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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강을 건너온 깊은 슬픔그 얼굴은 슬프다. 작은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고, 고수머리 동그란 얼굴에는 늘 그늘이 내려앉아 있다. 누나와 아버지의 힘겨운 일상은 고스란히 폭력으로 되돌아오고, 제제는 폭력을 피해 꿈의 세계로 숨어든다. 하지만 어른들은 다섯살짜리 꼬마 제제를 이해하지 못한다. 제제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얼굴도 슬프다. 여섯달째 실직상태인 아빠는 일곱이나 되는 식구를 건사하지 못해 늘 고개를 떨어뜨리고 살고 있다. 좋은 아빠였을 수도 있을 테지만 아빠를 위로해주는 제제의 노래도 자신의 처지를 놀리는 것으로 들을 정도로 마음에 큰 상처를 안고 있다. 영국인 방직공장에 다니는 엄마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때문에 늦은 밤 파김치가 된 몸으로 돌아오는 힘겨운 노동의 하루를 살고 있다. 제제를 이해하고 감싸주는 글로리아 누나의 얼굴도 어찌할 수 없는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슬프다. 슬픔은 칸 안에 깊게 내려앉고, 독자들의 마음으로 전이된다.슬픈 하루를 즐거움으로 바꾸
복간본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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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동안 쏟은 감독의 지극정성이 관객의 마음도 움직인 걸까. 지난주말 박스오피스에선 비록 1위는 아니지만 주경중 감독의 <동승>의 선전이 단연 눈길을 끈다. 개봉일인 금요일을 포함해 주말까지 배급사 추정의 누계는 서울 4만1천여명, 전국 13만3천여명이다. 특히 주말 객석점유율이 50%를 넘어 서울 27개 스크린, 전국 108개 스크린으로 출발한 <동승>은 스크린을 더 넓혀갈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가 병중에 구상해 긴 세월 끝에 작품을 완성한 주경중 감독은 관객들을 보며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올라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선생 김봉두>와 <시카고>가 1·2위로 순항을 계속하는 가운데, 리롄제의 <크레이들 2 그레이브>와 브루스 윌리스의 <태양의 눈물>, 장 르노의 <와사비: 레옹 2> 등이 10위 안에 기록된 것은, 내용과 상관없이 지지를 보내는 액션오락영화 팬들 덕분인 듯하다.이번주 극장가는 ‘성찬’이라 할
<동승> 꼬마스님 아유~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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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플란다스의 개>로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한 신인감독 봉준호(34)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 <살인의 추억>(제작 싸이더스)을 들고 25일 관객을 찾는다. 15일 시사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마주한 봉감독은 기자들의 호평에 고무된 표정을 지으면서도 "기자들이 좋다고 하면 관객이 안든다던데…"라며 흥행에 대한 부담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자 옆에 앉은 주연배우 송강호가 "봉감독은 9회말 투아웃 타석에 들어선 충무로 4번타자"라고 치켜세운다.
"실제 사건을 스크린에 옮기려니 부담이 많았습니다. 피해자 가족과 용의자로 몰려 고생했던 사람은 다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고 형사들도 실패담을 새삼 꺼내는 게 괴롭겠지요. 저는 너무도 빠르게 변하는 세태가 안타까워 영화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도 벌써 많은 사람의 뇌리에서 잊혀져가고 있지 않습니까? 기억하는 것 자체가 범인에 대한 응징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그는 시나리오를 쓰
[인터뷰]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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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해적, 디스코왕 되다>로 영화계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한채영(23)이 연기경력 30년의 베테랑 연기자 손창민(38)과 영화 <신데렐라>(제작 마이필름)에서 호흡을 맞춘다. <신데렐라>는 광고계와 방송계에서 실력을 다진 이상빈 감독의 데뷔작으로 아내와 사별한 40대 케이블TV업체 임원이 영화 주연배우 공모를 가장한 오디션을 통해 재혼 상대를 찾다가 잔혹한 살인극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채영은 허리 부상으로 발레리나의 꿈을 접고 영화배우에 도전하는 단유정으로 등장해 14살 된 딸과 함께 사는 민본오 역의 손창민과 사랑에 빠지며 불행을 예고한다. 오는 8월 초 개봉을 목표로 5월 1일 크랭크인한다.
