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윈터보텀의 <제노바> 속 시내의 ‘새로운 길’ 모습.
영국의 중견감독 마이클 윈터보텀은 이탈리아 말을 제법 잘한다. 이탈리아에서의 관객과의 대화 같은 자리에선 ‘더듬거리지만’ 통역 없이 직접 이탈리아 말로 관객과 소통한다. 아마 그런 솔직하고 용기 있는 태도 덕분인지 윈터보텀은 이탈리아의 시네필들 사이에서 제법 인기가 높다. 외국어를 한다는 것은 대개 그 나라의 문화를 사랑한다는 뜻일 테다. 윈터보텀은 인터뷰 등에서 자신이 이탈리아 팬이란 점을 종종 밝힌다. 이탈리아의 자유롭고 경쾌한 공기, 활기찬 에너지, 중세와 현대가 공존하는 통시성 등을 대표적인 이유로 꼽는다. 그는 온 세계를 돌아다니며 영화를 찍는 감독으로도 유명한데, 이탈리아에서도 영화를 꽤 만들었다. 이탈리아를 살짝 지나가는 <인 디스 월드>(2002) 같은 작품은 제외하고 주요 배경이 이탈리아인 장편영화는 세편이다. 발표 순서대로 <제노바>(2008), <트립 투 이탈리아>(2014), <페이스 오브 엔젤>(2014) 등이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에서 가장 강조된 도시가 바로 제노바다.
제노바를 비극으로 몰아넣은 한 청년의 죽음
이탈리아 서쪽 북단의 항구도시 제노바는 십자군 전쟁 때, 주요 무역항으로 부상하며 지중해의 패권도시로 성장한다. 유럽의 군대들은 제노바 혹은 동쪽 북단의 베네치아에 집결한 뒤, 다시 동방으로 출정하곤 했다. 두 항구도시는 도시의 명성에 걸맞은 모험가를 배출했다. 베네치아에선 <동방견문록>의 저자이자 무역상이었던 마르코 폴로, 그리고 제노바에선 신대륙 발견의 탐험가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태어났다. 아마 제노바에 세워진 가장 많은 동상의 주인공도 콜럼버스일 것 같다. 콜럼버스가 지금은 탐험가이기보다는 잔인한 식민주의자로서 큰 오명을 얻고 있지만 말이다(콜럼버스는 영어식 표기이고, 이탈리아에서 그는 크리스토포로 콜롬보로 불린다).
고도(古都) 제노바가 현대인들에게 다시 주목의 대상이 된 데는 2001년에 열렸던 G8(서방 8개국) 정상회담과 그때 벌어졌던 ‘비극’ 때문일 테다. 당시 ‘세계화’에 반대하는, 곧 서방 선진국 중심의 경제주도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는 격렬했고, 제노바 시내에는 15만명 이상의 시위자들이 몰려들었다(제노바 인구는 약 60만명). 이탈리아 정부는 시내의 정상회담 지역에 차단벽을 쳐서 시위대에 대처했는데, 진압과정에서 그만 청년 한명이 경찰의 총에 맞아 죽고 말았다. 이름은 카를로 줄리아니이고,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는 노동운동가의 아들이었다. 23살 청년의 죽음은 아름다운 고도 제노바를 비극으로 몰아넣었다. 이탈리아는 1970년대에도 의견이 다른 진영끼리 폭력을 휘둘렀던 암흑의 시기를 보냈는데, 그런 지우고 싶은 과거가 되돌아오는 듯한 불안이 느껴지기도 했다.
청년 줄리아니의 비극은 프란체스카 코멘치니 감독의 다큐멘터리 <카를로 줄리아니, 청년>(2001)에 담담하게 기록돼 있다(프란체스카 코멘치니는 1960년대 이탈리아식 코미디의 장인인 루이지 코멘치니의 딸이다). 다큐멘터리는 희생자의 비극을 과도하게 강조한 면이 없진 않지만 당시 많은 청년들이 품고 있던 ‘신자유주의’의 미래에 대한 불안 또는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읽는 데는 모자람이 없었다. 알다시피 ‘제노바의 비극’ 이후 G8 회담은 기괴한 코미디처럼 점점 더 산속 같은 격리된 장소에서 열리기 시작했다. 사실상 시민들을 피해서 개최하는 국가 지도자들의 회의, 아마 그 자체에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숨어 있을 것이다.
