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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환 감독의 영화 <지구를 지켜라>(제작 싸이더스)가 다음달 20일 개막하는 제25회 모스크바 영화제의 공식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제작사는 17일 "영화제 프로그램 디렉터인 키릴 야즐로고프에게서 최근 경쟁부문 초청 사실을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지구를 지켜라> 자신의 불행이 지구에 살고 있는 외계인 때문이라고 믿는 청년 병구의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 영화로 지난달 초 언론과 평단의 찬사 속에 개봉됐으나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한국은 89년 <아제아제 바라아제>감독 임권택)가 최우수작품상과 여우주연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으며 93년 <살어리랏다」(윤삼육)가 남우주연상(이덕화)을 수상하는 등 모스크바 영화제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지구를 지켜라> 모스크바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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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영화배우 신은경(30)이 소속사인 플레이어엔터테인먼트의 김정수(38) 대표와 올 가을에 화촉을 밝힐 예정이다. 신은경은 <조폭마누라2:돌아온 전설>의 제작사인 현진씨네마 이순열 대표의 소개로 올해 1월 김씨를 만났으며 3월 말 플레이어엔터테인먼트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은 이후 본격적인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신은경은 "지난 4월 청혼을 받고나서 양가 부모님께 인사까지 마쳤다"고 털어놓은 뒤 "우선 9월 5일 개봉 예정인 <조폭마누라2>에 매진하고 결혼식 날짜는 그 다음에 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신은경이 소속사를 몇번이나 옮기는 등 제대로 매니저를 만나지 못해 평소 잘 알고 지내는 김정수 대표를 소개시켜주었다"는 이순열 대표는 "처음 인사를 시킬 때 느낌이 심상치 않아 농담처럼 `너희들 분명히 나에게 술 살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대로 됐다"며 흐뭇해했다.
신은경은 드라마 「마지막 승부」와 「종합병원」으로 스타덤에 올랐으며 영화 <젊은
영화배우 신은경, 소속사 대표와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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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와 영화감독으로 활동해온 이창동(李滄東) 문화관광부 장관이 영화매체를 '누가 아비인지 모르는 시장판 창부(娼婦)의 자식'에 비유했다. 이 장관은 계간 「문학수첩」 여름호에 실린 '소설과 영화, 의사소통의 두 경로를 위하여'라는 주제의 좌담에서 "모든 예술장르가 인간이 지니는 욕망의 자연스러운 구현의 형태로 만들어졌지만 영화는 어느날 갑자기 기술때문에 만들어진 매체여서 족보가 없다"면서 "기술과 돈이 결합돼 탄생한 영화매체는 비유하자면 생일은 있는데 태생이 없는 '창부의 자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아비가 누구인가는 짐작이 간다. 사진, 연극, 소설 등이 있지만 누가 아비인지는 정확히 모른다"고 설명했다.그는 "문학은 근대주의의 산물로 구텐베르크의 활자가 품고 있는 의미와 관념을 소통시키는 텍스트로서 존재했다"면서 "영화의 영상은 감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탈근대의 매체"라고 문학과 영화매체를 구분했다.이어 그는 "삶의 진실을 추구하려는 기존 (서사 장르의) 속성과 창부
이창동 장관 "영화는 시장판 창부의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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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신문 제13호The Cine History격주간·발행 씨네21·편집인 이유란1934 ~ 19367살 셜리 템플, 깜찍 연기로 공황기 미국 영웅 부상, ‘영악한 속임수’ 비판도꼬마 소녀가 미국 구원하다?7살 꼬마가 할리우드, 나아가 미국 전체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이 꼬마는 20세기폭스사를 적자에서 구해냈고 절망에 빠진 수많은 미국인들을 위로하고 있다. 또한이 꼬마는 할리우드의 여느 스타보다 많은 연 30만달러의 수입을 올리고 매주 3500통의 팬레터를 받고 있으며, 그가 선정하는 상품은 해마다 30만달러 이상의 수입을 거두고 있다. MGM의 대표 루이스 메이어가 이 꼬마를 한번 빌리는 조건으로 MGM 소속 최고 스타인 클라크 게이블과 진 할로를 한꺼번에 빌려줄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꼬마의 가치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괴력의 스타파워를 지닌 이 꼬마가 바로 셜리 템플이다.1935년 12월19일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셜리 템플에게 이례적인 찬사를
