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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계절’을 맞아 본격 정치 드라마가 등장한다.6일 첫선을 보일 MBC 16부작 수목드라마 「삼총사」(연출 장두익)에서는 정치자금 거래, 공천 파동, 도청, 재벌의 해외도피, 운동권 출신의 정계진출, 재벌에 대한 소액주주운동 등 누구나 금세 실존인물을 떠올릴 만한 사건들이 등장한다.박준기(류진), 장범수(손지창), 도재문(이정진)은 어릴 적부터 인천에서 함께 자란 단짝 친구.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 때 이웃 학교 학생들과 패싸움을 벌였다가 한 학생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해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재벌 회장의 숨겨진 아들인 준기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무난히 학교를 졸업한 뒤 벤처기업 경영자가 되고 범수는 대학 총학생회장을 거쳐 시민단체 활동가로 이름을 날린다. 패싸움 끝에 교도소 신세를 진 재문은 인천지역 폭력조직에 몸담아 부두목 자리에까지 오른다. 준기와 범수는 정계 진출을 둘러싸고 서로 반목하지만 서로의 진심을 알고 난 뒤 우정을 회복한다.드라마의 첫회는 장범수 의원
대선 앞두고 정치드라마 「삼총사」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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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늦여름여름의 남해가 너무 싫다고 생각하며 8월을 보냈다. 전경린 작가의 고향이기도 하고 아마도 원작의 배경이 되었을 경상남도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나는 끔찍하게 습하고 더운 날씨에게 이미 흰 기를 날리기 시작했고, 내가 근처도 가기 싫어하는 굴 양식장은 경남의 바닷가 마을 이곳저곳에 깔려 있다. 심지어 돌담 대신 굴껍질을 이용해 담을 쌓은 곳도 있다. 늦가을로 크랭크인이 잡혀 있는 게 왜 이리도 기쁜지 모르겠다. 기민이 형이 기민하게(!) 움직인 대로 남해군에서 영화에 관심을 갖는다. 명계남 선배의 도움이 컸다. 정말 발도 넓지…. 군청에서 소개해준 분과 함께 영화의 배경이 될 ‘나비마을’의 후보지를 찾아나섰다. 몇번의 헌팅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조그만 마을들이 속속 발견된다. 그리고 한 마을을 보았다.2001년 가을이근아 미술감독은 영화의 공간들과 캐릭터의 의상 컨셉에 대해 이것저것 스케치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권혁준 촬영감독과의 1차 콘티작업이 진행 중이다. 헌팅에 참여
변영주 감독의 <밀애> 제작일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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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미소년일 것 같던 탤런트 손지창(32)이 정-재계의 이면사를 다룬 MBC 미니시리즈 「삼총사」(수ㆍ목요일 오후 9시 55분)에 출연한다.그가 맡은 역할은 총학생회장을 거쳐 시민단체 활동가로 이름을 날리다가 정계에 입문하는 장범수.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타고난 리더십과 활동력, 그리고 호감가는 외모를 무기로 차근차근 꿈을 실현해가는 인물이다.“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장두익 감독님 작품이라서 무조건 출연했어요. 「무동이네 집」으로 연기자 입문을 도와주셨고 「마지막 승부」로 진정한 연기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신 분이거든요.”손지창은 드라마 첫 장면인 국회 본회의장 연설 대목을 찍기 전에 예전부터 친분이 있던 김민석 전 의원을 찾아가 연설 모습을 캠코더에 담았다. 집에서 비디오를 틀어놓고 며칠 동안 연습한 뒤 스튜디오에서 연설문을 읽어내려가니 장두익 PD가 “난 진짜 김민석 의원이 왔는 줄 알았어”라고 감탄했다고 한다.그러나 실제 성향은 극중 인물과 반대라고 털어놓는다.
정치드라마 출연하는 손지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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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일지 어이. 그거 쓸 시간 있으면 연출을 더 잘했어야지.”변영주 감독은 낯간지러운 짓은 좀처럼 안 한다. 아니, 못한다. 그래서인지 그에게 흔한 일 부탁하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다. 잘못했다간 욕만 드립다 얻어먹기 일쑤다. 연출의 변도 그렇다. 부탁한 지가 수개월 전. <밀애>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알음알음 건넨 것인데, 개봉이 임박해서야 ‘거머리 같은 놈. 귀찮아서 해준다’는 식이다. 하긴, 밀고 당기는 데는 그가 ‘선수’ 아닌가. 다큐멘터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을 시작으로 <낮은 목소리1, 2> <숨결>까지, 역사의 망령에 짓눌린 할머니들의 봉해진 입을 저절로 트이게 할 정도였으니.어쨌든 그가 이번엔 <밀애>를 내놓는다. 극영화로의 첫 진입은 변신이라기보단 연장이다. 절연이라기보다 확장이다. 그의 다큐멘터리가 여성의 몸에 각인된 역사의 폭력성에 대한 진술이었다면, <밀애>는 여성의 몸이 욕망하는
변영주 감독의 <밀애> 제작일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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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규 감독의 새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제작 강제규필름)에 <번지점프를 하다>, <연애소설>의 이은주가 캐스팅됐다.
