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춘몽

春夢 A Quiet Dream

2016 한국 15세이상관람가

가족 상영시간 : 101분

개봉일 : 2016-10-13 누적관객 : 14,755명

감독 : 장률

출연 : 한예리(예리) 양익준(익준) more

  • 씨네216.25
  • 네티즌8.43

“바보 같은 꿈을 꿨어. 우리만의…”

시장을 어슬렁거리며 농담 따먹기나 하는 한물간 건달 익준
밀린 월급도 받지 못하고 공장에서 쫓겨난 정범
어리버리한 집주인 아들, 어설픈 금수저 종빈
그리고 이들이 모두 좋아하고 아끼는 예리가 있다.
병든 아버지를 돌보는 예리가 운영하는 ‘고향주막’은 그들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오아시스다.
그러던 어느 날, 언제나 그들만의 여신이라고 생각했던 예리의 고향주막에
새로운 남자가 나타났다.
more

별점주기

0
리뷰 남기기

포토 (19)


전문가 별점 (4명참여)

  • 6
    박평식관록에 곁들인 치기
  • 6
    장영엽꿈 같은 삶, 삶 같은 꿈
  • 6
    이용철시간을 잘못 찾아온 꿈
  • 7
    이예지일상과 생활, 그리고 수색을 거니는 몽상
제작 노트
틈 사이로 꿈이 들어오다
<춘몽>장률감독과 정성일 평론가의 대화

정성일 평론가(이하 정) :
일단 이야기의 시작은 제목부터 해야할 것 같습니다. 제목을 듣는 순간 장률 감독님의 출발이 소설가였구나 라는 생각이 들만큼 제목이 문학적이었습니다. 이전까지의 제목들은 대개 지명이었고 건조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 제목은 뭔가 달콤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한글제목은 ‘춘몽’ 영어 제목은 ‘조용한 꿈’입니다. ‘춘몽’이란 말에는 약간 나른하고 성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영제목에는 그런 느낌은 없습니다. 또한 이 영화가 대부분의 장면을 흑백으로 찍어서인지 영화에는 제목에 있는 봄이라는 계절의 감각이 잘 드러나진 않습니다. ‘ 춘몽’이라는 제목을 지은 소회를 여쭙고 싶습니다.

장률 감독(이하 률):
<춘몽>전에 <삼인행>이라고 제목을 지었습니다. 영화는 세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고 예리는 배경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준비를 했습니다. 찍다보니 나는 뭐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그 세명이 나를 보고 ‘우리 영화가 아니고 예리 영화로 가네요’라고 얘기를 하더라구요. (웃음) 그러니까 <삼인행>이라면 예리가 중심에서 빠지는데 그건 아닌 거 같고<삼인행>보다 네 사람이 어떻게 보면 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그 친구들 말처럼 ‘예리 영화같다’ 이건 아니지만 ‘네 사람이 한 사람인 것 같다’그런 느낌이 왔어요. 어떻게 네 사람이 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건 현실에선 불가능하죠. 미치는게 아니라면요. 그런데 꿈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일단 제목을 바꿔야 했는데<삼인행>에서 뭘로 바꾸면 좋을까 생각을 했어요. 제가 DMC쪽에서 살아요. 사는 건 거기서 사는데 수색이란 동네로 일 주일에 두 세번은 갑니다.

정: 왜죠?

률: 편해요. DMC에서 지하 통로로 가면 15분 정도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길게 얘기해도 되요?

정:부산에서의 인터뷰를 미리 한다고 생각하세요 (웃음)