<신데렐라> 주인공에 한채영ㆍ손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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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y
정신과 의사인 크리스 켈빈(조지 클루니)은 행성 솔라리스의 탐사에 나선 친구 지바리안의 메시지를 받는다. 차마 말할 수 없는 이상한 사건이 벌어졌고, 다시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켈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자살한 연인 레아(나타샤 맥엘혼)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던 켈빈은 솔라리스로 향한다. 그러나 켈빈이 도착하니 지바리안은 이미 자살했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있다. 무슨 일이냐는 켈빈의 물음에, 고든과 스노는 직접 겪어보라고 말한다. 그날 밤, 잠에서 깨어난 켈빈은 레아를 본다. 과거와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목소리로 켈빈에게 다가온다, ‘사랑해’라며. 솔라리스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 가장 강렬한 기억을 복제한 ‘비지터’를 보내는 것이다.
■ Review
<솔라리스>는 멜로영화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원작소설이 ‘인간 중심의 사고’를 뛰어넘으려 시도하고,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72년작이 존재와 기억의 의미를 신중하게 탐구하는 것
사랑,상대의 시선에 의해 완성되는‥ <솔라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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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y
결혼식장에서 태어난 공희지(장나라)는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 필생의 목표다. 단짝 친구들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문제 삼으며 모욕을 준 리조트 클럽에 항의하러 간 공희지는 하필 그곳 팀장 김현준(박정철)에게 첫눈에 반하고 만다. 공희지는 그 김현준을 ‘내 남자’로 만들기로 한다. 김현준의 집에 잠입해 다이어리를 훔쳐낸 공희지는 그의 스케줄에 따라붙는가 하면, 사사건건 딴죽을 거는 안티 전략으로 자기 존재를 각인시킨다. 김현준이 공희지의 의도적인 접근을 알아차리고 막강한 약혼녀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공희지의 작전은 위기를 맞는다.
■ Review
로맨틱코미디는 과연 진화할 수 있을까. 아니, 뭔가 ‘다른’ 로맨틱코미디를 만나는 일은 가능한 걸까. 신예 윤학열 감독은 ‘그렇다’고 말한다. 남녀의 로맨스를 그린 영화가 배제하던 가족의 존재감을 드러내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오! 해피데이>의 출발점이자 변별점이다. <오! 해피데이&
장나라國 시민을 위한 유쾌한 잔치, <오! 해피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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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로자 룩셈부르크, 장만옥.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매부리코라는 것. 앞의 두 사람은 매부리코임이 분명해 보이지만 장만옥은 아니라고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의 옆모습을 한순간 집중해서 보면 그가 매부리코임을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장만옥은 아직 살아 있으니 어쩌니저쩌니 말을 못하겠고, 이미 죽은 앞의 두 사람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을 해볼 참이다.두 사람은 19세기 말에 태어났다. 로자가 1871년이고 버지니아가 1882년이니 로자가 조금 앞선다. 로자가 타살된 게 1919년이고 버지니아가 자살한 건 1941년이다. 전쟁상황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벌써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것이 그들의 삶의 끝마무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요소이다. 20세기가 광란과 학살의 시대인 것은, 그리고 그 여파가 21세기까지 미치고 있는 것은 두번의 대규모 전쟁이 세기 초반부터 연이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도 그것의 파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로자 룩셈부르크의
