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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역사는 질문의 역사다. 빛과 그림자로 만들어진 이 예술은 언제나 세상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왔다. <씨네 21>이 창간 30주년을 맞아 준비한 ‘(한국)영화에 던지는 30가지 질문들’은 그 대화에 참여하는 목소리다. ‘극장 앞으로’, ‘관객 옆으로’, ‘영화 속으로’, ‘창작 너머로’라는 네개의 섹션으로 구성해 기자, 평론가 등으로 구성된 필진이 각자의 시선으로 포착한 문제의식을 담았다. 한국영화의 위기는 이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그러므로 이 질문들은 다음 국면을 그리는 각자의 상상력 이자 염원이기도 하다. 영화는 죽었나,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진화하려는가. 30개의 질문들이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공동의 사유 공간이 되길 바란다.
※ 자세한 기사는 잡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영화에 던지는 30가지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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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동안 1501권. 어림잡아도 대략 10만개에 달하는 <씨네21>의 기사 중에서 30개의 베스트 기사를 고른다는 일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30주년을 맞이하고, 다음 30년을 준비하는 주간지로서 지금까지의 궤적을 살피는 일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씨네21>은 1995년 창간 이후 각 연도의 흥미로웠던 기사를 최대한 균등하게 분배하여 기자들이 선정한 30여개의 기사를 묶어 추렸다. 가급적 기존에 접근성이 낮았던 예전 기사들과 지난 1500호에서 소개했던 한국영화의 주요 순간들과 중복되지 않는 선에서 선정했다. 영화담론에 대한 쟁점적인 토론, 한국 영화산업의 흐름을 훑을 수 있는 산업 기사들과 봉준호, 박찬욱, 홍상수, 이창동 등 30년간 한국영화에 한획을 그어온 감독들의 변천사까지. 한국영화의 사료가 된 <씨네21>의 지난 세월은 지금의 영화 매체를 보는 시선에도 여러 영감을 선사할 것이다. 그 시작은 <씨네21&
[기획] 30 YEARS 30 ARTICLES - <씨네21> 30년을 빛낸 기사 베스트 오브 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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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장기가 내 몸에 이식되는 것만으로 인간은 엄청난 이물감을 느낀다. 더군다나 그 장기가 죄인인 아비의 것이라면 거부감은 죄책감으로 번지고 만다. 아버지에게서 이식받은 폐를 호흡할 때마다 원망하는 사격선수 태화(이수혁)는 피해자의 딸인 미지(하윤경)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지옥 같은 삶을 사는 가출청소년 미지도 마음 한편에 둔탁한 가책을 품기는 매한가지다. 강동인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파란>은 이중 매듭처럼 단단하게 얽힌 죄의식의 난제에 질문을 던진다. 강렬하게 울려 퍼지는 총성과 거칠게 몰아쉬는 숨 속에서 우리는 어느 한쪽의 손을 쉽게 들어줄 수 있을까. 산탄총에 맞아 공중에서 부서진 클레이 피전의 파편처럼 흩어진 비극의 조각을 쫓다 보면 우리는 강동인 감독이 마련한 옅은 구원의 단서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 <파란>의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됐는가.
만약 내가 범죄자의 장기를 이식받는다면. 설령 그 장기가 내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하더라
[인터뷰] 어디에 더 마음이 가는지 살피는 한끗 싸움, <파란> 강동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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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한국영화제. 작고 소박할 것이 틀림없는 영화제다. 그런데 최근 이 영화제를 찾는 주요 한국 영화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이창동, 봉준호, 김지운, 임상수, 나홍진,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이정재, 박해일, 황정민 등이 최근 몇년간 이곳을 찾았다. 이곳은 어떤 사람들이 만드는 곳일까. 어떤 매력을 갖춘 곳일까. 영화제 기간 동안 현지에 머물며 각종 행사를 지켜보고 참관기를 전한다.
