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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넷플릭스에서는 어떤 작품을 만나게 될까. 궁금증을 해결할 자리가 1월21일 콘래드 서울 호텔에서 열렸다. ‘넥스트 온 넷플릭스 2026 코리아’에서 넷플릭스는 ‘발견’을 키워드로 올해 공개될 영화, 시리즈, 예능 일부를 선공개하며 라인업을 소개했다. 각 부문을 담당하는 디렉터들이 작품을 경유해 부문별 방향성을 설명했고, 출연배우와 MC도 무대에 올라 자신이 참여한 작품에 대한 힌트를 전하며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오프닝 스피치를 맡은 강동한 넷플릭스 한국 콘텐츠 부문 부사장(VP)은 넷플릭스가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 지 10년이 되는 2026년을 맞아 두 가지를 약속했다. 첫째는 한국 콘텐츠에 대한 장기 투자다. “넷플릭스는 한국 콘텐츠의 잠재력과 미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다. 기존 영화와 시리즈, 예능 오리지널뿐 아니라 라이선싱을 포함한 다양한 협업 모델을 통해 변함없이 투자하겠다.” 둘째는 신인 창작자 육성이다. 그는 “최근 3년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시리즈와 영
[씨네스코프] 2026년 넷플릭스 라인업을 미리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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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명단이 공개됐다. 1월22일 배우 대니얼 브룩스와 루이스 풀먼이 진행한 라이브 방송은 함성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노미네이션된 작품을 하나씩 호명했다. 먼저 작품상으로는 <부고니아> <F1 더 무비> <프랑켄슈타인> <햄넷>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시크릿 에이전트> <센티멘탈 밸류> <씨너스: 죄인들> <트레인 드림스>가 후보로 올랐다. 감독상에는 <햄넷>의 클로이 자오, <마티 슈프림>의 조시 사프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폴 토머스 앤더슨, <센티멘탈 밸류>의 요아킴 트리에르, <씨너스: 죄인들>의 라이언 쿠글러가 여정을 함께한다. 배우 부문의 경쟁도 뜨겁다. 여우주연상 후보로는 <햄넷>의 제시 버클리, <이프 아이 해드 레그스 아이드 킥 유>의 로즈 번, <송 썽
[해외뉴스] 올해엔 누구에게 갈까?,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공개부터 <어쩔수가없다>북미 흥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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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가에 멜로 로맨스의 불꽃을 지피고 있는 <만약에 우리>의 원작 영화 <먼 훗날 우리>에는 작품을 관통하는 한줄의 대사가 있다. 오랜 우여곡절 끝에 재회한 린젠칭(정백연)에게 샤오샤오(주동우)가 말한다. “I miss you.” 린젠칭이 자신도 보고 싶었다고 답하니 샤오샤오는 울먹이며 내뱉는다. “내 말뜻은, 내가 널 놓쳤다고.” 소진된 인연의 끝에 선 남녀는 가난한 마음으로 놓쳐버린 순간들을 그리워하며 회한에 잠긴다. 때론 중의적인 의미를 담은 말들이 아쉽고 모자란 마음을 더 적절하게 담아내는 것 같다.