률: DMC에서 철길을 두고 나가면 완전히 달라지는 세상이에요. 철길하나를 두고 어떻게 이렇게 다를까, 질감이 너무 다르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연계점이 하나도 없는 동네 둘이 아주 가까이 있는거죠. 이게 꿈인가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사는 디엠씨는 방송국, 빌딩 이런 것들로 가득한 공간이죠. 사람사는 냄새가 없어요. 저 쪽은 좀 가난해요. 재래시장이 있고 재개발을 하고 있죠. 거기 갈 때마다 이건 뭔가 꿈이 아니면 이럴수가 없다 생각을 했어요. 거기에 가면 맘이 안착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맘이 안착되면 고향이란 말도 있잖아요.DMC에서 보면 사람들 얼굴에서 희노애락이 보이지 않아요. 준비된 표정들만 있어요. 철길 하나만 지나면 갈 수 있는 동네인 수색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희노애락이 보이는, 준비되지 않은 표정들이 있어요. 그 곳에 갈 때마다 나는 무슨 괴물인가 어떻게 이런 곳에 살고 있나 이런 생각도 했어요. 그리고 촬영 기간이 딱 봄이었어요. 봄이 되어서 꿈 같은 생각도 있고그래서 <춘몽>이라 할까 스태프들과 상의를 했지요.두 가지 제목이 있었어요.<춘삼월>과 <춘몽>. 스태프들이 <춘몽>이 더 좋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마지막에는<춘몽>으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정: 촬영기간은 얼마나 되었나요?
률: 17회차를 찍었어요. 4월 6일 크랭크인해서 4월 27일 크랭크업 했습니다.

정: 영문 제목인 에 대해서도 여쭙고 싶습니다.

률: 영어로 ‘춘몽’이란 말이 있느냐 아무리 봐도 딱 맞는게 없다 생각을 했어요.
한국과 중국 사람들은 ‘춘몽’이란 말 금방 알 수 있어요. 일본 사람들도 마찬가지구요. 동양의 한자 문화권은 그 느낌이 오는데 다른 나라에서는 그게 무엇인가 싶을 거예요.

정: 한글제목이 <춘몽>이면 나른하면서도 성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만약 일본영화면 에로틱한 느낌이 굉장히 강해지구요.

률: 실제 <춘몽>은 ‘일장춘몽’이라는 말, 중국에서 온 것이지요.
‘춘몽’하면 중국 사람들은 명확하게 섹스에 대한 꿈을 떠올려요.근데 봄날이라는 계절은 어떤 꿈이어도 사람들에게 정서적 움직임을 주는 것 같아요.

정: 영화를 보기 전에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들으면 아마 앞으로 이 질문을 백만번은 들으실 거 같습니다.박정범, 윤종빈, 양익준 세 명을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서 말이죠.
세 명 다 자기 영화의 주인공이자 감독인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춘몽>에서 세 사람은 <무산일기>의 정범,<똥파리>의 익준,<용서받지 못한자>의 종빈이란 캐릭터, 그들 각자의 후일담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세 명의 캐릭터가 그대로 옮겨진 느낌인거죠.
한편으로는 <춘몽>이란 영화가 세 감독들의 전작들을 모두 수용하면서 긍정적으로 발전시켰다는 느낌도 있습니다.<춘몽>에서 이야기가 먼저였는지 캐스팅이 먼저였는지 궁금합니다.

률: 세 사람 캐스팅이 먼저되었지요. 그러니까 시나리오 없이 이 사람들과 한 몇 년 되었어요. 만나면 ‘한 번 같이 해볼래?’ 그랬더니 다 하겠다라고 했어요.예의상 하는 말 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웃음)

정: ‘다음에 만나서 밥 한 번 먹자’와 비슷한 얘기죠.

률: 맞아요. <필름시대사랑>뒷풀이 후에 얘기하다가‘우리 바쁜 사람들인데 언제 찍냐’ 이런 얘기가 나왔어요. 아직 정해놓은 이야기는 없는데 시간부터 먼저 정하자고 생각했습니다.
내년 3~4월 정도에 하자고 했어요. 언제 한 번 밥먹자는 말처럼 매 번 말하게 된다는 건
내 마음 속에 그 친구들이 있단 거잖아요. 그 원인을 생각해보면 이 세 감독의 영화를 제가 다 봤고 이 친구들 연기 정말 잘 한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연출 입장에서 저 친구들 연기 잘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저 친구들은 왜 연기를 잘하고 나는 왜 못하지 궁금하기도 했어요.
크게 보면 연출과 연기를 같이 겸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는데 왠지 좀 궁금하고 질투도 나고 그런 마음이 있었던거죠. 왜 궁금한가 그 원인이 뭔가 그런 생각을 하고 이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찍기로 그렇게 마음에서 시작을 했어요. 그런데 그 때 무슨 생각이 났는가 하면 ‘나는 왜 수색역에 계속 가는가’였어요.그 이유는 고향같다, 마음이 안착된다는 생각때문이더라구요.
그 때는 제가 아직 강의를 하고 있으니까 먼 데를 못가고 가까운데서, 강의에 큰 영향이 없이 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수색이라는 공간이떠올랐어요. 그리고 나서 순간적으로 그 친구들이 떠올랐죠.저 세명은 수색이라는 공간과 질감이 맞는 친구들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 그들의 세 편의 영화를 다 보셨어요?

