행기는 파리 드골공항을 떠나 프라하 루즈네공항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쿤데라가 최근작 <향수>에서 율리시스의 그것에 빗대어 ‘위대한 귀환’이라고 일컬었던, 20년 전 조국 체코를 등지고 프랑스로 망명했던 이레나의 귀환과 동일한 루트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스메타나가 찬미했던 그의 조국은, 그러나 소외된 이방인들의 고독을 양분삼아 살찌워진 곳이었다. 조국에 대한 사랑만큼 증오도 연민도 컸던 사람들. 체코에
한석규 3년 만의 신작 <이중간첩> 프라하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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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갓 서른을 넘긴 신인 감독은 스물여섯명의 기자들로부터 난생처음 당하는 집단 인터뷰에 짐짓 당황한 듯했다. 그러나 조심스럽고 천천히 대답을 이어가는 김현정 감독은 영화아카데미 14기 출신으로 단편 <고수부지의 개자식들>을 비롯 <공공의 적>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 처음엔 거대할 만큼 건장한 몸집과는 쉽게 매치되지 않게 다소 여성적으로 들리던 이름이, 꼼꼼하고 섬세한 촬영장에서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꽤나 적절한 작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무대는 베를린인데 프라하에서 찍는 이유는.→ 베를린의 체크 포인트 찰리는 이미 관광지화됐다. 그러나 프라하는 건축의 양식이나 도로의 생김새가 베를린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이 있었고, 영화촬영의 인프라가 좋은 편이다. 미술, 의상, 소품 담당자들이 80년대 카페 여종업원의 의상까지 완벽히 재현해주었다.데뷔작인데 꽤 대작이다.→ 솔직히 정신이 없다. 대작이다 뭐다 생각할 겨를없이 그저 열심히 찍고 있다.한석규라는 배우가 부담스
<이중간첩> 현장을 가다 - 김현정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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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씬 수척해진 얼굴에 거뭇거뭇한 수염을 기른 채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선 한석규는 이미 꽃다발을 안겨주며 “받아주실 거죠?”라고 부드럽게 묻던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유난히 천장이 높은 프라하의 한 선술집에서 식사와 함께 자연스럽게 시작된 이날의 집단 인터뷰는, 공백에 대한 사소한 궁금증들과 고액의 개런티에 대한 집요한 질문 공세로 그리 편하지만은 않게 진행되었다.<텔미썸딩>이 99년 11월에 개봉했으니 3년 만의 복귀다.→ 정말 오랜만의 촬영이라 긴장된다. 3년이란 시간 동안 뭘 하고 지냈는지 궁금할 거다. <이중간첩>을 하려고 3년간 쉬었다는 대답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 그동안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가지 감정과 기분들이 교차했고 결론적으로는 편안해졌다. 작품을 안 하는 동안 얻은 것도 많았다. 나의 위치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 하는 것을 잘 생각할 기회였다. 사실 한국영화계를 위해 무엇을 할까, 뭐 이런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지
<이중간첩> 현장을 가다 - 한석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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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KBI. 원장 고진)은 제 4회 대학생비디오영상페스티벌의 수상작을 발표했다.
대상에는 다큐부문 <두꺼비강의 눈물> (전북대 영상사업단 송원근 외)과 비다큐부문 <유치원 가는 길>(부산 경상대학 이재영)이 선정돼, 문화관광부 장관상과 상금 150만원을 받았다. 다큐부문 최우수상은 <신의 승리>(동아방송대학 이정우 외)가, 비다큐부문 최우수상은<제7급> (경희대 송용배)이 각각 수상했다. 진흥원은 대상과 최우수상 수상작에 대해 외국어 번역 및 자막처리비용을 지원, 세계 유명 청소년 대상 국제영상제에 출품을 지원할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제 4회 ‘대학생 비디오 영상페스티벌’ 대상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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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이사장 정홍택)은 21∼25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영상자료원 시사실에서 임원식(林元植ㆍ67) 감독 회고전을 개최한다.황해도 평산 출신의 임원식 감독은 이른바 ‘신상옥 사단’이 배출한 영화계의 기둥 가운데 하나. 서라벌예대에서 연극활동을 주로 하다가 기독교방송 성우를 거쳐 59년 유진식 감독의 <불멸의 성좌>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뒤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에 입사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의 영화에서 조감독을 맡은 그는 65년 김승호 최은희 주연의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로 데뷔한 이래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어머니> <의적 홍길동> <박수무당> <아리랑> 등을 연출했다. 현재는 영화감독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이번 회고전에서는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를 비롯해 신영균 문희 주연의 <대감신랑>(71년), 신성일 박지영 허장강 주연의
영상자료원, 임원식 감독 회고전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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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목 감독이 제작한 무성 변사영화 <아리랑> 시사회가 11일 평양 국제영화회관에서 열렸다. 평양방송은 12일 ‘영화는 1920년대에 창작되었던 영화 아리랑을 남조선의 영화 제작사가 그때 당시 영화처럼 무성변사영화로 재현한 것’이라며 ‘영화 시사회를 위해서 평양에 온 남조선 대표단이 여기에 참가했다’고 전했다. 이날 시사회에는 북측에서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해 조찬구 문화성 부상, 영화예술인들이 참석했다. 이 방송은 ‘영화는 일제의 군사적 강점시기 우리 농민들의 비참한 생활처지와 비극적 운명, 지주와 일제에게 항거하는 투쟁모습을 형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편 한민족아리랑연합회는 지난 8월 초 북한의 대외초청영접위원회와 ▲<아리랑> 주제의 다큐멘터리 평양영화축전 출품 △유현목 감독 <아리랑> 상영 및 세미나 개최 △춘사 어록비 건립 및 전집 발행 등을 추진한다는 데 합의했었다.
