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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11개월 된 둘째 딸을 키우며 새삼 슬하(膝下)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 흔히 ‘부모님 슬하에서 자라나…’라는 말은 많이 하지만 정작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알게 됐다는 얘기다(큰애 때는 얼떨결에 키워서 잘 몰랐다).아기들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사고를 친다. 갑자기 조용해질 때 특히 조심해야 하는데, 그럴 때면 백이면 백 화장실 변기물을 휘젓고 있거나 화장대에 기어올라가 난리블루스를 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잘 놀다가도 벌러덩 뒤로 넘어지는 경우다. 그러면 또 아파 죽는다고 울어젖힌다. 그런 모습을 보면 부모로서 잘 돌보지 못한 죄책감과 ‘왜 제 몸 하나 제대로 못 가누나’ 하는 분노가 마구 뒤섞여 가슴이 꽉 메어져온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다리를 O자형으로 모으고 그 안에서 놀게 해야 한다. 바로 무릎 아래, 즉 ‘슬하’에서 키우는 것이다.어디 아기였을 때뿐이랴. 아이가 한살 두살 먹어갈수록 점점 아이를 키우는 일이 조심스러
사회의 슬하에서 키운다,<희망을 그리는 세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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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완 소녀> 완결다카하시 쓰토무의 열혈 여성 야구 만화 <철완 소녀>가 전 9권으로 번역 완결되었다(학산문화사). <철완 소녀>는 일본이 패전한 직후 미군정하에서 시작된 가상의 여자프로야구를 배경으로 다루고 있다. 천재적인 야구선수인 여주인공은 미국이라는 지배세력과의 노골적인 대결을 주장하고, 일본인들에게 전쟁의 수렁에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초기의 활기로운 사건들은 주인공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다소 황망무계한 방향으로 흘러들어가는 듯하지만, 깊이있는 화력으로 그려진 그림과 박진감 있는 묘사들이 독자들을 매료시켜왔다.<신 천하무적 홍대리> 새단장지난 1999년 직장인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천하무적 홍대리>가 새로운 단행본으로 나왔다. 이번 책은 만화가 홍윤표가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전업만화가로 나선 이후 처음 내게 된 작품집이다. 내용의 기조는 전작과 크게 다른 바가 없지만, 컬러를 사용하는
<철완 소녀> 완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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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를 좋아해요.” “나는 그 남자 아니면 죽어버릴 거야.” “오늘밤에는 기필코 호텔에 가고 만다니까.” 술자리에는 언제나 그런 말이 넘쳐난다. 더구나 인간 발정기의 정점인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의 모임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이 만화 <이사>(세주문화)도 그 부질없는 술자리로부터 시작된다. 연애 감정은 술자리 최대의 화두이지만,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또 곤란하다. 그랬다간 우리의 젊은 전체가 거대한 비극의 덩어리가 되고 만다. 적당히 들어주는 척 무시하거나, 당사자를 은근슬쩍 부추겨서 술값이나 내게 하는 게 낫다. 내일이면 지구의 종말이 오는 듯 그 사람을 애절하게 찾다가도, 호르몬이 식어버리면 뒤통수를 긁으며 그냥 청춘의 달력 한장이 뜯겨져 나갔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그저 그런 술자리, 대충 눈에 들어오는 연애 함수. 조금은 시시하게도 보이는 러브코미디의 시작이지만, 이 만화를 누가 그렸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마음을 놓지 못할 것이다. 바로 히로아키 사무라,
낯익은 로맨스 낯선 코미디,히로아키 사무라의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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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와 비디오 게임에서는 세계 최강인 일본이지만 PC 게임시장은 보잘것없다. PC 보급률이 낮다보니 덩달아 시장규모도 작아서 1만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규모보다 더 특이한 게 구조다. 제대로 된 PC 게임 제작사는 팔콤 정도고, 일본에서 출시되는 PC 게임의 절대 다수가 ‘18금 게임’, 이른바 ‘야게임’이다. 시장규모가 작은 데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많은 게임이 쏟아져나온다. 지난해 12월 한달 동안 나온 성인용 게임만도 71개다.아무리 많은 게임이 나오더라도 성인 게임 시장은 정체되어 있다. 소재가 한정되어 있는데다가 게임성보다는 다른 걸 우선시하는 장르에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도, 장르간의 부침도, 게임 업계의 위기도 성인용 게임 시장은 비껴 간다. 그래픽의 해상도와 여주인공 스타일의 변화를 제외하면 10년 전 게임이나 요새 게임이나 크게 다를 게 없다. 99%의 게임이 대화를 선택하면 그림이 보여지는 시스템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하지만 새로운 시도
