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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 홍련>을 70%쯤 찍은 김지운 감독과 만나기 6시간 전. 시사회장에 자리를 잡고, 거른 점심을 때워줄 빵을 베어물기 위해 허겁지겁 입을 벌린 찰나, 전화가 울린다. 침이 꼴깍 넘어간다. “감독님 혹시 또 무슨 변고라도” “어, 밤에 약속이 생겨서요. 좀 앞당길 수 있을까 하구요.” “약속이 11시예요 그럼 8시면 괜찮겠네요.” “그러면… 한… 8시 반에 만날까요” “아, 8시 반이요” “어어, 아니… 45분으로 하죠.”여기서 플래시백. 일요일에 걸려온 전화로 애초 화요일 저녁이었던 약속은 월요일로 당겨졌다가 정작 월요일에는 수요일로 밀렸다. 그런데 마감 늦겠다는 한숨에 마음이 약해진 김지운 감독이 화요일 밤 10시를 허락한 것까지가 ‘지난 이야기’였다.어쩄거나 약속 성사 과정부터 반전의 묘미와 공포를 절감하게 만든 김지운 감독과의 약속은 저녁 8시45분이라는 소심한 시각으로 마침내 낙착됐다.기다리는 사이 지난주 세트에서 김지운 감독이 지나가듯 던진 말
<장화,홍련> 김지운이 꾸는 한겨울밤의 악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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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영화는 까다로운 생물김지운 감독은 스스로 “배우를 엄청 많이 탄다”고 표현한다. 장화와 홍련을 무덤에서 일으켜세우고 집을 지어준 것은 감독이지만, 마룻장을 삐걱거리며 3층 목조가옥 안으로 걸어들어온 배우들은 영화 <장화, 홍련>의 실내를 변화시켰다. 사람을 대할 때는 대범하고 털털하면서도 주변의 소음, 냄새 같은 소소한 자극에 연신 “이게 뭐지” 하며 촉수를 곤두세우는 모습이 감독을 사로잡았던 염정아는 차고 강한 여자였던 계모 은주를 선병질의 과민한 인물로 탈바꿈시켰다. 그녀의 ‘계모’는 위압적인 강자가 아니라 지나치게 예민해서 상대를 질식시키는 강자다. 젊은 신인 임수정과 문근영에게는 영화의 공간과 한 덩이로 빚어졌을 때 관객을 매료하고야 말 모멘트가 있다. “이 아이가 정말 나를 보고 있나 나를 상대하고 있나” 시선에 따라 나이를 종잡을 수 없는 마스크를 가진 장화 역의 임수정이 우연히 콘택트 렌즈를 빠뜨린 날 김지운 감독은 그녀에게서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고 자기
<장화,홍련> 김지운이 꾸는 한겨울밤의 악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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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 홍련>의 단서들가족괴담 <장화, 홍련>은 이른바 ‘계모형 가정 비극’ <장화홍련전>에서 권선징악의 테마를 발라내고, 가족이라는 허상에 대한 결벽증적 집착과 소녀들의 성장통을 충돌시킨 호러다. 친엄마를 여의고 서울에서 요양하던 수미, 수연 자매가 아버지 무현이 새엄마 은주와 새 가정을 꾸린 집으로 돌아옴으로써 괴담은 시작된다. 30대 초반의 아름다운 여자 은주는 전처 자식을 반기는 듯하지만 동생과 아버지에게 죽은 엄마를 대신하려는 수연과 생모를 빼닮은 수미, 과거를 내몰고 싶어하는 계모의 강박관념은 부자연스럽게 충돌하고 집안에는 귀기가 감돈다. 시나리오는 실종자를 찾는 경찰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액자틀을 포함하고 있지만 최종 편집본에 포함될지는 아직 미지수. 가족 구성원 각자가 안고 있는 아물지 않은 상처를 덮어두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모서리가 부딪히는 광경의 에너지가 초자연적 현상이 없어도 상당한 긴장을 유발한다. <장화, 홍련&
<장화,홍련> 김지운이 꾸는 한겨울밤의 악몽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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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거대하다. 그뿐이다. 중국 대륙이 거대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너머가 보이지 않는 대하(大河)가 있고, 가도가도 끝이 없는 사막도 있고, 마오쩌둥이 누구인지 모르는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는 오지도 있다. 우주에서 가장 분명하게 보이는 지구상의 건축물 만리장성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진시황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영웅은 당연한 사실을 너무나 빤한 방식으로, 어디에선가 본 듯한 영상으로 보여준다. 기예를 겨루는 검무장면은 <와호장룡>에서, 무명과 영정의 진술에 따라 바뀌는 이야기의 형식은 <라쇼몽>이다. 일치하지는 않지만, 진나라 군대가 방패로 진지를 구축하고 화살을 날리는 장면은 <글라디에이터>에서 로마군의 전투를 연상시킨다. <영웅>은 화려하지만, 그 안에 장이모만의 것은 없다. 아니 하나 있다. 굳이 진나라 군대를 검은색 일색으로 처리하고, 상황에 따라 인물과 배경 색깔을 바꿔버리는 것. 색깔로 사람의 감정을 표현