률: 다 봤어요
그 안에 인물 사람들도 아직까지 수색에 살고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 선택될 수 밖에 없었던거죠 전작의 인물들을 없애고 인물을 만들지 수용하던지 둘 중에 하나 였는데 수용하는 게 맞는 거 같았습니다. 이 친구들 어차피 연기를 해야는데 감정의 기초가 탄탄해야 해서 이 친구들 몸 속에서 나오는게 더 적극성이 있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했구요 수용 후에 어느 정도 변화를 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가 있었는데
이 영화에 예리란 인물이 생기니 달라졌어요. 예리를 중심으로 인물들이 변화하는 이야기가 된거죠.

정: 세 사람이 다 자기 영화의 주연을 하긴 했지만 연기로 훈련을 받은 배우들은 아니기 때문에대부분 즉흥 연기의 방식으로 연기를 했던 배우들입니다. 감독님은 이 세 배우에게 즉흥 연기를 어느 정도까지 허락하셨나요?

률: 이야기의 발전에 맞는 정도를 표출하는 선에서는 많은 걸 수용했죠. 좋은 것도 많이 나왔고 아닌 것은 또 아니다 이렇게 많이 열어놓고 했어요. 그 세 사람뿐 아니라 한예리도 마찬가지였구요. 한예리는 배우인데 이 세명은 감독이잖아요. 감독들은 생각이 많잖아요.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죽을 거예요. (웃음)‘한 번 생각해봐’ 하고 열어놓고 편하게 내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에서 하고 내가 만족스럽지않다고 하면 바꾸고. 바꾸면 그 친구들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내 연출인데 내 영화에서는 그 질감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적어도 내 앞에서는 재밌었다, 좋았다 이야기 하더라구요. 추억에 남을 거다라고 하구요. 하지만 이런 건 아름다운 얘기고. (웃음) 현장에서 세 명이 이구동성으로 똑같은 얘기 한 적이 있어요. 이 전에는 연출과 연기를 같이하다 이번엔 연기만 하는데이전에 배우들한테 잘못한 게 너무 많이 생각나고너무 반성이 되고 그랬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나 한국말 알아듣는다! 내 욕 하는 거 아니야’ 이랬죠. (웃음) 이 세 사람들 사실 자기 씬 없으면 자기거 준비하려고 했는데 한 글자도 못쓰고 아무것도 못했다고 해요. 배우라는 직업이 현장에 가면 다른 건 못하는 거죠.생각과는다르게요.순 배우 입장에서 그런 얘기를 하니 나에게도 공부가 되었습니다.

정: 자기 영화 주연인 동시에 연출가니까 사실상 영화 현장을 연출 입장에서 보지 않습니까?
그런데 연출의 진행 리듬 감정과 연기의 그것은 다르죠. 종종 그것을 다시 해보고 싶어하거나
적잖은 경쟁심도 있을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특히 세 명 중 양익준, 박정범 감독은 아마도 계속 연출 연기를 겸업할 거 같은데 이 과정에서 긍정적인 의미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률: 힘들었다는 게 크게는 생각나지 않는데, 생각해보면 나도 현장에서 이 친구들을 순 배우로 볼 수 가 없었어요. 어차피 이 친구들도 연출이라는 게 생각이 나곤 했습니다. 연출이라는 건 연기 지도 뿐 아니라 현장 분위기 제작 과정에 다 관여합니다. 이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에요. 저 친구들이 여기에 만족하는가 만족하지 않는가 그런 것이 약간씩 신경이 쓰이고 그래도 나는 이런 이런 장면에 저 친구들과 토론도 해야하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부족했어요. 토론하다 세월 다 지나가면 영화를 못 찍으니까. (웃음)
더 상의하고 했으면 좋았을텐데 그게 아쉬웠어요. 예를 들면 나는 방에서 모니터 보고 있고 다른 친구들은 주막 세트에 있는데세 명이 막 토론하는 걸 이어폰으로 들었어요. ‘이 씬은 이렇게 찍어야해. 제의를 하자. 그런데 장률 감독님이 안 들어주실 거 같다 .‘막 이런 얘길 나눈거죠. 결국 양익준이 총대를 메고 올라오겠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내가 듣고 있다는 걸 배우가 되니까 완전히 까먹은거죠. 나는 다 듣고 있었는데.(웃음)
그래서 내가 양익준이 올라오려는 순간 무전기로 ‘올라오지마’ 라고 했어요.
익준이 ‘죄송합니다’라고 하고 안올라 왔구요. (웃음) 지금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고 그랬어요. 그 친구들 고생 많았죠. 몸 고생 보다 자기 생각을 다 누르고 배우의 책임을 잘하자고 맘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정: 세 명만큼 흥미로웠던 건 한예리 배우입니다. 아마도 캐스팅 이유는 해무에서 연변 엑센트 때문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누구보다 감독님은 연변 엑센트를 잘 조정하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춘몽>에서 놀란건 예리가 서울말을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말투라는 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국적을 드러내는 가장 쉬운 건 말투기도 하구요. <춘몽>의 한예리는 왜 서울 말을 쓰는 걸까요?