마이클 윈터보텀의 <트립 투 이탈리아> 속 제노바 인근의 바다.
좁고 오래된 골목길을 걷는다는 것
윈터보텀이 만든 이탈리아 배경의 첫 작품인 <제노바>(2008)는 여전히 2001년의 아픈 기억이 남아 있을 때 발표됐다. 정부와 시민이 맞부딪히는 폭력의 격렬함은 제노바의 아름다움에 작지 않은 상처를 냈는데, 영화 <제노바>는 바로 그 도시를 모든 상처를 보듬는 치유의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영화에 그려진 제노바는 상처를 거의 씻어냈고, 밝은 대리석 건물들은 제 모습을 되찾았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미국인 가족이다. 아버지 조(콜린 퍼스)와 10대의 두딸이 제노바에서 새 출발하는 내용이다. 조는 사고로 아내를 잃었고, 그 기억이 새겨진 고향 시카고에선 더이상 살 수가 없다. 특히 사고의 원인 제공자인 막내딸의 죄의식을 치유하기 위해선 어디든 다른 곳으로 가야만 했다. 이들이 도전한 곳이 바로 제노바다.
마이클 윈터보텀 영화의 제작 특징 가운데 하나가, 허구의 인물들을 현실 속에 살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관타나모로 가는 길>(2006) 같은 그의 다큐드라마는 물론이고, 일반 드라마에도 삶과 현실의 생생함이 이상할 만큼 강하게 느껴지곤 한다. 윈터보텀은 세 가족을 제노바의 현실 속에 들어가게 했다. 제노바 사람들이 사는 집에 살게 하고, 제노바의 골목길을 걷게 하고, 제노바의 피아노 선생에게 레슨을 받게 하고, 제노바의 바닷가에서 제노바 사람들과 섞여 수영을 즐기게 했다. 제작진은 이들 배우들이 행동하는 대로 따라다녔다. 윈터보텀이 밝힌 현장의 스탭은 단 6명, 지원팀 모두 합쳐 20명이 채 안 되는 단출한 조직으로 제작을 진행했다. 이들은 마치 제노바의 여름을 여행하듯, 신속하게 움직이며 한편의 드라마를 만들어낸 것이다.
<제노바>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기록된 시내, 곧 ‘새로운 길’(Le Strade Nuove)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탈리아 특유의 돌길과 오래된 건물들이 길게 연결돼 있는 곳이다. 길 이름에 들어 있는 형용사, ‘새로운’(nuove)은 여기가 최근에 건설된 것처럼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데, 중세의 길과 비교할 때 ‘새롭다’는 뜻이다(대부분 500여년 전인 르네상스 때 건설됐다). 유리창의 초고층 빌딩들이 빽빽한 첨단의 도시 시카고와 비교하면 세월의 때가 묻어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제노바의 나지막한 건물들은 그 사이를 걸을 때 늘 하늘이 보인다. 낮고 탁 트인 시야 자체가 어머니의 아늑한 품처럼 다가온다. 가족들은 제노바의 좁고 오래된 골목길을 자주 걷는다. 함께 걸을 때 가족의 상처도 조금씩 치유될 듯한 희망이 보인다. 이처럼 아늑한 느낌의 도시 제노바는 사람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걷게 만들고, <제노바>는 그런 걷기의 매력을 잘 포착하고 있다.