2022년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의 포스터에는 ‘안녕, 모든 에반게리온’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진즉에 과거가 되어버린 ‘에반게리온’이 이 문구를 보는 순간 현재로 되살아났다. 안녕이라는 인사를 입에 올리는 순간, 이제 정말 페이지를 닫고 떠나보내는 ‘bye’의 안녕과 다시 만나 반가운 ‘Hello’의 안녕이 겹친다. 어쩌면 우리가 무언가를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안녕, 양소룡, 로저 앨러스 그리고 벨러 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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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는 짐 자무시의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에 황금사자상을 수여했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었으나 이 결과를 이변으로 받아들인 이들도 적잖았다. 은사자상을 수상한 카우타르 벤 하니야의 <힌드의 목소리>(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에 가족을 잃고 구조를 요청하다 사망한 아이의 실화를 재구성한 영화)가 환기하고 호소하는 당대 긴급한 현실을 외면한 선택이라는 반발도 이어졌다. <힌드의 목소리>를 관람하지 못한 상태로 이러한 반응에 의견을 더하긴 어렵다.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에 한해 말하자면, 이 작품이 짐 자무시의 전작들과 비교해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뤘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에는 자무시 세계의 속성이 그의 영화로서는 다소 이례적인 설정과 접속하며 일으키는 흥미로운 진동이 있다. 그것이 안기는 감흥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짐 자무시의 필모그래피에서 옴니버스
[남다은 평론가의 RECORDER] 엉큼한 아버지, 무서운 어머니, 연약한 남매,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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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파티를 준비하며 인연을 맺은 한 방송 PD는 파티가 끝난 지 한참 되었지만 지금도 얼굴이 가물가물할 때쯤 내게 안부 전화를 준다. 그의 적당한 살가움이 얼마나 고마운가? 하지만 나는 휴대전화 화면에 그의 이름이 뜨면 크게 긴장하는데, 그리 친밀한 사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와 대화를 시작하면 늘 이상하리만큼 끝을 맺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복길씨는 혼전 임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헉. 임신하셨나요?” “아뇨. 그냥 평소 생각이 궁금해서요.” “글쎄요. 임신에 혼인 여부가 중요할까요… 그냥 계획되지 않은 임신 정도 아닌가요?” “만약에 계획을 했다면요?” “….” 보통의 대화라면 내가 답하지 않는 대목에서 본인이 꺼낸 주제인 ‘혼전 임신’에 대해 자신의 관점을 말하거나, 지금 둘이서 새로운 합의를 보자는 뉘앙스를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엑소 멤버 첸이 혼전 임신으로 결혼한 거 알아요?” “아, 그 얘길 하시려고 했구나. 들었어요. 그럼 그분이 계획된 혼전 임
[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이제 그대에게 비밀은 없어, <비밀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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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돌파하기가 어려워진 시기에 재개봉과 최초 개봉은 하나의 트렌드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됐다. 영화를 다시 상영하는 것 이외에 영화를 기억하는 방법으로 전기영화도 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신작 <누벨바그>는 장뤼크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의 제작 현장을 그린다. 이 영화를 재밌게 볼 수는 있어도 그저 과거에 머무는, 다시 말해 그 시절, 그 세대를 특권화하는 작품이다. 영화 속 고다르의 행동에 감화돼 영화 현장에서 따라 하는 어리석은 자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과거는 보정되고 미화된다. <누벨바그>를 보며 다음 뉴웨이브가 과연 올 것인가를 논하는 건 이 영화가 요구하지도 않는 진지한 질문일 것이다.
여기 한 감독은 독특한 방법으로 영화를 기억한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작가를 만나다-김응수’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을 1월 한달간 선보인다. 상영작은 김응수 감독의 ‘망자 3부작’인 <고다르> <그들의 이런 만남>
[비평] 이해를 넘어서, 오진우 평론가의 ‘김응수 망자 3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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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작별의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저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당황한 나머지 황급하게 쓰고 있는 이 문장들이 예의 바르지 않은 것은 아닌지 그저 조바심이 날 따름입니다.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이 말들은 누구를 위해서, 누구를 향해서, 그렇게 누구에게 하는 걸까요. 이미 우리 곁에 없는 분을 위한 말. 그러므로 제가 이 말을 해도 괜찮은 것일까요. 자꾸만 저에게 다시 물어보고 금방 쓴 문장을 되짚어보고 있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한 불러보아야 할 이름을 미루고 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더 미루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지금 우리가 마주한 작별을 공식화하는 게 되어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걸 용기라고 불러야 할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침묵을 지키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일까요. 어쩌면, 네, 아마도 어쩌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듯이 그렇게 하고 싶