18금 게임의 진화?<나무 하나가 빠져버린 날의 가로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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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BBC온라인’은 2003년의 할리우드 영화계를 예측하면서, ‘속편의 해’(The Year of the Sequel)라는 표현을 썼다. 실제로 2003년에 개봉예정인 영화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대작들의 속편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된다. <툼레이더2: The Cradle of Life>, <미녀 삼총사2>, <매트릭스2 리로디드>(The Matrix: Reloaded), <매트릭스3 레볼루션>(The Matrix: Reloaded), <엑스맨2>, <터미네이터3>(Terminator3: Rise of the Machine), <분노의 질주2>(2 Fast 2 Furious), <덤 앤 더머2>(When Harry Met Lloyd: Dumb and Dumberer), <프레디 대 제이슨>(Freddy vs Jason), <샹하이눈2>(Shanghai Knights)
<매트릭스> <터미네이터> 등 2003년 뒤흔들 속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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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우리말로 바꾸면 ‘잡을 테면 잡아봐’가 됐을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쫓고 쫓기는 추격에 관한 영화다. 감독은 스티븐 스필버그, 주연은 톰 행크스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니 홍보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영화는 없을 듯하다. 하지만 홈페이지의 문을 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영화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보여주는 인트로 플래시 외에는 사이트 전체 메뉴나 포스터에서조차 감독이나 배우의 얼굴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새하얀 바탕에 양각 판화 같은 느낌의 일러스트가 디자인의 전부다. 이런 심플함이 돋보이는 디자인에 비해 제공되는 콘텐츠의 밀도는 꽤 높은 편이다. 제작노트 메뉴 중 Colorful Characters와 Colorful Time 코너가 바로 그렇다. 독특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서 캐릭터와 로케이션 등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이 할리우드 1급 스탭들의 풍부한 코멘트를 통해 잘 드러난다. 스필버그 영화의 단짝 존 윌리엄스표 영화음악도 모든 트랙을 들을 수 있
<캐치 미 이프 유 캔>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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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을 이틀 남긴 저녁,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무척 즐겁고 유쾌했다. 그 유쾌함은 나만의 것은 아니었다. 함께 영화를 본 대부분의 관객에게서 어떤 공감의 기운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관을 나서던 중, 뒤에서 들려오던 한 마디. “야, 정말 황당하다!”그런데 얼른 뒤돌아본 그 20대 청년의 얼굴에는 미소가 있었다. 씁쓸한 냉소가 아니라 흔쾌한 긍정의 미소. 그 미소를 이끌어낸 영화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20년 가까운 세월의 차이가 있는 그와 나를 동시에 미소짓게 했던 힘. 2002년 한국영화에는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청춘영화가 유난히 많았다. <해적, 디스코왕 되다> <묻지마 패밀리: ‘내 나이키’, ‘교회 누나’> <남자 태어나다> <몽정기>…. <품행제로>는 분명 이 복고의 흐름 속에 있는 영화이고, 그 영화들과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것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것 또한 갖추고 있다. 바로
