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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예술로 거듭나다연극에 가까운 영화 <기즈공의 암살> 공개“1895년 12월28일 시네마토그라프의 첫 공개 상연에 비길 만한 일.” 1908년 11월17일 프랑스 영화사 필름 다르(Film d’Art)의 창립작품인 <기즈공의 암살>의 첫 상영을 본 한 드라마 평론가의 극찬이다.필름 다르는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하는 권위있는 연극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제작”을 표방하고 만들어진 영화사다. 중산층을 겨냥한 잡지들을 소유하고 있는 프레르 라피테가 그 창립자로, 라피테는 풍부한 프랑스의 문학과 연극 전통을 활용해 미학적으로나 지적으로 중산층을 만족시킬 만큼 예술적인 영화를 만들면 연극으로 향하는 그들의 발길을 돌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영화는 하층계급을 위한 저속한 오락”이라는 기존의 통념을 깨뜨리겠다는 것. 이를 위해서 라피테는 프랑스 연극계 최고들을 불러모았다.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인 앙리 라브당에게 시나리오를, 극단 코미디 프랑세즈의 단원들에게 연출과 출
영화사 신문 제 4호 (1908~19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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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면 길수록 재미있다<퀸 엘리자베스> <기즈공의 암살> 등 장편영화 흥행 가능성 높아져‘길면 길수록 재미있다!’ 영화가 점점 길어지고 있다. 니켈로디언의 성황과 함께 릴 한개짜리 영화(상영시간 15분)가 표준화가 되었지만, 일부 영화제작자들은 다수의 릴로 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1912년 <퀸 엘리자베스>의 성공은 이같은 추세를 가속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아돌프 주커가 수입, 상영한 <퀸 엘리자베스>는 프랑스 필름 다르가 제작하고 유명한 연극배우 사라 베른하르트가 주연한 네릴 영화. 독립배급업자였던 주커는 MPPC가 장악한 극장 입성이 저지되자 7월12일 뉴욕의 대형극장인 라이세움에서 이 영화를 개봉했다. 입장료는 니켈로디언 입장료 5센트의 20배에 달하는 1달러. 하지만 영화를 보고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퀸 엘리자베스>는 미국 전역에서 흥행에 성공했으며, 주커는 큰돈을 벌었다.장편영화의 성공은 한릴 영화를 고집해
영화사 신문 제 4호 (1908~19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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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시스템의 탄생배우, 은막 밖으로1910년. 세인트루이스 역은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녀’를, 그녀의 ‘살아 있음’을 어깨 너머라도 보기 위해 쏟아져 들어온 세인트루이스의 시민들이다. 약속된 시간에 그녀는 나타났고 시민들은 열광했다. 이제 영화에서도 ‘스타덤’이라 할 만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가 바로 전에 ‘바이오그라프 걸’이라고 불렸던 독립영화사 IMP의 여배우 플로렌스 로렌스다.그날 이벤트는 IMP의 사장 칼 래믈이 지난해 바이오그라프사에서 스카우트한 플로렌스 로렌스를 ‘스타’로 만들기 위한 전략전술의 하나로 준비됐다. 곧 칼 래믈은 그녀를 스카우트한 뒤, 그녀가 세인트루이스에서 차사고로 죽었다고 소문을 냈다. 그러고나서 그는 업계지 <모션 픽처 월드>에 ‘거짓을 벗긴다’라는 제목의 광고를 내, 그녀의 죽음은 사실무근이며 이를 증명하기 위해 그녀가 최근작의 개봉에 맞춰 세인트루이스에 나타날 것이라는 광고를 냈다. 이 광고에서 래믈은 그녀의 실제
영화사 신문 제 4호 (1908~19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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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사우론의 사악한 세력에 맞서서 반지를 지켜낸 원정대는 이제 뿔뿔이 흩어져 제 갈 길을 가게 된다. 프로도는 충복 샘과 함께 불의 산으로 향하지만 골룸이라는 새로운 위협을 맞이하게 된다. 