개인적으로 피렌체한국영화제를 알게 된 것은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프로그래머를 맡게 되면서부터다. 당연한 일이다. 그 이전에는 알 만한 계기가 없었다. 피렌체한국영화제의 집행위원장 리카르도 젤리는 첫인상부터 강렬했다. 그는 언제나 열정적이었고 많은 것을 궁금해했고 더 좋은 작품을 초청하고 싶어 했다. 종종 너무 열정적인 나머지 카페에서 목소리가 높아지면 동석한 장은영 피렌체한국영화제 부위원장에게 “목소리가 너무 크다, 조용히 말하라”고 어김없이 지적받기도 하지만, 그의 열정을
[기획] 한국영화가 이탈리아에서 축제가 되었으면 - 정한석 영화평론가의 제23회 피렌체한국영화제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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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사는 남자 정민(최대철)은 밤마다 들리는 옆집 아이 수아(박은별)의 발걸음 소리에 괴로워한다. 어느 날 그는 담배를 피우러 갔다가 수아가 홀로 집에 버려진 사실을 눈치챈다. 집주인은 옆집을 살펴봐달라는 그의 말을 흘려넘긴다. 보름이 흐른 뒤에야 그는 수아의 할머니 순임(이칸희)과 함께 옆집의 문을 부순다. 옆집 주인 다영(이슬아)이 아이를 방치한 채로 여행을 간 탓에 수아는 굶주린 채로 기절해 있다. <울지 않는 아이>는 다큐멘터리 <청춘합창단-또 하나의 꿈>의 감독 이혁종 감독의 신작으로 실제 아동학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고발영화다. 최대철, 이칸희의 연기가 돋보이나 완성도는 미흡하다. 우선 캐릭터가 입체적이지 않다. 특히 다영은 속물근성을 가진 여성으로 그려져 구시대적 여성혐오를 답습한다. 고발영화라기에도 아동학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만 할 뿐 윤리적 재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며, 스릴러로 전환되는 터닝 포인트도 어색하다.
[리뷰] 실화 고발 프로그램을 고무줄처럼 늘린, <울지 않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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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요나스 다슬러)는 뉴욕으로 유학을 떠난다. 재즈와 할렘의 거리에서 그가 발견한 예수는 약자를 보살피는 민중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소명을 안고 귀국한 독일의 상황은 참혹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철저히 침묵한 기성 교회에 실망한 그는 히틀러에 대한 불복을 선언하며 고백교회를 창립한다. 한편 나치의 탄압이 점점 거세지며 설교로 세상을 바꿀 수 없음을 느낀 디트리히는 히틀러 암살 계획 소식을 듣게 된다. 독일 진보 신학의 대가이자 히틀러 암살 가담으로 처형된 목회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전기영화다. 후대에도 큰 영향을 미친 디트리히의 신학적 기반은 행동하는 믿음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저 장황한 대사로 신앙심을 묘사하면서 그의 입장과 반대되는 방법을 택한다. 언어보다 삶이 앞선 실존 인물에게 한없이 부족하고 평면적인 연출적 역량이 아쉽게 느껴진다.
[리뷰] 행동하는 믿음을 장황한 설교로 뒤덮고 만다, <본회퍼: 목사. 스파이. 암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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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아버지와 프랭크 시내트라의 <My Way>를 부르던 때부터 로비(조노 데이비스의 모션 캡처 연기와 로비 윌리엄스의 목소리 연기)는 스타가 되길 꿈꿨다. 타고난 무대 체질에 두둑한 배짱까지 갖춘 소년은 보이밴드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목표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된다. 그가 막내로 합류한 그룹의 이름은 ‘테이크 댓’. 클럽을 전전하며 인지도를 쌓은 팀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영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발돋움한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얻은 유명세가 독이 된 것일까? 불안에 못 이겨 술과 마약에 중독된 로비는 불화 끝에 팀을 탈퇴한다. 솔로 가수 로비 윌리엄스로 대중 앞에 서야 하는 상황. 병들어가는 내면을 돌볼 새도 없이 로비는 성공적인 솔로 복귀에 매진한다. <베러맨>은 브릿팝의 아이콘인 로비 윌리엄스의 전기영화다. 다만 우리가 아는 능글맞은 로비는 털북숭이 침팬지로 등장한다. 그는 자신을 아직 진화가 덜된 상태로 여기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짐승에 빗댄 덕에
