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이화정 기자와 손희정 문화평론가(왼쪽부터).
“페미니즘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간에 이제는 페미니즘을 알아야 하는 시기다.” 손희정 문화평론가가 현 시점에서 페미니즘의 중요성, 우리가 페미니즘을 알아야 하는 이유를 강조했다. 지난 8월 31일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손희정 문화평론가의 ‘영화로 보는 페미니즘’ 특강이 열렸다. 2시간 동안 진행된 강연에서 손희정 평론가는 페미니즘의 맥을 짚어 볼 수 있는 영화 <서프러제트>(2015), <디 아워스>(2002),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를 통해 서프러제트 운동부터 이어진 페미니즘의 역사 그리고 ‘래디컬페미니즘’, ‘에코페미니즘’을 비롯한 다양한 페미니즘의 갈래에 대해 설명했다. 강연 뒤 이어진 대담에서 손희정 문화평론가와 <씨네21> 이화정 기자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번 행사는 CJ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신진 작가 기획개발 프로그램 스토리업(STORY UP) 행사의 일환으로, 이후 임진모 음악평론가의 ‘영화로 보는 음악’ (10월 26일),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의 ‘영화로 보는 환경문제’(11월 30일)를 주제로 계속된다.
이화정_ 올해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에서 여성 영화인들이 레드카펫에 모여 침묵시위를 진행했다. 82명의 영화인이 모였는데 숫자가 이상했다. 애초 100명이라고 공지가 됐는데 딱 떨어지는 수가 아니더라. 알고보니 ‘82’는 지금까지 칸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어 레드카펫에 오른 여성 영화인의 수였다. 1668명의 남성이 레드카펫을 밟는 동안 여성 영화인의 수는 그렇게 미비했고, 그걸 보여주는 상징적 퍼포먼스였다. 그런데 이후 쏟아진 기사의 다수가 ‘ooo 배우 시스루 의상 시선 사로잡아’더라. 여성 영화인들의 의상에만 관심이 있었던 거다. 침묵시위의 취지와 이렇게 멀리 갈 수 있다니. 정말 희망이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최근 페미니즘에 대한 필요성과 시각이 대두되고 있지만 한국영화계 안에서는 어떨까. 과연 페미니즘이 잘 구현되고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물론 작은 변화들이 보인다. 최근 기획 과정을 진행하던 한 PD를 만났는데, 별스럽지 않게 남성으로 설정했던 캐릭터를 여성으로 바꾸었다는 말을 들려주더라. 소소하지만 이렇게 작은 인식의 변화들이 모이면 큰 흐름을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
손희정_ 한국영화를 살펴보면 남성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우주가 만들어져 있지 싶다. 최근에 검사영화들을 살펴볼 일이 있어 검사영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부당거래>(2010)를 비롯해 흥행작인 <내부자들>(2015)까지 쭉 따라가면서 영화를 다시 봤다. 재밌는 점이 <부당거래>에서 조연으로 등장한 배우들이 지금은 주연급 배우로 성장했더라. 예를 들어 <부당거래>에서 조연으로 나왔던 마동석 배우는 <범죄도시>(2017)에서 주연을 맡았다. 남성배우들의 경우 유사한 장르의 영화에 출연할 기회가 지속적으로 주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실력 있는 배우로 성장할 기회가 계속 주어진다.
이화정_ 관객은, 매체는 배우들이 성장하기까지 인내하는 마음이 있다. (웃음) 그 배우들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재능을 가진 배우도 있지만 반면, 매력 있지만 연기력은 부족한 배우가 여러 영화에 출연하며 좋은 배우로 성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주목받는 신인배우 가운데 여성배우는 남성배우에 비해 그런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캐스팅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 신인이자 여성인 배우들이 이런 상황에 대해 아픈 말을 쏟아내는 것을 자주 본다. 검사영화라고 지칭하는 영화, 장르영화만 보더라도 정의를 구현하는 역할은 남성에게 주어지고 여성은 피해자 역할로 밀려난다.