<제노바>에서 시내의 오래된 길과 건물만큼 강조된 다른 공간이 도시 주변의 바닷가다. ‘바다’는 모친의 비유일 테고, 세 가족은 여기서 물속에 몸을 풍덩 담그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때의 모습은 세명 모두 영락없는 아기들 같다. 특히 강조된 바다가 제노바 인근의 카몰리(Camogli)라는 작은 마을에 있는 ‘산 프루투 오소’(San Fruttuoso) 해변이다. 조그만 학교 운동장 크기의 모래사장이 뒤로는 수도원을 끼고 있는 곳이다. 홀로 떨어져 있는 곳이어서인지 이곳의 조용한 바다는 세속의 공간이 아니라 작은 낙원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모성이 강조된 바로 이곳에서 죄의식에 빠져 있던 막내딸은 죽은 어머니의 영혼과 다시 만나고, 영화는 큰 전환점을 맞는다.
오래된 길과 건물들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는 것, 이것처럼 모성을 자극하는 것도 드물다. 우리가 서울의 북촌, 혹은 전주의 한옥마을을 걸을 때면 종종 느낄 수 있는 고향에 와 있는 듯한 행복한 착각 같은 것이다. 고향이란 말이 탄생과 관련 있듯 그곳은 모친의 은유일 테다. 이탈리아엔 잘 보존된 오래된 길이 많지만, 제노바의 ‘새로운 길’은 그중에서도 특히 사랑받는 곳이다. 조와 두딸은 모성을 자극하는 도시 제노바에 와서 가족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름다운 바다는 덤으로 주어진 모성의 선물일 테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구름 저편에>에서 포르토피노를 걷는 존 말코비치와 소피 마르소.
존 말코비치와 소피 마르소의 포르토피노
지중해 일대에서 최고의 바다로는 보통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서북부에 걸친 ‘라 리비에르’(La Riviere)를 꼽는다. 코트다쥐르(Côte d’Azur)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열차를 타고 여행하면 창밖으로 끝없이 바다와 모래사장이 펼쳐지는 절경이다. 이곳의 이탈리아 이름이 ‘리비에라’(Riviera, 해변이란 뜻)이다. 프랑스의 칸, 니스 등에서 시작하여 이탈리아의 산레모, 제노바, 그리고 저 아래로는 친퀘테레에까지 이르는 해변을 말한다. 이탈리아 리비에라의 중심이 제노바다. 제노바를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절경의 해변이 펼쳐져 있다.
이 지역 바다의 아름다움은 너무나 유명하여 수많은 영화들에 등장한다. <아이 엠 러브>(2009)와 <리플리>(1999)에선 산레모의 바다와 그 주변이, <본 아이덴티티>(2002)의 도입부에선 주인공 본(맷 데이먼)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는 장소인 임페리아(Imperia)라는 작은 항구도시가 강조되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영화들에서 제노바 인근의 바다는 짧게 지나가는 장식품에 머문다. 현대 영화 관객에게 이 지역 바다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전달한 작품은 아마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구름 저편에>(1995)일 것이다. 안토니오니는 <여성의 정체>(1982)를 발표한 뒤 반신마비가 되는 바람에 영화제작을 할 수 없었다. 현대인의 고독을 그만큼 잘 표현한 감독도 드물었고, 따라서 안토니오니의 칩거는 영화계로선 안타까운 손실이었다. 그런데 그를 흠모하던 독일의 빔 벤더스가 조감독을 자처하면서 안토니오니는 실로 13년 만에 신작을 내놓을 수 있었다. 83살의 노감독은 휠체어에 앉아 지시하고, 이미 <파리, 텍사스>(1984)와 <베를린 천사의 시>(1987) 같은 대표작을 내놓아 작가 대접을 받던 50살의 유명감독은 노인의 지시를 따르는 흔치 않은 일이 벌어진 셈이다.