(서울=연합뉴스)
한국제작 무성영화 <아리랑> 평양서 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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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5일 <위대한 독재자>가 극장에 걸린다. 런던이 독일군의 공습을 받던 1940년 개봉했던 작품을 디지털 기술로 복원, 올해 베를린영화제 폐막식부터 다시 선보였던 버전이다. 역사가 격동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풍자코미디 <위대한 독재자>는 채플린의 최고 걸작은 아니지만 채플린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감동적인 작품이다. <위대한 독재자>는 희극이 비극을, 웃음이 슬픔을, 희망이 절망을, 채플린이 히틀러를 이긴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개봉에 앞서 채플린의 분신, 떠돌이 찰리를 불러내는 것은 그 승리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돌아보기 위함이다. 전쟁과 기아의 시대에, 사람들은 의식하든 못하든 찰리의 소동을 보면서 오늘을 사는 용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것이 20세기 초의 인류에만 적용되는 것일까? 수십년이 흘렀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우디 앨런, 주성치, 로베르토 베니니 등 모자를 벗거나 안경을 쓴, 또는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은 또 다른 찰리를 동
디지털 리마스터링판 개봉하는 <위대한 독재자>,찰리 채플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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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의 첫 장편 <키드>에서 떠돌이 찰리가 길에 버려진 아이를 기르게 되는 대목은 캐릭터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보여준다. 특유의 우스꽝스런 걸음으로 걸어오는 찰리, 골목에 버려진 아이를 보고 난감해하다 지나가는 아줌마의 유모차에 몰래 태운다. 하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는 찰리, 경찰관이 나타나자 냉큼 아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커피포트로 젖병을 만들어 아이 입에 물리고 나란히 옆에 앉아 침대시트를 잘라다 기저귀를 만드는 찰리, 경제적 능력은 없지만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그를 향한 무한한 애정과 동정심을 샘솟게 한다. 곧 개봉할 영화 <아이 엠 샘>에서 어린 딸을 돌보는 지체장애인 아버지 숀 펜의 모습에서도 <키드>의 채플린을 발견할 수 있다. <아이 엠 샘>은 <키드>처럼 코믹하지 않지만 <키드>로부터 각인된 유전자가 눈물샘을 건드린다. 아이를 지키려는 찰리와 숀 펜의 노력은 번번이 편견과 오해의 벽
디지털 리마스터링판 개봉하는 <위대한 독재자>,찰리 채플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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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을 말하길…무성영화 시대의 황제 채플린은 누구보다 침묵이 금이라는 명제를 증명한 예술가였으나, 현실의 채플린은 평생 시끄러운 말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FBI에는 위험한 적색 분자였고 호사가들에게는 나이 어린 여자들에게 눈독을 들이는 성 도착자였으며 장 르누아르 같은 감독에게는 영화를 영접하게 만든 사도였다. 한 시대 전세계 대중에게 가장 사랑받은 사나이 찰리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미움받는 남자 채플린과 동일 인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예찬했지만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그를 질투했다. 채플린은 돈과 명예에 진지하게 애착하고 재능과 성취에 대해 겸손을 몰랐으며 누구의 충고도 듣지 않았다. 그리고 그와 같은 채플린의 성격은 그를 향한 뜨거운 말들에 기름을 부었다.“저, 망할 녀석은 발레 댄서야. 그것도 역사상 최고의. 좋은 기회만 있으면 맨손으로 목을 졸라버릴 텐데.”(무성영화 시대의 코미디언 W.C. 필즈가 채플린의 연기를 보고 나서)“고집 세고 의심 많고 이기