률: 한예리 배우는 우리 쪽의 말 잘해요. <해무> 뿐 아니라 여러 편을 했습니다. <푸른 강은 흘러라>라는 장편 데뷔작에서 조선족 연기를 했구요. 연변 말과 서울 말에 대해선 고민을 했죠 그걸 강조하느냐, 하지 않느냐하는 고민을요. <춘몽>에서 예리 설정이 중학교 적에 왔잖아요중학교 적에 오면 특히 여자는 다 변합니다. 남자들이 좀 늦고 여자들은 적응이 훨씬 빨라요. 요즘 연변에서 한국 TV가 보편적입니다. 젊은 여자애들은 한국말 서울에 살지 않아도 똑같이 하더라구요. 그래서 이 친구는 여자고, 중학교 시절 서울에 왔고 서울말 잘할 수 있는시간이 흘렀고 그렇기 때문에 서울말을 하는 걸로 했죠.
또 하나는 그것을 강조하기 싫었던 것도 있습니다. 연변 말투를 하면 그 이야기에 다른 요소들이 많이 들어와야해요. 그런데 이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거와는 다르고, 중요하지 않은 거 같아 피해야 할 거 같았습니다. 세월이 그렇게 흐르면 한국사람으로 봐야해요. 그렇지만 서울말 똑같이 하면서 살고 있는데도 여전히 좀 다르기도 합니다.


정: 한예리 배우는 세 남자의 화학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를테면 한예리는 이 영화의 어떤 힘 같은 건데 그 배우의 힘을 어디서 보셨나요?

률: 한예리 배우는 <필름시대사랑> 할 적에 이 친구가 하루인가 잠깐 와서 도와줬어요
그 전에 친분은 없었구요. 오고 가고 시사회에서 인사하는 정도였지요. 그런데 <필름시대사랑> 할 때 그 친구 생각이 났습니다. 내 고향의 캐릭터를 연기했었고 이 친구는 어떤 친군가 궁금했어요. 전화번호를 받아서 전화를 했는데 그 친구도 나에 대해 알고 나를 기억했습니다.
‘좀 도와줄 수 있겠냐’라고 물었더니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네, 시간을 알려주세요’라고 하는데 굉장히 고맙고 좋았습니다.그리고 현장에 와서 연기를 하는데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저 친구는 ‘알아야할 친구다’라고 확신을 했고 다른 배우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한예리 배우는 <춘몽> 찍으면서 영화를 위해 희생도 많이 해줬어요. 같은 시기에 드라마 주인공 역할 제안이 들어왔는데 드라마를 포기하고 영화를 선택해줬어요. 병행을 할 수는 없다고 얘기 했는데 그렇게 결정을 해준거죠. 그 친구는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하면 많이 듣는 배우입니다. 뭔가를 할 때는 순간적으로 몸에서 나오는 친구기도 하구요.
그 원인은 어려서부터 했던 무용 덕분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나는 무용수에서 배우되는 사람은 무조건 믿습니다. 몸은 사람을 속이지 못해요. 그리고 이 친구가 묘하게 똑똑함과 소박함이 한 몸에 있는 친구에요. 박정범, 윤종빈, 양익준 이 세명도 이 영화 찍으면서 한예리를 너무 좋아하고, 네 명이 너무 친하고 한예리는 영화처럼 그렇게 중심이 되어갔습니다.