[리뷰] 구차한 자기 연민마저 로비답게 섹시하고 쿨하다, <베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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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신들>은 AI를 탑재한 안드로이드와 인간을 눈으로 분간할 수 없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총 5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옴니버스영화로 각각 <보이스피싱> <모기지> <노이즈캔슬링> <페어링> <업데이트>라는 소제목을 지니고 있다. 영화 속 안드로이드는 실종된 손자를 빙자해 노인에게 피싱 사기를 치는 가해자가 되기도 하며 한평생 주인의 대출을 상환해야 하는 노동자로 살거나 길고양이처럼 유기되는 등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또한 오래전 헤어진 연인의 말을 전달하기도 하며 항암 치료를 포기한 작가의 정체성을 기록하는 등 인간다움을 대체하기도 한다. 안드로이드와 마주치는 인간은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귀신들>은 <썰> 등 저예산 영화를 연출한 황승재 감독의 신작이다. 전작인 <구직자들>의 세계관을 확장한 저예산 SF영화다. 영화의 만듦새는 엉성하다. 일단 각본이 화려한 시각효과의 부재를
[리뷰] 퇴마보단 퇴고가 시급하다, <귀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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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섬유증이 있는 클레이 사격선수 태화(이수혁)에겐 새 삶을 제대로 살 마음이 없다. 아버지에게 폐를 이식받아 고비는 넘겼으나 살인자인 아버지 덕에 살아났다는 게 견디기 힘들다. 피해자의 10대 딸 미지(하윤경)를 생각하면 한창 아팠을 때만큼이나 고통스럽다. 그래서 재활도 뒷전으로 미룬 채 태화가 집중하는 건 하나다. 어떻게든 미지를 찾아 그의 부서진 삶을 재건하는 것. 간절함이 통했는지 우연한 장소에서 미지와 만난 태화는 예상보다 더 벼랑 끝에 놓인 미지에게 손을 뻗는다. <파란>은 괴로운 인간의 복잡한 마음을 집요하게 헤집어본다. 주인공 태화는 삶이 연장되었다는 기쁨보다 살인자의 폐로 숨 쉬고 있다는 죄책감을 더 크게 느끼는 인물이다. 아버지의 죄를 끊임없이 내면화하다가 결국 자신의 잘못으로 확정 짓고 만 그는 죄를 씻고자 피해자의 딸을 돕는 일에 몰두한다. 영화는 핸드헬드로 잡은 뒷모습과 클로즈업한 생기 없는 얼굴, 타인의 말을 자신을 비난하는 목소리로 왜곡해서 듣는
[리뷰] 죄책감을 내면화한 인간의 속을 헤집다, <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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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제1회 영화평론상 공모에서 염찬희·이명인, 1997년 제2회 이상용·김의수, 1998년 제3회 심영섭, 1999년 제4회 권은선, 2000년 제5회 김소희·정지연, 2001년 제6회 유운성·손원평, 2002년 제7회 변성찬·정한석, 2003년 제8회 정승훈·김종연, 2004년 제9회 남다은·김혜영, 2005년 제10회 김지미·안시환, 2006년 제11회 이현경·이창우, 2007년 제12회 송효정, 2008년 제13회 이지현, 2009년 제14회 송경원, 2010년 제15회 김태훈·오세형, 2011년 제16회 이후경·김효선, 2012년 제17회 우혜경, 2013년 제18회 송형국, 2015년 제20회 박소미·김소희, 2016년 제21회 홍수정, 2017년 제22회 박지훈·홍은애, 2018년 제23회 김병규·홍은미, 2019년 제24회 박정원·조현나, 2020년 제25회 김철홍·오진우, 2021년 제26회 김성찬·이보라, 2022년 제27회 김예
알림 ● 제30회 <씨네21> 영화평론상 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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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about Yuh-Jung Youn
1303호 배우 윤여정
<씨네21>은 2021년 설 합본 특대호(1292호)에서 <미나리>로 미국의 각종 비평가협회 여우조연상을 수집한 윤여정과 전년도 오스카의 제왕이었던 봉준호 감독의 대담을 성사시켰다(줌(zoom)을 통한 윤여정과 봉준호의 대담은 현재 <씨네21> 유튜브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윤여정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기원하며 윤여정의 모든 것을 기록한 특별호를 제작했다. 다들 알다시피, 소원이 이루어졌다.