강감독이 <쉬리> 이후 3년만에 메가폰을 잡는 <태극기 휘날리며> 는 한국 전쟁의 참상 속에서 일그러지는 두 형제의 사랑과 휴먼스토리를 감동적이면서도 장대하게 담아내는 전쟁영화로 장동건과 원빈이 주인공형제로 출연한다. 이은주는 두 형제 중 진태(장동건)와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여주인공 영신을 연기한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오는 12월 크랭크인한다.
(서울=연합뉴스)
이은주, <태극기 휘날리며> 캐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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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17일남해에서의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윤진씨에겐 미흔의 귀신이 붙은 것 같다. 미흔이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만성적인 두통을 느끼고 삶의 의지를 찾지 못하는 장면을 찍어야 하는 날엔 어김없이 윤진씨 자체의 몸 상태가 나빠진다. 심지어 장염까지 앓아 얼굴이 정말 아픈 상태로 보인다. 낮의 야외신에서도 우린 조명을 했는데, 때아닌 초여름 더위와 조명에 윤진씨는 거의 쓰러질 듯 보인다. 촬영을 시작한 첫날부터 난 모든 배우들을 일상에서도 극중 배역 이름으로 부른다. 어느 순간 배우와 캐릭터가 나에겐 그냥 하나로 보인다. 아픈 윤진씨는 걱정되지만 아픈 미흔은 당연한 상황이다. 그냥 쭉 촬영을 계속해나갔다.2002년 6월22일드디어 미흔과 인규가 처음 조우하는 장면. 처음부터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부희집 앞 십자로는 그늘이 하나도 없다. 제작부들은 통제하랴 아이스박스에 얼음과 음료수 채워넣으랴 차가운 물수건 만들어 대랴 정신이 없다. 흡사 태양은 가만히 있다가 슛만 들어가
변영주 감독의 <밀애> 제작일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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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7월8일태풍으로 인한 휴식. 내일부턴 다시 촬영이다. 오랜만에 스탭들과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60여명이나 되는 스탭들. 다큐멘터리를 찍을 땐 함께 일하는 모든 스탭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데 여기선 불가능하다. 최대한 소통하려 애쓰지만 쉽지는 않다. 동시녹음을 하는 이영길 기사님을 제외하면 내가 나이가 제일 많다. 동년배를 찾아보니 촬영버스를 운전하는 원상씨와 프로듀서 혜은이뿐이다. 스탭들은 모니터쪽이 아니라 카메라 바로 뒤쪽에 항상 있는 내가 처음엔 좀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난 모니터를 신뢰하지 않는다. 심지어 모니터 화질도 나빠서 배우들의 연기를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카메라 바로 뒤에서 배우들을 보다보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함께 호흡을 하는 느낌, 촬영을 하는 느낌이 든다.2002년 7월15일남편인 효경에게 미흔이 자신의 절망적인 상태를 폭발시키는 장면을 찍는 날이다. 이곳 남해 오픈 세트장은 동물원 같다. 낮에는 수만 마리의 파리가 서식하고 밤에
변영주 감독의 <밀애> 제작일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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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의 소속사 싸이더스HQ는 1일 보도자료를 내고 영화 <바람난 가족>(제작 명필름)과 관련된 김씨의 입장을 밝혔다.
김혜수는 영화 <바람난 가족>에 캐스팅된 뒤 KBS 드라마 「장희빈」의 출연계약을 해 지난달 30일 영화사 명필름(대표 심재명)으로부터 5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한 바 있다.
김씨는 보도자료에서 “평생을 꿈꿔온 배역이어서 드라마 출연을 제의받고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 두 작품을 병행하기 위해 「장희빈」에 주2일만 시간을 할애하겠다는 약속을 KBS측으로부터 받아냈다”며 “명필름이 지금이라도 거절하지 않으면 영화에 출연할 준비가 돼있다”고 밝혔다.