영화사 신문 제13호(1934~193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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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장 비고 요절하다픽션 영화로는 장 비고가 처음으로 만든 <품행 제로>는 제작이 끝난 후 1945년까지 상영 금지 처분을 받았던 작품이다.아깝고 안타까운 죽음이다. 1934년 10월5일 프랑스의 청년감독 장 비고가 결핵성 폐결핵으로 요절했다. 그의 나이, 겨우 스물아홉살이다. 몇주 전 개봉한 그의 두 번째 장편극영화 <라탈랑트>가 그의 유작이 됐다. 비고는 <라탈랑트>와 함께 죽었다. 폐결핵을 앓던 그는 무슨 작심이나 한 듯 혹한의 겨울에 이 영화를 찍었고, 촬영을 하면서 “나는 <라탈랑트>로 나 자신을 죽이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는 병상에 누워 있느라 생명을 걸고 만든 이 영화의 최종 편집본을 보지 못했다. 편집자 루이 샤방스(Louis Chavance)가 혼자 <라탈랑트>를 편집했고, 배급사인 고몽-FFA가 시사회 관객의 반응을 고려해 상당수의 장면을 삭제한 뒤 최종 편집본을 완성했다.그래도 관객과 조
영화사 신문 제13호(1934~193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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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영화기술을 익힌 최인규·한형모 감독을 떠올리다“문법은 똑똑한, 진정한 정통파들이지”<자유부인>(自由夫人) | 1956년 | 감독 한형모 | 출연 박암, 김정림, 양미희, 이민, 김동원 | 특별출연 백설희.북한에서도 나운규, 나운규 하지만 나운규 필름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혹 다른 자료가 있다고 해도 전쟁 때 다 없어졌다고 봐야지. 일본서 누가 가지고 있다는 것도 믿을 수가 없고. 왜 그런고 하니, 첫째 보관이 잘됐을 수가 없다. 내가 (북한에서) 돌아와서 보니까 어떤 사람이 <성춘향> 네거 2시간10분짜리를 다 잘라가지고 1시간30분을 맨들어놨다. 요즘에 내가 다시 복원해놨지만 그중 옥중장면이 다 없어졌었다. 찾다보니 필름이 어디서 나왔는고 하니, 1962년에 아시아영화제를 필리핀에서 한 일이 있다. 거기 자막 넣어 보낸 프린트가 나왔는데 훼손돼서 볼 수가 없었다. 40년 전 프린트, 일본에서 제대로 현상했고, 보관 잘했다는 필름도 뻘겋게 못 보갔는데
한국영화 회고록 신상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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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관객이 새로운 감각을 느끼길 바란다.일본 퀴어영화 감독 오키 히로유키가 특별전을 계기로 한국을 찾았다. 오키 히로유키를 초청한 이번 특별전의 프로그래머 서동진씨가 대담자로 나섰다. 아직까지 한국에는 정식으로 소개된 바가 없지만, 오키 히로유키는 일본 퀴어영화 진영의 중심에 서 있는 감독이다. 1990년 이미지 포럼 영화제에서 <수영금지>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린 오키 히로유키는 야마가타국제영화제,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등 일본을 대표하는 실험영화 감독으로서 많은 영화제에 초청된 바 있다. 대표작으로는 <천국의 여섯개의 상자> <네가 좋아, 네가 너무 좋아> <G8> 등이 있다. 오키 히로유키와 서동진씨는 공간, 몸, 기억을 통과하며 그의 영화세계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일본 퀴어영화의 자유로운 실험가 오키 히로유키를 소개한다.# 공간서동진(이하 서) |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은데, 삶은 이야기인가? 감