한편 메리와 피핀을 구하기 위해 우르크하이 군대를 추격하던 아라곤과 레골라스, 김리는 판고른 숲에서 백색의 마법사로 부활한 간달프를 만나게 되어 사우론이 암흑세계의 두개의 탑 오르상크와 바랏두르를 통합해 점점 그 세력을 넓히고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피터 잭슨 감독, 일라이저 우드, 이안 매켈런, 리브 타일러 출연, 수입 (주)태원엔터테인먼트, 배급 시네마서비스 상영시간 2시간59분박평식 스펙터클! 영화의 독자성을 어느 예술매체가 넘보랴 ★★★★심영섭 역사를 도돌이 하는 반지의 원형성 ★★★☆■ <피아니스트>에리카는 오스트리아 빈의 음악원 교수다. 어머니와 둘이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녀는 옷 하나 사는 것도 어머니의 간섭을 받는다. 그러나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피아니스트/비밀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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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시계를 보고나서 TV를 켜게 되지만, 역으로 TV에서 어느 프로그램이 시작하면 몇시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말고 온 국민이 암묵적으로 ‘저 프로는 몇 시’ 하고 외우는 프로그램은 이제 단 하나다. 바로 <재미있는 동물의 세계>다. ‘빰빰빰빠라빠빰빰빰~’ 하는 음악이 나오고 이완호 성우의 낭랑하고도 무게있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면 다들 알게 된다. 아하. 오후 5시30분이 다 되었나보구나. 그리고 동물의 세계가 시작된다. 하지만 정말로 펼쳐지는 것은 동물의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과 인간의 자세이다.동물과 인간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인간은 문명을 가지게 되었고, 인간은 자연을 정복한다고 생각하면서 파괴하고, 그러면서도 거꾸로 자연에 잠식당하면서 살아왔다. <재미있는 동물의 세계>에서 보여주는 수많은 동물 다큐멘터리는 단지 동물 사이의 약육강식과 생사만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 파괴행위와 그 대가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우리 인간은 문명이란 이름 아
`애니멀플래닛`의 자연 다큐멘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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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면 언제나 나오는 말이 있다. 불우이웃을 생각하자, 차분하게 보내자, 과음하지 말자 등. 백번 지당한 말씀들이다. 그러나 그렇게 안 된다.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고 매정하지 못해서도 아니고, 어쩌면 자발적으로 우리는 망가지는지도 모른다. 남 탓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내 탓도 할 것 없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는 살지 못할 날이 올 것이다. 혹은 문득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모든 연락을 끊고 칩거 혹은 입원할지도 모른다. 이번주 독립영화관(KBS2TV 토 새벽 1시10분)에서 방영하는 영화 두편은 그런 결심에 도움을 줄지도 모르겠다. <나무아미타불 크리스마스>(박관호 연출/ 16mm/ 컬러/ 15분/ 2002)는 예닐곱살로 보이는 동자승과 교회에 나가는 그 나이 또래의 예쁜 소녀와의 첫사랑에 관한 얘기다. 농담이다. 첫사랑은 무슨 첫사랑 둘은 좋아하고 크리스마스날 교회에 초청받은 동자승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룬 영
독립,단편영화 <나무아미타불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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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 of War, 2000년감독 크리스천 드과이출연 웨슬리 스나입스SBS 12월22일(일) 밤 11시40분
쇼는 비밀요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미국에서 베트남 난민의 시체가 쌓인 선박이 발견되고 유엔이 위기에 몰린다. 혹스는 중국과의 무역에 반대하는 사람의 음모라고 결론짓고 쇼에게 수사를 지시한다. 중국 대사가 살해당하고 현장에 있던 쇼는 암살범으로 몰린다. 이후 쇼는 쫒기는 신세가 되지만 수사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웨슬리 스나입스가 주연하는 액션스릴러. <라이브 와이어>를 만든 크리스천 드과이 감독작. 도널드 서덜런드 등이 출연.