정: 감독님 영화는 이제까지 한 번도 전체를 흑백으로 촬영한 적이 없습니다.
컬러영화가 주류인 시장에서<춘몽>에서 흑백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미학적 결단이라는 생각도 들구요. 감독님에게 영화에서 흑백이란 무엇이고 이 영화에선 왜 흑백이 요구되어졌는가 여쭙겠습니다.

률: 컬러 영화를 만들수 있게 된 후에 흑백도 선택할 수 있는데 다 무시하고 선택하지 않는 거 같아요. 선택할 수 있는데 왜 선택하지 않는가 하는 궁금증이 들었어요. 흑백의 정서라는 게 분명히 있거든요. 이 영화를 흑백으로 찍어야겠다는 건 처음부터 결정했어요.
촬영 후에 컬러로 전환도 가능하니 그런 고민도 했었구요. 어차피 영화는 관객을 만나야하는데 요즘 관객들이 ‘흑백에 익숙하지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구요.
그런 이야기들도 편견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러면 처음에 왜 흑백으로 했냐면 흑백으로 선택할 수 있는데 관객 때문에 컬러로 간다면 아무리 변명해도 그렇게 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흑백으로 출발한 이유가 있다면 5년 동안을 수색이라는 공간에 갔는데 한 번도 수색 쪽이 컬러로 기억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컬러가 없어지는 느낌이었어요 떠올려보면. DMC는 많은 컬러가 생각나요. 이 두 동네의 질감은 신기하게도 부드러운 그라데이션 없이 선명하게 나뉘어져 있습니다. 수색 쪽에 컬러가 없는게 아닌데 컬러로 생각나지를 않는거죠. 정서가 흑백정서란 얘기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가야하겠다고 생각했구요.

정: 흑백보다 놀라웠던 건 카메라의 움직임입니다. 장률의 특징은 서있는 카메라라고 생각해요.
<풍경>은 다큐,<필름시대사랑>은 실험영화라고 생각을 하구요. 저는 감독님이 변주를 하고 싶다, 원칙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으로앞의 두 편을 찍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춘몽>은 카메라가 서 있는 쇼트가 없습니다. 말하자면 이건 장률 영화에서 본 적이 없는 새로운 방식이자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춘몽>은 장률에게 새로운 출발인걸까요?비평의 관점에서는 두 번째 데뷔작을 찍고 싶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결기같은 것도 느껴졌습니다. 이전까지 감독 장률에게 요지부동의 카메라가 마치 선언과도 같았는데 <춘몽>에서 카메라가 움직인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률: 그것 역시 그 공간 그 인물에서 온 거 같습니다. 제가 수색 쪽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상하게 그 쪽은 무의식적인 산책처럼 떠돌아다녔어요.
그래서 그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얼굴, 이를테면 준비하지 않은 표정이죠. 희노애락의 표정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건 그 곳을 떠돌아다니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겁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거죠. 가만히 서있으면.찾아가봐야 보이는 거 같아요. 물론 내가 엄청나게 대단한 생각으로 찾아가는건 아닌데 그래도 찾아가지 않으면 보이지 않습니다.DMC에서는 정리된 표정들이 보입니다. 준비된 얼굴들이 거기엔 있구요. 카메라를 들고 찍는다는 얘길하니까 이전 작품부터 같이 하던 스탭들이 불안해하기도 했습니다.이전처럼 카메라가 고정된 상태로 촬영을 하면 뭐가 나올지 아는데 왜 뭐에 미쳐서 들고 찍나 이런 우려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데 거기에서 변화랄까 이런 게 제 안에 있었던 거 같아요. 이전에는 기다리는 자세였는데 이번에는 찾아간다는 행위 자체가 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정: 이 영화는 처음부터 들고 찍기로 정했나요?

률: 그랬어요. 그런데 들고찍을 때 빨리 찍지는 말자고 했죠.나이도 있고 어지럽고 (웃음) 그거 따라가는 것도 쉬운일이 아닙니다.