손희정_ 대중문화 서사 안에서 남성들은 ‘시간을 사는’ 반면, 여성들은 ‘공간을 산다’는 말이 있다. 남성 인물은 여러 모험을 겪는 가운데 시간을 경험하면서 목표를 달성하고 성장한다. 하지만 여성인물에게는 시간을 경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잠자는 숲속의 미녀>다. 제목에도 ‘미녀’가 들어가지만 정작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왕자다. 미녀는 역경을 거친 왕자에게 트로피로 주어지는 대상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은 역사의 주체가 남성이라는 세계관과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화정_ 우리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개발하려는 영화들과 달리 소위 ‘알탕영화’라고 지칭하는, 남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하는 영화는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기획하는 사람들도 여성을 잘 모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국에서 남녀는 분리된 존재였다. 나만 해도 남녀공학이 많지 않던 시절에서 성장했다. 남녀가 서로 동등하게 친해질 기회가 없었고 그래서 서로에게 어떤 신비감, 두려움 같은 걸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잘 모르는 상대를 어떻게 디테일하게 그릴 수 있겠나. 지금 캐릭터와 스토리의 남녀 불균형은 한국의 역사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상황이 한꺼번에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문제 삼고 싶은 것은 한국영화가 점차 거대해지고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오히려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줄었다는 것이다. 규모를 갖춘 산업 안에서 여성이 왜 배제되는 것일까 하는 문제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특히 블록버스터만 살아남는 최근의 극장가에서라면 더더욱, 어떻게 여성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손희정_ 자본 규모가 커질수록 모험을 피하게 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그래서 이전에 인기를 끈 남성 투톱 영화, 한국형 스릴러영화가 계속 등장하는 것 같다. 하지만 90년대를 돌아보면 로맨스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남녀배우가 투톱으로 등장하는 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최진실, 심혜진 같은 배우들을 빼놓고는 한국영화에 관해 이야기할 수 없었던 시기다. 그런 흐름이 IMF 이후부터 변했다. 여성배우들은 모두 공포영화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산업이 왜 남성 인물을 선호하게 됐을까. 추측으로는 IMF 이후 위기에 빠진 남성 가장들을 위로하고 다시 세우는 작업을 한국영화가 해왔던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그 시기에 등장했던 수많은 영화들이 향수에 기대는 영화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친구>(2001)다. 강한 남성성에 기대서 한국 사회를 다시 일으키려는 영화들이 인기를 끌었다. 이런 흐름이 최근 등장하는 스릴러물의 장르 기획으로 이어진 것 같다.
이화정_ 과거를 추억하고 미화하는 ‘복고’ 정서는 결국 뒤짚어보면 보수적인 성향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한국에서 상업적으로 흥행한 스릴러 작품들이 중국에서 리메이크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한국 감독이 직접 리메이크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가운데 이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문제적인 묘사가 한국을 넘어 범아시아적으로 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
● 한국영화의 여성 캐릭터
이화정_ 한국영화에서 여성이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는가를 계속 고민하게 된다. 긍정적인 사례를 발견하고 그런 작품들을 평가하고자 하는 노력을 <씨네21> 역시 매체로서 책임감 있게 전개하려 한다. 영화사 속 가장 인상적인 여성 캐릭터를 각계 영화인들이 선정한 ‘한국영화 최고의 여성 캐릭터’(<씨네21> 1100호)도 그런 의도에서 기획된 특집 기사였다. 한국영화 속 상당수 여성 캐릭터에서 ‘모성’이라는 부분을 빼놓을 수 없는 것 같은데 그런 점에서 <비밀은 없다>(2015)의 손예진 배우가 연기한 연홍이 인상적이었다. 연홍은 일반적인 사회의 기준으로 볼 때 이상한 여자로 비치는데, 그런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여성들이 모여 연대할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이 좋았다. 특히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게 응징과 단죄의 이미지다. 연홍은 피해자로 머물던 여성들과 달리 누군가를 스스로 응징하고 처단한다. 주로 남성이 맡았던 역할을 여성이 맡았는데 그 응징의 시점에서 쾌감을 주지 않고 오히려 멈춘다. 익숙한 장르적 쾌감 이상의 성취를 이뤄냈다고 본다.
