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장률 감독의 첫 흑백영화. 충무로의 주목받는 젊은 감독들- 윤종빈, 박정범, 양익준- 이 주연배우로 출연하는 영화. 어쩐지 중국의 야릇한 삽화를 떠올리게 하는 미묘한 제목. 장률 감독의 신작 <춘몽>은 여러모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영화는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수색동을 배경으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네 남녀의 삶을 들여다본다. 먼저 세 남자가 있다.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하고 공장에서 쫓겨난 탈북자 정범(박정범), 건달 익준(양익준), 어수룩한 건물주 아들 종빈(윤종빈). 이들은 모두 고향주막을 운영하는 탈북자 여성 예리(한예리)를 좋아한다. 고향을 떠나 마음 둘 곳 없이 전신이 마비된 아버지를 홀로 돌보며 고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예리 역시 세 남자가 싫지 않은 눈치다. 낮이건 밤이건 하릴없이 동네와 그 주변을 배회하며 소일하는 이들의 하루하루가 펼쳐진다.
<춘몽>의 줄거리를 한마디로 요약하기란 쉽지 않다. 서사는 파편화되어 있으며 카메라는 종종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모호한 순간들을 조명한다. 이러한 영화의 태도는 그 어디에도 온전히 소속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경계에 위치한 네 남녀의 심리와도 맞닿아 있는 듯하다. 탈북자와 실업자, 건달과 어리숙한 청년. 누구도 주목하려 하지 않고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이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은 삶 같은 꿈을 꾸고, 꿈같은 삶을 산다. <두만강>(2009) 이후 장률 감독이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연출한 일련의 영화, 다큐멘터리 <풍경>(2013)과 극영화 <경주>(2014), <필름시대사랑>(2015)에서 ‘꿈’이라는 소재는 영화의 태도와 방향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춘몽>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장률 감독의 필모그래피 ‘2막’에 위치하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감독이자 연기 경험이 있는 세 배우의 활약이 주목할 만하다. <무산일기>(박정범)와 <똥파리>(양익준), <용서받지 못한 자>(윤종빈) 등 그들 각자가 연출한 영화에서 보여줬던 특정 인물의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활용한 <춘몽>의 세 캐릭터는 이전 영화의 에필로그처럼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