80년대 복고영화 <품행제로>가 유쾌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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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이상의 연극 팬이라면 프랑스 극작가 로베르 토마의 <8명의 여인들>을 어렴풋이라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8명의 여인들>은 <그 여자 사람 잡네>와 함께 토마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고, 우리 극단들도 이 두 작품을 즐겨 무대에 올렸다. <8명의 여인들>은 마르셀이라는 중년 사업가의 외딴 저택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추리물이다. 폭설이 내리는 날 마르셀이 등에 칼이 찔린 채 죽자 집에 갇힌 두 딸, 아내, 장모, 처제, 누이, 두 하녀 사이에 범인을 찾아내기 위한 상호 심문이 벌어지고, 이들의 알리바이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과정에서 재산과 치정에 얽힌 가족 구성원의 칙칙한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나도 1980년대 말쯤에 <8명의 여인들>을 본 기억이 있다. 대학로 어딘가의 한 소극장에서였던 듯한데, 어느 극단에서 무대에 올렸는지, 누가 연출했는지는 잊었다. 다만, 배우들의 연기가, 특히 대사 연기가 썩 어설펐다는 느낌은
아저씨,<8명의 여인들>을 보고 원작과 영화를 비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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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진실이 전진한다■ Story여기 한 남자가 있다. 병원, 법정, 교회 등을 돌아다니며 계속해서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 진실이니, 모두가 내 진실에 빠져 죽을 것이다”라며 주변 사람들을 불쾌하고 황당하게 만드는 이 남자는, 그러나 곧 자신의 말이 진실이었음을 증명해낸다. 그리고 이제 그의 진실은 아주 다른 방식의 역설로 다시 관객에게 돌아온다.■ Review그의 진실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영화 내내 남자는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 진실이다”라고 말할 뿐 진실의 내용은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 그의 위로 이따금씩 천장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고, 진실을 주장하는 그의 모습은 가끔씩 푸른 빛깔의 낯선 시선에서 비쳐진다. 그리고 남자가 이끌어가던 알 수 없는 이미지는 결국 물고문을 받는 그가 푸른빛의 모니터 화면으로 보여지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런 다음 엄청난 반전이 일어난다.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진실’과 어딘가에 절대불변으로 존재하는 ‘진리’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이 영
[단편]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 / 지구로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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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들렌>소설가를 꿈꾸는 국문학도 지석은 머리를 자르기 위해 찾아간 헤어숍에서 매력적인 헤어디자이너를 만난다. 그녀는 다름 아닌 중학교 동창 희진. 당당하고 아름다운 그녀에게 지석은 호감을 느낀다. 희진 역시 때묻지 않고 순수한 그에게 끌리고, 마침내 희진은 지석에게 ‘한달간의 연애’를 제안한다. 박광춘 감독, 조인성, 신민아 출연, 프리시네마 제작, 시네마서비스 제작, 상영시간 118분박평식 샐러드를 넣은 붕어빵 맛이구먼 ★★☆■ <찰리의 진실>돈 많은 미술품 중개상 찰스 램버트와 결혼한 미모의 영국인 여성 레지나는 일을 핑계로 늘 집을 비우는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회의를 느껴 이혼을 결심하고 기분전환 삼아 친구와 카리브해로 여행을 갔다오는데 여행 두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텅 빈 아파트와 남편의 사망소식이었다. 그리고 파리 경찰청은 그녀에게 스위스인으로 알았던 남편이 사실은 여러 개의 국적과 이름과 여권을 갖고 수시로 신분을 바꾸며 살아왔다는 것.그런 그녀
