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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유괴범 리키부터 간호사 베니그노까지, 알모도바르의 영화 속 인물탐구지독한 근시가 보기에도 알모도바르 영화는 현란하다. 물방울과 격자 문양, 빨간 라바 램프, 샤넬 정장, 가발과 하이힐이 눈을 찌르고 더글러스 서크의 멜로드라마, 테네시 윌리엄스의 연극, 잉마르 베리만의 대사, 피나 바우쉬의 댄스가 구석구석에서 더운 숨을 내뿜는다. 그러나 그 모든 가구를 들어내더라도 알모도바르의 방은 여전히 휘황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알모도바르가 창조한 여자들과 남자들 때문이다.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섹슈얼, 그들은 모두 말과 행동으로 격정적인 아리아를 부른다. 예술이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고 확장하는 작업이라고 말할 때 표현의 자유란 결국 인간성 표현의 폭을 일컫는 것이 아닐까. 여기 훌륭한 사례들이 있다.“내가 죽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어” <마타도르>(1986)의 디에고와 마리아부상으로 은퇴한 투우사 디에고는 투우아카데미에서 지망생들을 가르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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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같은 이별, 그리고 다시 관계가 시작되다<신경쇠약 직전의 여자>(1988)의 페파배우 페파는 분명한 결별선언 없이 통화를 피하며 여행짐을 싸달라는 애인 이반 때문에 미칠 지경이다. 오래 전 정신병을 앓고 이반과 헤어진 전처 루치아는 이반의 여행 동행이 페파라고 믿고 다그친다. 친구 칸델라는 테러리스트와 연애를 했다며 페파의 집에 숨어들고 페파의 아파트를 보러온 커플은 이반의 아들과 약혼녀다. 게다가 칸뗄라를 돕기 위해 찾아간 변호사는 이반의 새 애인. 페파의 우주는 폭발 직전이다.사랑의 숭배자들은 사랑의 퇴장 역시 합당하게 숭고하고 엄숙한 의식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중년 여배우 페파에게 그런 행운은 돌아오지 않는다. 오랜 애인 이반은 제대로 이별을 고하는 최소한의 예의도 없이 그녀를 피해 다닌다. 여행을 떠날 터이니 가방을 수위실에 맡겨 달라는 비겁한 메시지를 남기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니까 페파의 실연은 충치를 뽑을 때의 개운함을 수반한 뜻있는 아픔이 아니라 생이빨을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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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낙천적인 그녀<키카>(1993)의 키카메이크업 아티스트인 명랑한 키카는 방송사에서 만난 미국 소설가 니콜라스를 통해 그의 의붓아들 라몽과 사귄다. 관음증과 기면 발작증이 있는 사진작가 라몽은 어머니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니콜라스와도 관계를 지속하던 키카는 어느 날 감옥에서 탈출한 색광 파블로에게 추행당한다. 라몽의 옛 애인이자 선정적 뉴스쇼의 VJ인 안드레아는 키카의 강간장면을 포착함과 동시에 다른 범죄의 냄새를 맡는다.<키카>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장 폴 고티에의 기상천외한 가죽옷을 입고 카메라를 머리에 매단 빅토리아 아브릴은 기억한다. 하지만 아브릴의 극중 이름은 안드레아다. 영화의 타이틀 롤 키카는 베로니카 포르케가 연기하는 흔한 외모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다. 그러나 평범한 그녀는 만인의 이기심과 폭력성을 자극하는 저주라도 받은 것 같다. 정사장면을 찍는 사진작가 라몽, 아들 애인과 밀회하는 소설가 니콜라스, 키카를 속이고 니콜라스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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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의 또 다른 제목은 ‘아마도 고독’‘페드로’ 알모도바르, 페드로 ‘알모도바르’를 인터뷰하다이제는 앞서 소개한 매력적인 꼭두각시들의 마스터를 만나볼 순서다. 