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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마리아’는 전설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다. 하지만 영화는 위대한 음악가의 화양연화가 아닌, 사망 1주일 전 칼라스에게 닥친 육체적, 심리적 고통에 집중한다. 연인 오나시스(할루크 빌기네르)를 잃고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몇년째 은둔 중인 마리아 칼라스(앤젤리나 졸리). 가정부 브루나(알바 로르바케르)와 집사 페루치오(피에르프란체스코 파비노)의 보필에도 그는 진료와 식사를 거부한 채 중독성 약물에만 의존할 뿐이다. <마리아>의 장점은 음악과 촬영에 있다.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에 앤젤리나 졸리의 가창을 덧입힌 오페라 아리아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촬영상 노미네이션에 빛나는 에드 래크먼의 프레이밍이 쉽게 외면하기 어려운 시청각적 감흥을 제공한다. 파블로 라라인의 영화(<재키> <스펜서>)를 꾸준히 탐색한 관객이라면 <마리아>의 인물 구도나 내면 서술 방식이 익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여러모로 전작의 답습에 그친 듯한 인상
[리뷰] 연구 대상과 겉도는 연구 방법, 이제 라라인에게 필요한 것은 영화적 전조(轉調),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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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숲속 외진 오두막에 서로의 몸을 밧줄로 동여맨 채 사는 모자가 있다. 엄마(핼리 베리)는 두 아들에게 집 밖에는 악령이 도사린다고 가르친다. 아이들도 밧줄을 붙잡는 한 악마가 해치지 않으리라는 어머니의 규율을 성실히 따른다. 그러나 냉혹한 겨울과 기근이 찾아오자 가족간의 견고했던 믿음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아들 놀란(퍼시 대그스 4세)이 밧줄을 끊고 식량을 구하러 나선 것이다. <크롤> <나인스 라이프> 등을 연출한 알렉상드르 아야의 신작이다. <버드 박스>나 <콰이어트 플레이스>처럼 저주받은 세계를 향한 부모의 규율이 가장 중요한 설정으로 등장한다. 규칙을 위반하면 이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는 기존 공식과 달리 어머니의 공포를 향한 끊임없는 의심이 영화의 주된 동력이다. 끝까지 허구의 정신착란과 실재의 저주 사이를 오가려는 연출가의 집념이 돋보이지만, 난삽하고 헐거운 전개가 그 야심을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준다.
[리뷰] 어머니의 금기에 반기를 들기엔 다소 헐거운 매듭, <네버 렛 고: 악의 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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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키 가족은 오랫동안 꿈에 그리던 단독주택에 입주한다. 그러나 가족의 행복은 얼마 못 가 산산조각이 난다. 집을 떠도는 원귀 사유리가 밤마다 가족을 한명씩 죽이기 시작한 것이다. 중학생인 노리오(미나미데 료카)는 학교 친구인 스미다(곤도 하나)의 도움으로 사유리의 존재를 알아차린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그날 밤 일가족이 몰살당하고 노리오와, 태극권 사범이었지만 지금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 하루에(네기시 도시에)만 살아남는다. 다음날 아침 하루에가 급작스레 각성한다. 록을 틀고 히피 차림을 한 그녀는 노리오를 데리고 사유리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지옥 훈련을 시작한다. <사유리>는 <사다코 대 카야코>로 J호러의 명맥을 잇는 시라이시 고지 감독이 오시키리 렌스케의 동명 호러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귀신 들린 집’ 클리셰를 전복하는 원작의 흥미로운 구성을 따른다. 원작과 달리 태극권 등 몇몇 설정을 덧대고 디테일과 후반부의 전개를 수정했다. 1부에
[리뷰] 자기계발서 백권 읽기보다 나은 갓생 다짐 호러, 킹받음의 미학 그 자체!, <사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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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짓 존스(러네이 젤위거)가 돌아왔다. 전작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2016)로 시리즈 피날레가 장식된 줄 알았건만 9년 만의 귀환이다. 마크(콜린 퍼스)와 다니엘(휴 그랜트) 사이에서의 오랜 방황을 정리하고 마크와 결혼하며 해피 엔딩을 맞은 듯했던 브리짓의 삶은 잔인하게도 후속작에 의해 리셋된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남자, 마크 다아시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브리짓은 이전과 같을 수 없다. 남편의 죽음 이후, 두 아이의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브리짓은 매일 아침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길에 마주치는 과학 교사 월리커(추이텔 에지오포)가 은근히 신경 쓰이는가 하면,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20대 록스타(레오 우달)는 그 나이답게 거침없이 다가온다. 다시 한번, 두 남자 사이에 선 브리짓. 일도, 연애도, 섹스도 반 포기 상태로 살아온 브리짓은 진짜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
[리뷰] 연애에 빚지고 사는 삶. 잘 살겠습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뉴 챕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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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한영웅 Class 1>(이하 <클래스1>)에서 시은(박지훈)이가 무리 속에서 혼자 있길 원했다면, <약한영웅 Class 2>(이하 <클래스2>>의 시은이는 타인을 경계하고 거부한다. 혼자됨의 태도 변화가 느껴지는데. 이러한 감정선을 어떻게 파악했는지 궁금하다.