정: <춘몽>을 보면서 인상적인 또 하나는 거울입니다. 영화 시작 부분부터 영화 중간 중간에 미쟝센처럼 수많은 거울이 등장해요. 인물이 프레임 바깥에 나가있어도 거울에 비추이곤 하구요. 생각해보면 장률의 영화에서 거울이 그렇게 인상적이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춘몽>에서 처럼 거울이 미쟝센으로 기능한 건 처음이지 않을까 합니다. 이번처럼 미쟝센과 동선이 영화에 들어온것은 말하자면 장률 영화의 큰 변화의 조짐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거울같은 특정한 소품들 동선의 계산들이 왜 필요해졌는지요?

률: 그것도 이 영화의 공간의 질감이랄까 꿈과 관계 있어요. 현실에서 소설이래도 좋고 시래도 좋고 꿈과 제일 가까운, 저게 꿈일 수 있다 이런 순간들은 거의 거울에서 나오곤 했어요. 같은 공간인데 들어갈 수 는 없고 비춰지는 게 거울이죠 춘몽은 꿈과 관계되는 영화라 거울이 많이 보인 것도 있습니다. 또 하나 재밌는건 그 공간이 지금은 낙후하다 이런 얘기를 듣는 동네에 가면 거울이 많습니다. 옛날에 집에서는 거울이 중요하잖아요. 근데 요즘은 그 거울에 대한 정서가 없어지고 있어요 수색이란 동네에는 거울이 무척 많아요. 거울이 없어도 되는데 여기저기 있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공간에 거울이 있으면 영화니까 모든 걸 소품처럼 보게됩니다. 촬영하면서 거울들을 없앨수도 있었는데 없앨까 하다가도 그 거울과 이 공간과 이 사람들 관계 무슨 관계일까라는 생각을 하니 남겨두는게 맞는 거 같더라구요.


정: <춘몽>에서 이색적인 건 시작 후 32분이 되어야 제목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그 때 여기서 흑백이 칼라로 바뀌겠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의 3분의 1지점에서 제목이 등장한다는 건 이전의 진행 리듬이 중단되고 관객들을 내보내고 다시 시작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사실상 그 지점에 제목을 넣는다는 건 연출자로서 상당한 부담을 가지고 선택한다는 것일텐데요. 시간이 바뀌거나 사건이 등장하는 것도 아닌데 제목을 그 자리에 가져다 두었다는 건 장률이 기대한 효과가 있지 않았나 궁금했습니다.

률: 대부분 제목은 먼저 나오죠. 영화 보는 어떤 습관처럼요. 꼭 그래야한다 그런 건 없는데도 말이에요. 그런데 그 제목을 넣은 그 시점이 딱 나한테 감정이 들어왔던 시점이었어요. 삼십 몇 분을 진행하고 세 사람과 예리의 관계가 보여지고 서로 의지하며 산다 관객들이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춘몽> 타이틀이 뜨기 전에 네 명이 술 먹고 한예리가 춤을 춘다. 그리고 세 사람이 사라져있다. 예리가 ‘아저씨~ 아저씨~’부르며 찾고 그리고 제목이 나타나는 식이죠. 우리 삶 위에 그런 순간들이 있어요. 그런데 우린 그걸 무시하던지 애써 생각하지 않던지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 장면이 찍을 적에 정말 이상했어요. 세 사람이 없어지고… 이 세 사람이 먼저 없어지는 건 뭘까, 즉흥적으로 찍는데… 다 반대하는 입장이더라구요. 이걸 어떻게 하자고 이런 분위기였어요. 실제 그 제목이 없으면 그 씬이 없어져야 맞는데 그런데 내 감정이 그걸 없애지 못했어요. 그 후에 촬영 감독이 그 씬을 찍을 적에 감독이 아무 생각 없이 뭘 찍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고 해요. 아무 생각없이 막 찍는다고 (웃음) 그 씬을 찍을 때는 감정에 충실하게 찍었어요. 어떤 씬, 어떤 순간에는 내 감정에 충실하겠다는 충동이 생깁니다.


정: 비논리적이지만 ‘이거다’ 라고 생각이 들 때가 있죠. 장면과 연결 짓자면 이영화에 한예리가 두 장면에 춤을 춥니다.근데 공통점은 줄거리나 사건 때문이 아니라 영화에 호흡 때문에 그 순간에 갑자기 춤을 춘다는 것이에요. 한 번은 제목이 뜨고 한번은 춤이 끝나자 마자 영정 사진이 등장합니다. 마치 이 춤이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시적인 메세지를 주는 느낌이었어요.
두 번의 춤을 출 때 배우 한예리에게 어떤 감정을 갖고 춤을 추라고 했는지요?