손희정_ 여성을 제대로 그리고 올바르게 그리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없다. 너무도 다양한 이미지의 여성이 존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맥락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비밀은 없다>를 향한 비판 중에 남성 캐릭터가 빈약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물론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김주혁 배우가 연기한 종찬은 그렇게 납작한 캐릭터가 아니었다. 종찬보다 단순하고 납작한 여성 인물이 나오는 영화는 정말 많다. 그 영화들에 대해 여성 인물이 빈약하다고 욕하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이 익숙하지 않은 것에 이상함과 불편함을 느낀다. 그런 부분을 고민하게 된다. <비밀은 없다>의 연홍이 좋았던 것은 그가 기존의 엄마 캐릭터와는 다른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한국영화에는 모성 복수극의 계보가 있는데 그 영화들에서 엄마는 불가해한 존재로 그려진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2009)도 생각해볼 수 있다. 법 제도가 엄마의 불가해한 모성과 욕망을 담아낼 수 없어서 끝내 엄마들이 미치는 경우가 자주 그려진다. 하지만 연홍은 미친 여자가 아니다.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욕할 수 있는 인물을 미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연홍은 혼자 ‘생각하자, 생각하자’라고 중얼거리며 딸을 찾아 나서고 시스템 안에서 복수를 행한다. 누군가는 연홍이 여성혐오적인 캐릭터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여러 결을 가진 복잡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연홍은 페미니즘적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이화정_ 한국영화에서 ‘엄마들’의 사건 해결 방식이 폭력보다는 윤리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는 점도 중요하다. 가령 <시>(2009)의 미자(윤정희)는 자신의 손자가 저지른 폭력을 은폐하는 대신 시 쓰기를 멈추고 응징하는 인물이다. 이렇게 영화 속 엄마가 그려지는 방식만 따라가더라도 한국영화 속 페미니즘의 계보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여성 인물을 다룬 최근 영화 중 <허스토리>(2017)의 성과도 빼놓을 수 없다. 저조한 흥행은 차치하고 페미니즘 영화로서 평가받을 지점은 크다. 나이 많은 여성배우가 충분히 주연으로 활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영화에서 여성을 재현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폭력적인 시선을 거두고 접근했다고 느꼈다. 더불어 영화 외적으로도 살펴볼 부분이 많은 영화다. <허스토리>는 트위터를 비롯한 SNS에서 주목받았던 영화였음에도 정작 개봉 후에는 관객이 영화를 선택하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이 지점도 고민해볼 지점이다. 한편으로는 대관 상영을 통해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도록 스스로 기회를 만드는 관객의 움직임도 등장했다. 불과 2년 전에 개봉한 <비밀은 없다>에는 그런 움직임이 없었다는 것을 떠올려볼 때 관객의 시각, 행동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고 본다.
손희정_ 독과점 문제가 당연히 있다고 생각한다. 배급 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상상해보게 된다. 의사결정권을 가진 자리에 남성들이 더 많기 때문에 여성영화에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성평등 영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있다.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언급한 ‘인클루전 라이더’(영화를 제작할 때 배우와 스탭의 성적·인종적 다양성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장한다는 항목을 넣는 것)와 같은 정책이 한국에서도 이야기되고 있다. 다양한 영화가 등장하기 위해서 성평등 영화 정책에 관심을 두는 것이 필요하다.
● 성평등 영화 정책에 관심을
이화정_ 여성감독이 연출한 작품이 흥행에 실패할 때 그 실패 요인을 ‘여성이기 때문’이라고 규정지으려고 할 때가 많다. 사실 수많은 남성감독 역시 실패를 경험하지 않나. 여성이라는 틀에서만 보려고 하면 결국 끊임없이 사이가 벌어지고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영화계 성평등 정책에서는 스웨덴의 사례가 모범적인 것 같다. 스웨덴은 2013년부터 스웨덴영화진흥원(SFI)의 주도하에 스탭이나 배우의 성비를 50 대 50으로 맞추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고,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정책을 처음 만든 SFI의 CEO 안나 세르네르다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개인의 능력을 보지 않고 성별이라는 틀로 바라보려고 하는 태도에서 불균형한 영화들이 계속 나온다”는 말을 하더라. 이렇게 잘못된 프리즘을 통해서 나오는 콘텐츠를 가만히 내버려둔다면 결국 바뀌는 건 없을 것이다. 창작자와 관객 모두의 꾸준한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
손희정_ 장르영화는 관객과 창작자 사이의 약속 같은 것이다. 어떤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 관객은 그 약속에 따른 것을 기대한다. 익숙한 것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것이 장르영화의 힘이다. 하지만 관객은 익숙한 것을 원하지 똑같은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반복되는 것이지만 변주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반보를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반보를 고민할 때 페미니즘이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