새로운 시즌에서 시은이의 감정선이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소중했던 친구를 잃고 원치 않은 전학을 가면서 다시는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으리라 마음의 빗장을 잠그지만 그 안에는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이 다시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크다. 그게 시은이의 중심축이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주변인들과 연결되고 사건에 휘말리면서 새로운 친구를 만난다. 마침 그럴 시점이 온 것 같다. 부모님과도 따로 떨어져 혼자 사는 시은이를 누군가가 보듬어줄 시점. 시은이에게도 친구들이 필요하다.
- 동시에 시은이는 수호(최현욱)를 향한 독백을 남긴다. 여전히
[인터뷰] 묘연한 소년의 얼굴, <약한영웅 Class 2> 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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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내 알력 다툼과 정글 같은 서열 싸움, 암묵적인 복종과 불굴이 선명했던 <약한영웅 Class 1>은 회색빛으로 무감해진 연시은(박지훈)을 은장고로 전학 보내며 교내 혈투를 이어간다. 친구를 잃은 슬픔에 젖어들 새도 없이 시은은 이젠 너무나 질려버린, 그러나 학교 뒤편에서 오랫동안 숨어온 또 다른 싸움에 휘말리기 시작한다. 다만 학교폭력이 만들어낸 그림자 옆에는 어둠뿐만 아니라 빛도 함께 공존한다. 밝고 명랑하고 엉뚱한 친구들. 모난 것 없이, 음침한 구석도 없이 시은에게 모여들고 달라붙는 친구들이 <약한영웅 Class 2>를 시끄럽게 채운다. 박후라는 별명의 비폭력주의자 박후민(려운), 싸움을 망설이는 법 없는 고현탁(이민재), 시은을 따라 굽히지 않는 법을 배운 서준태(최민영). 외로웠던 소년은 새로운 관계를 통해 마침내 자기만의 정원을 넓힌다. 평범하고 조용하게 살고 싶은 시은의 바람을 생생하게 그려낸 박지훈은 새 시즌을 통해 보다 다층적인 방식으로 주
[커버] 벼랑 끝에 섰던 그 소년의 표정은, <약한영웅 Class 2> 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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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를 고를 때 반드시 참고하는 리스트가 있다. 종합출판사 다카라지마사가 매해 발표하는 ‘이 만화가 대단하다!’다. 그해 가장 사랑받은 작품들의 랭킹으로 여성편과 남성편으로 나누어 선정한다. 2005년부터 시작해 일본 만화의 트렌드를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로 자리매김했다. 2024년 ‘이 만화가 대단하다!’ 여성편 1위작인 <해변의 스토브>가 지난 2월26일 국내에서 출간됐다. <해변의 스토브>는 삶을 지탱하는 것들을 모은 단편집이다. 상실(<해변의 스토브> <눈 내린 마을>)과 공허(<당신이 투명해지기 전에>), 박탈감(<눈을 껴안다>)과 소외감(<설녀의 여름>)을 함께 나눠줄 누군가가 분명히 있다는 것, 살고 싶어지는 몰입(<바다 밑바닥에서>)과 발견(<소중한 일>)의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걸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읽다 보면 용기가 저절로 부푸는 이야기를 데뷔작으로 펴낸 만화
[trans x cross] 소중한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 - <해변의 스토브> 오시로 고가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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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
넷플릭스 / 감독 이일형 출연 이희준, 박해수, 신민아, 공승연, 김성균, 이광수, 조진웅 / 공개 4월4일
플레이지수 ▶▶▶ | 20자평 - 기시감 넘치는 세계관의 한계를 상쇄하는 내러티브의 마법
박재영(이희준)의 삶은 벼랑 끝에 서 있다. 사채까지 끌어다 써서 투자한 코인은 망했으며 사채업자(조진웅)는 그를 죽이려 벼르는 중이다. 그의 마지막 희망은 아버지의 사망보험금이다. 그는 보험금을 타내려고 공장에서 만난 조선족 노동자 장길룡(김성균)에게 아버지의 청부 살인을 부탁한다. 사건이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가며 이유정(공승연)과 김범준(박해수), 한상훈(이광수), 이주연(신민아) 등이 이 사건에 연루된다. <악연>은 <검사외전> <리멤버>의 이일형 감독이 메가폰을 쥐고 각본을 쓴 6부작 드라마로 동명 카카오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6부작 드라마의 규모에 알맞은 탁월한 각색이 돋보인다. 이야기의 곁가지를 쳐낸 다음 모든
[OTT리뷰] <악연> <알렉산더와 끔찍하고, 최악이며, 말도 안 되게 엉망진창인 가족 여행> <내가 죽기 일주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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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모님’이라 불리며 냉철하고 냉혹하게 일처리를 해온 킬러 조각(이혜영)에게도 나이가 들며 조금씩 빈틈이 생긴다. 예기치 못하게 부상을 입은 어느 날, 강 선생(연우진)이 조각을 치료해준다. ‘지킬 상대는 만들지 말자’고 자신에게 모든 걸 가르친 스승 류(김무열)와 다짐했지만 조각은 강 선생과 그의 딸에게서 쉽게 시선을 거둘 수 없다. 한편 조각이 소속된 청부업체 ‘신성방역’에 새로 들어온 킬러 투우(김성철)는 계속 조각의 주위를 맴돈다. 그리고 강 선생 부녀를 남달리 대하는 조각에게 분노하며 서서히 그에게 접근한다. <허스토리> <내 아내의 모든 것> 등을 연출한 민규동 감독이 신작 <파과>와 함께 돌아왔다. 킬러 역을 맡은 이혜영과 김성철이 보여줄 액션, 그리고 어린 시절 조각에게 모든 걸 가르친 스승 류와 투우, 강 선생과 엮인 관계와 감정의 드라마가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를 모은다. 뮤지컬로도 구현됐던 구병모 작가의 소설이 원작이며 제75회 베를