[특집] 작별 인사, 귀한 줄도 모르고 누리기만 했던 우리가 보내는 애도 - 정성일 평론가·감독이 기억하는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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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기 배우는 영정 사진마저 포근했다. 눈을 따뜻하게 맞춰오며 입꼬리를 부드럽게 올려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이 사진은 안성기 배우가 배창호 감독과 함께한 9번째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1987)의 스틸로, 포스터 제작을 위해 찍은 것이다. “아내인 오소영 여사가 그 사진을 떠올렸던 모양이에요. 구본창 작가에게 부탁해서 영정 사진으로 썼죠.” <기쁜 우리 젊은 날>을 연출한 배창호 감독이 말했다. 그는 1982년 데뷔작 <꼬방동네 사람들>부터 10년이 조금 안되는 동안 12편의 영화를 고인과 함께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잠시 협업은 멈췄지만 2000년대 들어 <흑수선>으로 재회하면서 총 13편의 영화를 함께했다. 장례식이 끝난 뒤 배창호 감독을 만나 고인과 함께 만든 영화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창밖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 2025년 12월31일, 안성기 배우가 위중하다는 속보를 전 국민이 보았습
[인터뷰] 배우이자 동료 영화인, 그리고 형이었던 - <꼬방동네 사람들>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기쁜 우리 젊은 날> 배창호 감독이 말하는 안성기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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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9일 이른 아침, 서울 중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는 배우 안성기의 추모 미사와 영결식이 진행되었다. 세례명 사도 요한의 이름으로 영면에 든 그를 배웅하기 위해 명동대성당에는 유가족, 영화·예술계 인사와 관계자 600여명이 참석했다. 우직하게 한국영화를 지켜온 그의 빈자리를 슬퍼하는 이들은 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며 기도의 목소리를 높이 올렸다. 이날 명동대성당 지붕 위로 올라온 낮달마저도 배우이자 신앙인으로 영화의 덕목을 몸소 실천해온 배우 안성기를 향해 작별 인사를 나누는 듯 보였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정순택 대주교의 주례 아래 이뤄진 장례미사에서는 그를 향한 그리움의 말로 채워졌다. “안성기 사도 요한 형제님은 모든 이에게 사랑받은 국민 배우이자 겸손하고 인품이 훌륭한 참다운 스타였다. 한평생 우리나라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에 봉사하며 고단한 시절 국민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었다. 지난해 말 위중하다는 소식에 모두가 회복을 바랐지만 하느님께서 지난 1월5일
[특집] 낮달도 함께 - 고 안성기 배우 명동성당 추모 미사와 영결식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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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기의 데뷔 연도는 1957년이다. 그해에 나온 영화로는 시드니 루멧의 <12명의 성난 사람들>, 구로사와 아키라의 <거미집의 성>, 잉마르 베리만의 <제7의 봉인>등이 있다. 그만큼 안성기는 오랜 기간 관객의 곁에서 소년이자 청년으로, 아들이자 아버지로, 거지이자 대통령으로 함께했다. 한국영상자료원과 <씨네21>의 자료를 바탕으로 배우 안성기의 지난 70여년을 돌아본다. (연도 표기는 개봉 연도와 달리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기준으로 정리했다.)
1950
12월31일 부친 안화영, 모친 김남현 슬하 3형제 중 막내로 출생. 한국전쟁 당시 서울을 떠나 마산으로 피난가던 중 산기를 느낀 어머니 김남현이 대구 신암동에서 출산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출생신고가 늦어져 주민등록 생년월일은 1952년 1월1일이다.
1957
김기영 연출 <황혼열차>로 배우 데뷔. 김기영 감독은 안성기에게 ‘아버지 친구’이기도 하다. 영화의 제작자이자
[특집] 국민배우와 함께한 70년 - 사진과 함께 돌아보는 배우 안성기의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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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안성기를 수식할 때 종종 끌려나오는 말이 있다. 그가 무채색의 배우라는 묘사다. 대개 배우를 도화지에 비유하면서 어느 색이든 타고난 것처럼 소화한다고 말할 때의 그 무채색이기도 하지만, 특유의 과시 없는 점잖음을 일컫는 수사였다. 혹은 그의 미소에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약간의 고독을 향한 알아차림이기도 했다. 임권택, 배창호, 이장호 감독을 비롯해 1980년대 한국영화 뉴웨이브를 이끈 젊은 감독들- 박광수, 이명세, 장선우- 의 주요작과 데뷔작의 중심에는 어김없이 안성기가 있었다. 그러나 안성기의 이름을 각인한 덕목은 강렬하고 압도적인 개성이나 스크린 스타의 카리스마가 아니다. 임권택 감독은 그를 “삶이 연기에 고스란히 투영되는 배우”라 평한 적 있다. 부음 이후 고인의 직업적, 인격적 존재를 다시 되짚을 때 이 말의 의미는 깊다. 공적 이미지와 역할 사이의 연속성을 지키고 자신을 직업에 이바지하는 존재로 남기고자 하는 노력은 시대적 특수성을 차치하고 희귀한 미덕이다. 괴팍하고
[특집] 한 시대를 떠나보내며 - 70년의 연기 생애, 170편이 훌쩍 넘는 필모그래피 너머 배우 안성기가 특별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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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5일 오전, 안성기 배우가 우리 곁을 떠났다. 그를 애도하는 시간은 한국영화가 통과한 계절들을 함께 기억하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영화의 상징적 얼굴이자 성실한 직업인, 그리고 대중의 친절한 스타로 이바지한 배우의 궤적을 특집기사로 옮긴다. <기쁜 우리 젊은 날> 촬영 당시의 모습(사진작가 구본창)을 영정 사진으로 택한 유족의 뜻에 따라 1541호 표지 역시 모두에게 익숙한 그 미소를 담았다. 안성기 배우의 필모그래피 속에서 한국영화가 어떻게 자라고 변모해왔는지 종합하면서 다량의 <씨네21> 아카이브,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사진을 엄선했다.