<구름 저편에>는 모호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네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두 번째 에피소드가 바로 제노바 인근의 어촌 포르토피노(Portofino)에서 촬영됐다. ‘항구의 끝’이란 뜻의 이 마을이 아마 제노바 인근의 바다 가운데 가장 유명할 것 같다. 그만큼 포르토피노의 수려한 풍경은 널리 알려져 있고, 또 여러 영화에도 자주 등장해서다. 미국의 중년 영화감독(존 말코비치)이 스토리와 캐릭터를 찾아 유럽을 여행하던 중에 불현듯 방문한 곳이 포르토피노다. 어촌의 앞으로는 푸른 바다와 하늘이 펼쳐지고,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둘러쳐져 있는 곳이다. 어촌의 중심에는 명품들을 파는 예쁜 가게들, 카페들이 들어서 있다. 가을의 쌀쌀한 아침에 감독은 포르토피노의 언덕길을 내려오다, 우연히 아름다운 처녀(소피 마르소)와 눈이 마주친다. 그다음부터는 두 사람의 시선이 교환되고 또 회피되며 극을 긴장 속으로 끌고 가는 드라마가 펼쳐진다. 말코비치의 팬이라면 그의 시선이 얼마나 (성적으로) 도발적이고 사뭇 공격적인지 잘 알 것이다. <라붐>(1980)의 청순한 소녀 소피 마르소가 29살의 처녀가 됐기 때문인지 두 사람의 연기엔, 특히 시선의 교환엔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할 긴장이 느껴지는 것이다.
포르토피노의 항구엔 해안의 둑을 따라 바닷물이 넘칠 듯 밀려오고, 하늘은 짙은 안개와 구름으로 희뿌옇게 덮여 있는데, 아마 두 사람의 관계가 이와 비슷할 것이다. 넘칠 듯 다시 밀려가는 파도와 같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구름 같아서다. 제노바 인근에 숨어 있던 작은 어촌 포르토피노는 순식간에 유명 장소로 거듭났는데, 이런 변화에 <구름 저편에>가 큰 역할을 한 셈이다.
마틴 스코시즈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속 포르토피노.
이탈리아 최고의 해안을 담은 할리우드영화들
1950년대에 할리우드는 매카시즘이라는 큰 낭패를 만난다. 짧게 말해 이데올로기 전쟁인데, 공산주의자이거나 이들의 동조자로 찍히면 사실상 사회활동이 저지될 때다. 조셉 로지 감독처럼 ‘레드’(red)로 찍힌 적지 않은 영화인들이 외국으로 피신했고, 존 휴스턴 감독처럼 ‘동조자’로 몰린 사람들은 외국을 이리저리 떠돌았다. 외국에 나가 있던 이들이 발견한 최적의 영화촬영지가 이탈리아다. ‘치네치타’(Cinecittà)라는 대규모 스튜디오가 갖춰져 있고, 숙련된 영화 스탭들이 있으며,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들었다. 할리우드 영화사들은 이때 이탈리아에서 많은 영화들을 제작했다. 혹자는 당시를 ‘할리우드의 로마 침공’이라고도 말한다. 그만큼 이탈리아에서 찍은 할리우드영화들이 많았다. ‘동조자’ 윌리엄 와일러가 이탈리아에 가서 <로마의 휴일>(1953)을 찍은 데는 당대의 정치적 상황도 하나의 이유가 됐다.
당시 험프리 보가트도 ‘동조자’의 혐의 때문에 외국을 떠돌았다. 보가트는 이탈리아에 자주 머물렀는데, 이때 남쪽 아말피 해안 배경의 <비트 더 데블>(감독 존 휴스턴, 1953)과 북쪽 리비에라 해변 배경의 <맨발의 백작부인>(감독 조셉 맹키위츠, 1954)에서 주연으로 출연했다. <맨발의 백작부인>의 배경은 스페인, 할리우드, 이탈리아로, 스튜디오가 아니라 현지 촬영이 이뤄진 곳은 이탈리아다. 내용은 스페인의 하층민 출신인 ‘맨발의 댄서’ 마리아(에바 가드너)가 영화감독(험프리 보가트)에게 발탁돼 할리우드의 스타가 되고, 최종적으로 ‘백작부인’이 되는 이야기다. 신데렐라 모티브를 갖고 있지만 해피엔딩은 아니다. 마리아의 귀족 남편인 이탈리아인 백작이 사는 곳이 바로 포르토피노 근처의 작은 마을이다. 여기서 마리아는 방황을 멈추고, 백작의 아내로서의 정착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포르토피노의 동화 같은 풍경, 리비에라 해변의 맑은 바다와 푸른 숲들은 마리아의 그런 흥분을 대신 표현하는 공간인 셈이다. 그러면서 포르토피노라는 주민 500명도 채 안 되는 어촌은 영화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포르토피노와 주변 바다의 아름다움은 할리우드 영화인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이다.
