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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홍형숙 감독이 시네마달에 띄우는 편지
홍형숙(영화감독) 2017-05-09

‘블랙리스트 배급사 시네마달을 구하라’라는 이름으로 ‘시네마달 지키기 공동연대’가 75일간 진행한 다음 스토리펀딩이 4월 25일 종료했다. 탄핵 된 박근혜 전 대통령 정권에서 만들어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시네마달을 지켜내기 위한 펀딩이었다. 총 3058명이 펀딩에 참여해 1억1124만6771원이 모이며 목표액 1억원을 111% 초과달성했다. 배우 문소리, 류승룡, <카트>의 부지영 감독, <은하해방전선>의 윤성호 감독, <스물>의 이병헌 감독을 비롯한 영화인들과 영화팬들, 시네마달이 정치적 외압에 굴할 수 없다는 뜻을 가진 시민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펀딩과 함께 정부의 문화예술계 검열을 비판하는 연재의 글도 이어졌다. <한겨레21> 김완 기자의 글을 시작으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래군 인권재단사람 소장 등이 참여했고 허지웅 작가와 <화차> 변영주 감독을 비롯한 이들의 의미 있는 대담이 진행됐다. 펀딩 후원금은 5월 25일 개봉하는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를 시작으로 <올 리브 올리브> <안녕 히어로> <인투 더 나잇> 등 올해 시네마달이 배급할 작품의 개봉 준비에 쓰인다. 시네마달은 “많은 이들이 시네마달과 함께하고 있다는 데 큰 힘을 얻었다. 독립영화계의 난제를 돌파해나갈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들을 모색해볼 수 있었다”고 전해왔다. 끝으로 홍형숙 감독이 시네마달을 지지하며 독립영화계의 대안적 길을 꿈꾸는 글을 보내왔다. 함께 또 다음을 그려보는 귀한 기회가 되길 바라본다.

“김 사장, 돈 되는 다큐를 좀 하지.” 정작 그 돈과 거리가 먼 다큐를 만드는 필자가 가끔 시네마달 대표에게 걱정을 앞세워 염치없이 던지는 말이다. ‘사장’이라는 흔한 호칭도 김일권 대표에게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지라 주변 사람들은 농담 섞인 웃음으로 넘기지만, 필자는 내심 진담을 섞는다.

9년차 다큐멘터리 전문배급사인 시네마달 앞에 놓이는 수식어는 여전히 ‘국내 유일’이다. 이는 시네마달의 ‘존재 이유’인 동시에 짊어져야 할 ‘무거운 요청’이기도 하다. 그동안 시네마달은 ‘독립다큐멘터리의 산업적 기반을 다지는 데 일조하겠다’는 목표로, 극장 개봉과 공동체 배급, 해외 배급 등 한국 다큐멘터리가 미칠 수 있는 모든 유통 영역에 힘써왔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노력이 곧 성과로 귀결되지 않는다. 더욱이 배급은 냉엄한 ‘비즈니스’ 영역에 속한다.

한국영화 총관객수 2억명, 멀티플렉스 3사의 시장점유율 96%, 전체 극장 수 417개, 스크린 수 2575개. 바로 지금 한국 영화산업의 지표가 된 숫자들이다. 배급사인 시네마달은 스스로 이 거대한 지표들의 전장 속으로 들어간 것이고, 마땅히 그곳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산업 지표뿐만이 아니다. 문화계 전반이 그렇듯이 시네마달은 필요에 따라 안면을 바꾸는 근본 없는 문화 정책이나 현장과 소통하지 않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를 비롯한 기관들의 권위적 정책 집행 앞에서 긴장해야 하며, 나아가 블랙리스트 사태가 증명하듯 정부 차원에서 자행되는 ‘불온한 것들’에 대한 고사 전략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기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거대하고 견고한 장벽 앞에서, 위기에 처한 시네마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그 존재 증명을 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3년간 시네마달의 극장 배급 실적을 보자. 연간 5편의 작품을 개봉, 작품당 평균 P&A 비용(마케팅, 배급, 상영용 프린트 등에 든 비용) 2천만~3천만원(개봉지원을 받을 경우 규모에 따라 예산 책정, 지원금 없는 경우는 작품 특성에 따라 크라우드 펀딩 등으로 마련), 평균 20여개의 상영관을 중심으로 개봉. 이중 관객 5만명을 동원한 작품은 1편, 1만명 이상은 2편, 5천명 이상은 1편, 5천명 이하는 8편이다.

이러한 실적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피땀 어린 분투의 결과인가, 초라한 성적표인가. 답은 둘 다이다. 분투했으나 안타깝게도 시네마달은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 숨가쁘게 달렸으나 한국 다큐멘터리 산업의 지형에 유의미한 지표를 만들어내는 데는 성공하지 못한 셈이다.