셀프 인터뷰는 알모도바르 감독이 스스로 세운 하나의 전통이다. 그는 1984년 “만일 어느 누가 나에 관해 써야만 한다면 내가 쓰고 싶다”는 말로 셀프 인터뷰를 시작했다. 군데군데 자문자답이라 믿기 어려운- 낯간지러운- 대목도 많지만, 이것은 분명 <그녀에게>에 관한 알모도바르와 알모도바르의 대화다. 마드리드의 깊은 밤 야한 색깔 파자마를 걸치고 책상에 앉아 전세계 영화기자들에게 배포할 자료를 위해 입술을 달싹이며 묻고 답하는 더벅머리 알모도바르 감독의 모습을 상상하며 읽으면 한층 즐거울 것이다.페드로 : 이제 당신을 여배우의 훌륭한 감독일 뿐 아니라 남자배우도 잘 다루는 연출자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그녀에게>의 주인공은 두 남자이고 역을 맡은 두 배우는 근사한 연기를 보여준다.알모
페드로 알모도바르 셀프 인터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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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이 줄었어요> 부분은, 눈가리개페드로: 영화 주요 스토리라인에서 갑자기 빠져나와 우회한 까닭이 무엇인가?알모도바르: 겉보기에 우회로처럼 보일 뿐이다. 왜냐하면 베니그노와 알리시아의 이야기는 <애인이 줄었어요>가 나오는 7분 동안 정지하는 게 아니라 무성영화와 융합되기 때문이다. 무성영화는 하나의 가리개다.페드로: 뭘 가리는?알모도바르: 베니그노가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코마 상태의 알리샤에게 한 일을 직접적으로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의 디테일을 감추고 본질만 보여주는 은유로서) <애인이 줄었어요>를 넣었다.페드로: 그런 걸 가리켜 ‘조작’이라고들 하지 않나?알모도바르: 내러티브상의 선택이었고 간단치 않은 선택이었다. 그래서 결과가 더욱 자랑스럽다.페드로: 어쨌거나 당신 영화 속 인물들이 다른 영화를 빌려 자기를 설명하는 게 처음은 아니다. <하이힐>만 해도….알모도바르: 맞다. 딸 빅토리아 아브릴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셀프 인터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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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불가한 모든 사건+깨져버린 연애의 기억2003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뒤, 무대 뒤에서 만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페드로: <그녀에게>의 영감은 어디서 얻었나?알모도바르: 나는 지난 10년간 일어난 몇 가지 실제 사건을 기록해놓았다. 한 미국 여인은 16년 만에 코마에서 깨어났다. 의사들에 의하면 그녀는 회복불능상태였다. 나는 에서 간호사들의 부축을 받고 걷는 그녀의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부활은 과학이 말한 모든 것을 반박하고 있었다. 루마니아에서는 시체공시소의 젊은 야간경비원이 한 처녀의 시신에 매혹됐다. 죽음의 고독은 밤의 고독에 더해져 ‘과다한 고독’이 됐다. 젊은이는 욕망에 항복하고 죽은 미인을 범했다. 그리고 교황이 기꺼워하지 않을 기적이 일어났다. 사랑에서 비롯된 추행에 반응해서 죽은 여자가 회생한 거다. 그녀는 강직증으로 죽은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이 뉴스를 메모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2년 전 프랑스에서도 이 사건에 기초한 영화가 나왔
페드로 알모도바르 셀프 인터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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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빠지는 연쇄살인, 닮아가는 다른 두 형사