[coming soon] 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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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과 메이 자매는 중국에서 태어났다. 두 사람이 태어난 1970년대는 중국에서 산아제한정책이 시행되던 때다. 둘째 딸 메이는 가족의 안전을 위해 숨어 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란 메이는 성인이 돼 세계 각국의 문화가 뒤섞인 로마 에스퀼리노의 중국 음식점 ‘금지된 도시’에 취직한다. 에스퀼리노는 세계의 만물이 거래되는 빅토리오 광장이 위치한 다문화의 교두보다. 이곳에서 메이는 셰프 마르첼로와 특별한 관계로 얽힌다. 마르첼로는 과거 아버지와 함께 운영하던 식당에서 실종된 아버지를 찾고 있다. 메이 역시 금지된 도시에서 잃어버린 언니를 찾기 위한 여러 단서를 발견한다. 두 사람은 가족을 찾아 나서는 여정 중에 이탈리아 사회에서 중국계 이민자들이 겪는 갈등과 고통을 마주한다.
영화 <금지된 도시>는 <지그 로봇이라고 불렀다>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가브리엘레 마이네티 감독의 신작이다. <지그 로봇이라고 불렀다>는 슈퍼히어로 장르영화를 이탈리아 특유의 사
[로마] 이민자를 탐구하다 - 가브리엘레 마이네티 감독의 신작 <금지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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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회 칸영화제 공식 초청작이 4월10일 오전 11시(현지 시간 기준) 프랑스 파리 UGC몽파르나스 극장에서 공개됐다.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과 이리스 크노블로흐 칸영화제 조직위원장이 참석해 부문별 상영작을 호명했다.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은 올해 영화제에 총 2909편의 장편영화가 출품돼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고 밝혔다. 스칼릿 조핸슨과 해리스 디킨슨은 각각 <위대한 엘레노어>와 <부랑아>를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상영하며 감독으로 데뷔한다. 스파이크 리 감독의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까지>와 톰 크루즈 주연의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은 비경쟁부문에 초청됐다. 경쟁부문에는 쥘리아 뒤쿠르노, 켈리 라이카트, 합시아 헤지, 카를라 시몬, 하야카와 지에, 마샤 슐린스키 등 지난해보다 2명 늘어난 6명의 여성감독이 초청됐다. 한국영화는 올해 칸영화에 공식 초청작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경쟁부문에는 거장(
제78회 칸영화제 공식 초청작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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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길지만 한달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시간의 무상함을 읊조리는 관습적 표현인데, 요즘엔 거꾸로 써야 할 것 같다. 하루는 정신없이 지나가지만 이걸 한달 내내 반복하고 버티려니 너무 길다. 또 어떤 상황이 닥칠지 몰라 겁이 난다. 가깝게는 급변하는 정세에 ‘다이내믹 코리아!’를 외치지 않을 도리가 없고 멀리 둘러봐도 세계질서가 바뀌고 있는 순간이라는 게 피부에 와닿는 요즘이다. 좌와 우, 안과 밖, 망원경과 현미경, 과거와 미래까지 모든 것이 맹렬하게 진동 중이다. 다시 만난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불투명하고 불확실하다.
(매주 그렇듯) 목요일 마감 후 금요일 반나절 행복했다. 4월4일 금요일 윤석열씨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어 이제야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바로 다음날 (역사적으로 수차례 검증된) 이른바 ‘국회의장병’이 창궐하여 개헌 이야기로 속을 뒤집어놓는다. 내란 세력 척결 국면이 시간을 잘못 맞춘 개헌 논의에 흐려지면 어쩌나 걱정했더니, 곧이어 숨 쉴 때마다 위헌 중인 대통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그해 봄의 불확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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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에 던지는 30가지 질문들-관객 옆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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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에 던지는 30가지 질문들-극장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