률: 춤으로만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춤일수도 있고 꿈일수도 있고 그런 식으로 한 번 돌아봐라’이렇게 얘기했어요. 더 얘기 한건 없고 촬영 감독에게 ‘따라가며 찍어라 어느 시점에서 빠지고’ 라고만 얘기했죠.춤을 잘 추는 친구들을 보면 혼자도 춤을 추더라구요.
평소에 어느 정도 춰야 어디서도 잘 추는 거죠. 뒤에 춤추는 장면은 앞장면을 결정하니까 앞의 건 무의식적으로 춘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춤을 위해서 앞에선 이럴 수도 있다는 복선이죠.

정: <춘몽>을 보고 있으면 제목이 주는 뉘앙스 때문이기도 하지만 컬러 쪽이 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말하자면 꿈속의 꿈 같은 느낌도 있구요.
장률 감독님은 여러자리에서 가장 존경하는 소설가로 보르헤스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꿈속의 꿈이란 건 놀라운 건 아닌데 이 영화가 꿈에 대한 복잡한 구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이켜보자면 <필름시대사랑>과<경주> 역시 꿈이 가지고 있는 장치들이 중요하구요. 유난히 장률 감독님이 한국에 온 후 꿈이 중요해진거 같습니다.한국에 머문다는 자체가 꿈 꾼다는 생각을 하셔서일까 중국에서 찍을 때의 건조함과는 다르게 느껴져요.
장률에게 꿈이란 무엇입니까?

률: 평소에 제가 꿈을 많이 꿉니다. 중국에서 영화를찍을 적에 꿈이란 요소가 순간적으로 있었지만 특별하진 않았어요. 얘기를 듣고보니 나도 내가 한국에 와서 이런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한국은 나의 고국, 할아버지의 나라 그런데 성장하지는 않은 나라예요.
그런 뜻으로 말하면 할아버지 고향이자 나의 고향인데 성장의 과정으로 말하면 타향인거죠. 타향에서 삶은 꿈이 고향에 있는 거보다훨씬 더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삶 위에서도 고향에서 산다는 건 안착이 된다는 거니까요. 고향에서 악몽도 꾸고 다 꾸지만 현실생활과 크게 연계하지는 않아요. 고향이란 건 인간관계의 망들이 있으니까요. 동창생, 친척, 동네 사람들 이게 다 있잖아요. 고향에서 저녁에 꿈 꾼 건 소화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타향에서는 그런 관계망이 없어요. 내가 사는 아파트는 외국인 아파트인데 아파트는 여관 같아요. 아직도 심정은 길 떠나는 사람, 길에 계속 있는 사람의 마음이에요.
그러니까 타향에서 사는 나에겐 밤에 꾼 꿈들과 현실 그러니까 밤의 꿈들이 현실에 들어올 틈이 많은거죠. 그래서 이상하게 꿈이 내 영화에 많이 들어가는 거 같아요.<춘몽>은 특히 아예 이름부터 꿈인 것도 그렇구요. 그러면 꿈이 너무 중요해지는 거죠 .

정: <경주>와 <춘몽>을 보면서 장률 감독님이 한국에 와서 본 것들 중 가장 인상적으로 본 것 중 하나가 거리의 점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두 영화에서 점집은 잠깐 등장하지만 주인공의 갈 길을 가르쳐주는 변곡점으로 보이거든요. 중국에서 감독님이 만든 영화와 달리 그런 의미에서 <경주>와 <춘몽>은 영화에 이미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운명을 이미 안다는 것은 말하자면 그 이야기가 주인공에게 숙명같은 게 있다는 느낌을 주는거죠. 절대 피할 수 없는. 반면 감독님이 중국에서 만든 영화들은 자신의 운명을 자기가 결정하곤 했어요. 주인공이 스스로 결정을 해서 사막까지 걸어오기도 하구요.
그러나 <경주>나 <춘몽>에서는 운명을 수용해야 하는데 장률의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 변화가 장률이 한국에서 느껴본 것인지 나이를 먹으며 생각이 바뀐 것인지 여쭤봅니다.