아트 오브 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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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ship Troopers1997년, 감독 폴 버호벤출연 캐스퍼 반 디엔 KBS2 12월21일(토) 밤 10시50분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소설이 원작. 고교를 졸업한 자니는 여자친구 카르멘의 환심을 사기 위해 우주방위군에 입대한다. 외계 곤충들이 침입해 지구가 위기에 처하자 자니의 군대는 행성에 급파된다. 곤충들은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자니의 동료들의 목숨을 앗아간다. 치열한 전투가 되풀이되고 자니는 어느새 영웅으로 대접받기 시작한다. <원초적 본능>과 <쇼걸>의 폴 버호벤 감독작으로 거의 자기파괴적인 경지에 오른 할리우드 오락영화.
스타쉽 트루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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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ena, 2000년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출연 모니카 벨루치KBS1 12월22일(일) 밤 11시20분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순수한 동경(憧憬)의 영화를 만든다.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피아니스트의 전설>(1998)도 비슷하다. 평생을 유럽과 미국 사이를 오가는 거대한 배 안에서 생활해온 사람이 있다. 그는 피아니스트다. 어느 날 이 피아니스트는 갑판에서 서성대는 여인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녀를 위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일생을 건 모험을 계획하게 된다. 이처럼 토르나토레의 영화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순간이 있다. 타인에겐 허황된 이야기처럼 비칠지 모르지만 누구나 내심 간직하고 있는, 개인적인 꿈이나 판타지의 세계를 두드린다. <말레나>는 토르나토레의 2000년작이다.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무렵, 한 마을에 말레나라는 여성이 산다. 그녀가 걸어갈 때면 마을 사람들은 숨을 죽인다. 남자들은 말레나의 아름다움에 도취해서, 여자들은 서로 쑥덕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말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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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승 감독의 데뷔작 <그대안의 블루>를 촬영할 때였다. 나는 ‘프로듀서’의 자격으로 그 작품에 참여했는데, 말이 그렇지 감독과 시나리오만으로 강수연, 안성기라는 당대의 톱스타가 캐스팅되고 제작사가 나선 케이스여서, 별반 영향력이나 기여도 없이 무늬만 프로듀서인 초보 시절이었다. 거기에다 현재 영화세상의 대표인 안동규씨가 이현승 감독과 먼저 결합하여 진행되었던 영화여서, 다시 말하면 나는 무임승차한 프로듀서였던 셈이다.
어쨌든, 신발 밑창이 닳을 만큼 촬영현장을 열심히 쫓아다녔다. 강수연씨가 식장에서 뛰쳐나와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로 고속도로에서 지나가는 차를 잡으려고 애쓰는 장면을 촬영할 때였다. 옆에 서서 딱히 할 일이 없던 나는 그날따라 웬일인지 강수연씨의 웨딩드레스 안에 받쳐입는 페티코트를 가슴에 안고 서 있었다.
한껏 부풀려진 페티코트를 안고 서 있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안성기씨가 ‘내려놓지 힘들게 왜 들고 있냐’고 예의 그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나는 평
[심재명] 배우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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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FM <세계음악기행>을 맡으면서 서남준씨를 알게 됐다. 그리고 음악, 영화, 프랑스 유학 등 내 삶의 몇 가지 동기가 되어준, 학창 시절의 FM 영화음악 프로그램의 작가가 바로 그분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러자 많은 기억들이 샘솟기 시작했다.
십년 전 유학 시절, 기자 어시스턴트로 칸영화제에 내려갔다. 종일 붙어다니며 하루에도 네댓 작품을 봐야 하는 일정이었다. 며칠이 지난 아침, <엘 비아헤>를 봤다(El Viaje 페르난도 솔라나스 감독, 1992, 아르헨티나). 팔레 데 페스티벌을 나오면서 나는 양해를 구하고, 당일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혼자가 됐다. 더이상 다른 영화를 볼 수가 없었다. 그날 하루만큼은 라틴아메리카의 자연과, 현실과, 그리고 아버지를 찾아 대륙을 종단하는 그 청년의 마음을,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음악에 실어 고스란히 간직하는 데, 그 무엇으로부터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행복했다.