프로그래머 서동진,오키 히로유키 감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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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cocream Rolls>쵸코크림롤스 | T엔터테인먼트 발매자우림의 이선규와 김진만, 그리고 퍼니파우더에서 활동했던 이승복이 쵸코크림롤스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쵸코크림롤스라는 이름은 <자우림> 결성 이전에 이선규와 김진만이 활동했던 밴드 이름이라고. 기타, 베이스, 드럼을 중심으로 한 절제된 록 사운드를 보여주는 이번 앨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노래는 <클라크>. <슈퍼맨>의 소심한 시민(이자 슈퍼맨)인 클라크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푸는데, 다소 슬픈 가사와 기묘하게 어울리는 록 사운드가 미칠 듯한 쾌감을 안겨준다.<Mes Courants Electriques>알리제 | 유니버설 발매프랑스의 브리트니 스피어스라고 불리는 알리제의 2집. 프랑스의 유명한 여가수 밀렌느 파머와 그녀의 프로듀서가 발굴하고 프로듀스한 알리제의 음악은 섹시한 보컬을 바탕으로 한 다소 고전적인 느낌의 댄스곡을 선보인다. 타이클 곡인 <I’m Fed
[문화단신]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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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 김봉두>가 좋은 영화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영화를 거부하기 힘들었다. 교사와 학생이 부둥켜안고 우는 장면에는 그게 어떤 작품에서 나오든 나는 무방비상태가 된다. 오래 전 전교조 교사들이 교단에서 무더기로 쫓겨날 때, 신문 한켠에 종종 소개된 스승과 학생의 이별장면은 언제나 눈물 범벅을 만들어냈다(전 편집장인 안정숙 선배에게는 불행한 아이가 우는 장면이 그런 작용을 했다고 한다).그렇지만, 나는 <선생 김봉두>를 믿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작품성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이 영화가 너무 착하기 때문이다. 선의가 승리하는 이야기는 가능하면 믿지 말아야 한다고 마음속에서 외친다. 그건 내가 결코 착한 사람이 아닌데도 그런 걸 보고 감동하는 건 가증스러운 짓이기 때문이며, 세상도 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착한 영화는 대개 판타지다. 착한 걸 믿지 않고 사는 건 못된 짓이지만, 그렇게 못되게 사는 게 그나마 세상을 좀더 정확히 보고, 무엇보다 내가 덜 다치는 길이라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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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영.화. 그 무모한 게임을 향해
Prologue
<살인의 추억> 개봉 사흘 전, 명필름 사무실에서 만난 심재명 대표와 심보경 이사의 관심사는 자신들이 투자한 <질투는 나의 힘>이 아니었다. 두 작품을 차례로 배급한 CJ엔터테인먼트는 <살인의 추억>을 예정보다 한주 앞당겨 개봉하기로 하면서 <질투는 나의 힘>을 ‘버렸다’. 당장 큰 손해를 입게 된 명필름으로선 <살인의 추억>이 곱게 보이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질투는 나의 힘>에 대한 걱정보다 “<살인의 추억>이 잘돼야 하는데…”를 거듭 되뇌고 있었다.
‘경쟁자’마저 <살인의 추억>의 흥행을 기원할 만큼 이 영화는 충무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상태였다. 이들은 “이쯤에서 <살인의 추억>이 뭔가 보여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야 한국영화의 흐름이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진정성을 가지고 잘 만든 영화가 흥행도
<살인의 추억> 성공드라마, 5 라운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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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ound | 원작 vs 80년대
조 형사의 다리 절단은 군홧발에 대한 응징
<날 보러와요>의 판권을 원작자로부터 곧바로 살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이미 영화화를 생각하고 판권을 사들인 CF감독이 있었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차 대표가 협상을 벌이며 웃돈을 주고 재구입하는 “번거로운 작업”을 거쳐야 했다. 그러나 진짜 게임은 그 다음부터였다. 6개월 동안 조사해 모은 사건 자료와 자기 완성도를 지닌 원작을 놓고 영화적 상상력으로 짜들어가야 하는 새로운 창작.
“몇명의 용의자를 두고 범인이다, 아니다를 주고받으며 긴장의 강도를 높여가는 흐름과 FM 라디오 플롯이 원작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다. 너무 방대한 사건이어서 길잃기가 쉬운데 그 덕분에 감을 잡았다.”