마들렌/찰리의 진실/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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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라이프 MGM 영화채널수요일 밤 11시어린애가 울면 호랑이가 온다고 한마디 해준다. 그래도 계속 울면 곶감을 준다. 애가 뚝 그친다. 사람들의 생활방식엔 기묘한 절차가 존재하고, 그 절차는 쌓이고 쌓여 규칙이 되고, 법이 된다. 외부에서 보는 절차는 때로 불합리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부의 시선에서 볼 때 그 절차는 수많은 세월 속에서 나름대로의 이유를 갖추며 자라온, 그리고 또한 바뀌기 힘들도록 견고해진 결과물이다.올해 미국에서 13년차를 맞는 시리즈 <로 앤 오더>는 형사물이자 법정물이다. 보통의 드라마가 체포과정까지나 재판과정만을 보여주는 편인데, <로 앤 오더>는 반반씩 나눠 반은 수사 및 체포과정, 나머지 반은 재판과정에 할애한다. 놀라운 일이다. 체포한 사람들은 판결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냥 체포만 할 뿐, 이들을 기소해서 벌을 받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몫이다. 기소하는 사람들은 체포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전 국민 대상 법 집행 교과서,<로 앤 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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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성탄 전야. 홍형숙(40) 감독과 강석필(32) 프로듀서는 처음 성탄을 맞는 아들 이헌이와 놀아줄 여력이 없었다. ‘표현·창작의 자유 보장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는 글을 급히 써야 했다. 이들 부부를 갑작스레 바쁘게 만든 것은 저녁에 걸려온 전화 한통이었다. 국정원 소속임을 밝힌 그는 이날 저녁 8시께 전화를 걸어와, 이들 부부가 제작하고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 중이던 <경계도시>의 일부 장면이 “사실과 다르고, 또 국정원 직원의 초상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다음 상영을 강행할 경우 “나름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씨네21> 384호). 국정원이 문제시한 장면은 2001년 8월28일, 국정원 직원들이 강 프로듀서를 불러내 “제작을 중단하든지 아니면 이적성이 없게 만들어야 한다”며 압박하는 모습을 몰래카메라로 찍은 4분가량의 분량이다.<경계도시>는 한국 정부가 친북인사라는 딱지를 붙여 30년 넘게 입국을 불허해왔던 재독철학자 송두율
송두율 교수 소재 다큐 <경계도시>의 감독,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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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 Knight, 2001년감독 길 정거출연 마틴 로렌스, 마샤 토마슨, 톰 윌킨슨빈센트 리간, 대릴 미첼장르 코미디 (SKC)현대인이 과거로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팡구>라는 만화는 현대의 구축함이 2차대전 당시로 타임슬립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들에게는 고성능의 레이더와 미사일 등을 비롯한 초현대식 무기들이 적재된 구축함이 있기 때문에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보여준다. 갖가지 생존장비와 무기를 갖춘 특수부대원이라면 홀로 과거에 떨어져도 충분히 살아남을 것이다. 아니 신이나 마법사 정도는 충분히 될 것이다. 마크 트웨인의 <아서왕을 만난 사나이>에서 역사상의 사건과 근대의 과학지식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남자는 멀린을 압도하는 마법사로 추앙받는다.하지만 현대인이 무조건 과거의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다. 아무런 도구없이 과거로 떨어진다면, 게다가 아무런 ‘서바이벌’ 지식을 갖추지 못한 도시인이라면 그런 경우라면 생존조차
14세기 영국에서,힙합을 전도하다 <흑기사,중세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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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일일연속극 「인어아가씨」(연출 이주환.극본 임성한)가 두 주인공의 결혼으로 갈등이 일단락되면서 더 이상 질질 끌지 마라는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비등해지고 있다.「인어아가씨」는 8일 방송되는 제127회분에서 주인공 아리영(장서희)과 이주왕(김성택)이 마침내 극중 결혼식을 올린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아리영이 복수를 결심하고 이복동생 예영과 약혼한 주왕에게 접근, 이후 주왕이 아리영과 예영 사이에서 갈팡질팡해온 이 드라마의 갈등 구조에 마침표를 찍는 사건의 의미다.그러나 제작진은 이들의 결혼식을 기점으로 기존의 복수 위주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아리영이 시댁에 들어가면서 겪는 아기자기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극을 전개할 예정이라며 드라마가 계속될 것임을 알렸다. 아리영과 주왕의 결혼이 기정사실화하면서 드라마 전개가 지루해지고 있음을 느끼는 시청자들은 두 사람이 결혼한 마당에 ‘더이상 질질 끌지 마라’는 짜증섞인 목소리들을 내놓고 있다.지난해 6월 시작된 「인어아가씨」는 당초 6개
MBC 「인어아가씨」‘질질끈다’ 비판 거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