버지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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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에서 1981년 사이에 세계는 무슨 일들이 있어났는가. 믿거나 말거나 인류가 최초로 지구가 아닌 다른 별까지 발을 내디뎠고, 비틀스와 핑크 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딥 퍼플이 오리지널 멤버로 연주를 하고 있었고 축구황제 펠레는 바나나킥을 보여주었다. 아베베라는 에티오피아의 마라토너는 맨발로 올림픽 2연패를 이룩했으며 루마니아의 코마네치는 10점 만점이라는 ‘완벽’에 도달하는 체조솜씨를 선보였다. 그런 기록은 다시는 볼 수 없었다. 그 사이에도 지독한 전쟁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머리에 꽃을 꽂고 평화를 노래했다. 머리에 꽃을 꽂으면 평화가 이루어지던 시절이었다. 노래하는 시인 밥 딜런이 있었고 지미 헨드릭스와 제니스 조플린과 짐 모리슨이 불꽃처럼 타들어갔다. 신중현이 기타를 메고 팔도강산을 누볐고 김민기가 하나하나 눈물 같은 노래를 만들어 몰래 나눠가졌다. 소년소녀들이 목요일 밤에 시를 낭송하던 문학의 밤이 있었고, 커피 한잔을 마셔도 수천장의 음반과 고급 오디오를 구비한 다방
아,나비처럼 날았던 시절이여 <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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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무척 사랑했었지. 꿈속에서….” - 송유
이 대사를 읊는 주윤발의 나직한 목소리에 정신이 아찔했다. 미스터리한 사랑을 나눌 수밖에 없게 된 임청하 앞에서 양미간을 찌푸리며 과거를 떠올리려고 애쓰는 주윤발의 표정을 다시 보기 위해 비디오를 수없이 리와인드했다. 그러나 내 꿈속에서 주윤발은 항상 한국말로 대사를 친다. “예전에는 무척 사랑했었지.” 성우 신성호 아저씨의 목소리로 말이다.
관금붕이나 허안화 영화들의 프로덕션디자이너로 알려졌던 감독 구정평의 <몽중인>은 1989년 피카소극장에서 조용히 개봉했었다. 원래는 1986년 작품이었으나, 1987년 신드롬을 일으킨 <영웅본색> 이후 시점이었다. 성냥개비를 질겅질겅 씹어대는 터프한 주윤발은 어디 가고, 두 연인 사이에서,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삶과 죽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눈물 흘리는 주윤발이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대스타였던 주윤발이 아니라 임청하를 안다고 뻐기면서 영화를 보러 갔다.
그녀의 미소를 따라했었네,<몽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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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춤꾼들을 사랑한다. 여신 같은 마곳 폰테인과 그를 들어올리며 파드되를 추는 루돌프 누레예프, 이사도라 덩컨과 마사 그레이엄, 1988년 시청 앞 광장의 이애주, 요염하기까지 했던 남성무용수 이매방, 70년대 국내에서 첫 공연을 가졌던 홍신자, 그리고 박명숙 이정희와 심지어 가수들 뒤에서 현란하게 춤추는 백댄서들과 두타 앞이나 대학로 등 거리의 춤꾼들까지.춤을 잘 출 수 있다면 하는 것은 20대 이후의 오래된 열망이었다. 남이 가진 능력 가운데 가장 부럽고 샘나는 것, 훔칠 수 있다면 훔쳐오고 싶은 것이 춤추는 능력이다. 그러나 음치가 있듯이 몸치가 있는 것을 어이하랴. 마음껏 소리치고 싶을 때, 몸부림쳐 통곡하고 싶을 때, 기쁨에 겨워 날아갈 것 같을 때, 온몸을 던져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춤에 비하면 다른 예술적 작업들은 머리와 가슴에서 걸러지고 재창조되는 2차적 표현에 불과하다. 숨을 멎게 하는 미술 작품, 가슴속에 끝없이 크고 작은 파도가 밀려오는 시
춤,몸으로 표현하는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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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y
지구 곳곳에서 이상한 사고가 잇따른다. 심장박동기를 착용한 이들이 순식간에 숨지고 새떼들은 갑자기 방향감각을 잃고 가미카제처럼 빌딩을 향해 달려든다. 여자보다 지구물리학을 더 사랑하는 조수아 키스 박사(아론 에크하트)는 일련의 사태를 일으킨 원인으로 지구 자기장의 이상징후를 지목한다. 지구의 내핵이 회전하며 자기장을 일으키고, 이 자기장이 태양을 포함한 외계의 유해분자를 막아줘왔는데 뭔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내핵이 회전을 중단해버렸다는 것이다. 자기장이 사라지면 지구의 생명체는 끝장이다. 해결책은? 지구 핵(코어)을 인위적으로 회전시키는 길뿐이다.
