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성 감독의 데뷔작 <재밌는 영화>는 한국영화사상 처음 시도한 패러디 영화다. `패러디`란 권위 있는 작품을 본뜨거나 비틀어 보여줌으로써 그 `권위`를 해체하는 즐거움을 주는 장르다. 영화의 큰 줄거리는 우선 <쉬리>를 본떴다. 다만 <쉬리>에 나오는 북한의 특수공작원이 여기서는 일본 극우 무장단체 ‘천군파’로 대치됐다. 일본의 과거사 사죄와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반대는 천군파는 일본 국왕의 방한에 맞춰 대규모 테러를 준비해 한국에 잠입한다.가장 위험한 천군파 조직원은 하나코다. 그는 <쉬리>의 남파 공작원 이방희처럼 얼굴을 완전히 뜯어고친 뒤(고치기 전 박경림, 고친 뒤 김정은) 한국정보국 요원 황보(임원희)에게 접근한다. 천군파는 무라카미(김수로) 등 다섯 명의 테러리스트를 더 파견해 월드컵 경기장과 한-일 공동 문화 행사장의 폭파를 시도한다. 영화의 재미는 이 모든 이야기들이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을 통해 연결된다는 데 있다. 가령 하나코가 ‘독도지킴이’ 사이트 운영자를 살해하는 장면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스크린을 옮겨왔고, 남북의 두 지도자가 서로 누군지 모른 채 우연히 아마추어 무선으로 연결돼 만나기로 한 뒤 각각 평양과 서울의 옥류관에서 기다리는 이야기는 <동감>의 패러디다. 영화에는 이밖에도 <친구> <거짓말> <공동경비구역 JSA> <반칙왕> <서편제> <박하사탕> <비트> <비천무> <여고괴담> 등의 명장면들이 우스꽝스럽게 되풀이된다.
패러디는 자칫 웃음 대신 불쾌함을 안겨줄 수도 있는 위험요소가 매우 많은 장르다. <재밌는 영화>는 이런 함정들을 비교적 잘 피해갔다. 그러나 후반부로 가면서 좀 힘에 부쳐 보이는 건 아쉬운 점이다. 가령 <서편제> 대목처럼 어떤 장면의 단순 삽입을 두고 ‘패러디’라 부르는 건 너무 안이한 발상이다. 특히 공동 문화행사장에 나타난 테러범 하나코가 일본의 극우적 행태와 한국의 일본문화 베끼기를 동시에 비판하는 설교를 늘어놓는 장면은 최악이다. 패러디의 ‘가벼움’을 통해 이미 모든 걸 비판했는데, 여기에 ‘설교’를 더한다는 건 감독 자신이 패러디를 배신하는 행위이며, 관객을 믿지 못한다는 증거다. 그건 살빼기 식단 위에 기름진 돼지비계를 얹어놓은 격이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팬의 두께를 재는 시금석과도 같다. 패러디를 즐기는 인구가 많다는 건 그만큼 매니아 층이 두텁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이런 영화는 시도만으로도 값지며, 앞으로 더 나은 패러디가 딛고 갈 든든한 디딤돌을 하나 얻었다 해도 좋을 것이다. 12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