위대한 테크니션,희대의 사기꾼 장이모를 비판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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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모의 <붉은 수수밭>을 본 건, 아마도 89년일 거다. 상황도 기억난다. 친구들과 교외로 놀러갔다가 거의 밤을 새고 서울로 돌아와서는 피카디리극장으로 갔다. 지금은 감독으로 데뷔한 강문이 웃통을 벗고, 붉은 수수밭 잎에서 우뚝 서 있는 커다란 간판. 베를린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붉은 수수밭>은 부족한 잠 때문에 몽롱한 정신을 깨우기에는 최적의 영화였다. 돈 때문에 나환자에게 시집가는 여인. 그녀를 바라보는, 강인한 근육의 유이. 증오, 간통, 일본군의 만행과 처절한 저항. 도발적인 내용 이상으로 마음을 뒤흔드는, 강렬한 이미지의 영상. <붉은 수수밭>을 보는 동안 놀란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한동안 그 영상이 계속 머릿속에서 불타고 있었다.<붉은 수수밭>의 충격은 다시 나를 극장으로 인도했다. 그 시절만 해도, 같은 영화를 두번 보느니 반드시 새로운 영화를 본다는 원칙을 갖고 있던 시절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다
위대한 테크니션,희대의 사기꾼 장이모를 비판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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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주 이야기> 이후 <인생>을 보면서 나는 감동했다. 그림자극을 만드는 바보 같은 남자. 역사의 격변기를 그저 착하게만 살아온 남자. 그 보잘것없는 인생을 그려내는 장이모의 솜씨는 의심의 여지없이 거장의 손길이었다. <인생>에서 장이모는 고정된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색채로 화면을 버무리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평범하게 그 남자의 인생을 따라만 간다. 하나뿐인 아들이 죽어갈 때에도, 부인이 죽어도 그 남자는 ‘인생’이려니 하며 지나간다. <인생>의 장이모는 더이상 개입하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세계를 조작하지 않고 내버려둔다. 너무나 평이하게 바라보기만 한다. 그게 <인생>의 희로애락을 더욱 절실하게 만들어준다.국제영화제용 영화 혹은 자신을 위한 영화중국의 6세대 감독들은 첸카이거와 장이모 등 5세대 감독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주된 이유는 중국의 인민들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 국제영화
위대한 테크니션,희대의 사기꾼 장이모를 비판한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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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모 감독이 말하길산업적인 야심_ 영화산업이 발전하려면 주류영화와 예술영화가 조화를 이루며 발전해야 한다. 예전에 예술영화를 많이 찍었는데 <영웅>은 상업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도했다. <영웅>을 계기로 많은 중국인들이 극장을 찾고 있지만 중국인에게 중국영화를 보게 만드는 것이 나의 목적이기도 하다. <영웅>은 개봉 1주일 만에 1억, 2주일 만에 2억위안를 넘어서는 성공을 거뒀다. 영화를 안 보던 사람들이 극장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쉬리> 이후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처럼 <영웅>이 중국에서 <쉬리> 같은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이야기_ 이번 영화에선 내가 각본을 직접 썼다. 이전엔 소설을 기초로 쓴 영화가 대부분이다. <영웅>의 이야기는 등장인물들이 복수를 하려는 이유를 보여주지 않는다. 나중엔 설명이 되긴 하지만 일반적인 복수극의 절반에 해당하는 대목을