최근에 발표된 할리우드영화 가운데 포르토피노의 절경이 잘 표현된 작품으로는 마틴 스코시즈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3)가 있다. 뉴욕 증권계의 ‘늑대’ 조던 벨포트(실제 인물이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했다)는 투자전문가로 30대에 이미 졸부가 됐다. 전쟁을 하듯 돈을 벌고 섹스를 하고 마약을 하던 그가 결국 법의 추적을 받기 시작할 때 이탈리아가 등장한다. 그는 마지막 남은 재산을 회수하기 위해 외국으로 도망가는데, 그곳이 바로 포르토피노와 친퀘테레다. ‘다섯개의 땅’이란 뜻의 친퀘테레는 포르토피노 아래쪽에 있는 다섯개의 작은 어촌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친퀘테레는 남쪽의 아말피 해안과 더불어 이탈리아 최고의 해안으로 꼽히며, 동화 같은 마을 풍경과 쪽빛 바다로 유명하다. 조던이 뉴욕에서 늘 전쟁을 하듯 살다 이곳에 나타나니 화면엔 갑자기 아늑하고 기분 좋은 ‘나태’의 감성이 표현되기 시작한다. 스코시즈는 절경 속에 나태라는 기묘한 기분을 섞어놓았는데, 아마 쉼이라는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절경을 배경으로 드러눕는 것 말이다. 타락의 끝으로 달리던 조던이 그런 생활을 중단하기로 마음먹고 길게 누워 있을 때 뒤로는 포르토피노와 친퀘테레의 풍경이 조용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제노바, 바이런과 셸리의 이탈리아 고향
리비에라 해변, 포르토피노, 친퀘테레 등은 모두 제노바 주변의 유명지다. 이탈리아의 서쪽에 위치해서인지 제노바는 프랑스뿐 아니라 영국과도 오랜 친분을 갖고 있다(베네치아가 독일과 친한 것과 대조된다). 19세기 낭만주의의 ‘영웅’인 바이런 경이 오래 머문 곳도 제노바다. 바이런의 집은 지금도 관광 명소다. 그 집은 친구 퍼시 비시 셸리가 자주 방문한 곳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이들에게 제노바는 제2의 고향인 셈이다. 마이클 윈터보텀의 이탈리아 배경의 두 번째 영화 <트립 투 이탈리아>는 바로 이 두 영국 시인 바이런과 셸리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이탈리아 여행기다. 영화는 제노바의 바이런의 집을 방문하고, 셸리가 바이런의 요트를 빌려 타다 익사한 인근의 바다를 찾아가는 식이다. 나중엔 로마에서 역시 이들의 친구였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의 묘지까지 방문한다. 윈터보텀도 낭만주의 시인들처럼 이탈리아 기행은 제노바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 셈이다(그의 이탈리아 배경의 세 번째 영화 <페이스 오브 엔젤>은 토스카나가 배경이다).
다음엔 토리노로 가겠다. 제노바처럼 친(親)프랑스적인 도시이고, 무엇보다 이탈리아 산업의 대표도시다. 토리노, 밀라노, 그리고 제네바를 연결한 지역은 ‘산업의 삼각주’라고도 불린다. 도둑들의 수법을 그리는 ‘케이퍼 필름’의 고전 <이탈리안 잡>(감독 피터 콜린스, 1969)이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