영진위에 따르면 지난해 극장에 개봉된 한국의 다양성영화는 대략 100여편에, 다큐멘터리는 30편가량 된다. 다양성영화 범주에 속하는 전체 한국영화의 평균 관객은 1만6천여명, 다큐멘터리는 1만7천여명이다. 숫자만 놓고 보면 마치 다큐멘터리들이 선전한 듯이 보인다. 하지만 이 숫자에는 몇 가지 함정이 있다. 우선 이 ‘평균적’인 숫자는 말 그대로 ‘고르게’라는 의미가 아니라 몇 손가락에 꼽히는 흥행 작품 한두편이 그 수치를 올린 것이다. 또한 대중적 흥행에 성공할 만한 소위 ‘되는 영화’의 범주가 제한적이다. 소재의 시의성이 흥행에 큰 역할을 한 작품들(<무현, 두 도시 이야기>나 <자백>의 예)이나 종교적 소재의 다큐(<순종>의 경우)이외의 작품들은 평균 관객이 3천명 남짓이고, 그 비중은 전체의 7할을 넘는다. 관객수 3천명이면 극장 개봉을 통해 배급사나 제작사로 돌아가는 몫이 거의 전무하다. 그나마 영진위로부터 개봉지원을 받아 빚지지 않으면 다행이다. 당연히 ‘제작-배급-제작’의 선순환은 불가능하다. 여기서 질문이 나온다. 다큐멘터리의 극장 개봉은 현실적으로 배급의 유력한 통로인가? 나아가 한국에서 다큐멘터리의 배급이 산업적으로 유의미한가? 과연 그 조건은 무엇인가?

시네마달의 위기는 한 배급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독립영화, 특히 다큐멘터리의 역사 또한 늘 파란만장한 위기를 넘겨왔다. 역대 시네마달을 지켜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갈아넣듯” 한국 다큐의 배급에 자신들의 청춘을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현실은 ‘위기’다. 필자가 서두에 진담이라고 거론했던 것처럼, 거대한 산업의 틈바구니에서 시네마달이 비즈니스적인 마인드로 무장하고, 효과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셈법을 익히면 되는 것인가?

‘블랙리스트 배급사 시네마달을 구하라’ 다음 스토리펀딩이 3058명의 후원으로 1억1124만6771원이 모여 목표액 이상을 달성했다. 그리고 시네마달의 직원들은 살아남기로 작정했다. 물론 상황은 바뀐 것이 없다. 그렇다면 생존을 위해서는 스스로 변해야 한다. 다큐멘터리 감독들에게 자신의 프로젝트가 가진 강점과 취약점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좋은 작품으로 가는 필수 단계인 것처럼 시네마달에도 냉철한 자기 분석을 바탕으로 한 로드맵이 필수적이다.

동시에 어떤 분야든 소규모의 대안적 단위가 선택할 수 있는 생존 전략은 강력한 ‘네트워킹’이다. 그동안 시네마달의 차별화 전략 사업으로 볼 수 있는 공동체 배급의 경우, 연간 76편의 작품으로 1천여개의 단체를 대상으로 상영을 진행한 바 있다. 이러한 기존의 자산을 바탕으로 다양한 공적 기관과의 네트워킹에 주목하고 보다 적극적인 대안적 전략을 세우는 시도도 생각해봄직하다.

어쩌면 이번 스토리펀딩의 목표는 시네마달의 구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작고 유의미한 영화를 만들고, 그것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 애쓰는 모든 이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멀리는 정치와 사회를, 가깝게는 영화산업의 시스템과 정책을 바꾸는 것으로 향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시네마달을 비롯해 건강한 영화문화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공적 장치들을 만들어내도록 애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 동시에 모든 공적장치들은 주권자인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임을 강력하게 천명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 모든 거대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아니 그것을 위해서라도 출발은 시네마달 같은 곳이 지속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단단하게 살아남고 난 뒤에야 후사를 도모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시네마달은 왜 ‘달’인가?

이름을 붙이고 불리고 나면, 이름의 이유를 묻는 일은 흔치 않다. ‘왜 달인가?’ 새삼스러운 질문에, 빛이 스러진 시간, 달이 있어 밤을 기꺼이 맞이하고, 그 풍경에 수많은 이야기가 흐르는 것처럼 시네마달도 그랬으면 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시네마달의 시작과 끝은 세상을 담고 비추는 ‘영화’다. 영화에 대한 시네마달의 깊은 진심이 전략으로 살아남아 우리와 늘 함께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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