위대한 테크니션,희대의 사기꾼 장이모를 비판한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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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락녀가 국회의원 되는 것 못지않게 국회내에서 영화촬영하는 것도 힘들다"국회 내 촬영 허가 여부를 놓고 논란을 빚어왔던 영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제작 한맥영화)가 4일 국회 촬영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웃지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대한민국…>은 국회의원에 출마한 윤락녀가 금배지를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의 코미디 영화. 제작사는 국회의원이 된 주인공 '은비'가 처음으로 국회에 등원하는 장면을 실제로 국회에서 촬영하기위해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세 차례에 걸쳐 국회 촬영을허락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국회사무처에 보냈다.하지만 비공식적으로 받은 답변은 "회기기간 중이라 국회 일정에 방해가 된다" 혹은 "국회의원의 이미지가 실추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촬영 불가하다는 것. 제작진은 이날 주연배우인 예지원씨만 국회 안에 들어가고 담 외부에 크레인 카메라를 설치해 내부를 담아내는 변칙적인 촬영을 몇 차례의 '작전회의' 후 시도하려 했으나 이 방법도 국회측
영화인들에게 벽 높은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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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은 16일 오후 3시부터 서울 동작구 사당동 시사실에서 회원추천영화제를 개최한다.오슨 웰스의 필름 누아르 영화 <상하이에서 온 여인>(48년), 한 남자의 일그러진 심리를 추적한 잉그마르 베리만의 <마리오네뜨의 생>(80년), 부르주아의 위선을 통쾌하게 풍자한 루이스 부뉴엘의 <자유의 환영>(74년)이 차례로 상영된다. ☎(02)595-6002▲서울시네마테크는 1∼2개월에 한차례씩 ‘시네클럽 상영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첫번째 순서로 11ㆍ12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소격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54년)를 소개한다.서울시네마테크는 앞으로 하워드 혹스의 <베이비 길들이기>(38년), 알렉산더 매켄드릭의 <성공의 달콤한 향기>(57년), 비토리오 데 시카의 < 움베르토 D>등을 상영할 예정이다. ☎(02)3272-8707
(서울=연합뉴스)
문화학교 서울 회원추천영화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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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머우 감독의 <영웅>이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설 극장가의 ‘황제’로 등극했다. 영화인회의 배급개선위원회가 1∼2일 서울관객을 집계한 결과 <영웅>은 47개 스크린에서 11만7천832명을 불러모아 2주 연속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다.23일 개봉 이후 11일 동안 동원한 관객수는 서울 55만, 전국 142만명.2위는 실존했던 희대의 사기꾼 이야기를 그린 스티븐 스필버그의 <캐치 미 이프 유 캔>으로 9만1천157명을 동원했다. 한석규ㆍ고소영 주연의 <이중간첩>은 51개 스크린에서 5만8천471명을 극장으로 이끌며 3위에 올랐다.지난 주 박스오피스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배급을 맡은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개선위원회의 관객 집계가 신빙성이 없다”며 자료 공개를 거부해 이 영화의 관객숫자는 제외된 채로 발표됐다. <캐치 미…>의 관객동원은 배급사가 알려온 숫자.개봉 첫주를 보낸 <클래식>은
중국의 자존심, <영웅> 설 극장가 제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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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네마테크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를 11, 12일 오후 7시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한다. 서울 시네마테크가 1~2달에 한번씩 진행할 `시네 클럽' 상영회 첫번째 프로그램. (02) 3272-8707◇독일문화원과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7∼9일 서울아트시네마네서 독일 되돌아보기란 주제로 영화제를 연다. 이탈리아 네오레알리슴의 개척자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독일영년>(1947),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 알랭 레네의 <밤과 안개>(1956)와 장 뤽 고다르의 <신독일영년>(1991) 등 독일 바깥의 시선으로 독일의 현재와 과거를 되돌아보는 영화 세 편을 매일 오후 4시, 6시, 8시에 상영한다. www.kotheque.org, (02)720-9782.