1982년 <꼬방동네 사람들>부터 13편의 영화를 함께한 배창호 감독의 회고, <백두 번째 구름>에서 임권택 감독의 현장을 기록했던 정성일 평론가·감독이 서간체로 고인을 향해 띄운 배우론은 생생한 증언으로 남는다. 마지막으로, 영결식 현장에 담긴 모습을 보면 그가 영화인들에게, 그리고 한국
[특집] 안성기, 한국영화의 시간 - 묵묵하게 유일했던 배우 안성기의 70년을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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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이 신야 감독은 인터뷰 끝에 <하나 그리고 둘>의 여정이 담긴 사진 앨범을 소중하게 꺼내 보였다. 젊은 시절 그와 에드워드 양, 관금붕, 이와이 슌지 감독이 새 영화를 위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의기투합하는 모습부터 <하나 그리고 둘>이 첫 공개되었던 칸의 풍경이 기록돼 있었다. 그 가운데 몇장의 사진을 추려 가와이 신야 프로듀서의 코멘트와 함께 공개한다.
“1998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여해 부산프로모션플랜(PPP)에 <Y2K>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나(가와이 신야), 에드워드 양 감독, 이와이 슌지 감독, 관금붕 감독(왼쪽부터)이 부산국제영화제가 마련한 병풍 앞에서 포토타임을 가졌다.”
“1998년 부산에서 발표할 당시는 <Y2K>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그림이 정해지진 않았을 때다. 어떤 테마로 어떻게 발전시킬지 논의할 필요가 있어서 원탁에 모여 미팅했다. 당시 에드워드 양 감독이 미국 달러에 쓰인 ‘IN GOD WE TR
[기획] 부산에서 출발해 타이베이를 거쳐 칸까지, 가와이 신야 프로듀서가 공개한 <하나 그리고 둘>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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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그리고 둘> 재개봉에 맞춰 내한했다. 프로듀서로서 <하나 그리고 둘>을 처음 기획하던 때의 기억을 듣고 싶다.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부산국제영화제 관계자를 만났을 때, 부산 프로모션 플랜(Pusan Promotion Plan), 즉 PPP란 기획을 발족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정보를 듣고 다음 프로젝트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발표하겠다고 계획했다. 그렇게 아시아의 영화감독 세명과 함께 PPP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처음엔 이와이 슌지, 에드워드 양, 김지운 감독을 생각했다. <조용한 가족>을 워낙 재밌게 봤고 <반칙왕> 시나리오를 입수해서 읽고는 한국 감독 중에서는 김지운 감독을 모시고 싶었다. 한국에서 일본영화 수입이 개방된 게 1999년이고, PPP에서 <Y2K>란 이름의 프로젝트를 발표한 것은 1998년 일이라 당시 시대적인 상황 때문에 김지운 감독과는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고, 대신 홍콩의 관금붕 감독이 합류했다
[인터뷰] 삶의 지침 비슷한 무언가를 이 영화에서 찾을 수 있다, 가와이 신야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