살인의 추억? 이상한 제목이다. 추억이라는 건 좋은 기억, 최소한 끔찍하지는 않은 기억을 돌이킬 때 쓰는 말 아닌가. 이 제목은 암암리에 살인의 끔찍함이 잊혀졌음을 전제로 삼는다. <플란다스의 개>에 이은 봉준호 감독의 두번째 장편 <살인의 추억>은 화성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실화극’이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10차례 발생한 이 사건의 범인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희생자만 남고, 범죄의 주체도 이유도 모른 채 잊혀가는 사건. 거기에 ‘추억’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붙인 제목에서부터, 영화가 연쇄살인극에 더해 시대극이자 사회극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주인공은 사건 발생 당시 화성경찰서 형사인 박두만(송강호)과, 잇따라 사건이 터지자 서울에서 파견돼온 형사 서태윤(김상경). “대한민국 형사는 두 발로 수사한다”는 두만은 과학수사를 할 의지도 능력도 없이 피의자를 두들겨패고 본다. 습관적으로 고문에 의
영화 <살인의 추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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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막올라 35개국 170편 상영. 지명도 높은 화제작들 매진 임박제4회 전주국제영화제( www.jiff.or.kr)가 오는 25일 개막한다. 올해 행사는 민병록 집행위원장, 김은희·정수완 프로그래머 등 집행부가 새로 들어선 탓에 성격이 바뀔지 모른다는 예측도 있었으나, 여전히 실험적이며 논쟁적인 영화들로 ‘대안영화제’라는 모토를 이어가고 있다. 물론 지명도 높은 감독의 화제작도 많다. 개막작인 박광수·박진표·박찬욱·여균동·임순례·정재은 감독의 옴니버스 인권영화 <여섯 개의 시선>, 폐막작인 토드 헤인즈 감독의 <파 프롬 헤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텐>, 카를로스 사우라의 <살로메>, 아요야마 신지·바흐만 고바디·박기용의 <디지털 삼인삼색> 등은 이미 매진이 임박한 상태다. 35개국 170여 편의 상영작 가운데 부문별 특성과 감독의 지명도 등을 감안해 7편을 추렸다.실험·논쟁적 색채짙은 '대안영화' 풍성유
4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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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애니메이션 스페셜 부문의 초청작이었던 한국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사진)가 제작사의 사정으로 상영이 취소됐다. 제작사쪽은 수정작업이 끝나지 않았고, 극장개봉일자도 5월에서 7월로 연기돼 영화제에 상영이 힘들다는 입장을 영화제쪽에 전해왔다. 영화제쪽은 이미 <원더풀 데이즈>를 예매한 관객에겐 환불을 해주고, 상영이 예정된 시각엔 같은 부문 초청작인 <애니메트릭스>를 한차례 더 틀기로 했다.◇ 제5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가 전쟁을 주제로 제2차 사전제작지원 신청을 받는다. 그린 외계인(만 13살~18살) 10개 팀과 오렌지 외계인(만 19살~25살) 3개팀의 작품을 선정할 계획이며, 지원규모는 각각 20~50만 원(그린 외계인), 50~100만 원(오렌지 외계인)이다. 내달 7~10일 접수. siyff.com, (02)535-1411.◇ 한국영상자료원은 21~25일까지 매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시사실에서 4월의 명감독으로
영화가 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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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명계남씨가 남도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으로 내정됐다. 전라남도의 광양ㆍ순천ㆍ여수시는 30일 오전 11시 순천 로얄호텔에서 사단법인 남도영상위원회 창립총회를 열어 명계남씨를 운영위원장으로 선임할 예정이다. 남도영상위원장은 3개시의 시장이 공동으로 맡는다.