[단신] 서울 시네마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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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한석규가 돌아왔다. 3년 만에 돌아온 그의 모습이 바로 어제 본 듯 낯익어 보이는 것은 웬 까닭일까 혹시, 영화 속의 그가 여전히 ‘정보부’ 소속으로 남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물론 <쉬리>와 <이중간첩> 사이에는 <텔미썸딩>이 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그는 여전히 수사관이지 않았던가 그 사이 그가 잠시 파견 근무 나가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자). 3년 만에 동일한 신분으로 영화 속으로 돌아온 한석규.영화 <이중간첩>은 배우 한석규로 인해 그리고 그 서사공간의 동질성(남북 대립 체제의 최전선으로서의 정보부)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쉬리>(1999)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두 영화의 공통점은 딱 거기까지이다. 이 영화의 속살은 오히려 그 사이에 놓인 두편의 영화(<간첩 리철진>(1999),<공동경비구역 JSA>)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렇다. 한반도의 분단이라는 외상은 이렇듯 집요하게 한국영화(환상의 공간)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간첩 리철진>과 <이중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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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이 말을 굳게 믿는다. 2003년 비가 추적거리는 1월의 어느 주말 코아아트홀에서 <피아니스트>를 봤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변태였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을 걸 확신했고,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그 여자를 사랑하기로 마음먹게 됐다.그 여자, 피아노를 통해서만 세상에 말을 건넨다. 피아노를 치지 않을 때, 그 여자, 명령하고 부인하고 거부한다. 석고 같은 표정, 굳게 닫힌 입술, 꼭꼭 채워진 코트의 단추, 피아노 건반 위에서 탭댄스를 추는 듯한 파선의 걸음걸이, 그 어디에도 타인이 틈입할 틈은 없어 보인다. 검고 하얀 두 종류의 직사각형이 빈틈없이 일렬종대로 늘어선 이 권위적인 악기를 두드리면서 그 여자,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걸까?건달,하네케의 <피아니스트>를 보고 그녀를 사랑하기로 마음먹다호기심은 사랑의 나쁜 시작이라고 했다. 그래도 궁금한 건 못 참는다. 모르면 꿈꾸고, 꿈은 뭔가 만든다. 나는 건반으로 꼭꼭 숨겨놓
오!사랑하고 싶은 그녀,<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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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더>는 미국 정치라는 것이 요즘 진행되는 대통령선거운동(이 글은 2000년에 쓰여졌다- 역자)만큼이나 웃음이 날 정도로 끔찍한 무엇이라는 로드 루리의 깨달음에서 비롯된 작품이긴 하지만 이를 보고 놀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지난 8년간 빌 클린턴이 오락의 정치를 새로운 수준으로 올려놓았음은 자명한 일인 것 같다. 할리우드는 대통령의 이런 메시지를 일찌감치 알아채고 접수해 말랑말랑한 이슈의 대통령 영화 몇편을 60년대 작품들보다 훨씬 더 큰 규모를 택하되 덜 비극적으로 만들어 클린턴 정부에게 화답한 바 있다.그리고 <컨텐더>는 이런 일련의 대통령 영화들 중에서도 정점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전 작품들보다 무엇 하나 나은 데가 있어서도 아니고 클린턴적인 스캔들 이슈들을 선거라는 기간에 딱 맞춰 시의적절하게 다루었기 때문도 아니며, 가십 수준의 대낮 TV방송과 함께 자라난 정치영화라는 것이 어디까지 와 있는가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점 때문이다.우아함이라곤
그저그런 정치영화 <컨텐더>가 제공하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