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식에 참석한 주역 임권택 감독, 안성기 배우(오른쪽부터). 102편의 영화를 연출한 임권택 감독과 131편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 안성기의 역사가 곧 한국영화의 역사를 말해준다.
지난 3월22일 CGV압구정 ‘한국영화인 헌정 프로젝트’ 개관식. 스크린 속 <서편제>의 송화(오정해)와 유봉(김명민), 동호(김규철)가 판소리 가락을 읊으며 봇짐 지고 고개를 넘고 있을 때, 극장 앞 무대에서는 모그 음악감독과 연주팀이 연주하는 <아리랑>이 울려퍼진다. 오정해의 춤사위를 따라 극장 계단에서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소리꾼이 소리를 하며 무대로 향하고 있다. 12분으로 구성된 연극은 이날 CGV 아트하우스에서 열린 개관식을 위해 마련한 것으로, 신연식 감독이 임권택 감독과 안성기 배우의 대표작을 모아 콩트식으로 꾸린 것이다. 헌정관은 한국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과 국민배우 안성기의 이름을 딴 것으로 CGV압구정 아트하우스에는 안성기 상영관이, 부산에 위치한 CGV서면 아트하우스에는 임권택 상영관이 각각 열린다.
<서편제>를 비롯해 <고래사냥> <칠수와 만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취화선>의 영상이 지나가는 동안 무대에서는 <동주>에 출연한 배우들이 영화 속 캐릭터들의 연기를 하나하나 재연하고 있었다. 공연 전 신연식 감독이 “짧은 시간 동안 연습도 많이 못하고 만들어 멋쩍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의 말마따나 공연은 좀 거칠지 모르지만, 이날의 자리가 의미하는 바는 컸다. 언제부턴가 원로 영화인과 젊은 영화인이라는 이분법으로 단절된 충무로에서 한 분야에 매진해왔고 지금도 그 활동을 멈추지 않는 선배 영화인에게 후배 감독, 배우들이 바친 예의와 존경이었다. 이날 자리에 참석한 김홍준, 김기덕, 이명세, 오승욱, 류승완, 박정범, 이광국, 안국진 등 후배 감독들과 박중훈, 정진영, 김호정, 정재영, 신현준, 박상민, 조진웅, 한예리 등 후배 배우들, 제작자 이춘연, 이준동 대표, 음악인 김수철 등 상영관을 꽉 채운 영화인들이 보낸 박수에 임권택 감독과 안성기 배우를 향한 존경이 모두 담겨 있었다.
‘한국영화인 헌정 프로젝트’는 상영관이 물리적인 극장의 기능뿐만 아니라 문화적 가치를 찾길 바라는 마음에서 CGV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결과였다. 바로 한국영화계에서 존경받는 영화인들을 선정해, 그 애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 기존에 있던 서울 압구정과 부산 서면 아트하우스관의 인테리어를 헌정관 이미지에 맞게 새롭게 단장하고, 헌정관이 영화적으로 조명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상하며, 헌정관을 운영해 얻은 수익 중 일부를 독립영화계에 후원하자는 세부 계획으로 진행됐다. 행사에 참석한 CJ CGV 서정 대표는 축사에서 “진작 했어야 했는데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우리가 먼저 시작했으니 다른 극장도 동참해주면 좋을 것 같다”며 이 프로젝트가 “영화인들에게 존경을 표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헌정관의 의의를 밝혔다. 임권택 감독, 안성기 배우도 헌정관 개관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임권택 감독은 “CGV는 천만 영화만 상영하고 나와는 영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는데…”라고 운을 띄워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여든살을 넘기면서 이렇게 좋은 날이 올 줄 생각도 못했다. 뜻밖에 귀한 일이 생기면서 부담스러워졌다. 앞으로 정직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영화인으로서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살겠다”고 감사를 전했다. 더불어 안성기 배우 역시 “임권택 감독님과 함께 헌정관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소감을 전했다. 감사와 함께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임권택 감독은 “나나 안성기씨에게 주는 영광 말고도 영화에 종사하는 여러분들에게 이런 일이 계속 생기고 영화를 하는 사람들이 큰 보람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으며 안성기 배우는 “(이번 프로젝트가) 우리 독립영화를 해나가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용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개관식에는 150여명의 영화인들이 참석해 임권택, 안성기 헌정관 개관을 한마음으로 축하해주었다. 맨 앞 첫줄 왼쪽부터 안국진 감독, 이춘연 대표, 부인 채령 여사와 임권택 감독, 배우 안성기, CJ CGV 서정 대표, CGV 아트하우스 이상윤 사업담당.