김혜수 “아직도 영화 출연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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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택 감독이 서울지검에 의해 지명수배되고 <챔피언>의 제작사 진인사필름이 유오성을 고소하면서 곽경택-유오성 콤비의 갈등이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양측의 갈등이 본격화 된 것은 지난 7월18일 유오성의 소속사 JM라인이 “유씨의 동의 없이 별도로 편집된 영화 <챔피언> 의 영상물을 모 의류업체 CF에 제공, 초상권을 침해했다”며 이 영화의 투자제작사 코리아픽쳐스에 대해 서울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하면서부터 이후 양측은 한때 고소를 취하하기로 하는 등 화해하기도 했으나 유오성의 공개사과 문제로 다시 사이가 갈라졌고 지난 8월말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이 유오성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이 사건에 새로운 국면을 맞게 한 것은 유씨측이 “소장이 제출된 뒤 곽감독이 유씨에게 고소를 취하하라며 협박했다” 주장한 사실.검찰은 지난달 30일 곽감독이 소환에 불응하고 소재도 파악되지 않자 지명수배를 내렸고 이에 곽감독이 이사로 있는 <챔피언>
곽경택-유오성 갈등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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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북한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지만 북한영화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만든 <불가사리>가 2000년 처음으로 선보였으나 흥행에 실패했고 우키시마호 수장사건을 극화한 <살아있는 영혼들> 이나 동물들의 짝짓기를 담은 <동물의 쌍붙기>(생각의나무 간)는 지난해 수입된 뒤 개봉조차 못하고 있다. 「서정남의 북한영화탐사」는 북한영화의 내러티브와 인물, 미학적 특징 등을 분석한 책. 북한의 최근 대표작 87편을 사례로 들고 있어 스크린 대신 지면으로나마 북한영화의 실상을 만나볼 수 있다. 북한영화의 제작 원칙은 △당성 △계급성 △인민성 △현대성. 이를 명료하게 드러내기 위해 주인공은 대개 비범한 도덕성의 소유자이며 줄거리는 권선징악형 구조로 마감된다. 내레이션이나 노래가 자주 사용되는 것도 큰 특징이다.저자는 북한영화를 종교성과 신파성의 틀로 해석하고 있다. 거의 모든 영화에 당과 수령에 대한 찬사
<책> 지면으로 만나는 북한영화의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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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부는 1950-60년대 한국영화계를 이끌었던 연기파 배우 김승호(본명 김해수)씨를 11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김씨는 한국영화계의 스타였지만 출생이나 성장 등 사생활이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 서울 청진동 부근에서 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보성고보 1년을 중퇴한 그는 김두한이 동양극장의 극단에 소개함으로써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무명배우 시절을 거쳐 1945년 자유극장의 창립단원으로 참여했으며, 1957년 제4회 아시아영화제 특별상 수상작 <시집가는 날>에 출연하면서 인기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로맨스 빠빠>(신상옥 감독)로 제7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마부>(강대진 감독)로 제11회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하는 등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잡았다. 말년에는 대양영화사를 차려 영화제작자로도 활동했으며 영화인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1968년 12월 1일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났
11월의 문화인물에 배우 김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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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82년 대만에서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혁명이란 이후 세계영화계의 판도를 바꿔놓은 대만 뉴웨이브영화의 출현이었다. 82년작 <광음적고사>를 필두로, 83년 <샌드위치 맨> <해탄적일천> <펑쿠이에서 온 소년> <샤오피 이야기>가 잇따라 발표됐고, 서구의 영화평론가들은 이 새로운 영화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이와 동시에 허우샤오시엔, 에드워드 양, 차이밍량, 리안 등의 이름은 ‘아시아의 낯선 감독’에서 ‘새로운 영화미학의 창조자’라는 수식어 뒤에 놓이게 됐다.
20년 전부터 현재까지 세계영화제와 평단에서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는 대만 뉴웨이브영화 13편이 제7회 부산영화제를 찾는다. 특별기획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열리는 ‘대만 신전영(新電影) 탄생 20주년 특별전’이 그것. <광음적고사>와 <샌드위치 맨>을 비롯, 에드워드 양의 <청매죽마>, 리
대만 뉴웨이브 20년의 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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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원장 정홍택)은 일본의 국립필름센터, 일본국제교류기금과 함께 11월 5일∼12월 25일 ‘한국영화 영광의 60년대’ 라는 주제로 한국영화 회고전을 개최한다.
도쿄의 국립필름센터에서 열리는 회고전에는 신상옥 감독의 <연산군>과 <천년호>를 비롯해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 유현목 감독의 <카인의 후예> 등 60년대 영화 28편이 상영된다.
이번 회고전은 한국영상자료원과 일본국립필름센터의 영화교류 차원에서 기획된 것으로 내년 3월 서울에서는 일본영화 회고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영상자료원 일본서 한국영화 회고전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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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1982년, 에드워드 양을 비롯한 4명의 감독이 참여한 옴니버스영화 <광음적고사>의 등장은 그야말로 사건이었다. 당시 동아시아 한 귀퉁이의 작은 섬나라에서 만들어진 이 저예산 ‘모듬영화’가 곧 세계영화계를 흔들어놓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만의 ‘신랑차오’(新浪潮), 즉 대만 뉴웨이브영화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평가되는 그 영화는 그렇게 조용히 꼬리치며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1982년 <광음적고사>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영화라는, 실로 대만이라는 나라를 꿰어내는 것은 무망한 짓이었다. 대륙에서 권력을 잃은 장개석 장군이 49년 대만에 자신의 깃발을 꽂은 이후 대만의 영화는 체제를 홍보하거나 반공정신을 고양하는 나팔수 역할을 해왔다. 60년대 이후 대중작가인 경요(瓊瑤)의 애정소설을 영상화한 작품이나 홍콩 무협영화의 모사작 등 상업영화가 대거 생산돼 인기를 얻은 것은,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프로파간다영화
대만 뉴웨이브 20년의 힘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