률: 늙어서 그렇겠죠. (웃음)사람이 젊으면 자기가 해결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고 운명에 순종한다는 게 좋다는 것도 아니고.
중국에서 성장하고 거기에서 영화 찍을때까지는 거긴 특수한 시골이 아니면 점집이 없어요.
한국은 점집이 너무 많고경주는 특히 많아요.DMC는 하나도 없고 수색에는 많구요.
DMC엔 자기가 자기를 결정할 수 있다라는 사람들이 살아요. 잘 나가는 공간인거죠. 수색 같은 공간, 점집이 많은 공간에는 어떤 무력감이 있어요. 아무리 발버둥쳐도 방법이 없는.
점집이 많은 동네가 그렇게 형성되는 거 같기도 해요. 무력감, 결정할 수 없다는 마음 그게 많이 들어온 거 같아요.

정: <춘몽>은 정범으로 시작해 익준과 종빈이 정범을 찾으러 가면서 끝이 납니다. 마지막을 보며 문득 궁금해졌어요. 끝내 정범을 못찾을 거 같아서…

률: 이 세 명중에 익준이는 고아원에서 왔고 종빈이는 건물주 아들 뭐 이런데 공간적으로 말하면 박정범이 제일 먼데서 온 사람이에요. 어떻게 보면 수색이라는 질감에는 맞는데 뭔지 좀 또 다르죠 혼자도 떠돌아 다닐 수있고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는 친구인 거예요. 이 두 사람이 정범이를 찾아가는 게 따뜻한 면이 있다 생각했습니다. 그 친구 뭐하는가, 과연 찾을까 그런 생각. 정범이나 찾으러 가자.
그래도 친구를 찾아가는 내 마음 속에 허락되는 따뜻함 같은 거죠.


정: 마지막 질문입니다. 영화에서 예리가 영화보러 가자 영상자료원에서 <당시>를 봅니다. 그러나 사실 자신의 데뷔작을 영화에서 영화로 마주봤을때 자신의 영화의 첫 시작을 돌아보겠다는 뜻도 있지 않겠나 생각했습니까. 그런 뜻으로 <춘몽>을 만든 게 아닐까 이 맥락에서 감독님에게 영화란 어떤 것이었습니까?

률: DMC와 수색이 어떤 연관성이 있겠는가 생각했어요. 영상자료원 가보면 영화인들도 많은데 노인들이 많이 옵니다. 가끔 노숙자도 보입니다. 수색에서 DMC 쪽으로 온다하면 어디로 들어갈 수 있겠는가 생각했을 때 영상자료원 밖에 생각나지 않았어요. 예리는 자주 와 보는 곳인데 근데 그 세 명은 예리때문에 따라온 사람들이잖아요. 근데 이곳의 영화들은 이 친구들과 맞지 않는다 생각했죠. 영화 속에서 이 친구들이 영상자료원에서 상영하고 있는 이 영화를 싫어해야 하는데 고민을 했어요. 누구 영화를 해야 하나 욕을 해야 하고 이거 어찌해야하는가 고민했죠. 정감독님을 찾아서 <카페 누아르>를 해야하나(웃음) 아무튼 욕이 나와야 하는데 그래서 <당시>란 영화를 택했죠. 내 영화니까 막 욕해도 되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영화니까요.

예리가 전하는 말
배우 한예리가 익준, 정범, 종빈, 주영에게 전하는 말

to 익준 아저씨

맘 착한 우리 익준 아저씨 아빠 잘 챙겨주고 잘 보살펴줘서 너무 고마워요. 수색 사람들 모두 아저씨 엄청 좋아하는 거 알지?
from 예리

to 정범 아저씨

아저씨 많이 힘들지? 그냥 앞으로는 다 괜찮아졌으면 좋겠다. 다시 예쁜 여자 친구도 만들고 잘 웃고 그렇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
from 예리

to종빈 아저씨

아저씨들 말 잘 듣고 정범 아저씨 놀리지 말고 사이좋게 잘 지내. 매일 우유 챙겨 먹는 거 잊지 말고. 양꼬치는 다음에 꼭 먹으러 가자.
from 예리

to주영

주영아. 난 네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from 예리
more

배우와 스탭

감독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