한편 이날 개관식을 시작으로, 헌정관에서는 개관 기념 ‘마스터피스 특별전’이 개최된다. 정성일, 허문영 평론가가 선정한 임권택 감독과 안성기 배우의 대표작 15편이 상영된다. 5월부터 10월까지 매달 마지막 주를 임권택•안성기 주간으로 설정하고 대표작 23편을 순차적으로 상영한다. 스페셜 톡과 마스터클래스가 마련되며, 그들의 영화역사를 기록한 사진전이 상시 열린다. 임권택 감독의 <두만강아 잘 있거라> <족보> <길소뜸> <하류인생> <서편제> <천년학>이, 안성기 배우의 <하녀>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기쁜 우리 젊은 날> <개그맨>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킬리만자로>가, 두 사람이 함께한 <만다라>와 <축제> <취화선> <화장> 등이 상영된다.
“한국영화를 향한 애정의 표현”
CGV 아트하우스 이상윤 사업담당
-헌정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계기는.
=그동안 극장은 아이맥스나 4DX관을 만드는 등 기술적으로 발전해왔다. 또 그간 CGV의 브랜드 확립이나 마케팅에도 힘써왔다. 우리는 그걸 넘어서서 상영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여러 고민을 해왔다. 헌정관 프로젝트는 그 고민 끝에 나온 답안이었다. CGV가 한국영화와 함께 성장하고 소통해온 만큼 그 애정을 표현하는 자리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헌정관의 대표주자로 감독 임권택, 배우 안성기를 선정했다. 선정 방식과 이유는.
=선정은 내부에서 진행했는데, 두분에 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임권택관, 안성기관은 영구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운영에 대한 예산 부담이 있어서 걱정이지만, 1년에 1, 2명의 헌정관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서울 CGV압구정 1관(99석)에 마련된 안성기관의 모습.
-헌정관 개관에 대한 영화계의 반응은 어떤가.
=젊은 영화인들도 축사를 건네지만 사실 원로 영화인들의 반응이 큰 편이다. 대단한 일이라고 호평을 해주시더라. 우리 영화인들에게 ‘존경’이라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헌정관을 통해서 오래 일한 예술가와 장인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좋겠다.
-헌정관의 수익금 일부를 독립영화인에게 후원한다.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
=연말에 선정위원그룹을 통해 독립영화 5편을 선정한 후, 임권택 감독과 안성기 배우에게 보여주고 선정하게 할 계획이다. 그렇게 선정된 작품에 대해서 극장 수익금을 전달하려고 한다(헌정관에서 관객 1명이 영화 1편을 볼 때마다 티켓 매출 중 100원을 적립하고, 여기에 CGV 아트하우스가 추가로 100원을 매칭해 총 200원을 기부하게 된다).
-헌정관의 의미와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달라.
=안성기관이 운영되는 아트 1관은 독립영화전용관이었다. 예술영화, 한국 독립영화 등 기존의 상영에 머물지 않고 프로그램을 확장해서 시네마테크 역할까지 더한다면, 프로그램 확장의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한국영화가 상업적으로 사이즈를 갖추는 건 이제 충분하다고 본다. 헌정관은 결국 영화의 본질적인 가치를 관객에게 전달해주는 일일 것이다. 가능한 한 헌정관을 늘리는 게 앞으로의 목표다.