연극과 가장 갈라지는 건 원작에 없던 80년대라는 시대를 끌어들인 대목이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치르는 나라였으나 아무도 보호받지 못하던 시대의 공기를 끌어들이는 것. 등화관제, 부천서 성고문
<살인의 추억> 성공드라마, 5 라운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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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Round | 관습 vs 관습
미해결 사건, 더 이상 ` 핸디캡 ` 아니다
“<살인의 추억>의 시나리오가 우리에게도 왔었다.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높아 투자하고 싶긴 했으나 스릴러라는 장르의 선입견이 걱정스러웠다. 무겁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범인이 잡히지 않는다는 미해결의 엔딩이 부담스러웠고 불안해보였다.”(권미정 쇼박스 한국영화팀장)
<살인의 추억>은 상업영화의 오랜 관습 몇 가지를 정면으로 위배했다. 흥행전략상 가장 난점으로 꼽히던 미해결의 엔딩을 포함해 굿가이·배드가이의 혼합형 캐릭터, 영화의 숙명이라 할 관음증에 대한 거스름 등 초심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모험을 감수했다.
“피한다고 피해지는 게 아니었다. 장르적으로 풀어서 잡는 걸로 끝낸다? 관객이 얼마나 찝찝해하겠나. 범인을 못 잡는 대신 그토록 범인을 잡고 싶어하는 형사들의 시선에 철저하게 맞춰나가기로 했다. 그 하나의 감정선을 좇아가다 끝내는 폭발하게 만드는….”(봉준호)
<살인의 추억> 성공드라마, 5 라운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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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와일드카드>와 함께한 15개월의 기록
배우가 제작기를 써서 보내오기란 쉽지 않다. 스케줄 감당하기도 버거운데 일지를 쓸 만한 여유가 있겠는가. 여기에 제작기간이 1년이 넘는 영화라면, 후일 기억을 더듬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와일드카드>의 맏형인 정진영씨가 제작기를 보내오겠다고 했을 때 드는 의구심은, 사실 또 있었다. 개봉을 앞둔 시점이다보니 자칫 “영화를 홍보하는 멘트가 많지 않을까” 하는 우려. 물론 기우였다. 정진영씨가 보내온 기록은 “힘들었다, 그래도 우린 해냈다”는 식의 상투를 넘어 솔직하고 담백한 관찰기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캐스팅된 뒤 15개월 동안 촬영현장에서 보고, 듣고, 겪은 사람들에 대한 그의 가감없는 ‘고백’을, 여기 싣는다. - 편집자
옛, 감독님
2002년 2월_인사동 모 술집 >>
“이제 책이 나올 것 같다. 니가 할 거 있다. 여름 지나면 찍자. 너 손해볼 일은 없을 거다.” 영화 <
정진영의 <와일드카드> 제작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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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은 어찌 날꼬
2002년 11월3일_북창동 유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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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크랭크인. 11월 초답지 않게 매우 쌀쌀하다. 첫신은 노래방에서 주봉이 형(김 반장)의 생일잔치 뒤풀이를 하는 장면. 나는 노래 한곡 부르고, 형사들 바스트 이동숏으로 첫신은 OK. 밤신은 북창동 유흥가 골목. 유흥가 촬영은 현지 세력가(무척 순화된 표현임)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하다. 알고보니, 그곳의 세력가가 신근호 PD의 고향후배란다. 아무런 문제없이, 너무나 많은 도움과 협조 속에 촬영을 순조롭게 진행. 그 세력가도 영화에 한컷 출연. 날씨가 매섭다. 감독님, 여름에 찍을 영화 한겨울에 찍게 되었다고, 투덜투덜. 아! 이제 추위와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11월 초도 이러니, 한겨울은 어찌 날 것인가. 그렇게 영화는 시작되었다.
베테랑 감독의 카리스마
2002년 11월12일_메리어트호텔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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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4회차를 나왔지만, 현장의 손발이 착착 맞는다. 무엇보다 그것은 감독님의
정진영의 <와일드카드> 제작일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