■ Review
할리우드영화는 이따금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미국의 ‘두 얼굴’을 들춰내곤 한다. 의도적이진 않았겠지만 과학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SF재난영화도 그렇다. 때가 때이니만큼 크레딧이 올라가는 그 순간까지, ‘역시, 인류를 파괴할 비밀병기는 미국이 갖고 있었군’이라거나 ‘병주고 약주는 미국식 인류구원기’라
내러티브를 이끄는 과학적 지식,<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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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연도 2003년 광고주 동서식품 제품명 맥스웰캔커피 대행사 제일기획 제작사 우라늄(김상태 감독)역(특히 기차역), 옥상, 공중전화박스 같은 공간은 뭔가 특별한 정서적 울림을 준다.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역에는 낭만적이고 쓸쓸한 정서가 묻어나며, 옥상엔 왠지 희망적이고 정겨움보다 밝은 감흥이 먼저 만져진다. 공중전화박스 하면 공일오비의 ‘동전 두개뿐’이란 애절한 가사가 생각나고, 영화 <열혈남아>의 격정적인 뽀뽀장면도 떠오르고, 또 <영웅본색2>에서 해맑게 죽어간 고 장국영의 동안도 겹쳐진다. 보이는 것 이상의 풍부한 아우라를 제공해서인지 이같은 공간적 배경은 인상적이고 함축적인 것을 선호하는 광고에서도 메시지 전달의 유용한 장치로 초대를 받곤 한다.오비 광고와 맥스웰캔커피(아래 맥스웰) 광고도 이 문제적 장소를 끌어안았다. 공통되게 선택한 장소는 ‘옥상’. 사방이 뻥 뚫려 있고 고개만 들면 하늘을 시야에 가득 머금을 수 있으며 자칫 발을 헛디디면 치명적인
옥상 위의 남자들,`공간`을 이용한 오비,맥스웰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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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아름답다”라고 이야기한다면 펄쩍 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동서고금의 이야기꾼들에게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만큼 흥미로운 주제도 별로 없었던 듯하다. 오비드의 <변신이야기>를 보면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돌로, 짐승으로 변해버린 신들이 심심찮게 등장하거니와 한때 여고생들의 애간장을 다 녹였던 하이틴 로맨스에는 비극적으로 파탄에 이른 사랑 이야기가 즐비했다. 한편으로 그 불가능한 사랑을 끝끝내 이루어지게 하고 싶은 것도 사람 마음이어서, 견우와 직녀처럼 1년에 한번이라도, 혹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죽음을 통해서라도 그 안타까운 사랑을 완성시켜주곤 한다. 하긴 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냐는 이유로 양희은의 노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금지곡이 됐다고 하지 않는가. 믿거나 말거나.사랑을 이루어주고 싶은 마음이 이토록 간절한데 시간이 문제일 리 없다. 100년이건 천년이건 시공을 초월하고 싶은 것이 사랑에 눈먼 자의 욕심일 테니 말이다.
다시,문제는 상상력이다,SBS 특별기획드라마 <천년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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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하여이번주에 방영되는 두편의 독립영화는 죽음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이경미 감독의 <오디션>(16mm/ 2003년)은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배우지망생 지석은 ‘오디션’을 기다리다가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간다. 산소호흡기를 쓰고 있는 할머니는 손자를 알아보지도 못하지만 지석이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곧 돌아가실 것처럼 숨이 넘어간다. 지석은 깜짝 놀라 손을 뿌리치려 한다. 이 짧은 장면은 순간 섬뜩한 느낌을 전해주며, 경험하지 못한 죽음의 싸늘한 공포감을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지석은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하지만 그 느낌을 가지고 오디션에 합격한다. 박해일의 평범해 보이는 연기 역시 영화의 긴장감을 잘 묘사하고 있다.김종관 감독의 <바람 이야기>(16mm/ 2002년)는 전쟁 중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민간인을 총살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죽음을 바라보는 것과 죽임을 실행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독립 · 단편영화 <오디션> <바람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