중학교 1학년 때인가 아버님이 카세트
내 심장이 섬세하던 시절에, <배리 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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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소년이었던 나는, 록음악을 사랑했다. 록이 나를 키워주었고 나의 생장점은 언제나 록의 비트로 세포분열을 하며 자라났었다. 20세기가 남긴 가장 위대한 문화적 유산. 록은 천박하며 위험하고, 생생하며 본능적이고, 진실하며 열정적이고, 단순하며 심오하였다. 세상의 모든 금지된 것들을 향한 출정가였다. 하지만 20세기는 끝났고 록의 시대도 가버렸다. 강렬한 기타 리프에 시대를 비판하는 가사를 열창한다는 것은 보기에도 민망한 올드패션일 뿐이다. 여자친구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서 전자기타를 사려는 소년들조차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록밴드는 일종의 연예흥행사업의 한 설정이고 패션일 뿐이다. 예쁘게 거세당한 록음악은 불만에 차 있지도 않고 무슨 경종을 울릴 만큼 너무 시끄럽게 연주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록의 시대는 갔다. 진실을 열창하던 시대는 가버렸다. 주먹을 높이 쳐들고 극한의 사우팅을 토해내던 시대는 갔다. 록의 남성적인 공격성은 싹둑 잘려버렸고 고작 1인치 정도 남은 돌출
김형태의 오!컬트 <헤드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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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맘때쯤 자주 오고가는 길목의 뜨개질 방에 후드가 달린 빨간색과 베이지색 스웨터가 걸렸다. 뜨개질 방이란 내가 붙인 이름이고 그 집 이름은 ‘예림방’이다. 서울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가게가 아니라서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자연히 시선이 그 집 진열장을 향하곤 했다. 두 스웨터 중에 빨간색이 내 마음을 끌었다. 빨간색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랑하는 그녀가 입으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한번은 그 집에 들어가 스웨터 값을 물었더니 삼십오만원이라고 했다. 손으로 직접 뜬 것이니 공정만 쳐도 그만은 할 터인데도 그때는 왜 그렇게 그게 값이 세게 느껴졌는지. 내가 아쉬워하니 그 집 주인은 내게 뜨개질을 배워보라 하였다. 뜨는 방법은 다 일러주겠다지만 시간을 어찌 감당한단 말인가. 그냥 돌아 나오면서도 내내 아쉬웠다. 해가 바뀌고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는 동안 스웨터 두개는 그 자리에 그대로 진열되어 있었다. 그러더니 얼마 전에 그 집 앞을 지나다보니 빨간색만 홀로 걸려 있지 않은가.
포근한 겨울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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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사장은 서울 을지로에서 자그마한 인쇄소를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아예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더듬는다면 분명히 장애일 것이다. 사실 그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백이면 백, 그와는 말이 안 통한다고 한다.그런데도 그는 그 어려웠던 ‘쌍팔년’(1955년) 군대에 무사히 다녀왔고 3남2녀의 자식들을 잘 키워 성가시켰다. 사업을 하고 있으니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면 애초에 망했을 것이다. 요컨대 그가 말을 더듬는 것이 그의 인생에 일정한 영향을 끼치기는 했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전화가 일반화하면서 말더듬이라는 그의 특성이 자주, 눈에 띄게 드러나게 되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일 때문에 밖에 나간 그가 회사로 전화를 걸어왔다. 마침 전화를 받은 사람은 들어온 지 며칠 안 되는 신입 여직원이었다.“네. 창녕인쇄입니다.” “…”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창녕인쇄입니다.” “…”“여보세요. 왜 전화를 해놓고 말을 안 하세요. 말씀하시라니까요.” “…
말 못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