채플린이 말하길‥ 채플린을 말하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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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이 말하길…“한편의 코미디를 만들기 위해 내겐 공원과 경관 한명, 예쁜 소녀 한명만 있으면 된다.”“전쟁과 투쟁은 모두 비즈니스다. 한건의 살인은 악당을 만들고 100만건의 살인은 영웅을 만든다. 수는 행위를 정당화한다.”(<살인광시대> 중에서 연쇄살인자 베르두의 말)“나는 예수 역을 하고 싶다. 나의 캐스팅은 논리적이다. 나는 유대인이고 코미디언이다…. 그리고 무신론자다. 고로 예수 캐릭터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1922년 한 제작자가 예수의 생애를 영화화한다는 소식을 듣고)“나는 유성영화의 수명을 6개월로 본다. 길어도 1년이다. 그러고나면 끝일 것이다.”(1931년)“대사는 코미디 속에서 역할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대사는 내가 만드는 종류의 코미디 안에서는 있을 자리가 없다. 내 사고방식에 따르면 대사는 늘 액션의 발목을 잡는다.”“더이상 미국은 내게 이용가치가 없다. 예수가 미국 대통령이라도 다시는 미국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출국하면
채플린이 말하길‥ 채플린을 말하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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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던 타임즈>에 묘사된 공장의 현실이 어떤 사회과학 서적보다 깊이있는 통찰을 담고 있다 해도 떠돌이 찰리는 누구를 선동하거나 고발하지 않는다. 분노의 주먹을 휘두르는 대신 그는 그저 눈먼 소녀에게 꽃 한 송이를 사거나, 빵을 훔친 소녀의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간다. 언제나 굶주려 있지만 찰리는 삶의 허기를 빵으로만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서커스>에서 그는 당장 배고파 죽을 지경인데도 배고픈 소녀에게 빵과 계란을 나눠준다.정녕 가난한 자의 양식은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구제할 도리가 없는 찰리의 낭만적 천성 이면에는 아무리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자기 옷매무새를 다잡는 당당한 태도가 있다. 거한에게 엉덩이를 걷어채고 경찰에 쫓기는 순간에도 찰리는 모자를 흘리는 법이 없다. 아니, 흘리면 꼭 다시 주워 쓴다. 단편 <개의 삶>에서 찰리는 ‘개 출입금지’라는 푯말을 무시하고 술집에 들어간다. 헐렁한 바지에 개를 넣고 바지 엉
디지털 리마스터링판 개봉하는 <위대한 독재자>,찰리 채플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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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 <시티 라이트> 한 장면에서 최초로 채플린이 직접 부르는 노래 삽입. 개봉 뒤 유럽 일대와 알제리, 일본 등 방문. 레종 도뇌르 훈장 받음1936 <모던 타임즈>에서 떠돌이 찰리로서 마지막 스크린 등장. 여주인공 폴레트 고다르와 세 번째 결혼. 채플린이 인도차이나에서 사망했다는 오보1939 미 의회 반미활동위원회 조사 착수1940 채플린 최초의 발성영화 <위대한 독재자> 10월 개봉. 보수주의자들의 적의를 사고, 급진주의자들 역시 영화의 나이브한 주제 의식에 불만을 표함1942 러시아 참전지지 집회 연설. 오슨 웰스, 프랑스 살인마 랑드뤼에 대한 블랙코미디 기획을 채플린에게 양도1943 채플린과 스캔들을 일으킨 여배우 조앤 배리에게 FBI가 소송을 제기하도록 사주. 6월 소송 중 만난 유진 오닐의 딸 우나 오닐과 결혼해 이후 34년간 동반1944 ‘소비에트 러시아 젊은이에게 보내는 글’ 구술1946 <살인광시대> 개봉1947 존 라
찰리 채플린 연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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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9 4월16일 런던 람베스구 이스트 스트리트에서 뮤직홀 가수 찰스 채플린과 한나 힐 내외의 아들로 출생. 아돌프 히틀러, 같은 달 출생1890 아버지가 미국 공연을 떠난 사이 어머니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자 아버지가 가출1895 6월 어머니 한나, 정신분열증세를 보이기 시작, 람베스 치료소에 입원1898 아버지에 의해 아동극단 ‘랭커셔의 여덟 꼬마’에 입단, 그해 크리스마스에 맨체스터 무대 데뷔1901 아버지 찰스 채플린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 극단을 나와 사환, 이발사 조수, 호텔 보이, 직공, 급사, 나팔수 직업을 전전하며 2년간 생활1903 1903∼05년 연극 <셜록 홈즈>의 급사 역으로 호평1908 카노 팬터마임 극단에서 뮤직홀 스타로 부상. 맥 세넷, 바이오그래프 영화사 입사1910 카노 극단 전미 순회 공연1912 맥 세넷, 뉴욕 모션 픽처 컴퍼니 캘리포니아 스튜디오 제작책임자로 임명1913 9월 키스톤 영화사와 주급 150달러로 계약1914 2월 첫
찰리 채플린 연보(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