그들 각자의 대표작
1315호 배우 이제훈, 박정민
21세기 한국 독립영화와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의 역사에서 <파수꾼>을 빼놓을 순 없다. 배우 이제훈과 박정민이 영화의 개봉 10주년을 기념해 다시 뭉쳤다. “앞으로 내가 <파수꾼> 같은 영화를 만나 해낼 수 있을까, 라고 묻는다면 난 사실 비관적이야.”(박정민) “나도 스스로 이야기하는 대표작이
<씨네21> 베스트 표지30 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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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는 홍상수를
752호 홍상수 감독
인정하자. <씨네21>은 정말 홍상수를 좋아한다. 창간 15주년을 맞아 2010년 홍상수 감독을 표지로 내세운 홍상수 특별판을 만들었다. 2010년은 <하하하> 개봉과 <옥희의 영화>가 개봉한 해. 의외로 홍상수 감독은 1990년대부터 몇 차례 <씨네21>의 표지를 장식했다. 이번주 표지에도 홍상수 감독이 단독으로 장식한 옛 잡지 한부를 실었다. 여러 권 사서 친구들과 누가 더 빨리 찾는지 내기해보시라.
형님이 담아낸 아우
861호 배우 손현주
<추적자 THE CHASER> 세트 촬영장에서 찍은 <씨네21> 861호 표지. 창간부터 <씨네21>과 함께한 손홍주 당시 <씨네21> 사진기자의 작품이다. 알려졌다시피 그는 배우 손현주의 형이다. “동생 손현주가 연기자가 된 후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언젠가 내 동생 현주를 <씨네21>
<씨네21> 베스트 표지30 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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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열연
399호 배우 송강호, 김상경
이 기사에 아쉽게 싣지 못한 ‘아차상’ 목록이 있다. 농구 골대 아래서 레이업슛을 쏘는 박중훈(104호), 펜스를 월담하는 최민식(192호), 옷을 입은 채 샤워하는 김석훈(198호), 이병헌의 겨드랑이를 움켜쥔 송강호(269호) 등 2025년을 기준으로 참신한 사진들의 일군도 포함한다. 399호 표지는 아차상 중 후자에 해당했으나 수차례 검토한 결과 이보다 좋은 그림은 또 없어 베스트 표지로 격상(?)된, <살인의 추억> 표지다.
염정아 발견!
447호 배우 염정아
<범죄의 재구성> 컨셉으로 촬영한 447호 표지다. 염정아는 모든 표지가 빼어나다. 선정의 변 첫째는 염정아가 이 표지를 위해 헤어스타일링에 들인 공 때문이고, 둘째는 염정아가 <범죄의 재구성>으로 청룡영화상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을 싹쓸이했기 때문이며, 마지막은 이 기사 하단에 실린 문자메시지 때문이다. “2004년 새해는 염정아의
<씨네21> 베스트 표지30 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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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이병헌의 첫 순간
36호 배우 이병헌
‘TV 탤런트’로 출발해 영화배우로서 이제 막 두편의 영화를 찍은 스물일곱의 이병헌. “1996년 한국영화계가 주목할 만한 ‘가능성 있는 배우’”라 소개된 그는 “언젠가 눈빛 하나로 관객을 사로잡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영화의 바다가 열리다
71호 부산국제영화제
“여하간 한국의 첫 국제영화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약간의 저항감과 막대한 기대감 속에서 말이다. 그 막대한 기대감 속에는 아시아영화의 교감과 아시아 인디펜던트 감독들의 지원에 대한 관심이 있는가 하면 경쟁부문이 강화되고 본격적인 영화마켓이 형성되어 주류 영화산업을 부흥시켜줬으면 하는 산업적인 논리 역시 뒤섞여 있다. 두 가지 기대가 서로 길항하면서 향후 부산국제영화제의 행로를 조정해나갈 테지만 어떤 경우든 행복한 건 관객이다. 일반 상업적인 배급망에서는 볼 수 없는 아시아의 진주 같은 영화들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조선희 <씨네
<씨네21> 베스트 표지30 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