부산ㆍ전주ㆍ서울에 이어 네번째로 출범하는 남도영상위원회는 영화ㆍTV 드라마ㆍCF 등의 촬영 유치, 공공기관 등의 협조 시스템 완비, 영상관련 시설 건립, 국내외 영상위원회와 네트워크 구축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명계남씨는 2001년 2월부터 부산영상위원회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지난해 5월 사퇴했으며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 대표로 활동하며 참여정부 탄생에 기여했다. (서울=연합뉴스)
명계남씨, 남도영상위 운영위원장에 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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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에서 요부 역을 맡아 한창 촬영중인 중견배우 이미숙(43)이 영화 <...ing>(제작 드림맥스)에 캐스팅됐다. 신인 이언희 감독의 데뷔작 <...ing>는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던 내성적 여주인공에게 이상형과 전혀 딴판인 남자 친구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경쾌하고도 따뜻하게 그리는 영화. 6월에 첫 촬영을 시작해 올 가을에 개봉할 예정이다. 이미숙은 여기서 여주인공인 고등학교 3년생 딸을 홀로 키우는 신세대 엄마로 등장한다. (서울=연합뉴스)
이미숙, 영화 <...ing>에 캐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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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얼굴이 생각 안나…”“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참으로 오래된 기억의 주크 박스 한켠에, 어린 날 한두번쯤 되뇌어봤음직한 동요 <섬집 아기>도 아마 들어 있을 것이다. 엄마를 기다리며 홀로 잠든 아이의 풍경화가, 어린 맘에도 어쩐지 서글픈 정감과 막연한 그리움의 여운을 남기던 노래. <오세암>은 극중에 삽입된 이 노래처럼,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지금에서 돌이켜보면 멋쩍을 만큼 투명한 동심의 기억을 부르는 애니메이션이다. 해맑은 순수 운운하는 건 어른들의 공연한 향수라고, 인터넷 시대의 영악한(?) 아이들에게 동심이 웬말이냐고 툴툴거린다고 해도, 이미 성장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이로서는 결코 다 기억해낼 수 없는 유년의 소우주에만 존재하는 비밀. 죽음의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래서 간절히 원하면 엄마를 만나리라는 믿음을 지키는 5살배기 소년
장편애니메이션 <오세암> 미리 보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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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손이의 아이다움과 더불어, 엄마를 그리며 서로를 다독이는 남매의 우애는 담백한 이야기에 애틋한 체온을 불어넣는다. 석탑 위에 기어올라 새들에게 우렁차게 인사하던 길손이가 노래를 청하는 노스님의 말에 <섬집 아기>를 부를 때, 절 마루에 앉은 감이의 플래시백으로 슬그머니 전환하는 프레임. 아직 아기인 길손이를 업은 감이와 엄마의 정다운 한때에 대한 회상은 물론, 절에서 누나를 괴롭히는 마을 아이들에 맞서다가 되레 그 애들의 엄마에게 꾸중을 듣고 설움에 목이 메는 길손이, 제 무릎을 베고 잠든 동생을 쓰다듬으며 자란 모습을 볼 수 없어 몰래 눈물짓는 감이 등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살아가는 남매의 외로운 속내는 짐작을 벗어나지 않는데도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호소력이 있다.한겨울 폭설로 관음암에 고립된 5살 동자가 부처가 됐다는 불교 설화를 토대로 한 원작이 좀더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면, 가족용을 표방한 애니메이션은 “아이의 순수”에 초점을 맞췄다고. 그래서 눈에
장편애니메이션 <오세암> 미리 보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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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베니스 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의 <오아시스>가 5월 14∼25일 프랑스에서 개최될 제56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특별상영된다.영화진흥위원회는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이 칸 영화제 기간에 비평가주간을 개최하며 지난해 국제영화제 FIPRESCI상 수상작 가운데 <오아시스>를 특별초청했다고 17일 밝혔다.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은 5월 16ㆍ17일 <오아시스> 상영과 17일 `한국영화의 밤' 개최에 맞춰 칸을 방문할 예정이다.이와 함께 비평가주간에 전선영 감독의 <굿나이트>, 회고전에 신상옥 감독의 <상록수>, 감독주간과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단편 <사연>(박종우)과 <원더풀데이>(김현필)가 각각 초청됐다.23일 공식 발표될 장편 경쟁부문 초청작 명단에는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전수일 감독의 <파괴>, 홍기선 감독의 <선
이창동 장관의 <오아시스> 칸영화제 초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