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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재중동포 출신 장률 감독의 열두 번째 작품
배동미 2020-08-25

손님들의 발길이 뜸한 중고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제문(윤제문)은 엉뚱한 손님 소담(박소담)의 제안을 받고 소담과 함께 즉흥적으로 일본 후쿠오카로 여행을 떠난다. 후쿠오카는 제문과 친한 대학 동아리 선배였으나 삼각관계에 놓여 연락을 끊고 지낸 해효(권해효)가 작은술집을 운영하며 살고 있는 도시다. 제문과 소담, 여행자 두 사람은 해효의 술집을 찾아가 술잔을 기울이고, 제문과 해효는 28년간 쌓아둔 서로의 감정을 조금씩 풀어나간다. 어느 새 세 사람은 동행이 되어 후쿠오카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그동안의 세월에 대해,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후쿠오카>는 소도시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남녀간의 일화를 다룬 영화다. 애초에 여행을 제안한 사람은 소담이지만, 이동을 통해 새로운 자신으로 태어나는 고전적 의미에서 여행이란 행위의 주인공은 절교한 선배를 찾아가는 제문이다. 제문과 해효는 28년 전 갑자기 사라진 대학 동아리 친구이자 두 사람의 연애 상대였던 순희에 대한 기억을 두고 갑론을박하면서 과거와 일종의 화해를 한다. 반면소담은 현재를 사는 인물이다. 소담은 엔딩에 다다르기 전까지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거나 후회하는 법이 없으며, 그 자체로 오롯이 현재에 충실하다. 그래서인지 소담은 여행 중 만나는 일본인, 중국인들과 편견 없이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유일한 인물이며, 그로 인해 영화만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후쿠오카>는 장률 감독의 전작 <경주> <춘몽>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이하 <군산>)의 자장 아래 놓인 작품으로, 이전에도 반복되었던 삼각 혹은 사각으로 구성된 남녀 캐릭터간의 관계성이 주요 테마로 등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끈적이는 남녀 관계로 다루지 않아 세 사람 사이에 산뜻하고 유쾌한 분위기가 흐른다.

배우 박소담은 장률 감독의 전작에서 배우 신민아, 한예리, 문소리가 그랬던 것처럼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어 마치 유령처럼 보이는 여성 캐릭터 역할을 충실히 이어받는다. 배우 윤제문은 장난기 넘치고 밉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선배 해효의 성질을 은근히 돋우는 연기를 선보인다. 배우 권해효는 그간의 필모그래피에서 볼 수 있었던 실생활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연기와 함께 극을 안정적으로 이끈다. 세 배우의 앙상블을 보는 재미가 영화 <후쿠오카>의 주요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후쿠오카>는 전작 <군산>에 비해 다소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다. <후쿠오카> 여행기는 <군산>에서 시도한 것과 같이 영화의 타이틀이 뜨는 시점을 누빔점으로 삼아 이전의 서사를 완전히 새롭게 해석하게 만드는 영화적 유희는 시도되지 않으며 그저 시간순으로 흐르는 여정에 그친다. 따라서 <군산>에서와 같이 장률 감독의 유쾌한 농담을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아쉬움이 남을 수 있다. 대신 소담이 두 남성 캐릭터 사이에서 빠져나와 홀로 일본 인형을 안고 일본말로 노래를 부른다거나, 해효의 술집이 아닌 일본식 술집을 찾아 주인에게 자신의 일본 인형을 맡기는 묘한 순간을 만들어낸다. 정주하고 사는 곳에서 일상이 흘러가는 대로, 몸에 익은 대로 행동하지 않아서 오롯이 현재를 사는 소담의 매력이 언뜻 드러나는 장면들이다.

<후쿠오카>는 재중동포 출신 장률 감독의 열두 번째 작품으로 2019년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부문에 초청되었다. 아울러 제9회 베이징국제영화제, 제21회 타이베이영화제, 제19회 뉴호라이즌국제영화제, 제29회 아시아 포커스 후쿠오카국제영화제, 제16회 홍콩아시안영화제, 제57회 히혼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되었으며, 지난해 11월에 열린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상영되었다.

CHECK POINT

경계에 선 우리 시대의 시네아스트 장률

재중동포 출신 장률 감독은 창호와 순희가 등장하는 재중동포에 대한 이야기(<망종> <경계> <두만강> <이리>)를 해오다가 한편의 다큐(<풍경>)를 완성한 뒤, 연애와 인간관계에 대한 영화들(<필름 시대의 사랑> <춘몽> <군산> <후쿠오카>)을 연속적으로 만들고 있다.

전작 <군산>에 이어 재등장한 일본 인형

<군산>에서 주은(박소담)이 안고 있던 일본 인형이 <후쿠오카>에도 등장한다. 18만원짜리 인형으로 <군산>에 사용된 소품 중 가장 비싼 것이라고. “차기작인 중국영화 <야나가와>에도 등장한다. 세편에 나왔으니 18만원짜리 인형으로서는 그 값어치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장률 감독)

한국과 일본의 중고서점

영화 속에서 주요한 공간으로 서울 정은서점과 후쿠오카 이리에 서점이 등장한다. 프레임 속 두 서점은 서로 다른 곳이지만 많이 닮아 있어 그 자체로 무국적의 공간처럼 보이며 영화에 신비로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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